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29화 (129/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29)

유명인의 핏줄을 타고 태어난 아이는 두 가지 유형으로 갈렸다.

첫째, 주변의 기대에 보답하는 타입.

붉은 사자의 팀 마스터인 염방열을 아버지로, 용족의 후예인 어머니를 둔 스타 플레이어 염준열이 여기에 속했다.

그리고 둘째, 주변에 기대에 전혀 응하지 못하는 타입.

송대석이 그러했다.

그런 송대석을 무쇠팔의 손자가 아니라, 옆집에 사는 소꿉친구로 대해 준 게 민그린이었다.

‘오늘 반 아이들과 스터디 모임에 가긴 하지만, 저녁은 같이 먹겠다고 했는데.’

부반장에게 받았다는 안경을 끼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민그린.

처음에 그녀는 오전 수업만 듣고 바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곧 반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먹고,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다 그녀는 가끔 오후에 학교에 남기도 하고, 방과 후에 친구 집에 놀러가기까지 했다.

‘그린이는 변하고 있어.’

민그린이 친구를 사귀면서, 송대석이 혼자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잘됐다고 생각하는 반면, 초조한 마음이 치밀어 오를 때가 있었다.

‘그린이가 저렇게 된 건 나 때문이니까, 변하기 시작하면 축하해 줘야 하는데.’

민그린의 트라우마의 계기가 된 괴롭힘.

그 원인에는 송대석도 있었다.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훤칠한 외모.

탁월한 이능을 타고나고, 좋은 집안 출신인 송대석.

그가 민그린과 친하게 지내는 걸 좋지 않게 생각하고, 더욱 질투심에 불탄 아이들도 있던 탓이다.

‘기뻐해야 하는데. 왜 그게 안 될까!’

송대석은 뒤늦게 민그린이 괴롭힘을 당했고, 그 원인 중 하나가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 송대석이 주위의 기대에 짓눌려서 정신이 위태로웠던 상태였었다.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송대석도 민그린처럼 등교 거부자가 되어 버렸다.

‘평소 만나던 시각에서 1시간 지났어. 스터디 모임이 길어진 걸까. 연락하면 방해가 될 텐데, 어떻게 하지.’

집 앞.

송대석은 벽에 기대서서 디바이스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10분만 더 기다리고 전화하자. 아니, 5분만 더.’

그렇게 생각한 지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송대석은 저도 모르게 민그린에게 전화를 걸어 버렸다.

5초, ……12초, …………30초.

아무리 기다려도 민그린은 통화에 응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부재중 메시지를 남겨 달라는 기계음을 듣던 송대석의 머리에는 두렵고 끔찍한 상상만 떠올랐다.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자신과 민그린의 담임 선생님인 함근형이었다.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전화를 안 받으셔!’

다음으로 떠오르는 건, 민그린의 사부인 홍경복 화백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녀가 지금 강원도 산골에 있는 홍경복을 찾아갈 리가 없는데.

송대석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겨를이 없었다.

“화백님! 저 대석이에요. 그린이가, 그린이가 학교에서 안 돌아왔어요. 연락도 안 돼요. 혹시, 그린이가 화백님을 찾아갔나요?”

[……대석이? 대석이니! 그린이가 뭐라고?]

“지금 은광고에 이상한 댓글 달면서 그린이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제 악플은 안 올라오기는 하는데요. 그린이가 연락이 안 된다고요!”

송대석은 횡설수설 말을 이어 갔다.

몇 년 만에 연락을 받은 홍경복은 당황했지만, 친손주나 다름없는 그의 말을 차분히 들어 줬다.

그가 더듬더듬 말을 전부 마친 후에 홍경복이 입을 열었다.

[나도 알아보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 알았지?]

“……네.”

[그린이 집에는 연락해 봤고?]

민그린의 가족.

송대석은 그 사건 이후로 그들을 뵐 낯이 없어 사죄만 한 후, 계속 피해 다녔었다.

민그린이 매일 같이 찾아와 문을 열어 줄 때까지 방문 앞에서 버티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멀리했을 거다.

“아직이요. ……연락해 볼게요.”

[그래. 몸조심하고, 다음에는 그린이랑 같이 한번 보자꾸나.]

홍경복과 통화를 마친 후.

송대석은 몇 번 망설이다가 결국 민그린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세상에! 이게 누구야! 대석아, 무슨 일이니? 잘 지내고 있지?]

민그린의 어머니는 오랜만에 연락하는 데도 반갑게 응해 줬다.

하지만 송대석은 급한 마음에 인사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용건부터 말했다.

“그린이 집에 있나요?”

[그린이는 오늘 친구 집에서 공부하고 온다더라. 그린이 반 친구가 늦는다고 연락도 해 줬어.]

