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23화 (12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23)

이 세계에 한 명밖에 없던 이능 바이올린 장인.

상위 존재 여럿이 수명을 늘려 줄 정도로 귀한 재주를 가진 인물.

그가 남긴 유일한 제자가 은광고 1학년 학생이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요?”

‘무명의 운명’의 비밀을 캐낼 단서를 쥔 인물인 그 제자.

은광고에 있다면 반드시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름은 ‘목우람’이야.”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게임 속에서도 이 세계에 와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게임 속에서 등장은 했지만, 이름이 나오지 않았던 케이스일 수도 있지만.’

목우람이라는 이름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황지호가 한마디 했다.

“그 이름을 가진 은광고 1학년생은 한 명밖에 없다.”

은광고 학생 이름을 전부 외우고 있는 건가.

아주 오랜만에 이사장다운 구석을 발견했다.

“혹시 얘기해 본 적 있어? 어떤 애야?”

“서류상으로밖에 본 적은 없지만, 몇 반인지는 잘 알고 있어.”

황지호의 눈이 장난스럽게 반짝거렸다.

“목우람은 1학년 0반 소속이다.”

……등잔 밑이 지나치게 어두웠다.

*    *    *

인터뷰를 마친 후.

높은음자리표가 양각된 문을 열고 소규모 응접실로 돌아오니 우리가 자리를 비웠을 때와 달라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에 쌓여 있는 빈 그릇들.

디저트 카트에 가득한 블루베리가 들어간 타르트, 파이, 케이크들.

가장 맛있게 먹은 건 블루베리 사워크림 치즈 파이였는지, 한 조각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무대 위였다.

‘권레나?’

세팅된 무대 위.

권제인이 선물한 이능 바이올린과 활을 든 권레나가 보였다.

“제인아, 얘들아. 어서 와서 앉아!”

재러드 리가 가장 앞자리에 앉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과정은 모르겠지만, 권제인처럼 권레나도 깜짝 공연을 준비했나 보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권레나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짝짝짝.

김유리가 웃으며 손뼉을 치자 응접실 안에 있는 모두가 함께 따라 쳤다.

박수 소리가 멎었을 때.

권레나가 긴장한 얼굴로 연주를 시작했다.

‘권제인이 오늘 호수 위에서 연주한 곡이잖아.’

백금색 몸체의 바이올린 위를 어설프게 움직이는 푸른색 스틱의 활.

그 움직임에 따라 맑은 음이 울려 퍼졌다.

권제인의 완벽한 기교에 비해 투박하고 미숙한 그녀의 연주.

하지만 곡이 이어질수록 권제인과 재러드 리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늘 처음 연주한 곡이었는데, 악보도 없이……!”

악기나 다른 도구 없이 한번 듣는 것만으로도 그 음의 계이름, 음이름을 판단할 수 있는 청각 능력.

절대음감.

그녀는 호연관 내한 공연 스태프가 끝난 후의 뒤풀이에서도 이 능력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절대음감만이 아니야.’

그녀에게는 그 굉장한 능력 외에도, 또 다른 재능이 있었다.

‘단순히 권제인의 곡을 듣고 따라 한 게 아니야. 자신만의 감상, 해석을 담아냈어.’

다소 서정적이었던 권제인와 달리, 맑고 경쾌한 권레나의 연주.

듣는 사람의 기분을 밝게 해 주는 멋진 연주였다.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던 인물은 남달랐다.

짝짝짝짝―!

곡이 끝나자 연주 전보다 더 큰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 곡은 신곡이었는데! 어떻게 코드를 다 따낸 거죠? 정말 굉장해요!”

“멋진 연주였어, 레나야!”

반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권레나가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이능 바이올린과 활을 카드화하며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연주 잘 들었어. 방금 권제인 선배님이 연주하셨던 그 곡 맞지?”

“응! 재러드 씨가 선배님이 좋아하실 거라고 하셔서…….”

나와 권레나의 대화는 갑자기 다가온 권제인에 의해 중단되었다.

“바이올린은 고등학생 때부터 했다고 하지 않았니?”

“네! 고등학생이 되고 바로 시작한 건 아니라…… 이제 두 달 정도 됐어요.”

그 대답을 들은 권제인이 갑자기 권레나의 손을 양손으로 덥석 잡았다.

“나한테 바이올린 배우지 않을래?”

“……네?”

“내 제자가 되어 줘. 부탁이야.”

권제인의 푸른 눈이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능 바이올린과 활을 선물했던 권제인.

그런 선물을 하면서도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권레나의 연주를 듣기 전까지는.

‘연주를 듣고 나서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정말 권레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거겠지.’

제자가 되어 달라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의 간곡한 부탁을 들은 권레나.

