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18화 (11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18)

국회의원 성국언의 은광구 지역 사무실.

지역 주민이 편하게 와서 민원을 전할 수 있도록 북카페처럼 꾸며진 공간.

가장 눈에 띄는 건 성국언의 후원자, 지지자가 남기고 간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는 유리벽이었다.

그 벽 너머, 지역구 담당 보좌진이 방문한 시민들과 인사를 하는 성국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원님 요즘 자주 오시네. 은광구 쪽 사무실은 잘 안 오셨는데.”

“그러게. 작년보다 이계 공략 빈도도 줄이신 것 같아.”

“3일 연속 공략 뛸 땐 무영이가 사표 쓰지 않았어?”

“아, 그거. 진짜 사표 수리 직전까지 갔었더라.”

한편, 유리벽 너머에서 모든 시민의 이야기를 웃는 얼굴로 들어 주는 성국언.

무수한 이계 공략에서 최대 공헌자 자리를 차지하고, 단신으로 국회 공성전을 제압한 ‘국언무쌍’답지 않은 따뜻한 모습이었다.

“아, 무영 씨랑은 화해하셨대? 저번 이계 공략 때 또 싸우셨다면서.”

“응. 이번엔 안 다치셨으니까 금방 화해하신 것 같아.”

곧 모든 시민과 대화를 마친 성국언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자 보좌진이 인사를 건넸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의원님.”

그사이 전화가 걸려 왔는지 이어링으로 통화 중인 성국언.

그는 손을 흔들며 입 모양으로만 보좌진의 인사에 답한 후, 바로 개인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쉬익.

성국언은 자동문이 닫히고도 몇 분간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상대방도 성국언의 걱정을 하는지 성국언은 몇 번이나 제 몸은 괜찮다,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네. 그러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긴 통화를 끝낸 성국언의 앞.

그의 수석 보좌관이자 경호원, 또 같은 학교 후배이기도 한 전무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어느 분과 통화하셨습니까?”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 어르신.”

“아…… 의원님 할아버님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셨죠.”

“응. 다음에 같이 뵙고 인사드리자.”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를 여읜 성국언.

송만석은 성국언을 친손자처럼 대해 줬었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곤 답지 않게 아이 같은 낯을 하며 웃는 성국언.

그 표정이 성국언과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면서도 전무영은 속으로 좋은 점수를 줬다.

‘사진 찍어서 대중에 공개하면 지지율이 오를 것 같은데.’

다음 총선 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전무영이 서류 더미를 내밀었다.

“부탁하신 은광고 자료. 전부 종이로 프린트해 왔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이달에 은광고에 자료 요청한 횟수가 네 건이 넘었습니다. 은광고 측에서 항의할지도 모릅니다.”

“하하핫! 하든지 말든지.”

성국언은 호쾌하게 웃었지만, 서류를 확인하는 눈에는 날이 서 있었다.

이사진과 재단 직원 중에 진족이 있는 은광고.

성국언이 진족과 후예를 믿지 않는 탓일까.

환몽 게이트 건이 터진 이후 성국언은 툭하면 은광고의 통계를 확인하곤 했다.

‘나한테도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언젠가는 말해 주겠지.’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서류를 체크한 성국언.

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서류 더미를 파쇄기 안에 넣으며 말을 꺼냈다.

“내일 저녁 스케줄 비어 있지? 같이 후배님하고 밥 먹으러 가자. 시완이도 올 거야.”

“후배라면 무명의 초신성 말씀이십니까?”

“그래. 진족과 후예들 사이에서 고생하는 후배들한테 밥이라도 사 줘야지.”

성국언은 창밖 멀리 보이는 은광고를 응시하며 말했다.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고.”

*    *    *

이계 충돌 후의 이 세계.

내가 있던 세계와 개념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종교가 존재했다.

‘상위 존재라는 ‘신’이 있으니까.’

대부분의 상위 존재는 이계 충돌 이후, 암묵의 합의하에 이교(異敎)를 허용했다.

그러나 제 이름과 권위를 빌려 장사질을 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는 철저히 배제했다.

‘이계 충돌 이후에 광신도 집단이 몇 번 사이비 집단들과 전쟁을 치렀지.’

광신도들은 상위 존재의 가호와 진족의 지원에 힘입어 수많은 성전에 승리해 왔다.

그래도 여전히 겁 없는 사이비 단체는 존재했다.

그 덕에 내가 있던 세계에서 사이비, 다단계 업자, 잡상인 등이 사용하던 문구, ‘도를 아십니까’는 여기에서도 쓰인 모양이다.

그 문구만큼 퇴치법도 유명했는지, 바로 맹효돈의 말을 알아들은 탁 도인이 말을 더듬었다.

“도라니! 어허, 그런 게 아니라 나는……!”

탁 도인이 겸연쩍어하다 허허허, 하고 웃었다.

아마 본인이 얼마나 수상한지 깨달았을 거다.

‘아침 일찍 한복 차림으로 고등학생을 붙잡고 기운이 맑으니 어쩌느니 하는데 수상하지 않을 리가.’

