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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10화 (110/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10)

키모폴레이아에 접근 중인 구름 위.

갈래를 날린 저강렵이 눈을 가늘게 뜨고 크루즈선을 관찰했다.

저강렵은 수행을 게을리한 탓에 결계술은 여전히 약했지만, 저 배에 결계가 남아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갈래를 썼는데, 아직 결계가 남아 있다고?’

저강렵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자신한테 잘못이 있을 리가 없으니, 이 모든 건 상보심금파 탓이라고 생각하는 저강렵이었다.

‘젠장! 이 고물 쇠스랑이 힘 조절을 잘못했나!’

자루를 움켜쥐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또 갈래를 쓰게 생겼지만, 곧 자정이 되면 상보심금파의 갈래가 회복된다.’

저강렵의 품에는 불길한 색으로 빛나는 아이템 카드가 있었다.

‘그리고 이 몸에게는 그 마족 놈들과의 거래에서 받은 그것도 있지, 암, 아무 문제 없고말고!’

저강렵은 상보심금파를 들어 올려 키모폴레이아를 겨누었다.

*    *    *

이제 황지호의 결계가 사라진 상태에서 갈래를 맞이해야 한다.

‘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건 확인했어.’

마침 오늘은 구름도 없고 달이 밝았다.

피난에 가장 적합한 광림을 발동시켰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대상 캐릭터의 광림, ‘월하의 위태천(韋馱天)’을 사용합니다.›

사용하는 것은 암중섬광(暗中閃光) 오혜지의 광림.

달이 떠 있을 때는 최강의 이동 기술이었다.

팟!

가벼운 도약에도 내 몸은 멀리 이동했다.

뱃머리에서 크게 멀어졌을 때.

키모폴레이아에 내장된 결계 밖에서 이능파가 날아왔다.

콰아아아―!

콰드득―!

결계는 순식간에 파괴되고 이계 금속으로 만든 선체 표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거대한 짐승이 발톱으로 할퀴고 간 것처럼 엉망이 된 선수 쪽 갑판.

내가 몸을 숨긴 기둥도 크게 손상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출력이 전력을 낸 게 아니라, 결계를 부수고 경호팀을 떼 놓기 위한 미끼라니.

‘이제 남은 갈래는 다섯.’

삑.

디바이스에 선장으로부터 자연 이능파 방출 현상 안내가 도착했다.

‘이쯤 되면 선장과 선원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을 거야.’

선원 중에 플레이어가 있더라도 대부분 지금 이계 공략 중일 거다.

차기 총수들에게 보고가 갈 테니, 결국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경호팀을 보낼 거다.

‘왔군.’

주수혁의 전속 비서인 김철을 비롯한 경호팀이 도착했다.

비즈니스 정장의 디자인이 두 종류로 갈린 걸 보니, 주오와 TC 경호팀 모두 온 모양이다.

“자연 이능파 방출이 이렇게 강력했나.”

“SR급은 가볍게 넘는 규모군요.”

“또 오면 저희가 막을 수 있을까요.”

“동시에 이능파를 방출하면 경로를 틀어 버리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상의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저 멀리서 강력한 이능파가 접근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경호팀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통찰계 스킬 사용자가 외쳤다.

“이능파가 오고 있습니다. 예상 등급은…… SR+++, 아니 SSR급 이상! 30초 내로 키모폴레이아와 접촉합니다!”

경호팀원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그런 게 직격하면 키모폴레이아가…….”

“이능파의 출력을 끌어올려. 김철, 네가 결계 아이템을 써!”

“알겠습니다!”

“이능파를 비스듬하게 쳐서 진로를 빗나가게 한다. 알았나?”

팀장의 지시하에 팀원들이 이능파를 끌어올리고 아이템을 분주히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계 충돌 이후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한다는 경호업.

‘그렇다고는 해도 경호팀 사람들에게는 자연 이능파를 상대한 경험도, 관련된 기술도 없을 텐데.’

그들의 눈은 결연했다.

겁에 질린 사람도 있었지만, 도망갈 생각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망가지 않는구나.’

이전에 환몽 경매에 있던 경비원들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물론 사월세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던 그 여자 경비원은 예외지만.

‘이들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으니까, 나도 어떤 수를 두어야 할지 쉽게 정할 수 있었어.’

게임 속에서 이들의 행보를 봐 왔던 나다.

내가 놓을 다음 수는 정해져 있었다.

‹대상 캐릭터의 광림, ‘군사가 지휘하는 진군가(進軍歌)’를 사용합니다.›

내가 사용한 광림은 만우절에 구한 플레이어블 캐릭터, 박승현의 것이었다.

