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74화 (174/925)

38. 청소년 수련회 (4)

출발이 조금 늦었던 맹효돈.

텐트를 나와 달리던 순간부터 그의 시야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중간까지는 같은 방향이었을 황지호와 송대석의 발이 얼마나 빠른지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아직 어떤 적과도 조우하지 않았고, 위성 경보조차 듣지 못했지만 맹효돈의 날카로운 감이 고하고 있었다.

이곳은 위험하고, 곧 전투가 이어질 거라고.

‘저기에 선생님이 계셔. 괜찮아. 괜찮을 거라고!’

암시라도 걸듯 그렇게 되풀이하며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저도 모르게 교사용 숙소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 저 맹효돈인데요! 함근형 선생님! 이계가 나왔대요!”

그러자 교직원 숙소 두 곳에서 곧바로 불이 켜졌다.

문이 열리고 나온 것은 두 명.

하나는 1학년 1반 담임 김신록.

다른 하나는 1학년 2반 담임 노영미였다.

홀로그램을 보는 두 교사.

이들은 맹효돈의 말을 듣자 바로 위성 정보를 체크해 현재 이곳의 통신이 완전히 끊겼다는 걸 바로 깨달은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그러니까, 그게……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 나오게 돼서, 확인해 봤더니 통신도 안 되는 것 같고…….”

노영미의 말에 맹효돈이 횡설수설하며 설명하고 있을 때.

“효돈아, 내가 대신 말해도 될까?”

아이템 카드를 실체화하여 무장한 상태인 1학년 1반 여학생들을 이끌고 나타난 안다인이 현 상황을 조리있게 설명하였다.

말도 더듬고 요점을 정리하지 못한 맹효돈과 다르게 논리정연한 말을 듣고 있으니, 듣는 맹효돈도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송대석 그 새끼 개 빠르네. 그 짧은 시간에 저기까지 가서 저걸 다 설명한 거라고?’

맹효돈이 감탄하는 사이에 안다인은 금세 말을 정리하였다.

“……기장섬 쪽에는 상훈이가, 상주산에는 수혁이가 갔어요. 상주산 쪽에 이계가 하나 더 있다고 해서 그쪽에 합류할 생각이에요.”

“그렇군요. 지금 저희 2반 부반장이자 숙소장인 문새론 학생은 밤샘 취재를 하느라 숙소에 없을 거예요. ……이럴 줄 알았다면 취재 허락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안다인의 설명을 전부 들은 노영미가 생각을 정리하고 답했다.

“그럼 제가 2반 여학생들과 송대석 학생을 인솔해서 상주산 쪽으로 가겠습니다. 김신록 선생님은 먼저 기장섬 쪽으로, 안다인 학생은 그대로 상주산 쪽으로 먼저 가 주세요.”

그 말대로 움직인다면 이계가 두 곳 발생한 상주산, 여기에는 1학년 2반의 담임인 노영미와 주수혁, 안다인.

이계가 한 곳 발생한 기장섬에는 1학년 1반의 담임인 김신록과 유상훈이 가게 된다.

맹효돈이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을 때, 김신록이 말을 걸어왔다.

“노영미 선생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효돈아,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서글서글한 인상의 김신록이 부드럽게 물어왔다.

“……함근형 선생님은요?”

“함근형 선생님은 어젯밤에도 늦게 돌아오셨던 것 같은데, 순찰 중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럼 담임 선생님을 찾으러 갈래요!”

맹효돈은 주저 없이 외쳤다.

그 담임 선생님이 쉽게 당할 리는 없지만, 이런 시기에 정보 없이 움직이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단독 행동은 권하고 싶지 않은데…….”

“이 건물에 우리 반 애 두 명 더 있어요. 걔들이랑 같이 갈게요.”

“선생님, 시간이 없어요.”

안다인이 조금 초조한 눈으로 북쪽을 보고 있었다.

안다인의 말대로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김신록과 노영미는 서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반 문새론 학생은 알고 계시나요?”

“전에 인터뷰한 적은 있는데…….”

“문새론 학생을 찾으면 함께 행동해 주세요.”

“네!”

그렇게 답하고 달리려고 할 때, 안다인이 스쳐 가며 맹효돈에게 한마디했다.

“유리를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는 안다인에게선 주수혁이 반했다는 라이벌답게 묘한 박력이 느껴졌다.

“어, 그래. 주수혁이 무리하지 않게 잘 챙겨라!”

“……응!”

그 말에 어둠 속에서 안다인이 잠깐 당황하다 볼을 붉힌 것 같긴 했지만, 맹효돈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각자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교직원 숙소 3층을 쓰고 있다는 반 여자애들을 찾아 맹효돈은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소란스러우면 보통 내다보지 않나?’

