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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26화 (12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26)

‘보면 볼수록 평범해 보여. 은광고를 대표하는 또라이들의 모임의 수장으로 보이지 않는데.’

어스름한 달과 인공조명 사이로 보이는 3학년 0반의 반장.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릴 법한, 엑스트라스러운 얼굴이었다.

충격적인 첫 만남과 3학년 0반의 반장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더라면 기억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시간에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명찰을 보니까 이름이…… 우기환? 설마, 그 우기환인가.’

게임 속에서 3학년 0반이 직접적으로 스토리에 얽힌 일은 없었다.

하지만 우기환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어차피 수석과 차석은 ‘도원우기환’.]

이 말은 현 은광고 3학년 사이에서 시험 기간마다 도는 말이었다.

‘3학년 만년 차석이 은광고 대표 미친놈이었어!’

3년 내내 0반 소속이었지만 올 수석에 학생회장까지 했던 성국언같은 케이스도 있지만.

일단 저쪽이 선배니까, 인사부터 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1학년 0반 부반장이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이상했다.

‘너무 정상적이고 평범한 반응이잖아!’

그 ‘담임이 너무 강함’ 후기에서 느껴진 광기와 똘아이스러움이 없었다.

우주의 기운을 느끼러 다닌답시고 학생회장 도원우와 지익회장 성시완의 골머리를 썩이게 하는 원인이 이렇게 정상적이라니.

“신문부 소속이라서요. 괴담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그래?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 많네. 학교 신문 잘 보고 있어. 저번에는 방윤섭 건으로 산불 화재 예방, 금연 캠페인에 관해서 썼지? 고생 많았어.”

“……감사합니다.”

이 세계에서 만난 인물 중 상식인 순위 최상위권에 들어갈 만한 대응이었다.

위화감이 점점 커졌다.

“그런데 취재도 좋지만…….”

“네?”

말꼬리를 흐리던 우기환이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이 시간에 천익산에 온다는 건 우주의 기운 취재 때문이지? 방해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우리 3학년 0반은 우주의 기운과 담판을 지어야 해. 꺼져!”

역시 이놈은 맛이 가 있었다.

문새론이나 다른 신문부원이 우주의 기운 취재를 하며 3학년 0반 주변을 맴돈 탓도 있겠지만.

“저는 괴담 취재를 하러 왔어요.”

사전에 누군가를 만날 때를 대비해 준비한 홀로그램 자료를 띄우며 말했다.

[달이 없는 밤, 천익산의 모든 등산로는 귀문(鬼門)으로 이어진다.]

이 주제에 관련한 종합 게시판 글 스크랩.

천익산 주요 등산로 안내 지도.

플레이어 전용 정보 공유장, ‘플레이어 네트워크’에 등록된 귀문(鬼門)의 정보.

내가 반쯤 작성한 더미 기사.

우기환은 내가 전개한 홀로그램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또 괴담이야? 뭐, 이제 여름이니까 지금 조사해도 이상할 건 없지…….”

의심을 거둔 우기환이 천익산의 주인처럼 말했다.

“좋아. 천익산의 입산을 허가한다. 0반의 후배여!”

이 천익산은 호족 거 아닌가.

저번에 아지트를 만들어 작당질하다 호족들에게 털려 놓고도 아직 기가 죽지 않았나 보다.

“이제 슬슬 약발이 떨어진 공중 정원만으로 너희를 따돌리는 건 힘들겠지. 신문부에게 그럴싸한 먹이를 하사하마.”

우기환이 점점 맛탱이가 간 말투로 말했다.

방금까지 이 미친 자를 상식인 취급할 뻔한 게 부끄러울 정도다.

“비장의 천익산 괴담을 알려 줄게. 따라와라!”

그런 거 알려 주지 않아도 되는데.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심야에 천익산에 들어올 정도로 취재를 열심히 하는 신문부원이 소재를 주겠다는 선배의 말을 거절하는 건 어색하겠지…….’

그렇게 반강제로 천익산 괴담 투어가 시작되었다.

어떤 핑계를 대고 중간에 빠져나갈까 생각해 봤지만.

‘생각보다 유익한데.’

우주의 기운에 집착 중인 산꾼, 우기환은 천익산 전문가였다.

그는 막힘없이 천익산을 소개해 갔다.

천익산 곳곳에 숨겨진 샛길, 지름길, 약수터, 건물, 정자, 다리…….

은광고 홈페이지나 신문부 자료에도 없었던 정보들이 쏟아졌다.

“자, 다음은 천익산 흑석 계곡의 산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작은 협곡이야. 반대편 협곡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있는데…….”

그리고 가는 장소마다 우기환은 괴담을 늘어놓았다.