박승현은 플레이어들의 신체 능력과 이능파 출력을 크게 상승시키는 광림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장시간 ‘군사가 지휘하는 진군가(進軍歌)’를 유지하기는 어려워. 그래도 이능파끼리 접촉하는 한순간 정도라면……!’

경호팀의 이능파 출력이 정점이 다다른 순간.

내 광림 사용 대상을 그들로 정해 힘을 보냈다.

게임 속에 나온 묘사대로라면 지금쯤 허밍이나, 휘파람 소리가 광림 사용 대상의 귀에 들리고 있을 거다.

바람이 흐르는 소리 같은 울림이 내 귀에도 퍼지고 있었다.

휘이이—

“잠깐. 무슨 소리 안 들려요?”

“휘파람 소리?”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야!”

파아아앗―!

저강렵이 쏜 자연 이능파로 가장한 갈래.

박승현의 ‘군사가 지휘하는 진군가(進軍歌)’로 강화된 경호팀의 이능파.

두 힘이 충돌했다.

펑! 촤아아아―!

경호팀장이 의도한 대로 저강렵이 날린 이능파는 키모폴레이아를 빗나가 바다 저편에 처박혔다.

순간 거세게 파도가 일어났지만, 기세를 죽여 놓은 덕에 키모폴레이아가 쓰러질 만한 충격파는 오지 않았다.

‘좋아! 이대로 가면 한 방 정도는 더 막을 수 있을 거야.’

남은 갈래는 넷.

하나는 경호팀에 박승현의 광림을 써서.

다른 하나는 ‘지우는 자의 거스름돈’으로 가능성을 지우고.

다음 하나는 내가…….

풀썩.

생각을 이어 가던 중.

경호팀의 인물 중 하나가 쓰러졌다.

신체와 이능파 수치가 정상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건……!’

나는 옥토연에게 즉시 메시지를 날렸다.

[나] 월궁계도의 출력을 최대로 올리세요.

[옥토연] ……응? 왜?

[나] 빨리요.

몇 초 안 되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답변을 한 건 옥토연이 아닌 황지호였다.

[황지호] 달토끼는 두통 때문에 횡설수설하는 중이다.

[황지호] 키모폴레이아의 선수에 석촌호수에서 본 이능독이 퍼지는 중이라더군.

[황지호] 곧 네가 숨어 있는 곳에도 이능독이 퍼질 거다.

이능을 가진 신체를 오염시키는 이능독.

저강렵이 이곳에 이능독을 푼 모양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해저에는 동결형 이계가 없었지. 그래서 사용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족은 이능독을 동결형 이계에서 분리해 사용하는 기술을 확보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이능독 아이템을 저강렵에게 넘긴 걸 거고.

[황지호] 남은 갈래는 네 개에 이능독까지 풀린 상황이군.

저강렵은 갈래 외에도 다른 수를 준비해 와 눈앞에 선보였다.

지금, 그 수를 어떻게 받아 쳐야 할지 결정할 때였다.

‘주변의 독과 저주를 억누르는 안다인의 특이체질이 적용되는 건 약 10m야. 이 갑판 전체에 퍼진 이능독을 제어하는 건 불가능해.’

이능독이 어디까지 퍼질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키모폴레이아 후미에서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이능독은 죽음에까지 이르진 않지만 에너미와 싸우는 도중에 중독되면…….’

이능독에 중독된 플레이어들이 에너미와 싸우다 전멸당했던 석촌호수의 비극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내 친구들과 그들의 지인들이 이계를 공략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이능독에 중독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 뒤가 서늘해졌다.

[황지호] 내가 개입할 상황이 된 거 같은데.

황지호가 나선다면 저강렵의 처리는 간단하다.

하지만 적호의 수고는 무위로 돌아가고, 호족의 개입을 안 긴 꼬리가 몸을 사릴 테니 앞으로 일을 풀어 가는 게 힘들어질 거다.

[나] 오지 마.

그 메시지를 보내고는 각오를 굳혔다.

‘망설이면 안 돼. 시간이 없어!’

자정이 지나면 상보심금파의 제한 횟수가 다시 초기화되어 버린다.

나는 바로 일정 희귀도 이하의 가능성을 지우는 SSR+++급 아이템 카드, ‘지우는 자의 거스름돈’을 꺼냈다.

‘우선, 이능독은 거스름돈으로 지우자.’

갈래를 지울 수단 하나를 잃겠지만.

파아앗―!

SSR+++급 아이템의 이펙트가 발동되었다.

선체를 감싸는 순백의 곰 가죽을 뒤집어쓴 자의 그림자.

그림자가 사라지자, 이능독으로 쓰러진 경호팀 사람들이 편한 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됐다. 문제는 지금부터야.’

나는 갈래를 지울 수단만 잃은 게 아니었다.

“네놈은, 까마귀 가면!”

높은 희귀도를 가진 아이템의 사용.