김유리는 은광고 플레이어 중에서도 상당히 우수한 축에 속했다.

그런데 창문을 열어서 밖을 확인하지도 않는 건 조금 이상했다.

맹효돈은 불안한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계단을 밟으며 달려갔다.

마침내 비상등만 켜져 있는 복도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는 종이 명패를 발견해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야! 일어나!”

안에서 뭔가 움직인 듯한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그 0반 선배들도 일단 부순 다음에 물어 줬다고 했지?’

수련회 무대를 부수었다는 선배들의 일화를 떠올리며 맹효돈이 문을 박살 내려고 했을 때였다.

“잠깐만!”

이능파를 감지한 건지 안에서 맹효돈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곧 문이 열렸다.

‘둘 다 있어!’

맹효돈은 한순간 안도했지만, 바로 표정을 굳혔다.

침대 위에 주저앉아 떨고 있는 김유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유리가 안 좋은 꿈을 꾼 것 같아. 너무 떨어서 선생님을 부르려던 중이었어. ……저기, 효돈아? 무슨 일 있어?”

맹효돈은 김유리를 보며 자신의 출발이 늦어졌던 원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을 지옥에서 구해 줬던 은인.

수상한 부반장.

그가 텐트에서 출발 전 이상한 말을 했었다.

—김유리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이 말을 전해 줘.

‘무슨 일이 있으면? 마치 뭐가 있을지 알고 있는 말투잖아!’

파리한 표정의 김유리가 맹효돈을 뒤늦게 발견하고 작게 손을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일단 지금 무슨 일이 있는지 전하자.’

맹효돈은 마음을 다잡고 부족한 말솜씨로 상황을 전하기 시작했다.

*    *    *

민그린의 스킬을 이용해 달리기 시작한 내 뒤로 사월세음이 비행 스킬을 발동해 따라오고 있었다.

“의신이가 이렇게 빠른 줄은 몰랐어요! 이 정도로 빠르면, 분명 주민분들도 다 대피를…….”

사월세음은 애써 밝게 말하려 하고 있었지만, 힘들 거란 걸 아는 듯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대, 대피가 안 되더라도 지원이 올 때까지 수비대 역을 잘하면 대피할 필요는 없겠죠? 다들 무사하겠죠?”

대답하지 않고 달리는 내 뒤를 따르는 사월세음은 점점 목이 메는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쯤 왔으면 됐겠지.’

말없이 달리던 내가 멈춰 서자 사월세음이 고도를 낮춰 내 바로 옆까지 내려왔다.

“의신아?”

“대피는 해야 해. 특히 섬 남서쪽, 매음리 해안가에 있는 주민들은 전부 섬 중앙 대피소로 이동시켜야 해.”

“네? 하지만…… 이계가 생긴 건 북쪽이잖아요?”

“부상한 상태에서 남서쪽을 봐.”

지금쯤이면 석모도의 서쪽과 남쪽에 있는 섬, 주문도와 장봉도 사이로 그것들이 몰려오고 있을 것이다.

이 섬의 유일한 플레이어 시설, 섬 지킴이가 상주 중인 ‘플레이어의 등대’와 인근 민가를 노리고서.

“바다 모양이 이상해요. 파도? 배? ……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다 저편을 바라보던 사월세음이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거 전부 에너미인가요?”

지금 이 섬은 에너미 떼의 습격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안배를 해 두긴 했지만, 해안가 쪽에 민가가 많아 대피를 시킬 필요가 있었다.

특히, 데미지를 입은 에너미가 생명력을 흡수하기 위해 전선을 이탈하여 근방에 있는 민간인을 노릴 가능성이 컸다.

“어, 어떡하죠? 애들이랑 선생님은 다 북쪽으로 갔을 텐데!”

“침착해. 잘 보면 수면에서의 이동 속도는 느려. 저 에너미들은 수상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 어떤 ‘주체’에 의해 천천히 이 섬으로 끌려오고 있는 거야.”

사월세음이 발견한 에너미들은 지상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려 오는 진족의 권속들이었다.

물에 약하진 않았지만, 강한 것도 아니었다.

“대피할 시간은 있어.”

“하지만 이쪽 주민들만 해도 수백 명은 될 거예요! 어떻게, 어떻게 하죠?”

“광림을 써.”

사월세음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제…… 광림이요……?”

“그래. 사월 일족 중에서도 후계자인 너만 쓸 수 있는 그 광림 말이야.”

“의신이가 어떻게 그걸…….”