흰 바위 협곡, 검은 바위 협곡 사이에 놓인 구름다리를 헤매는 망자.

천익산 백운봉에 이어지는 능선에 나타나는 다섯 개의 우물.

낙엽 바위 위에서 흔들리는 도깨비불.

별 읽기 바위 근처, 눈이 올 때만 볼 수 있다는 귀신.

칼바람 고개 저편에서 들리는, 이승을 떠도는 저승의 안내견이 짖는 소리.

‘중간에 개 짖는 소리라면…… 혹시 올무를 말하는 걸까.’

하지만 착하고 귀여운 우리 올무가 짖는 소리가 괴담이 될 리가 없다.

저승의 안내견이라니, 말도 안 된다.

아마 다른 개가 짖은 소리거나 환청이겠지.

“아,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서 그 지옥의 개가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처음부터 저승의 안내견 같은 건 없었던 거겠죠. 괴담 중에는 원래 헛소문도 많이 섞이잖아요.”

“나도 몇 번 들었었어.”

“환청이겠죠. 잘못 들으신 거예요.”

“……왜 이 괴담은 철저하게 부정하는 거지. 뭐, 다음 괴담으로 넘어가자.”

우기환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어쨌든 아닌 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까지 천익산 괴담 명소 탐색을 마쳤다.

“우주의 기운을 넘보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협력해 주마.”

마지막까지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우기환과 디바이스 코드 교환을 마친 후.

나는 기숙사 방으로 향했다.

‘우기환과 만난 건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오늘 한 괴담 투어로 천익산 탐색이 더 수월해질 거야.’

귀문에 대해선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천익산의 숨겨진 괴담과 샛길, 건조물 등을 확인했다.

우기환의 이야기를 들으며 채워 간 홀로그램 지도가 메모로 가득했다.

‘이 천익산 괴담 중에도 실재하는 게 있는 걸까.’

괴담 얘기가 나오면 의미심장하게 웃기만 하는 황지호가 떠올랐다.

‘그놈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텐데.’

우리 반 최고의 돌아이이자 신역의 수호자인 그놈을 생각하니, 저번 주까지 나를 고통스럽게 하던 녹족의 영약이 연상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밤눈이 좋아진 것 같았어.’

천익산을 헤맬 때도 조명이 없는 곳에서도 잘 보였던 것 같다.

‘시험해 볼까.’

기숙사 창문 너머로 보이는 천익산 저편을 바라봤다.

‘호족의 눈은 어두울수록 더 성능이 좋아졌었어.’

게임식으로 말하면, 백호군은 맵이 어두울수록 탐색 범위가 증가했다.

몇 초 동안 먼 곳을 응시했을 때.

눈에 이능파가 몰리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급변했다.

‘어……!’

아직 해도 안 뜬 어둠 속.

천익산 산줄기 위에 심어진 소나무.

그 소나무의 솔방울.

솔방울 주변의 솔잎.

그 모든 게 훤히 보였다.

한참을 떨어져 있는데, 이 정도의 조도와 거리에서 보일 리가 없는 것들이 전부 보였다.

‘이게 호족의 눈이구나!’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안구에 타는 듯한 통증이 잠깐 스쳤다.

못 참을 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순간 통증 때문에 눈을 감게 되니 시야가 봉인되었다.

‘전투 중에 시야가 봉인되는 건 위험한데.’

아직 향상된 눈의 성능에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습을 조금 더 해 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호족의 눈에는 특별한 스킬이 있었어.’

만약 정말로 호족의 눈을 얻게 된 거라면 스킬이 하나 늘어날 거다.

아직 안구 쪽에 통증이 남아 있긴 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피스가 하나 더 늘어날 거라는 생각에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그 지옥의 맛을 견뎌 낸 보람이 느껴졌다.

*    *    *

늦은 시각.

카페처럼 꾸며진 집 안.

밤늦게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한 후,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온 김유리.

그녀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인이를 이용한 꼴이 됐어…….’

기말고사가 한 달 정도 남은 이 시점.

시험공부를 시작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있기 싫다는 이유로 안다인과 늦게까지 함께 공부하다 왔다.

‘……협회에서 온 통지서를 확인해야 하는데.’

김유리는 차마 학교에서 열어 보지 못했던 통지서를 확인했다.

[플레이어 안전 관리 기획실 청소년 플레이어 지원팀]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내용물을 확인했다.

[광림 봉인술 연장 불가 재안내]

첫 줄을 읽는 순간부터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어지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현존하는 봉인술의 수준으로는 향후 김유리의 광림을 봉인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봉인술 연장 불가 안내를 받은 건 며칠 전.

곧바로 이능파 재검사를 요청한 결과가 지금 이 통지서였다.