“그린이와 직접 대화하신 건가요?”

[아니. 그린이는 자고 있어서 얘기하지는 못했는데.]

민그린이 직접 얘기한 게 아니라고?

송대석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마음도 모르고, 민그린의 어머니는 신나서 떠들었다.

[그린이네 반장이 직접 연락했는데. 어쩜 반장이라는 애가 얼마나 똑 부러지고 싹싹한지! 그린이한테 착하고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정말…….]

민그린이 이능을 개화하기 전.

그녀의 괴롭힘을 주동하던 아이들에게 끌려가 큰일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기적적으로 이능에 눈떠 도망치지 못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송대석은 생각을 멈추는 대신,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그린이가 정말 친구네 집에서 자는 중인 건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그린이한테 직접 말을 들은 것도 아니잖아요. 통화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소리치자 디바이스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가 뚝 끊겼다.

큰 소리를 낸 걸 뒤늦게 후회했지만, 지금 송대석에겐 사과할 여유도 없었다.

“그 친구라는 애 주소는 들으셨죠? 없으면 걔한테 물어봐서 알려 주세요. 제가 그린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갈게요.”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주소를 받아 낸 후.

송대석은 주소지를 향해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밖으로 나간 적은 없었지만, 민그린의 권유로 실내 트레이닝은 매일 같이했었다.

그 덕에 지치지는 않았지만 민그린 걱정에 숨이 턱턱 막혔다.

‘여기다!’

마당이 있는 그림 같은 집.

큰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송대석은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린이를 괴롭히던 개새끼들도 겉보기에는 멀쩡했었어. 방심하면 안 돼!’

송대석이 한달음에 문 앞으로 달려가 초인종을 연타하기 시작했다.

딩동, 딩동, 딩동딩동딩동.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여러 사람이 움직이고, 대화를 나누는 기색이 느껴지는데, 민그린의 기척은 조금도 없었다.

송대석은 불안한 마음에 더 빠르게 초인종을 눌러댔다.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삣—!

마침내 기계음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소파 위.

아주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민그린이 보였다.

*    *    *

송대석은 충혈된 눈으로 안을 살피다, 민그린을 발견하고 시선을 고정했다.

‘민그린밖에 눈에 안 들어오는 것 같은데.’

송대석은 민그린을 발견하자 바로 그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워낙 그가 기세 좋게 입장하는 바람에 앞에서 현관문 개폐 버튼을 누른 황지호의 어깨를 칠 뻔했지만.

사삭.

황지호는 아주 얄밉고 가볍게 피해 버렸다.

아깝다.

“그린아.”

송대석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잠든 민그린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주변이 소란스러워져서 깬 건지 반쯤 눈을 떴다.

“화선지에…… 고무 말고 나무로 된 문진……. 말총 붓…….”

민그린이 잠꼬대를 하는 걸 보니 아직 반쯤 꿈속인 모양이다.

송대석은 화구 이름을 줄줄 나열하는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다.

“그래. 알았어.”

“대석아……?”

“더 자.”

그러자 눈을 깜빡거리던 그녀가 다시 눈을 감고 고른 숨을 내쉬었다.

잠든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송대석이 담요째로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헐.”

“와…….”

1학년 0반에서 가장 키가 작은 민그린.

우리 반 최장신인 황지호와 비슷한 키인 송대석.

신장 차이 때문인지 몰라도 아주 안정적인 자세의 공주님 안기였다.

아무리 봐도 커플의 염장질로밖에 보이지 않는 광경을 본 아이들이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분위기는 무서운 분인데, 다정하시네요.”

“공주님 안기 실제로 하는 거 처음 봤어. 어떡해!”

권레나가 얼굴을 붉히며 송대석의 품에 안긴 민그린을 바라봤다.

입학 첫날에 내가 권레나를 안아 들어 이동한 적이 있는데, 그건 세지 않는 모양이다.

“혈색은 좋지 않은데, 근력은 괜찮아 보여.”

“소질이 있어 보이는군.”

한이와 황지호는 그 와중에 송대석을 품평하고 있었다.

둘은 태호권 외에도 죽이 맞는 구석이 있구나.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믿음직하게 행동한 건, 역시 사교력 만렙의 능력자 반장 김유리였다.

“그린이 소꿉친구인 대석이지? 그린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밖으로 나가려던 송대석이 멈춰 섰다.

“바로 가지 말고 조금 앉아 있다 가. 배 안 고파? 아직 피자 남아 있는데!”

그 말을 들은 후에야 송대석은 우리가 눈에 들어온 건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김유리가 공들여 꾸민 카페 같은 아늑한 공간의 거실.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교과서와 널려 있는 학용품.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시카고 딥 디쉬 피자.

