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청소년 수련회 (3)
[그…… 대석이는 베개 잘 챙겨 갔어? 걔는 베개 바뀌면 잠을 못 자서…….]
“응! 남자애들 텐트에 놀러 갔을 때 봤는데, 베개 때문에 대석이 배낭이 제일 크더라.”
침대 위에 무릎을 감싸 안고 앉은 권레나가 오늘 일을 생각하며 웃었다.
화상 통화로 권레나의 이야기를 듣는 민그린도 웃으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지호는 평소대로 계속 웃어 댔고, 대석이는 엄청 신나서 잘 놀았어.”
[대석이가?]
화면 너머의 민그린이 놀란 얼굴을 했다.
권레나는 그 얼굴을 보며 추가로 홀로그램을 띄워 사진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대석이 사진이랑 영상 보내 줄게! 외줄 활강하는 거랑 레크리에이션 때 혼자 박자 틀리게 손뼉 치는 거!”
[보내 줘!]
그 뒤로는 내일 일정에 대해 말하다 통화를 마쳤다.
내일도 송대석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서 민그린에게 잔뜩 보내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권레나는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한이랑 그린이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보육원 봉사 활동으로 바쁜 한이.
그녀는 ‘바쁘지만 공청훤 선생님이랑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기뻐.’라고 말했지만, 같이 수련회에 못 와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이랑 그린이랑도 같이 여행 가고 싶은데…… 의신이한테 상담해 볼까. 의신이라면 좋은 방법을 생각해 줄 것 같은데…….’
수상하게 웃으며 좋은 수를 생각해 줄 부반장한테 뭐라고 상담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방에 설치된 샤워실에서 김유리가 나왔다.
“다 씻었어?”
“응. 나 때문에 안 자고 기다린 거야? 미안해.”
“아냐! 나도 방금 전까지 한이랑 그린이랑 통화하고 있었어.”
전신 드라이를 꼼꼼히 받은 건지 물기 없는 머리카락의 김유리는 잘 자라며 인사를 한 후 자리에 누웠다.
이불을 덮지 않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그녀는 긴 소매 옷을 입고 있었다.
‘추워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김유리는 더워하면서도 긴소매 옷을 고집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김유리가 말하기 싫어한다면 억지로 캐묻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권레나는 카디건을 걸치고 방에 설정된 에어컨의 온도를 조금 낮춘 후 잠들었다.
* * *
둘째 날 아침은 기상나팔 소리에 이어 한물간 대중가요를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전용 베개까지 갖고 와 잘 퍼질러 자는 송대석을 마지막으로 시간 내로 전원 기상하는 데에 성공해 다 같이 아침을 먹으러 이동했다.
아침 메뉴는 베이크드 빈즈 통조림과 삶은 달걀, 굽지도 않은 식빵, 마요네즈를 뿌린 양배추와 종이팩 우유였다.
성의도 없고 맛도 없는 아침 식사에 황지호의 기분은 바닥을 기었고, 다른 아이들은 그냥 포기한 듯 해탈한 얼굴로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했다.
“어제 좀 늦게까지 얘기하다 자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잠들었어요.”
“늦게까지 일어나 있어 봤자 피곤하기만 하지.”
“저 새끼 말이 맞다.”
“그래도요. 여기까지 왔는데 아쉬워요.”
오늘은 다 같이 영화라도 보자며 제안하는 사월세음 말에 마지못해하면서도, 송대석과 맹효돈은 열정적으로 오늘 볼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다.
액션물과 스릴러물을 두고 의견이 엇갈려 결국 두 개 다 보고 자자는 의견이 나왔다.
“야, 그런데 밤늦게 깨어 있으면 교관이 지랄하지 않냐?”
“그 점은 문제없어요! 어제 0반 선배님들 얘기가 많이 나와서 연락 드렸더니 금찬솔 선배님이랑 왕찬솔 선배님이 ‘수련회 꿀팁 대방출’ 파일을 보내 주셨어요. 하나 보내 드릴까요?”
뭐라고!
사월세음이 0반 선배놈들의 독니에 걸린 것인가.
대체 언제부터 그놈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 거지.
“그 팁이란 게 뭔데?”
“수련회 지도사님들은 창문으로 학생들이 자는지 안 자는지 체크를 하는데, 밤에는 거기에 이능파로 그림자를 만들어서…….”
홀로그램을 띄우고 밝게 말하는 사월세음의 뒤로 금찬왕찬 콤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뭐…… 착한 사월세음이 0반 선배놈들처럼 될 리가 없지. 수련회에서 반 애들이랑 놀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저런 거잖아.’
