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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24화 (124/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24)

올무가 생각날 때마다 샀던 올무 사이즈의 의류.

100벌은 족히 넘어갈 옷들이 넓은 거실 가득 펼쳐져 있었다.

“이거 의신이 오빠가 다 사 오신 거예요? 귀엽다……!”

“와…… 작다…….”

“사진 찍어야지.”

은호의 후예 삼 남매들이 오밀조밀한 사이즈의 의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사 준 매트 위에서 꼬리를 빠르게 살랑거리는 올무.

올무도 새 옷이 마음에 드는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이제 기분을 풀어 줬으면 좋겠다.’

오늘도 올무는 한 번도 애교를 부리거나 안아 달라 조르지 않았다.

그 저세상 늪 같은 녹족의 영약을 다 먹어도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나 보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올무에게 물었다.

“올무야, 어떤 옷이 제일 마음에 들어?”

눈을 반짝이는 올무에게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불길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황지호가 당장이라도 빵 터지려 하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더 불길하다.

끄응…….

올무가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올무가 아직도 화가 나 있는 모양이다.

착한 올무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아무 잘못이 없으니 결국 다 내 잘못이다.

즉,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올무의 화를 풀기 위한 방법을 떠올려 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굳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는 나를 보던 황지호가 처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처웃는 황지호.

그 자리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나를 쳐다보지 않는 올무.

은호의 후예들은 우리를 보며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황호 님……?”

“……와, 황호 님이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봐.”

“동영상 찍어야지.”

뒤늦게 나타난 적호가 말을 걸어 준 후에야 상황이 수습되었다.

“그만 가죠, 조의신.”

“……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올무의 하얀 등에서 시선을 뗐다.

그렇게 적호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응접실.

곧 여름이라 그런지, 인테리어가 크게 바뀌어 있었다.

금색 기조의 색 배치는 여전했지만 커튼은 얇고 투명한 소재로, 가구는 밝은색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여전히 계절감을 신경 쓰는구나.’

오늘의 차는 복분자 냉차, 다과는 살구로 만든 과실편이었다.

대저택 안은 쾌적하지만, 실외는 꽤 더웠던 걸 고려한 메뉴 선택인 것 같다.

‘그런데 백호군이 안 보이네.’

현관에는 있었던 것 같은데, 응접실에는 보이지 않았다.

백호군 몫의 백자 찻잔이 놓인 걸 보니, 황지호가 부른 것 같은데.

“이제 오는군.”

냉차를 몇 모금 마시고 나자 백호군이 도착했다.

백호군이 자리에 앉자 황지호가 바로 본론부터 들어갔다.

“저강렵이 행방불명인 상태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데미지를 크게 줬긴 했지만, 죽을 만큼은 아니었는데.

“죽지는 않았다. 결계에 이상이 없으니까.”

결계를 보면 저강렵의 생사 여부를 알 수 있나?

황지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신역의 결계는 12지 수장 전원의 힘이 이어져 있어. 수장 중 누군가 죽었다면 내가 알아챘을 거다.”

저강렵은 대체 어디에 간 건가.

고민에 잠긴 나를 보던 적호가 말했다.

“돈족 내부에서는 행방불명된 저강렵을 수색 중인 것 같더군요. 마지막으로 부하에게 연락한 흔적은 있긴 합니다만…….”

적호는 돈족을 조사한 모양이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도 됐고, 돈족에는 저강렵도 없어 다칠 위험도 적어졌으니 황지호가 허락했나 보다.

“추측은 여럿 존재합니다. 임무에 실패한 저강렵이 자취를 감췄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사기도 상당히 떨어져 있더군요.”

적호가 그 외에도 간단한 조사 결과를 홀로그램으로 띄우며 말했다.

돈족 측에서 실행 중인 저강렵의 수색 일지가 정리되어 있었다.

적호의 보고가 끝나자 황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돼지의 실종에 호족이 연관되었다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으니 문제는 없을 거다.”

황지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돈족에는 저강렵도 없고, 저강렵이 돌아온다 해도 상보심금파도 없지. 이빨 없는 돼지를 겁낼 필요는 없다. 그 돼지의 행방보다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게 있지.”

이번에는 황지호가 홀로그램을 전개했다.

첫 번째 홀로그램에 뜬 건 주오 그룹과 TC 그룹 차기 총수의 사진.

두 번째 홀로그램에는 우족(牛族), 사족(蛇族), 마족(馬族), 원족(猿族)의 이름과 근거지가 표시된 한반도 지도가 떴다.

“첫 번째는 ‘그분’이 노리는 것. 두 번째는 긴 꼬리의 정체다.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답했다.

“그래. 주오 그룹과 TC 그룹의 차기 총수를 두 번이나 노렸어. 그들을 집요하게 노린 이유가 있을 거야.”