‘안 돼…….’

처음 광림 봉인술 연장 불가 통지를 받았을 때, 김유리는 아버지가 지었던 절망스러운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애써 그녀를 다독이던 그녀의 아버지는 결국 심장에 이상이 생겨 입원하게 되었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그녀를 지나치게 걱정한 나머지 약했던 심장에 무리가 갔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지, 어떡해야 하지!’

김유리의 긴 소매의 교복 셔츠와 두꺼운 시곗줄 밑.

광림 봉인술의 인장이 점점 흐리게 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불을 환히 켜 둔 거실에 홀로 앉아 한숨도 잠들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

*    *    *

다음 날 아침.

1학년 0반 교실.

“유리야, 어제 못 잤어? 눈 밑이 새까매.”

“눈도 조금 충혈됐어.”

교실 문을 여니 권레나와 한이의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하, 어제 기말고사 공부를 늦게까지 하느라 조금 늦게 잤어.”

김유리는 평소대로 밝은 어조로 답했다.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겉으로만 봐선 시험공부에 지친 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임 속 정보를 알고 있는 내 눈에는 다르게 보였지만.

‘협회로부터 광림 봉인술 연장 불가 재통지를 받았나 보네. ……한숨도 못 잤겠지.’

김유리의 대답을 들은 반 아이들은 걱정했다.

“기말고사가 7월 초였죠?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무리하시면 안 돼요!”

“반장…… 괜찮냐.”

“걱정해 줘서 고마워……!”

김유리가 웃으며 말하고 있긴 하지만, 반은 허세일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을 하기로 했다.

“조금 이르지만, 기말고사 대비 스터디 모임을 짤까. 이번에는 반 아이들과 다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마침 기말고사 화제가 나왔으니 타이밍은 적절했다.

내 제안을 들은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저번에는 기숙사생들끼리만 했었죠. 지익회관 스터디 룸은 기숙사생만 출입할 수 있으니까요…….”

“응. 통학하는 애들은 집에 가는 게 너무 늦어지기도 하고. 그래도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다!”

“……너무 늦게까지만 아니면, 나도 하고 싶어.”

반 아이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그러면 은광구에 숙소를 잡을까. 아니면 늦게까지 0반 교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볼게.”

내가 이 말을 하자 김유리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저, 저기. 당분간 우리 집 비는데!”

됐다.

생각한 대로 김유리가 말을 꺼냈다.

‘김유리는 이 시기에 가족이 없는 집에서 혼자서 계속 부정적인 생각에 잠긴다는 묘사가 있었어.’

김유리네 집에서 스터디 모임을 열어, 최대한 반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 주려는 게 내 계획이었다.

“네? 그래도 될까요. 하지만 긴 시간 신세를 지는 건 좀…….”

“난 성적이 좀 불안하니까, 유리가 도와주면 고맙긴 한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아냐. 완전 괜찮아! 오히려, 부모님 안 계시니까 외로웠어. 스터디 모임 꼭 우리 집에서 했으면 좋겠어!”

김유리가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능력자 반장답게 그녀는 곧바로 기운을 차려 스터디 모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번 기말고사 스터디 모임은 현재 등교 중인 반 아이들이 다 함께할 것 같다.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데.”

“뭐래.”

아이들이 스터디 모임 계획을 짜는 것에 열중한 도중.

황지호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민그린의 악플, 조사한 결과 조금 성가신 게 발견됐다.”

조금 성가신 것?

“누가 겁도 없이 은광고 커뮤니티 아이디를 매매했더군. 민그린에게 악플을 다는 놈들은 거의 매매 아이디를 사용하는 중이었다.”

그런 짓까지 하면서 민그린에게 악플을 달았나.

“매매 아이디는 한두 개가 아니야. 은광고 웹페이지 담당자가 일을 개판으로 해 뒀더군. 계약 기간이 끝난 교직원, 은광고에서 과거 퇴학을 당한 학생들도 계속 은광고 커뮤니티 이용이 가능한 상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현재 외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아이디를 판 거구나.”

“그래. 그 아이디를 산 누군가가 악플들을 단 거야.”

종합 게시판 분위기가 가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맛이 갈 때가 있었는데, 이유가 있었나 보다.

“덕분에 조사할 내용이 많고 복잡해. 매매가 이루어진 정황, 구매자의 정체, 달았던 악플과 여론 조작의 이력……. 우선 매매 아이디는 전부 정지시켜서 악플은 막았지만, 범인을 잡는 건 시간이 걸릴 거다.”

황지호의 말이 끝날 때, 오늘도 몹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용제건이 들어오며 조례가 시작되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수를 둘지 고민하며 유희계 용족의 조례를 흘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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