은광고 보안팀을 부를까, 함근형 담임 선생님을 부를까 고민하던 중.

“무슨 일입니까! 학생한테서 떨어지세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도부 소속 2학년 마진승.

일방적으로 염준열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중인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다.

“야, 마진승 선배 누가 부름?”

“학생회 부르지. 준열이 오빠 올지도 모르는데.”

“선도부가 교문 지도 담당이라서 그쪽에 연락했는데.”

“아, 뭐래. 지금이라도 학생회 부르자.”

“지금 부름. 홍룡 소환!”

마진승이 염준열을 상대로 여러 번 시비를 걸다 털린 건 이미 1학년 사이에서도 유명해서 그런가.

마진승은 평판도 인기도 바닥이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외야에는 신경 끄고 제 할 일을 하는 게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다웠다.

탁 도인과 마진승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고, 중간에 낀 맹효돈이 언제 튈까 각을 재고 있는 게 보이는 와중.

“진승아, 뭐해.”

학생회 배지를 착용한 인물이 등장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기대한 인물은 아니었다.

“응? 홍룡 선배님은?”

“없었습니다.”

“홍룡 소환에 실패했습니다…….”

등장한 건 교복만 아니라면 교사로 보일 법한 노숙한 얼굴의 곽경구였다.

마진승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곽경구에게 말했다.

“이분이 나잇값을 못 하시고 1학년 학생을 붙잡고 사이비를 전파하고 계셔. 끌고 가자!”

“이눔이 뭐라는 거야! 난 신 안 믿는다!”

탁 도인보다 나이가 몇 배나 많아도 나잇값을 못 하는 건 우리 반에도 있는데.

탁 도인을 알아본 곽경구가 인사해 왔다.

“어, 탁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여기엔 무슨 일이십니까.”

“뭐! 네 아비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 할배라니!”

“아버지께서 그렇게 부르라 하셨습니다.”

“곽 씨 그놈이!”

탁 도인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결국 곽경구에게 설득당해 발걸음을 옮겼다.

맹효돈을 미련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보는 탁 도인이 외쳤다.

“명함은 잘 갖고 있지? 연락해라! 알았지!”

“탁 할아버지, 빨리 가요.”

마진승과 곽경구에게 끌려가는 탁 도인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는 맹효돈.

“괜찮냐.”

“……어.”

내 물음에도 영혼이 사라진 얼굴을 한 맹효돈.

교실 들어가기 전에 매점에 들러서 뭐라도 먹일까, 고민하던 중.

“어, 벌써 정리됐네. 탁 할아버지 가셨구나.”

말을 걸어온 건 주수혁이었다.

“야, 저 할배 대체 뭐냐. 뭔데 학교까지 들어와.”

“탁 할아버지는 은광고 명예 교사직에 계셔. 상시 출입 허가를 받으셨을걸.”

“명예 교사? 그건 또 뭐야.”

“설명하면 좀 긴데…….”

주수혁은 탁 도인의 경력을 간략히 읊었다.

20대 시절, 맨손으로 하는 모든 무술대회의 플레이어 부문에서 정점을 찍은 탁 도인.

한 플레이어의 말도 안 되는 수상 독식 현상 때문에 플레이어 부문을 축소하거나 폐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경력을 높이 사 은광고에서 명예 교사직까지 줬다.

‘저 도인한테 그런 경력이 있었나!’

현시점에서 일반적으로 플레이어는 스포츠 대회 출전이 금지되어 있고, 플레이어 부문이 따로 마련된 대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건 탁 도인만이 원인은 아니겠지만, 하여튼 탁 도인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탁 할아버지께는 아직 제자가 한 명도 없는데…… 효돈이가 마음에 드셨나 봐.”

“저렇게 징그럽게 들이대니 제자가 없지.”

“하하하, 그런가?”

저런 경력을 가진 탁 도인에게 제자가 없는 건 보나 마나 눈이 높아서일 거다.

얘기를 들어 보니 탁 도인은 주수혁에게도 제자가 되어 달라고 제안한 적이 있던 모양이다.

이미 곽 사범에게 쌍검을 배우던 주수혁은 거절했지만.

‘주수혁이나 맹효돈 정도 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거겠지.’

아직도 제자로 받아 달라며 줄을 서는 이들이 넘칠 탁 도인.

그런 그가 맹효돈에게 사이비 도인 취급받으면서 자존심도 던지고 매달리고 있었다.

탁 도인의 높은 안목에 고개를 끄덕였다.

‘은광고 교사는 우수하지만, 맹효돈의 스킬을 살리려면 좀 특별한 교육이 필요해.’

게임 속에서도 맹효돈의 파생 스킬 습득 과정은 아주 험난했었다.

당시 나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 개인 수련을 반복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게임에서 썼던 방식을 쓰면 맹효돈은 고3이 되어도 파생 스킬을 못 얻을 거야. 파생 스킬이 없어도 강하긴 하지만…… 앞으로의 사건을 생각하면 얻어 두는 게 좋을 텐데.’