“남서쪽 전역에 이 말을 전해. ‘중앙 대피소로 향하라.’라고.”

내가 왜 남서쪽에서도 에너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어째서 사월세음의 광림에 대해 알고 있는 건지.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선량한 그는 인명 구조를 우선시하기로 했는지 결연하게 말했다.

“……해 볼게요!”

사월세음의 주변으로 이능파가 퍼져 나갔다.

따뜻한 빛무리의 형태를 한 이능파가 그를 감싸고, 그가 광림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빛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사월세음의 광림은 발동하지 않았다.

그의 광림 발동에 필요한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거다.

“미안해요, 아, 안 될 것 같아요! 다시, 다시 할게요!”

한 번, 두 번, 세 번…….

모든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사월세음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렇게 될 것 같았지만, 이런 상황이 오질 않았으면 했는데.’

나는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을 하며, 그 말을 할 준비를 했다.

*    *    *

도중까지는 안다인과 함께 이동했지만, 길이 갈라져 혼자가 된 김신록.

그는 이 이상 현상에 놀라긴 했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이 섬에는 호족의 수장인 황호가 있었고, 웬만한 진족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교사인 함근형이 있었다.

‘부상자는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별문제는 없을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한 게 화근이었던 걸까.

김신록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포위되고 말았다.

적의도,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인과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냥감이 되어 포획되는 불쾌하고 치욕스러운 감각이 엄습했다.

이런 감각은 김신록의 긴 생애에서 몇 번이나 맛봤었다.

“목격자는 죽여야 하는데, 제물은 살려서 끌고 가야 하잖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어. 준비는 해 놨는데, 대체 누가 실수한 걸까? 왜 은광고 꼬마들이 이렇게나 많이 움직이는 중인 거지? 정말이지…… 이 세상에는 고민할 거리가 너무 많아. 어쨌든, 네가 혼자가 되길 기다렸어.”

지금은 천신의 분노를 사서 격이 떨어졌다고 하나, 태어날 당시에는 신화계의 호족과 신화계 웅족이었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김신록.

보통의 진족을 압도하는 재능을 타고난 그의 예지를 간단히 짓밟을 수 있는 존재는 호족과 웅족, 둘이었다.

그리고 둘 중 이런 짓을 벌일 진족은 정해져 있었다.

‘……웅족이구나. 이 사태를 부른 건 웅족이었어!’

그제야 그 조련계 웅족과 대치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완벽한 통신 단절 상태가 이어졌었다.

‘큰일이군.’

그때 이 현상이 일어난 건 은광고였다.

각종 결계와 시설이 있던 은광고와 달리 이곳은 진족의 침입과 이계에 대한 방비가 보통 수준의 이하인 섬.

통신 복구가 언제 될지 몰랐다.

‘황호 님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황호가 웅족을 발견했다면, 지금쯤 저들은 이미 죽어 있었을 테니까.

황호는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안다인의 설명에 의하면 황호는 수련회 지도사 숙소로 향했다고 했는데, 그건 섬 반대편이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렇게 말하며 무기 카드를 실체화하려 했지만, 카드는 무기로 변하지 않았다.

근원이 이어진 웅족을 상대로 후예인 김신록은 무기를 쥐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김신록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카드를 보니 더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 말할까, 말까?”

“당신의 뜻에 따릅니다.”

“부디 고민은 짧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민에 잠긴 웅족 옆으로 남녀 한 쌍이 나타나 부복한 상태로 답했다.

김신록은 손가락에 숨기고 있던 압핀을 이들의 급소로 날리려고 했으나, 이들을 상대로도 공격하는 모션을 취할 수 없었다.

웅족이 셋.

새로 나타난 남녀는 격이 떨어져 보였지만, 김신록은 저항도 할 수 없는 웅족이었다.

“웅녀의 아들을 사냥하는 거니, 예를 취해줄까? 아니야. 비록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머리 역할을 하던 증오의 곰이 실성한 이후부터는 거의 해산 상태나 다름없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그래도 아직도 하나로 묶여서 불리고 있으니까.”

혼탁한 눈을 한 웅족이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웅녀, 머리 역할을 하던 증오의 곰.

이 둘의 공통분모는 하나였다.

‘진웅팔선……!’

짧은 고민을 마친 듯, 그는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죽을 거라면 말해도 상관없겠지. 이 몸은 번민의 곰. 진웅팔선에서 실성하지 않은 세 웅족 중 하나.”

번민의 곰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사이, 김신록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웅족을 고문하며 얻은 정보를 총동원해 판단을 내렸다.