그녀는 믿을 수 없어 하는 표정을 짓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저, 저도 선배님께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요!”

그 비싼 선물은 끝까지 사양하려던 그녀였는데.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건 그녀에게 정말 큰 의미가 있었나 보다.

“고마워……! 잘 부탁해, 레나야.”

권제인이 안도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처음으로 제자를 받게 되어서 떨리고 기뻐. 최선을 다해 가르칠게.”

그 말에 권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제가 첫 제자인가요?”

“응.”

“처, 첫 제자라니…….”

권레나는 눈앞이 아득해지는지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면서도, 제자를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바로 각자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강습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 두 사람.

모든 이들이 그 훈훈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때.

“잘된 거야. 제인아, 레나야…… 축하한다, 축하 파티다…….”

재러드 리가 이상한 한국어로 중얼거리다 또 펑펑 울기 시작했다.

착한 우리 반 아이들은 티슈를 가져다주면서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저 아저씨 또 운다. 어디 아픈 거 아냐?”

“아까 아픈 사람 나오면 팀 닥터 부르라고 하셨잖아. 연락해야 할까?”

“이능파 상태는 정상인 거 같은데.”

“아, 나이가 들면 호르몬 밸런스가 무너져서 눈물이 나기 쉽다고 들었어요!”

전 세계에 이름난 이계 공략 팀, 영원의 호수.

그 팀의 서브 마스터 재러드 리의 이미지는 눈물 많은 아저씨로 굳어 버렸다.

*    *    *

1학년 0반 아이들이 돌아간 후.

영원의 호수 팀원들이 홀에 모였다.

팀원들이 전원 참석한 게 확인되자 영원의 호수 팀 간부 중 가장 젊은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 건배사를 외쳤다.

“권제인 님의 첫 제자 탄생을 축하하며, 건배합시다!”

“건배!”

크리스털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는 홀 안.

잔 대부분은 푸른빛을 띤 발포성 포도주로 채워져 있었지만, 드물게 블루베리청 음료를 마시는 이도 있었다.

권제인의 조카, 권레나가 만든 수제 음료였다.

양이 적은 탓에 제비뽑기를 하여 일부의 팀원들만 맛보게 되었다.

“나도…… 나도, 제인이 조카가 직접 만든 거 먹고 싶었는데…….”

“다음에 올 때 또 만들어 준대. 참자.”

“간부들은 뽑기 운도 좋네. 거의 다 당첨됐잖아.”

“재러드는 양심이 있으면 빠져야 하는 거 아님? 저놈은 조카님 라이브 공연도 들었잖아!”

덜컥.

그때, 조카가 만들어 준 음료를 한입 먹은 권제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악상이 떠올랐어.”

그 말을 하고 권제인이 이능 바이올린과 활을 실체화했다.

팀원들은 즉시 잡담을 멈추고 숨죽여 그녀의 즉석 연주를 감상했다.

듣는 사람을 설레고 들뜨게 만드는 시원하고 산뜻한 곡조가 홀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연주가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곡도 완벽해!”

“이렇게 밝고 예쁜 곡이 바로 뽑히다니!”

“식당에 기록 기기 잘 돌아가고 있지? 이거 녹화 안 됐으면 담당자 족친다!”

시끄러운 홀 안.

권제인은 홀로그램을 전개해 방금 연주한 곡을 전자 악보로 기록했다.

악보를 기록하는 내내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유일한 혈육이자 제자가 된 권레나.

1학년 0반 아이들과 거기에 섞여 있던 호족의 수장.

조카를 구해 줬던 은인, 조의신.

‘의신이는 정체가 뭘까.’

호족의 수장과 편하게 대화를 하던 조의신을 떠올렸다.

무려 호족의 수장이 직접 나서서 은인이라고 하기도 했었다.

‘꾀돌이 씨가 조사한 것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라.’

그때, 권제인의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내가 없던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제인아.”

갑작스러운 진족의 등장에 권제인의 사고가 중단되었다.

말을 걸어온 건 요 며칠간, ‘기분 나쁜 ‘그것’을 퇴치하는 법’에 대해 연구하겠다며 잠수를 탔던 서족의 수장이었다.

“바쁘다고 들었는데. 꾀돌이 씨.”

“응, 아주 바빠. 연구도 잘 풀리지 않고. 기분 전환할 겸 왔는데…….”

주위를 둘러보던 꾀돌이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호족의 수장이 왔다 갔나 봐요?”

그가 살살 웃으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    *    *

무사히 영원의 호수 팀 빌딩 방문을 마친 후 돌아온 기숙사 방.

영원의 호수 팀 빌딩에서 저녁도 먹고 오는 바람에 시간은 좀 늦었지만, 아직 잠들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성국언이 부탁한 괴담과 장인의 제자에 관한 조사를 하고 싶은데.’