탁 도인 정도 되는 스승이 있다면 시간도, 수고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거다.

문제는 맹효돈의 의지인데…….

“탁 할아버지가 오랜 기간 제자가 없어서 그런지 좀 초조해지셨나 봐. 나쁜 분은 아니니까 잘 생각해 봐.”

“그래.”

다행히 주수혁의 말에 맹효돈의 생각이 좀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았다.

아직 좀 떨떠름해하는 것 같지만.

*    *    *

1학년 0반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맹효돈은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맹효돈이 웬 도인에게 사이비 종교 입교 제안을 받았다는 소문이 돈 탓이다.

“효돈아, 사이비는 안 돼!”

“맞아. 특히 유명한 상위 존재의 이름을 대는 곳! 진족이 죽이러 올지도 몰라!”

“네! 진족을 통해 저주를 내리는 상위 존재도 있대요!”

“하하하하!”

김유리와 권레나, 사월세음이 열을 올리자 맹효돈은 다시 영혼이 사라진 얼굴로 그 얘기들을 들었다.

탁 도인의 정체를 아는 황지호는 옆에서 신나게 처웃었다.

“신역에서 건방을 떨거나 천신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장사하는 놈이 있으면 나도 그러긴 할 건데.”

실컷 처웃다 목소리를 낮춰 중얼거리는 황지호.

은광구에서 사이비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늘도 먹고 왔군.”

내가 자리에 앉자 황지호가 오늘도 그 맛없는 영약을 먹었나 안 먹었나 체크했다.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녹족의 영약이라 하니 특수한 이능파의 잔해가 남아 있을 거라 추측되었다.

‘그러고 보니 피곤하지 않네.’

어제 백호군과 그렇게 거칠게 대련했는데.

맛없는 만큼 영약이 효과를 발휘하나 보다.

“영약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 다 먹고 나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만, 지금 알려 줄 수도 있는데.”

황지호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 왔지만, 철벽을 쳤다.

“아니, 안 궁금해.”

내 말에 황지호가 언짢아하는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을 우연히 본 한이가 정색했다.

“황지호가 또 기분 나쁜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저 새끼 또 저러나 보네.”

황지호의 돌아이 평판은 순조롭게 유지되고 있는 듯했다.

*    *    *

방과 후.

총동아리회관, 신문부실.

부실 안에 박스가 잔뜩 쌓여 있었다.

“오늘 제갈재걸 쌤 잡지 2쇄가 나왔어!”

“오, 부록도 그대로네요.”

“응. 안 그러면 2학년 0반 용자들이 뭔 짓을 할지 모르잖아.”

부장과 부부장이 먼 산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 쳐도 좀 많은데.’

잡지 외에도 포토 북, 포스터와 스티커 세트, 하드커버 보관함 등이 포함된 덕에 부피가 큰 편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박스의 숫자가 많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 어느 부원이 물었다.

“그런데 이거 너무 많지 않아요? 100권 넘는 거 같은데.”

“0반 애들이 비용은 다 댈 테니까 1인당 세 권씩 뽑아 달라고 해서.”

“네?”

“열람용, 소장용, 예비용. 세 개씩 필요하대.”

제갈재걸 진성 광팬들의 위엄은 남달랐다.

“혹시나 모자랄까 봐 더 넉넉하게 뽑아 놨어. 어차피 비용은 0반 애들이 대잖아. 하하하. 덤으로 내 몫의 보관용도 뽑았지.”

그러는 부장도 제갈재걸 처돌이었다.

*    *    *

기숙사 방.

나는 어느 제갈재걸 처돌이를 떠올렸다.

‘이제 슬슬 야근을 안 할 때가 됐어.’

메시지를 하나 작성했다.

[나] 안녕하세요, 홍규빈 팀장님. 지금 바쁘세요?

메시지는 바로 기독 처리됐지만, 답변이 오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홍규빈] …….

[홍규빈] 의신이 너는 내 잔업이 끝나는 타이밍을 잘 아는 것 같구나…….

[홍규빈]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지금 차 돌리는 중이야. 다시 협회에 가면 되지……?

홍규빈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말투였다.

부장에게 부탁해 받아 온 여분의 제갈재걸 잡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나] 이거 드리고 싶은데요. 바쁘시면 우편으로 보낼까요?

메시지 보내기가 무섭게 어마어마한 속도로 답변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홍규빈] 그게 무슨 말이야, 의신아. 마침 내가 하나도 안 바쁘고 안 피곤해.

[홍규빈] 연락해 줘서 고맙다. 지금 당장 만나자! 뭐 먹고 싶니. 말만 해. 다 사 줄게. 아니면 갖고 싶은 거 있어? 지금 예약 없이 갈 수 있는 VIP 플로어는 세 개 정도 있는데. 아, 일단 만나서 생각할까. 학교 정문 앞으로 나와!

나갈 채비를 할 때, 추가로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홍규빈] 아, 저 잡지는 세 권 정도 받을 수 있을까……?

홍규빈도 열람용, 소장용, 예비용 세 권이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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