아침을 먹은 후에는 산길을 따라 걸으며 산림욕을 한 후, 반별 체험 활동을 시작했다.
도자기 공예, 한지 공예, 꽃꽂이, 태권도, 요가, 탈춤 등등의 선택지 가운데에 우리 반이 고른 건 사물놀이였다.
“하하하하!”
“저 새끼는 밥도 안 먹었으면서 힘이 넘치네.”
신들린 듯한 솜씨로 매구채를 휘두르며 놋쇠를 두드리는 황지호는 돌아이스러웠다.
“하하하하! 부쇠, 소리가 작다!”
거기에 상쇠가 황지호, 부쇠가 나였던 탓에 박자를 맞추는 게 고역이었다.
망할 놈이라고 속으로 욕하면서 간신히 상쇠의 보조를 맞추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연주는 개판이었다.
장구를 잡은 김유리와 권레나는 멋지게 가락을 이어 갔지만, 계속 박자를 놓치자 초조해진 맹효돈이 있는 힘껏 사물북을 때렸고, 그 탓에 가죽이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중간에 장구를 하고 싶다며 권레나와 포지션을 바꾼 송대석이 궁글채와 열채를 박살 내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연주는 끝까지 엉망이었지만 재미는 있었다.
그렇게 반별 미션 활동을 마치고 밤.
오늘도 심각하게 재미없었던 반별 점수 매기기 레크리에이션을 마친 후.
“야, 너희 텐트 구경해도 돼?”
“나도 가도 돼?”
점호 보고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유상훈과 주수혁이 불쑥 말을 꺼냈다.
오늘 두 사람은 적당히 핑계를 대서 붙잡아 둘 생각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했다.
“생각보다 넓네.”
“이거 사진 자료로만 봤는데, 실물은 이렇게 생겼구나.”
텐트 외부를 구경하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반 아이들은 텐트 벽 쪽에 홀로그램을 띄우고 영화를 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화 제목을 본 주수혁이 물었다.
“보고 가도 돼? 이거 아직 못 본 건데.”
“그래라.”
“아, 여기 앉으세요!”
“이거 나 다섯 번은 봤는데.”
유상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리에 앉았다.
1학년 0반 아이들과 두 사람은 방윤섭이 사 온 빵을 함께 먹은 적이 몇 번 있어 서로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상태라 반 아이들도 거리낌 없이 자리를 내주고 간식을 나눠 줬다.
마침 반 아이들이 선택한 영화는 유상훈이 저번에 칭찬을 쏟아 내던 그 농구 잘하는 한류 스타 플레이어가 주연인 액션물이었다.
러닝타임이 비교적 짧은 영화는 금방 끝을 향해 달려갔다.
“아, 저러면 안 되지!”
“클라이막스에 좋아하는 사람한테 저런 말을 한다는 건 저 사람 죽는다는 복선 아닌가요? 아…….”
“저 새끼 죽겠네.”
결말을 모르는 아이들이 탄식을 쏟아 낼 때, 영화에 몰입해 있던 주수혁이 중얼거렸다.
“좋아하는 사람…….”
그 한마디에 시선이 주수혁에게 쏠렸다.
“다인이 생각이 났나 봐요……. 주연 여배우 머리 모양이 다인이랑 비슷하긴 했죠!”
사월세음의 말에 주수혁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그 1학년 1반 반장 안다인 말하는 거잖아. 그걸 모르는 새끼가 1학년 중에 있냐?”
“둘이 아직도 안 사귀는 중이었어?”
“하하하하! 그 안다인 본인을 제외하면 다 알고 있을 거다.”
소문에 민감한 사월세음 말고도 맹효돈, 유상훈에 이어 황지호마저 저렇게 한마디 거들자 충격이 컸는지 주수혁은 시뻘게진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안다인이 누군데.”
그나마 송대석이 그렇게 반응해 줬지만 주수혁은 충격이 컸는지 변명도 못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스트리밍이 뚝 끊겼다.
“서버 장애? 뭐야, 이제 곧 결말인데!”
“스트리밍 정액제 중에 가장 비싼 코스로 끊어 놨는데…… 이상하네요.”
사월세음이 몇 번이나 새로 고침을 눌렀지만 화면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웹 연결이 안 되는 거 같아요……. 1 대 1 문의를 넣어 보려 했는데 메시지도 안 보내져요!”
“섬이라서 그런가.”
“……실시간 위성 이계 정보 수신도 안 되는데?”
단순한 통신 장애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위성 정보 수신이 안 된다는 말에 주변에 동요가 퍼져 나갔다.
