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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41화 (141/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41)

“의신아, 연락해 줘서 고마워. 수혁이는 서해안 쪽부터 찾고 있었대. 잘못하다간 놓칠 뻔했어. 저 또라이 새…… 시후가 어디에서 무슨 짓을 하다가 발견됐는지 설명해 줄 수 있어?”

여전히 도시후가 처맞는 가운데, 장남욱이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장남욱 입에서 욕이 나오다 만 걸 보니 아직 열 받아 있나 보다.

“처음 발견된 건 속초시 설악해맞이공원인데 거기 직원분이…….”

내가 도시후가 벌인 기행의 설명을 마치자 군사관생도들이 그에게 주먹을 한 방씩 날렸다.

퍽! 쾅!

막타는 다른 사관생도의 플랩잭에 이어진 장남욱의 팝업 유로피언 어퍼컷이었다.

뻐억!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주먹이 도시후의 턱에 아주 깨끗하게 꽂혔다.

“억…….”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던 도시후가 이건 아팠는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사관생도들의 연계 공격은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긴 했다.

“시후 너 제정신이야? 수심 2m도 안 되는 교내 수영장에서 익사할 뻔했으면서, 수온도 낮고 유속도 빠른 바다에 갑자기 뛰어든다고? 죽고 싶었어?”

도시후는 이미 전과가 있었나 보다.

그 말을 하는 장남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맞아 죽어라, 또라이 새끼야!”

“그래, 처맞아 뒤지나 물에 빠져 뒤지나 똑같은데 그게 낫다. 익사체를 치워야 하는 해경은 무슨 죄냐.”

“플레이어의 시체에는 사후에도 이능의 잔해가 남기도 함. 해경이 아니라 우리 선임들이 수습해야 할 수도 있음요.”

도시후가 도망가지 못하게 포획한 군사관생도들이 흉흉한 말들을 뱉었다.

말은 험하게 했지만, 빡빡머리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엔 걱정이 묻어났다.

“……죽을 생각은 없었어. 내가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데.”

“네가 수영을 할 수 있게 돼도 그 뱃멀미가 안 나으면 계속 반대할 거야.”

“도시후 또라이 새끼 왜 갑자기 멍청해짐?”

매도당하던 도시후가 매달리듯이 장남욱을 보며 말했다.

“……그냥 응원해 주면 안 돼?”

장남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말이 ‘죽으러 가고 싶은데, 그냥 응원해 주면 안 돼?’로 들린 모양이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 했는데, 입을 다물고 있기 어려웠다.

“야. 장남욱이나 네 사관학교 친구들은 네 응원은 못 해 줄 거야. 나 같아도 못 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원하는 건 다 해 주고 싶지만, 죽으러 간다고 하면 말릴 거다.

어쩔 수 없이 사지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함께 가거나 대책을 세워 주긴 하겠지만.

“쟤들이 네가 원하는 말은 못 해 주더라도, 네 걱정은 진지하게 하고 있는데. 장남욱은 한숨도 안 자고 너 찾다가 달려온 거 알고 있냐?”

그 말을 들은 도시후가 장남욱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장남욱은 모범적인 예비 군인다운 교과서적인 차림새였지만,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터 있었다.

다른 사관생도들도 장남욱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제 친구들의 엉망인 얼굴이 눈에 들어온 건지 면목 없어 하는 얼굴을 했다.

“……미안.”

“사과해도 응원은 못 해 줘.”

“하하하, 그래…….”

도시후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하나하나 사과했다.

저 모습을 보니 도시후가 또 뛰쳐나가 입수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저렇게까지 걱정해 주는 친구들을 봤으니 느끼는 게 있을 거다.

“밖에 있지 말고 다들 들어와라. 먼 길 왔는데 차라도 대접하게 해다오.”

“네? 죄송합니다. 그렇게까지 실례를 하기에는 좀…….”

“허허, 실례라 생각하면 얼른 오거라.”

집주인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사관학교 생도들도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 안.

방석 위에 앉은 우리.

긴장이 풀린 듯 지친 얼굴을 한 장남욱에게 물었다.

“틸트로더는 어떻게 섭외했어?”

“우리 기수 중에 오래전부터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에 소속되었던 애가 구해 왔어. 걔가 연습 삼아 운전해 보고 싶다 요청하니까 바로 허가가 나오더라.”

