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27)
풍수지리는 전후좌우, 사방(四方)에 위치한 산을 중심으로 땅을 분석했다.
이 산을 사신사(四神砂)로 부르며,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로 빗대었다.
북악산을 주산(主山)으로 보았을 때,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
한때 백호가 수련소로 삼던 이 바위산은 현재 황호가 직접 관리하고 있었다.
“황호 님, 저희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합니까!”
“그 이능파 링크라는 거, 진짜 되는 건가요?”
“집에 가고 싶다…….”
“권제인 양 신곡 나온 거 듣고 싶다…….”
그 인왕산의 결계 안.
눈이 아플 정도로 새하얀 돌벽으로 만들어진 수련실.
30대의 모습을 한 황호가 등장하자 청호의 제자 네 명이 우는 소리를 냈다.
최근, 황호는 그들에게 ‘이능파 링크’라는 듣도 보도 못한 난제를 던져 주며 이 수련실에 감금해 버렸다.
“억지로 이능파를 엮으려다가 이능파 역류 현상으로 큰일 날 뻔했는데요!”
“우리 이능파가 좀 비슷하긴 해도, 컨트롤에 조금만 실수하면 정신에 크게 데미지가 오는데요!”
“휴식을 달라!”
“권제인 양…… 또 콘서트 안 해 주려나…….”
신화계 호족, 청호의 수제자의 정신머리가 이 모양이라니.
30대의 모습을 한 황호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종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황호는 그들의 정신 수준에 맞는 미끼를 준비해 왔다.
“성공하면 이걸 주마.”
호족 특유의 시력으로, 황호의 손에 들린 무언가를 본 그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그들이 거의 2m 정도 튀어 올라 벌떡 일어났다.
“궈, 권제인 양의 신곡 CD야!”
“아직 디지털 싱글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잠깐, 저거 사인도 되어 있어!”
“……저거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 콘서트 블루레이 한정판이잖아!”
“으아아아! 저기에도 사인이 들어가 있어! 인쇄 사인이 아니라, 진짜 손으로 한 거야!”
황호가 영원의 호수 팀 빌딩에 방문했던 날.
권제인은 1학년 0반 아이들이 돌아가기 전, 선물을 주고 싶어 안달 나 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사양하는 가운데, 황호는 주저 없이 권제인의 친필 사인 CD와 블루레이 한정판을 부탁했다.
그 덕에 반 아이들이 황지호를 질린 얼굴로 보긴 했지만.
어쨌든 전리품으로 얻어 온 권제인의 굿즈.
효과는 굉장했다.
“힘이, 힘이 솟는다. 권제인 양! 오늘 밤엔 귀가해서 음악 들을 거야…….”
“거기 쌍둥이, 너희들 먼저 링크해! 둘만이라도 되면 통과라고 했어! 첫째야, 네가 중심이 되어서 둘째의 이능파를…….”
“집중 안 된다. 닥치고 있어 봐!”
청호의 제자 중, 쌍둥이 호족이 동시에 비슷한 양의 이능파를 뿜었다.
실내에서 물처럼 흐르던 푸른 이능파.
쌍둥이답게 둘의 이능파의 성질은 몹시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파지직…….
두 이능파는 작게 스파크를 뿜기 시작했다.
이능파 역류의 조짐이었다.
“크으윽…….”
“조, 조금만 더……!”
굿즈에 눈이 멀어 무리한 시도를 하려는 쌍둥이.
곧 스파크는 점점 커지고, 이능파가 역류해 두 사람의 정신을 덮치려 했을 때였다.
파앗!
“그만!”
황호가 푸른 스파크 안으로 뛰어들었다.
황호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변한 순간.
역류한 이능파가 두 호족에게 닿기 전에 황금빛의 마력에 이능파가 묶이다 산개하였다.
풀썩.
이능파 링크의 주체 역할을 하던 쌍둥이 중 첫째가 수련실 바닥 위에 쓰러졌다.
“야, 괜찮냐!”
“……내가 죽으면 BD 컬렉션이랑 같이 묻어 줘. 권제인 양이랑 미스터 그리그의 앨범 나올 때마다 새로 묻어 주고.”
“이놈 멀쩡하네.”
“……걱정해서 손해 봤다.”
그들의 무사를 확인한 황호는 MITRON에서 사 온 빵이 가득한 봉투를 던져 줬다.
뭔가에 몰두하면 식사도 잊고 몰두하는 건 제 스승인 청호와 똑같았다.
‘……맛에 신경 쓰지 않으니 아무거나 먹여도 되니까, 편하긴 했지.’
그들은 빵 봉투를 보고 나서야 허기를 느꼈는지, 황호에게 대충 감사 인사를 하고 빵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지.’