특히 유상훈의 얼굴이 급격히 굳었다.
“이런 적이 딱 한 번 있었어. ……은광고 실기 시험 쳤을 때.”
“너 혹시 그 13조냐?”
“그래.”
위성에 대해서 잘 아는 송대석도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웅족의 습격을 받았던 당시.
13조가 실기 시험을 치렀던 체육관은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협회 위성은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시작됐구나…….’
나는 주수혁을 바라봤다.
주수혁의 눈에 이능파가 몰려 있었다.
그가 가진 통찰계이자 탐지계 스킬인 ‘천리안’이 발동한 것이다.
“……이계가 두 곳에, 세 종류로 발생했어. 석모도 북쪽, 기장섬 쪽에 하나, 상주산 쪽에 둘! 등급은 SR++급, 아니, 그 이상이야. 발생한 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아. 이계의 틈 사이로 에너미도 보여!”
“SR급 이상이요? 전조 현상도 없었는데……!”
“이거 통신이 끊긴 거 모르면 눈치채기 어려울 거 아냐! 빨리 알려야 되는 거 아니야? 잠깐, 지금 숙소끼리 엄청 떨어져 있고, 민가도 떨어져 있어. 선생님들은, 다른 애들은, 여기 섬 주민들은!”
송대석은 당황한 와중에도 현재 상황을 판단하고 질린 얼굴을 했다.
나는 주수혁과 유상훈을 보며 말했다.
“일단 여기에서 남학생 숙소는 가깝잖아. 너희는 남자애들 데리고 이계 공략하러 가. 반별로 팀플레이 연습은 했지?”
“알았어. 상훈아, 이계 위치 표시해 줄게. 지도 켜!”
“그래.”
주수혁과 유상훈이 지도를 보며 각자 지도를 공유하고 이동할 포인트를 지정하고 있을 때, 맹효돈이 외쳤다.
“부반장! 우리도 가자!”
“안 돼. 할 일이 있어. 우리는 선생님을 부르고 여자애들을 깨우고 주민들 대피시키자. 끝나는 대로 이계 공략에 합류하자.”
“이계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 조심해.”
오프라인 모드로 다운 받아 둔 지도를 펴 사전에 체크한 각 숙소의 위치를 짚어 주면서 말했다.
“황지호, 너는 수련회 지도사 숙소 쪽으로 가. 그리고…….”
맹효돈은 교사진과 김유리와 권레나의 숙소.
송대석은 1학년 1반과 2반 여학생 숙소.
“마지막으로, 사월세음이랑 나는 주민 대피를 유도할게.”
“……석모도 주민이 2천 명 정도 되는 건 알고 있냐? 둘이서 한다고?”
“저, 저는 비행 스킬도 있으니까 잘, 나눠서 하면…….”
사월세음은 자신 없어 하면서도 주먹을 꼭 쥐고 그렇게 말했다.
인원을 더 쪼갤 수 없다는 걸 아는 걸 거다.
“빨리 가. 지도는 머릿속에 넣어 뒀지? 일반인들은 대피소로 유도하고, 플레이어들은 이계 공략과 방어전에 전념하게 하는 게 최우선이야.”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했던 말을 차근차근 전했다.
아이템 카드를 재확인하고, 긴장한 얼굴을 한 아이들에게 말했다.
“다들 조심해.”
* * *
섬 지킴이 김 씨.
석모도에 주재 중인 유일한 플레이어인 그.
조금 이른 나이인 40세쯤에 은퇴한 그는 플레이어 협회의 섬 이주 제안을 받아들여 석모도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지내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어쩌다 흘러들어오는 저레어의 에너미를 처리하는 일이었지만, 이 한적한 섬에서 마지막으로 에너미를 본 건 2년 전이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김 씨는 수련회로 방문한 고교생 플레이어들을 떠올리며 흐뭇한 얼굴을 했다.
애들이 어찌나 활기찬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젊어진 기분이었다.
김 씨는 싸구려 맥주를 들고 그가 거주 중인 등대 안에 들어갔다.
구형 레이더와 기판이 가득한 그곳엔 오늘은 낯선 짐이 하나 있었다.
[취급 주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열지 마시오.]
이상한 문구가 적혀 있는 거대한 박스.
사람은 몇 명 들어갈 크기였다.
‘은광고에서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즈 선물인가? 그런데 왜 발신처가 은광고로 되어 있지 않은 거지?’
원래 은광고에서는 매년 특이한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이름나 있었다.
어쩌면 그 영민한 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소를 속여 보낸 것일지도 몰랐다.