“그룹 운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라면, 현직에 있는 총수를 노리는 게 더 빠르고 효과도 크겠지. 왜 차기 총수였을까. ……무엇을 노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게임 속에서는 잠실 야구장 사건으로 TC 그룹 차기 총수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여 흑막의 목표는 반쯤 달성되었다.

‘주오 그룹의 차기 총수는 건재했지만, 그룹 운영 자체에 문제가 생겨. 게임 속 정보만으로는 흑막이 정확히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데.’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고려하면 후보가 몇 개 떠오르지만, 이거다 싶은 게 아직 없었다.

“남은 꼬리 후보는 좁혀졌지만, 이들 전부를 동시에 감시하는 것도 불가능해. 우선 돈족을 계속 감시하려 한다.”

황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반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진족들을 동시에 감시하는 건 어렵다.

우선은 돈족의 감시를 확실히 해 두는 게 좋을 거다.

‘흑막의 다음 수는 여름 방학에 올 거야.’

지금은 그때를 대비해 두는 게 최선이다.

“이쪽에서도 그 외에도 시도하고 있는 게 있어. 성과를 내면 너에게도 알려 주마.”

설명을 마친 황지호가 조금 눈을 빛냈다.

저놈은 뒤에서 또 뭔가를 하고 있나 보다.

“그러면 대충 이야기는 정리된 것 같군.”

선상 파티에 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났을 때, 흑막과는 크게 관계가 없어 보이는 화제를 꺼내기로 했다.

오늘 황지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두 가지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과 관련된 사항 중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말해 봐라.”

이놈은 우리 반 아이들이 꽤 마음에 든 것 같으니 들어줄지도 모른다.

“한이의 청력 말인데, 네 힘으로 어떻게 안 돼?”

“몇 번이나 재검사해 봤다. 이능으로도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이 안 되더군.”

황지호가 먼저 알아보고 있었던 건가.

한이도 황지호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아서 알지 못했었다.

“원인 파악조차 제대로 안 돼. 그녀에게는 ‘듣는다’라는 기능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더군. 치유 스킬이나 광림으로도 안 될 거다. 아무리 강력한 치유계 이능이라도 ‘처음부터 그녀에게 없던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까.”

신화계 호족의 힘으로도 해결이 안 되다니.

한이가 안고 있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다.

‘함께 연주를 듣고 싶었는데.’

황지호도 아마 같은 마음인지, 가라앉은 눈을 하고 있었다.

다음 화제로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민그린이 이상한 놈한테 걸린 것 같아. 알아봐 줘.”

나는 어제 스크랩해 둔 은광고 커뮤니티 종합 게시판의 글과 댓글을 홀로그램에 전개했다.

“직접적인 욕설이 없어서 제재되지 않고 있어. 내용은 맛이 가 있지만. 사실과 허구를 섞어 그럴싸한 헛소문을 만드는 중이야.”

예를 들어 민그린의 작품이 전시 중인 국립 현대 한국화 미술관에서 그녀가 갑질을 했다는 헛소문이다.

증거로 제시한 신문 기사는 두 개.

첫 번째 기사는 민그린의 작품전이 열리는 기간과 장소를 소개한 기사.

두 번째 기사는 미술관에서 정신적인 문제로 퇴사한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

이 두 가지였다.

“민그린이 갑질을 했다는 것에 이 기사들이 어떤 증거가 되는지 모르겠군.”

“사람은 믿고 싶은 걸 믿잖아. 어린 천재의 그림이 전시된 동안, 사람들 정신에 문제가 생겼으니 둘을 엮고 싶겠지.”

나는 홀로그램 하나를 더 띄웠다.

자칭 미술관의 퇴사한 직원의 지인이라며, 민그린에 대해 없는 얘기를 떠드는 내용이었다.

증거로 제시된 건 미술관 직원의 명함이었다.

‘이 명함이랑 민그린이 갑질을 한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멍청한 사람들은 객관적인 증거가 셋이나 있다며 이 헛소리들을 믿을 것이다.

“여기에다 흔히 이런 ‘뇌피셜’이라고 부르는 망상을 섞으면 그럴싸해져. 무려 증거로 진짜 기사가 두 개, 관계자의 증언들이 존재하는 루머가 되는 거야.”

“……지나치게 멍청해서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군. 어리석구나. 속이는 놈들도 속는 놈들도.”

“민그린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많아.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빨리 잡아내는 게 좋을 거야.”

황지호가 내가 띄운 홀로그램들을 자신의 디바이스로 스크랩하며 답했다.

“알았다. 어떤 놈인지 찾아내 주마.”

은광고 이사장이 직접 털면 금방 범인은 잡히겠지.

나는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맛본 지옥의 맛과 깊게 관련된 화제였다.