허가가 바로 나온 것도 신기하지만, 장남욱과 동갑인데 틸트로더를 직접 운전했단 말인가.

군사관학교에도 숨은 능력자가 많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지나치게 화려하게 움직인 것 같은데.

“너 도시후 외박계 대리로 제출했잖아. 눈에 띄게 움직이면 학교 측에서 알아보지 않을까. 괜찮겠냐?”

“괜찮아. 내가 기수장으로서 책임질 거야.”

걸리면 그냥 벌을 받겠다는 소리잖아.

다른 놈들은 몰라도 장남욱은 전혀 괜찮지 않을 것 같은데.

‘장남욱이 기수장이었나.’

플레이어 군사관학교에 입교한 후에 해당 기수의 생도들이 직접 선발하는 기수장.

그는 앞으로 그의 기수가 최상급생이 되어 동기 중에서 생도회장을 선발하기 전까진 그 나이대 최고 책임자를 맡게 될 거다.

‘보통 수석이 맡는다고 들었는데. 매스게임 건도 그렇고 신뢰받고 있나 보네.’

차석 입학한 것을 말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이놈이 말은 많은데 중요한 건 그다지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다친 곳 좀 보자.”

차가 준비되길 기다리는 사이.

함근형이 회복 아이템 카드를 들고 도시후를 살피려 했지만.

“어차피 시후는 돌아가면 또 맞아야 해요. 시후가 맞을 거 다 맞고 나면 저희가 치료하겠습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장남욱이 말하는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아주 공손하게 제지했다.

입을 다물고 잠자코 있던 도시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나 또 맞아야 해?”

“그래, 너 패려고 애들 줄 섰다. 우리 기수 전용 연병장에 1열 종대로 대기 중이야.”

“……머리가 아프다. 약 먹어야겠다.”

도시후가 머리를 짚으며 말하자 얼굴에 주먹을 몇 번이나 날린 장남욱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머리 많이 아파?”

그 말을 들은 도시후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머리가 아프니까 약은 ‘두 통’ 먹어야겠다. 머리 아픈 게 두통이니까! 하하하…… 억!”

빡!

사관생도 한 명이 도시후의 뒤통수를 후려갈겨 입을 다물게 했다.

분위기가 싸해지고 도시후는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저 새끼는 처맞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민그린을 뒤에 숨기고 있는 송대석이 까칠하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도시후는 처맞기 전에도 원래 머리가 저랬다.

도시후가 평소대로 돌아온 것 같아서 조금 안심됐다.

“차 내왔다. 그만 앉아서 들자.”

집 앞에 처음 보는 고등학생이 몰려와 벌이는 일방적인 린치, 다구리를 목격하고도 차를 대접하는 넓은 도량의 홍경복 화백.

그의 말로 다들 조용히 앉아 차를 들기 시작했다.

새로 내온 차는 간 칡뿌리를 갈고 개어 만든 갈분차.

다과는 이에 맞춰 칡뿌리와 생강즙과 꿀을 넣어 만든 갈분다식이었다.

‘근본 없는 모임이구나.’

낯선 사람이 많아진 탓에 송대석의 옷깃을 꼭 붙잡고 뒤에 숨어 있는 민그린.

민그린의 시야를 방해하는 자리에 앉은 함근형 선생님.

각을 잡고 뻣뻣하게 차를 마시는 사관학교의 생도들.

그 빠릿빠릿한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말을 거는 홍경복 화백.

모인 계기도 구성원도 미묘했지만, 대인배 홍경복 화백에 의해 다도회는 그럭저럭 잘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차를 마시고 상황이 정리됐을 때.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허허, 죄송할 게 뭐가 있어. 고개 들어라.”

홍경복은 사이 좋은 빡빡머리들을 보며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도 배웅할 겸 내려갈게요.”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도시후의 폭주로 엉망진창이 됐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 두 사제가 만나는 날이다.

송대석도 오랜만에 홍경복을 만나는 것 같으니 천천히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고.

함근형 선생님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우리와 함께 나섰다.

‘홍천군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도 있고…….’

사실, 처음부터 중간에 자리를 비울 생각이었다.

[나] 선배님, 홍천에 도착했어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성시완] 어디야? 내가 마중 나갈게!ㅎㅎ

오늘은 성시완과 계이담과도 만날 예정이었다.

*    *    *

하산하는 사관학교 생도들과 함근형 그리고 조의신.