당연히 힘의 흐름이 보일 수밖에 없다.

저강렵에게 내 위치가 발각되었다.

까마귀 가면을 쓰고 변장한 나를 본 저강렵.

“그렇군, 이 몸의 갈래가 막힌 건 다 네놈 탓이었어!”

저강렵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직접 목소리를 들려줘 최편득이 그걸 흉내 낼 만큼 가까이 지냈던 저강렵.

작게나마 기사로 뜬, 최편득의 아성을 무너뜨린 까마귀 가면을 파악하고 있는 건 당연했다.

“죽어라.”

다섯 번째의 갈래가 나를 향했다.

내가 플레이어의 궤적 중 하나를 발동했을 때.

퍼억―!

쇠스랑의 이빨이 내 복부를 관통했다.

*    *    *

키모폴레이아 후미의 갑판.

섬 형태로 떠오른 SR+++급 이계 앞.

공격대로 들어간 건 도원우, 오혜지, 주수겸, 곽 사범.

수비대로 남은 건 주수혁, 맹효돈, 그리고 곽 사범의 친구인 한복 차림의 사내였다.

오혜지는 1학년만 남기는 게 걱정스러워 남으려 했지만, 곽 사범의 친구가 애를 보겠다고 자처했다.

“광림 쓰니까 개 쉽네.”

“자정 직전이라서 다행이야! 시간 신경 안 쓰고 광림 쓸 수 있잖아.”

광림을 발동한 상태로 애검 두빛나래를 휘둘러 약점을 무시하고 에너미를 공략해 나가는 주수혁.

두 마리가 동시에 나타날 때는 광림으로 발을 묶어 버리는 맹효돈.

에너미가 선체로 넘어갈 틈이 없었다.

“흠…….”

두 플레이어가 워낙 잘 싸우는 바람에 할 일이 없어진 곽 사범의 친구.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손 놓고 맹효돈이 싸우는 걸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뭐야, 기분 나쁘게.’

맹효돈은 아주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저 한복 도인이 주수혁의 스승 되는 분의 친구라니 참기로 했다.

대신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릴 겸,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아, 부반장은 왜 안 와.”

“음…… 의신이가 알람을 못 본 걸까? 아니면 뒤늦게 뱃멀미가 와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또 수상한 짓 하고 있나 보네.”

크르르―!

두 사람의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둘을 공격하려는 새로운 에너미.

하지만 금방 맹효돈의 어설픈 스티프 잽이 에너미를 날려 버리고 주수혁의 두빛나래가 에너미의 급소를 베었다.

맹효돈이 속으로 한복 도인이라 칭한 이는 눈에 불을 켜고 그 싸움을 지켜봤다.

*    *    *

수많은 전장을 겪어 온 천봉수장으로서, 서역으로의 구법기행을 완수한 저팔계로서의 감이 고했었다.

이자를 반드시 처치해야 한다고.

그래서 정보를 캐기도 전에 갈래를 써 버렸다.

까마귀 가면을 쓴 인간이 쇠스랑의 이빨에 꿰뚫린 채로 휘청이고 있었다.

까마귀 가면을 쓴 자는 고통으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리려 하고 있었다.

‘지독한 놈! 이 갈래에 꿰뚫리고도 움직여!’

상보심금파의 갈래를 발동시켜 이빨이 직접 몸을 꿰뚫으면 남은 갈래의 수만큼 몸 안이 찢기고, 이능파가 얽히기 시작한다.

귀중한 갈래를 오로지 한 존재를 파괴하기 위해 사용한 만큼, 그만한 효과를 보는 것이다.

비록 갈래를 몇 번 사용해 위력은 덜하겠지만 인간이 쉬이 참을 만한 고통은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진족이나 후예는 아니야.’

건방지게도 인간 중에 방어력이 높거나 자체 회복 능력이 우수한 것들도 있으니, 그런 부류일지도 모른다.

지금 갈래로 인한 신체 파괴가 진행이 더딘 걸 보니, 까마귀 가면을 쓴 자의 신체 내부에서 파괴와 회복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 해도 고통이 없어지는 건 아닐 텐데!’

이자는 고통에 익숙하기라도 한 건가.

갈래를 하나 더 써서 한 방 더 먹여야 하는가, 저강렵이 망설이던 때.

덥석.

까마귀 가면을 쓴 자가 손을 뻗어 제 몸을 꿰뚫은 쇠스랑의 자루를 움켜쥐었다.

‘……웃었어?’

까마귀 가면이 전부 가리지 않은 입가.

그 입술이 휘어져 아주 수상하게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저강렵이 얼이 빠진 사이.

까마귀 가면, 조의신의 머릿속에는 그에게만 들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스킬 ‘만물 사용’이 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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