게임대로 생각한다면 가장 쉬운 방법은 정보통을 이용하는 거다.

마침 이번 건은 흑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위험한 내용이 아니다.

‘이번 건은 문새론에게 도움을 청해 보자.’

딩동.

메시지를 보내자 금방 첨부 자료가 붙은 답장이 도착했다.

[문새론] ㅇㅋㅇㅋ! 괴담 자료는 바로 보냄! 새로 뭐 찾아내면 나도 알려 줘!

[문새론] 아, 목우람이라는 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데. 좀 알아보겠음!

[문새론] 대신 괴담 조사하고 나면 무서운 내용…… 아니, 좀 쓸모없는 내용, 내가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내용 같은 건 좀 빼서…… 아, 하여튼 알아서 추려서 줘. 알았지? 믿는다!

여전히 괴담이 무서운가 보다.

알겠다고 답변하기 전에 메시지가 추가로 도착했다.

[문새론] 아 맞다!

[문새론] 종합 게시판 봤음? 민그린 화백님 완전 미친 자식한테 걸린 거 같음. 조심해!

민그린을 노리는 완전 미친 자식이라고?

종합 게시판을 확인할 때마다 눈에 밟히는 내용의 헛소리가 담긴 댓글들이 있긴 했다.

‘잘 체크해 둬야겠네.’

종합 게시판에 있는 글, 댓글들을 살펴보며 스크랩을 마친 후.

이번에는 밀린 메시지를 확인했다.

홍규빈의 초판 1쇄 타령도 섞여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달토끼떡을 선물한 이들이 보낸 감사 인사였다.

이중 가장 긴 감사 인사를 보낸 건 장남욱이었다.

[장남욱] 의신아, 달토끼떡 잘 받았어. 그때 잠실 야구장에서 본 붉은 눈의 진족 분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나온 제품 맞지? 예약하기 굉장히 어려운 떡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언젠가 한번 먹어 보고 싶었어! 소문대로 진짜 맛있었다. 개인적으로 사서 먹어 보고 싶을 정도야. 마침 시험이 좀 많이 밀려 있어서 먹으면서 공부했는데,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것 같아. 시후 몫으로 보낸 것까지 합치니까 양이 많아서 학교 친구들이랑 나눠서 잘 먹었다. 걔들도 잘 먹었다고 전해 달래.

[유상훈] 요약 좀.

[장남욱] ……그냥 고맙다고 한 거야.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내신에 반영되는 은광고와 달리, 사관학교는 중간중간 시험을 치른다고 했었지.

마침 공부하다 쉬는 중이었는지, 장남욱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장남욱] 시험 일정 때문에 1학기에는 은광고랑 스포츠 교류전을 못 하게 될 것 같아. 2학기 때는 생도회에서 시험 기간을 사전에 조정해서 차질 없게 할 거래.

도시후의 제안으로 농구부끼리 하려 했던 교류전이 얘기가 퍼져 학교 단위의 교류전으로 커지게 되었다.

유상희가 사관학교와의 교류전을 언급하기도 했고, 2학기 때 큰 규모로 치르게 될 것 같다.

[장남욱] 내가 대표로 뽑힐지 안 뽑힐지는 모르겠는데, 농구 연습은 하고 있어. 다음에는 우리가 이긴다!

[유상훈] ㅎ

[장남욱] ……왜 저 ‘ㅎ’ 한 글자에 투쟁심이 솟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농구 연습하고 싶어졌어.

[유상훈] ㅎ

유상훈이 자음 한 글자로 장남욱을 도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오늘도 훌륭한 가성비의 유상훈의 채팅을 보다 다음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담임 선생님 함근형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함근형] 홍천 출장이 길어질 것 같구나.

홍천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가 지금 메시지를 보낸 걸 보면, 주중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메시지를 전부 확인한 후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괴담 조사에는 학생회 소속인 염준열의 힘도 빌리고 싶은데. 스승의 말에는 모두 주목하는 제자니까, 성국언의 말을 어기게 돼.’

가능하다면 성국언이 말한 조건을 지키면서 조사를 하고 싶었다.

어떤 수를 둘지 고민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 없이 잠들었다.

*    *    *

일요일, 아침.

키모폴레이아 선상 파티가 끝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각오를 굳히고 기숙사를 나섰다.

‘해야 할 이야기도 많고, 중요한 일도 있어.’

황명호 대저택의 현관 앞.

황지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지 짐작은 가지만, 굳이 물어보도록 하지. 조의신, 그 짐은 뭐냐.”

“올무 선물.”

내 양손, 어깨에 진 가방에는 올무에게 줘야 할 선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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