민그린에게 위해가 될 만한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송대석도 눈치챘겠지.’

착한 우리 반 아이들과 안심하고 잠든 민그린을 봤으니 느끼는 게 있을 거다.

“…….”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던 송대석이 고개를 저었다.

김유리가 ‘아쉽네……. 그럼 다음에 놀러 와!’라고 붙임성 있게 대답했을 때.

그가 주저하다가 물었다.

“……담요 빌려 가도 돼?”

“당연하지! 그린이한테 내일 보자고 전해 줘.”

송대석이 민그린을 안아 든 채로 퇴장하려다, 문득 발을 멈추고 홀로그램 화면을 하나 띄웠다.

“앞으로 그린이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연락해.”

홀로그램에 떠 있는 건, 송대석의 디바이스 코드였다.

그렇게 폭풍처럼 등장한 송대석이 사라진 후.

“있잖아, 두 사람은 사귀는 걸까?”

“그, 그럴 것 같아! 어떡해.”

김유리와 권레나가 얼굴을 붉히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오늘 송대석을 붙잡는 건 실패했지만 연락할 수단을 확보했다.

그렇게 1학년 0반의 기말고사 대비 첫 스터디 모임이 끝났다.

*    *    *

스터디 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기숙사 방.

오늘도 디바이스에 미독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가장 최신 메시지는 옥토연이 보낸 것이었다.

[옥토연] 은인아, 은인아.

[옥토연] 은인은 서호랑 이호랑 재호랑 친하다면서.

[옥토연] 나 이제 은광구 출입 금지 풀려서 후예들 만나러 갈 건데! 후예들은 뭐 사 주면 좋아할까?

[옥토연] 은인아…….

[옥토연] 야.

[옥토연] 빨리 대답 좀! ㅡㅡ

옥토연을 귀찮아하는 황지호의 태도에 크게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이미 누가 하기로 한 선물이지만, 은호의 후예들이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선물을 댔다.

[나] 유원지요.

장난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올 줄 알았지만, 옥토연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옥토연] 유원지? 테마파크 말하는 거야? 좋아. 당장 알아볼까! ㄱㅅㄱㅅ!

알아보고 자시고, 유원지는 사고 싶어서 살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나마 하나 팔릴 유원지는 황지호가 사기로 했고.

유원지를 새로 세운다는 방법도 있겠지만, 부지를 고르고 어트랙션을 만들다 보면 몇 년은 걸릴 텐데.

잠시 후, 옥토윤으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옥토윤] 은인님. 토연이를 너무 놀리지 말아 주세요.

[옥토윤] 은인님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요.

중간에 고생할 옥토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조금 반성하고, 다음 메시지를 확인했다.

[홍규빈] 의신아, 잘 지내지?

[홍규빈] 내가 요즘 야근이 없어서 시간이 많다! ^^!

[홍규빈] 이 중에서 먹고 싶은 거나 가 보고 싶은 곳은 없니? 내가 다 살게. ^^!!

[홍규빈] (링크)

링크를 눌러 보니 맛집과 백화점 매장 리스트가 좍 떴다.

갑자기 홍규빈이 왜 저러지.

리스트를 끝까지 확인하기도 전에, 홍규빈이 추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홍규빈] 신문부 아이들과도 같이 가고 싶은데, 불러 줄 수 있어? 이야기할 게 많은데^^!!!!

뜬금없이 신문부 얘기를 하니 감이 잡혔다.

‘아직도 제갈재걸 잡지 초판 1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가!’

안타깝게도 신문부의 부원들도 초판 1쇄를 내줄 생각이 없을 거다.

2학년 0반이 습격해 와도 못 내준다고 응전할 정도였으니까.

다른 신문부의 부원들도 초판 1쇄는 안 넘겨줄 거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메시지를 확인했다.

[성시완] 의신아, 괴담 조사는 잘 되어 가?

이번 괴담 조사의 파트너, 지익회장 성시완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나] 네. 3학년 0반 반장 선배님이 천익산 안내를 해 주시고, 다른 괴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어요.

덤으로 우기환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정리한 자료도 첨부해 보냈다.

[성시완] 기환이가 0반 후배는 잘 챙겨 주는구나.ㅎㅎㅎ

딱히 우기환이 나를 챙기려고 정보를 준 것 같지는 않은데.

[성시완] 나도 그럴싸한 정보를 들어서 확인해 볼 예정이야!

[나] 그럴싸한 정보요?

[성시완] 중앙 구역의 학생회관하고 선도부회관 사이에 비밀 통로가 있다고 해.

그건 나도 처음 듣는 정보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3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