2학년 0반 학생들의 이계 지배 사건.
금찬솔을 중심으로 성공한 이능파 링크.
그들이 제공한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황호가 직접 이능파 링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조건은 완벽하게 갖췄다. 오히려 금찬솔, 왕찬솔의 첫 이능파 링크가 성공했을 때보다 더 나은 환경인데.’
황호의 고찰은 계속되었다.
‘호족 중에서는 가장 이능파의 질이 흡사하고, 비슷한 성정을 가진 데다 수천 년을 함께한 이 네 명이 안 되다니.’
저쪽은 무려 스무 명 정도 되는 이들이 동시에 이능파 링크에 성공했다.
그들의 이능파는 각양각색.
그나마 금찬솔과 왕찬솔의 이능파의 성질이 비슷했지만, 다른 이들은 전혀 아니었다.
‘그들을 하나로 묶은 건, 제갈재걸을 향한 존경심이라고 했어. 그리고 이 청호의 네 제자는 권제인의 광팬이고, 강한 팬심을 품고 있지. 게다가 방금 미끼를 던져 동기 부여를 해 줬는데도 링크에는 실패했어. 어째서냐.’
2학년 0반의 학생들.
청호의 수제자 네 명.
머릿속으로 이들을 비교하던 황호.
그는 이들 사이에서 가장 크고, 근본적인 차이점을 깨달았다.
‘설마, 이능파 링크는 인간이 아니면 불가능한 건가……!’
황호의 생각이 여기까지 달했을 때.
딩동.
그의 디바이스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홀로그램에 뜬 알림에 표시된 색을 보니, 12지 전용 디바이스 콜이었다.
[망할 달토끼] 나 곧 은광구 출입 금지 계약 끝나는데에, 알지? 알고 있지? 잊어 먹은 거 아니지?
[망할 달토끼] 아직 며칠 남았는데, 깎아 주면 안 돼? 떡 줄게……. 아니, 너한테는 주기 싫고, 은호의 후예들한테 떡 줄 테니까 좀 일찍 풀어 주면 안 될까? 응?
[망할 달토끼] 왜 메시지 안 읽음?ㅡㅡ
[망할 달토끼] 야야야야
…….
…….
…….
그 이후로도 쏟아지는 영양가 없고, 속을 긁는 메시지들.
황호는 읽고 씹기를 시전했다.
‘……가뜩이나 월궁과의 기술 제휴가 생각보다 원만하게 되지 않아 머리가 아픈데. 이 망할 달토끼는 분위기 파악도 못 하나.’
월궁의 기술을 플레이어 위성에 적용하는 작업은 현재 난항을 겪고 있었다.
딩동.
그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거슬리는 쥐] 황호, 바빠요?
다짜고짜 존댓말로 인사하는 꾀돌이.
황호는 이유 없이 차오르는 불쾌감에 인상을 구겼다.
* * *
방과 후.
신문부 부실로 향하는 길.
황지호는 현재 호족의 근거지 중 한 곳에서 진행되는 이능파 링크의 실험, 그의 고찰에 관해 설명해 왔다.
‘인간만이 이능파 링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이능파 링크는 인간만의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새롭게 생긴 단서를 어떻게 이용할까 고민하며 황지호의 설명을 들을 때.
갑자기 그가 말을 멈추고 불쾌해하는 얼굴을 했다.
“꾀돌이 녀석이 접선해 왔다. 내가 영원의 호수 빌딩에 방문한 걸 알아챈 것 같군.”
설명하는 모양새를 보고 짐작은 갔지만, 황지호는 현재 분신을 이용해 생중계 중인 모양이다.
“꾀돌이 녀석과는 접선해 둘까……. 망할 달토끼의 메시지는 무시해야겠군.”
내가 메시지를 씹었을 때는 직접 찾아와서 귀찮게 하던 놈이.
이후 황지호가 하는 말은 대충 흘려들으며 신문부실의 신입생 전용 부실로 들어갔을 때.
“얍, 수상한 부반장 조 씨! 기다리고 있었어!”
문새론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나와 황지호가 조금 일찍 도착한 건지, 1학년 부실에는 우리 셋뿐이었다.
“거기 있는 황 씨도 관계자니까 말해도 될까? 둘 다 1학년 0반이잖아.”
문새론이 눈을 찡긋거렸다.
아마 그녀는 이전에 부탁한 이능 바이올린 장인의 유일한 제자, 목우람의 조사 내용에 대해 말해주려 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 말해 줘.”
“사실, 알아낸 게 별로 없긴 한데. 방황하는 영혼, 목우람 씨의 목격 정보로 보이는 게 몇 개 있었어.”