‘……도망은 갈 수 있어. 저항하겠다, 공격하겠다는 의지는 전부 버리고 도주에만 집중하면 스킬을 사용하고, 광림을 사용할 수 있어. 벗어날 수 있다!’

하다못해 황호가 있는 곳까지 간다면 승산은 있었다.

김신록은 거기에 희망을 걸고 다리에 힘을 집중하고 빈틈을 노리려 했다.

그러나, 김신록의 속을 읽은 것처럼 두 남녀가 말했다.

“당신이 도망가면 학생들은 죽습니다.”

“인질을 보여 드리죠.”

번민의 곰의 심복이 홀로그램을 하나 전개했다.

화면 속에선 힘없이 쓰러져 있는 여학생들 사이로 0반 남학생 하나가 비틀거리며 아이들을 깨우려고 애쓰는 장면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이 주변에 권속을 잠복시켜 뒀습니다. 아직 기력이 남은 남학생은 몰라도, 쓰러져 있는 여학생 중에서는 사상자가 나오겠죠.”

이들을 빠르게 제압하면 권속을 막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김신록에게는 이 웅족을 제압할 능력이 없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김신록은 냉정하게 말했다.

“학생을 죽이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믿지?”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목숨과 학생들의 목숨의 가치를 저울질해 보시지요.”

남녀가 이능파를 허공으로 쏘아 보냈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가 홀로그램에서 터져 나왔다.

퍽! 퍼억!

화면 속에서 갑자기 숙소의 창문이 전부 깨지고, 산산조각난 유리가 숙소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남학생이 창문과 여학생들 사이를 가로막아 유리 조각을 뒤집어쓰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창문 너머로 불길한 빛을 휘감은 에너미가 있는 것도.

김신록은 저들에게 당장이라도 학생을 해칠 능력이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저 남학생, 송대석은 황호 님 그리고 은인과 같은 반 학생이다. 그리고 저 냉철한 노영미 선생님이 항상 재능 있는 1학년 2반 학생들을 칭찬했었지.’

목숨의 가치를 저울질한 결과는 금방 나왔다.

김신록이 도주를 포기하고 몸에서 힘을 뺐다.

자신이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후예라는 걸 알았을 때, 언젠가 호족이나 웅족 손에 살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작년에는 웅족에 의해 빈사 상태까지 갔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능하다면 호족 손에 죽고 싶었는데.’

김신록이 도주를 포기했다고 확신했는지 번민의 곰이 손을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구정물 같은 색의 이능파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게 보였을 때였다.

‘저건……!’

김신록은 자신이 주마등을 보는지 의심했다.

쏟아지는 이능파와 김신록의 사이.

붉은 안개와 옥색 빛이 가로막고 있었다.

*    *    *

사월세음의 광림에는 특별한 조건이 있었다.

사월세음이 경애하는 대상이 존재하고, 그가 그 대상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널리 전하고 싶어할 것.

마지막 왕조의 전령의 후예가 사용할 법한 광림이었다.

게임 속에서 그 조건을 충족한 건 주수혁뿐이었다.

“죄송해요, 다시, 다시 하면 될지도 몰라요!”

“같은 반의 급우 정도로는 네 광림 발동이 안 되는 거구나.”

“의신이는 소중한 반 친구인데, 그런데…….”

비행 스킬을 발동할 여력이 없는지, 사월세음은 땅바닥 위에 무릎을 대고 울먹이며 앉아 있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광림을 발동하려다 실패하기를 반복했다.

‘……정말 그 방법밖에는 없나.’

사월세음은 왕을 모신 자의 피를 이었다.

그저 가깝고 친한 동급생, 조의신은 광림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각오를 굳힌 후, 광림을 발동하려는 사월세음을 제지하며 말했다.

“……학교생활은 재밌어?”

“네? 그, 그거야 당연히…….”

“다행이다.”

“갑자기, 그건 왜……?”

“‘학교에서 보자’고 말했던 거 기억나?”

사월세음은 말을 멈췄다.

그 대신, 달을 등지고 선 나를 놀란 눈으로 올려다봤다.

사월세음은 아주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내가 방금 한 말이 환청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보여 주는 게 빠르겠지.’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평소에는 조의신의 외형을 유지했지만, 오랜만에 광림의 대상이 된 캐릭터의 외형을 빌리기로 했다.

외견이 변하는 나를 보고 사월세음의 눈이 점점 커졌다.

〈대상 캐릭터의 광림, ‘홍룡소환(紅龍召喚)’을 사용합니다.〉

파아아!

이공간의 틈 사이로 거대한 불의 용이 나타나 나와 사월세음의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성장한 염준열의 모습을 한 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적벽괴도야.”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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