송대석은 창문 너머로 그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너희 반 부반장이 참 괜찮은 아이더구나. 반장이라는 아이는 그린이네 가족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담임은 근형이가 맡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지.”

홍경복이 송대석을 다독이듯 말했다.

“대석이 네가 등교를 해도 그린이가 힘든 일을 겪지 않을 것 같구나.”

송대석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대신 저편에서 정신없이 홍경복의 신작을 감상하는 민그린을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 자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민그린을 괴롭히던 이들의 얼굴이 스쳐 갔다.

“잘 생각해 봐라. 그린이와 학창 시절을 보낼 기회이니.”

그러나 곧 1학년 0반 아이들이 떠올랐다.

틈만 나면 반 아이들 칭찬을 하는 민그린도.

“나도 도와주마, 대석아. 그린이가 등교를 시작하고 나를 찾아와 줘서 결심이 섰다.”

“……네?”

그렇게 말한 홍경복은 디바이스를 조작해 어딘가에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 통화내용을 옆에서 듣던 송대석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    *    *

사관학교생도들이 에어버스 티켓을 끊는 걸 확인한 후, 나는 성시완과 합류하기로 했다.

“약속이 있었나 보구나.”

“네, 성시완 선배님과 만나기로 했어요. 선생님은 예정이 있나요?”

“딱히 없다. 내일 SSR급 던전 공략도 해야 하니 어르신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질 예정이다. 성시완이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 주마.”

함근형은 낯선 지역에 있는 제자가 걱정되나 보다.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 생각을 읽은 듯 함근형이 말을 덧붙였다.

“이 지역은 지력이 불안정해. 간절기에는 늘 이계가 다발적으로 발생한다. 단독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아.”

“이곳의 지력이요?”

“그래.”

지력이라…….

이 지역의 오음산 삼마치 전설에 따르면 지맥이 크게 훼손된 적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할 거다.

함근형의 말을 들으니 그의 출장 원인이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홍천군의 불안정한 지력이 선생님 출장과 관계가 있었나요?”

“그래……. 예전에 이 지역에 있던 이계를 클리어한 적이 있는데, 그걸 계기로 매년 도와드리고 있다.”

그거라면 나도 알고 있다.

함근형의 창천명궁 전설의 시작이 된 홍천군 스키장 이계화를 막은 사건.

확장형 던전의 등장으로 이계의 틈이 점점 벌어졌지만, 폭설로 지원이 늦어지는 위기 속.

함근형이 외부에 있는 에너미를 전부 토벌한 후, 단시간에 던전을 공략해 홀로 수비대와 공격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사건이다.

‘그 젊은 나이에 SSR급 이상의 던전을 단독 공략하다니.’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내 담임 선생님다운 활약이었다.

에어버스 터미널 앞에 서서 함근형의 활약상에 대해 간략히 듣고 있다 보니 곧 성시완이 나타났다.

“어, 함근형 선생님! 안녕하세요! 출장은 끝나셨나요?”

“그래. 내일 발생할 예정인 SSR급 이계만 클리어하고 돌아갈 예정이다.”

“그거 저도 공략하러 가려고 협회 쪽에 신청해 놨어요. 같이 가요. 이담이도 공격대로 갈 거예요.”

“그래.”

“잘됐네요. 전 근접 공격밖에 못 해서…… 아, 선생님. 점심 드시고 가실래요?”

성시완이 밝게 웃으며 함근형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함근형은 할 일도 없고, 오랜만에 만나는 화백들의 단란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바로 수락했다.

‘그걸 물어볼까.’

성시완의 집으로 향하는 길.

나는 잡담을 가장해 성시완의 출신을 캐 보기로 했다.

“성시완 선배님은 홍천 출신이신가요?”

“아니, 부모님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사하셨어. 임신 당시 이능파가 감지돼서 플레이어 시설이 있는 곳으로 간 거야.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어. 내가 은광고에 들어가고 가족들은 홍천으로 돌아간 거야.”

“혹시 사촌 형님도 그런가요?”

“응, 국언이 형도! 내가 있던 이능 센터가 국언이 형이 나온 곳인데, 거기 형이 있을 때…….”

성시완은 예전에 말한 대로 성국언 자랑을 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숨겨진 비화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귀를 기울이며 걸어갈 때.

“오랜만에 뵙습니다, 함근형 선생님.”

함근형이 놀란 얼굴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국언아…….”

성시완의 본가 앞.

성국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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