“저번에 말한 녹족의 영약이 가진 효과에 관해서 묻고 싶은데. 다 먹었지만 피로 해소 효과 외에는 별로 모르겠어.”

말하면서도 그 영약의 맛이 떠올라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 얼굴을 본 황지호는 당장이라도 처웃을 기세였다.

“호족의 신보(神寶)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그 영약에는 신보가 나타나는 샘의 정수를 섞어 뒀다.”

그런 걸 섞었나.

신보 그 자체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 샘의 정수도 귀할 텐데.

“내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 우리의 ‘눈’이 가진 능력의 일부가 네 눈에도 나타날 거다. 너도 곧 알게 되겠지.”

황지호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내용은 꽤 중대했다.

호족의 눈.

그 눈이 가진 능력의 일부.

그런 걸 손에 넣으면 앞으로 짤 수 있는 전략의 폭도 커질 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렇게 좋은 거면 올무의 영약부터 만들자.”

“……녹족의 영약으로도 네 지능 하락 현상은 낫질 않는군.”

황지호가 질린 얼굴을 했지만, 나는 진지했다.

내 말을 들은 적호가 ‘조의신…….’ 하면서 안쓰러운 걸 보는 눈을 한 것 같지만 무시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거실로 이동했을 때.

은호의 후예 삼 남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이거 봐 주세요……!”

막내 은재호가 홀로그램을 하나 전개했다.

영상에 뜬 건 거실 바닥에 늘어놓은 아기자기한 사이즈의 옷을 바라보는 올무였다.

내가 응접실로 이동하고 난 이후의 영상인 것 같았다.

[왕왕!]

[앗, 신수. 미안해요! 가져가려는 건 아니고, 신수의 캐비닛에 정리해 주려 한 거였어요!]

첫째 은서호가 올무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올무는 누가 이걸 가져갈까 봐 걱정했나 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다시 새로 사 줄 테니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조의신한테 그러지 마라.]

이어서 백호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그 녀석도 조심할 거다.]

그렇게 말한 백호군이 올무를 몇 번 쓰다듬고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아까 백호군이 조금 늦은 건 이 때문이었나 보다.

끄응…….

화면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사이, 올무가 내 발치로 다가왔다.

올무는 몹시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백호군의 말을 듣고 자신이 심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야.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미안해!”

올무가 잘못했을 리가 없으니, 다 내 잘못이었다.

똑똑한 올무가 내 대답을 듣고 바짓자락에 머리를 비벼 왔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올무의 애교였다.

‘드디어 올무가 용서해 줬어……!’

감격에 겨워 하는 나를 황지호가 질린 얼굴로 보고 있었고, 은재호가 열심히 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일요일 밤늦게까지 황명호 대저택에서 보낸 후.

나와 올무, 백호군 셋이서 기숙사로 향하는 산책로.

백호군이 한마디 남겼다.

“다음 주, 은련관으로 와라.”

백호군과의 대련 일정이 잡혔다.

*    *    *

월요일 아침.

1학년 0반 교실.

“다들 연락받았어? 담임쌤 출장이 예정보다 길어질 것 같다고 하시던데.”

“어…… 그럼 함근형 선생님은 안 오셔? 우리 반 조례는 누가 해?”

“우리 반은 부담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조례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각.

반 아이들이 홍천 출장의 연장으로 인한 함근형의 부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린아, 이거 먹을래? MITRON 신작 얼 그레이 사브레야.”

“어? 직접 만들지 않고?”

“참고하고 싶어서! 흉내 내서 만들어 보려고. 같이 만들래?”

불안해하는 눈치인 민그린에게 과자를 권하는 김유리.

그런 김유리도 잘 보면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애초에 김유리가 0반에 들어온 이유 중 하나는 ‘강한 이능을 가진 담임에게 도움을 청하기 쉬워서’였으니 어쩔 수 없을 거다.

쉬익—

자동문이 열리고, 문 틈새로 누군가가 보였다.

김신록이었다.

‘김신록은 1학년 1반 담임인데. 여기까지 맡을 생각인가.’

부담임에게 1반 담임 역을 맡기고, 여기에 올 수 있기도 했다.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저 사고뭉치가 임시 담임이었나. 이상하군.”

황지호는 당황한 눈치다.

아들이나 다름없는 후예가 임시지만 담임 교사가 되다니, 미묘하긴 할 거다.

황지호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속이 후련해졌다.

“0반 교실은 여기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김신록은 교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방향을 향해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교실 안으로 들어와 교탁에 선 자는…….

용제건이었다.

“함근형 선생님을 대신해서 임시로 담임을 맡게 된 유희계 용족, 용제건이야. 잘 부탁해.”

저 용이 왜 거기서 나와……?

용제건이 아주 밝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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