내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문새론이 홀로그램을 몇 개 띄웠다.
“이건 이번 은광고 입학시험 때, 입시 전문 사이트에 올라온 면접 후기야!”
[은광고 면접에서 0반 강력 후보 본 썰 푼다.txt]
실로 0반 인물 목격담다운 제목이었다.
황지호가 옆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놈은 마음만 먹으면 면접 내용을 전부 알 수 있을 텐데, 아직 거기까진 확인을 안 해 본 모양이었다.
“중간까지는 그냥 평범한 면접 후기임!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이 ‘0반 강력 후보’라는 애의 발언이야.”
2인 1조로 치러진 면접.
글쓴이가 주어진 문답에 모두 답하고, 0반 후보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0반 후보의 성적이 꽤 괜찮았는지, 질문은 아주 쉽고 간단했다.
[은광고에 합격한 후,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해석하면 ‘너님은 성적이 너무 좋아서, 면접으로도 떨어뜨릴 만한 구석이 없다. 아니,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 대충 포부나 밝히고 합격 발표나 기다려라.’였다.
몇 달 전 남궁 이능 연구소에서 발표한 ‘플레이어와 비 플레이어 사이의 사회적 관계와 윤리 의식’에 관한 논문에 대해 10분 넘게 논해야 했던 글쓴이가 부러움과 씁쓸함을 느끼고 있을 때.
0반 후보는 몹시 정중하고 진정성 어린 말투로 이렇게 답했다 한다.
[저는 저만의 뮤즈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시험은 볼 예정이지만, 제 영감을 자극하는 그분을 찾을 때까지는 등교할 수 없어요. 제 스승님께서 남겨 주신 기술과 혼이 담긴 악기, 그걸 연주할 그분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직감했다고 한다.
이놈은 0반행일 거라고.
“이 글은 익명으로 쓰였어. 하지만 그 외에 글쓴이가 남긴 신상, 면접 조의 배치 상황 등등 이런저런 정황을 종합해 봤을 때, 이 아이가 너희 반의 목우람 씨인 것 같아! 하하하! 어때, 0반스럽지?”
플마고 최고의 정보통이 말한 거라면 확실하다.
목우람은 지금 자신의 뮤즈를 찾아 방랑 중인 것 같다.
그런데 저런 말을 하고도 붙었나…….
0반에 보내지긴 했지만, 성적이 정말 좋았나 보다.
“그 외에는 학교 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는 것 같아. 정말로 한 번도 등교하지 않았잖아? 걔는 중학교도 검정고시 출신이라, 같은 학교에서 올라온 아이도 없는 것 같고.”
문새론은 그렇게 설명을 마쳤다.
대충 목우람이 어떤 인물인지, 왜 게임 속에서 등장하지 않았는지 안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고마워. 보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줄게.”
나는 어제 3학년 0반 상거지 반장, 우기환의 천익산 괴담 투어로 얻은 정보를 정리한 자료를 넘겨줬다.
소잿거리라 생각한 문새론이 신나게 읽다 기겁했다.
“응? 어억, 이거 괴담이잖아! ……헐, 이거 천익산 지도야? 완전 정리 잘 되어 있는데! 감사…… 압도적 감사욧! 앞으로 자주 정보 교환하자!”
문새론은 당장 천익산에 가서 내가 보낸 정보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 했다.
현재 괴담이 난무하는 데다, 3학년 0반이 우주의 기운과 싸운다고 진을 치고 있고, 호족들도 감시하고 있는 혼돈의 카오스인 천익산.
거기에 최고의 정보통 문새론이 더해지게 생겼다.
* * *
문새론이 천익산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그녀가 빠진 상태로 부 활동을 마친 이후.
딩동.
오늘부터 시작되는 1학년 0반 스터디 모임장을 한 김유리로부터였다.
[김유리] 그럼 의신이는 오늘 못 오는 거구나…….
[김유리] 늦게라도 저녁 간식 먹으러 와! 다른 애들도 기다린대! >▽<
우리 반 반장이자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부르는데 당연히 가야지.
늦게라도 꼭 가겠다는 답변을 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폐쇄 구역 구교사.
약속 상대는 홍룡의 그을림 메시지로 불러낸 염준열이었다.
“스승님, 부탁이 있어요.”
염준열은 단단히 각오를 굳힌 표정이었다.
중요한 부탁을 할 생각인 듯했다.
뭔지 몰라도 나도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말해 봐.”
염준열은 그답지 않게 몇 번을 망설이다 물었다.
“스승님과 연락할 수단을 갖고 싶어요. ……안 될까요?”
안 되는데, 안 된다고 말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