‘뭐, TV나 볼까.’
오늘 플레이어 전문 채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능, ‘플레이어의 시선’에서 ‘양면 거울 최지나’가 출연한다는데.
김 씨가 계기판 화면 옆에 TV와 연결된 홀로그램을 띄우려 하다가 저도 모르게 우뚝 멈춰 섰다.
구형 레이더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수십 년 전에 현역으로 있을 때는 몇 번이나 본 불길한 징조였다.
‘에너미? 이렇게 다량으로 발생하다니 이게 뭔……!’
이 고물이 드디어 고장이 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보고를 하기 위해 플레이어 협회 채널을 연결하려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디바이스 메신저도 먹통이었고, 유선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김 씨가 아이템 카드를 들고 등대를 뛰쳐나가려 했지만.
두두두!
기묘한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을 때.
정체불명의 상자들이 흔들리다 박살 나는 것이 김 씨의 눈에 보였다.
* * *
지정한 장소, 1학년 2반 여학생 숙소로 전력으로 질주해 도달한 송대석.
어둠을 헤치고 달리는 그의 손은 점점 떨리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을지, 제대로 제 역할을 하고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달려야 했다.
‘1학년 1반 반장이라는 그 안다인이란 애가 냉정하게 대처해 줘서 다행이긴 한데.’
1학년 1반 여학생 숙소에서 문을 두드리자, 안다인이 나와 송대석의 말을 듣고 즉시 움직였다.
침착하게 아이템 카드를 꺼내들고 반 아이들을 이끌어 이계 공략을 하러 향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문제는 2반이었다.
‘미친, 숙소끼리는 왜 이렇게 떨어져 있는 건데!’
1학년 2반 여학생 숙소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발이 빠른 민그린과 트레이닝을 해 온 송대석이었다.
민그린만큼은 아니지만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다리가 무겁게 느껴지고 2반 숙소까지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졌다.
‘느낌이 안 좋아. 이거, 마치 그때 같아!’
그날따라 민그린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 송대석에게 친한 척 굴던 아이들은 그의 시선을 돌리려는 양 끊임없이 말을 걸고 주의를 돌렸었다.
그러다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상황을 잘 모르던 아이가 민그린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폐공장 쪽으로 갔다고 말해 줬다.
‘그날도 이런 기분이 들었는데……!’
송대석의 목적지에는 민그린은커녕 이름도 모르고 인사도 해 본 적 없는 아이들뿐이었는데도, 무슨 변고가 있는 게 아닐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침내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달음에 문 앞까지 달려간 송대석은 숙소의 문을 있는 힘껏 두드리며 외쳤다.
쾅쾅쾅!
“일어나! 지금 이계 나왔어! 전조 현상 없는 이계라고!”
그러나 문 너머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미 피난을 갔거나 공략을 시작한 건가?
그렇게 잠깐 생각했지만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니 그건 아니었다.
‘우리는 운 좋게 통신이 끊기자마자 바로 대응했어. 이계가 생긴 건 북쪽이야. 여학생 숙소는 남자 쪽보다 남쪽에 위치해 있고. 만약 얘네들이 바로 움직인 거라면 마주쳤었을 거야.’
오늘 일정이 많았으니 피곤해서 푹 잠든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무 명이 넘는 플레이어들 중에 송대석의 기척을 느낀 이가 한 명도 없다는 건 이상했다.
송대석은 문고리를 잡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야! 들어간다! 들어갈 거야!”
끼익—!
낡은 경첩이 쇠 긁는 소리를 냈다.
활짝 열린 문 앞.
라이트 기능이 있는 디바이스로 주변을 비추자 여기저기에 누워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자고 있어?’
습격의 흔적도 없었고, 외상을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안심한 송대석이 문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일어나! 야! 빨리 다른 애들이랑 합류해서 이계 공략을…….”
파아앗!
그때, 그의 손에 정전기가 흐르는 감각이 들었다.
송대석이 소지한 통찰계 스킬의 일종인 ‘정보 열람’이 강제로 발동한 효과였다.
‘이 스킬이 멋대로 발동한 적은 없는데……?’
아직 ‘정보 열람’ 스킬의 레벨이 낮아 심도 있게 분석이 가능한 건 자신의 상태뿐.
에너미나 다른 플레이어의 상태창은 아예 보이지 않거나 극히 일부만 보이는 수준이었다.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송대석은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눈앞에 뜬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의 체력과 정신력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었다.
‘독이나 저주야! 공격당하고 있는 거야!’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무거운 공기 속.
이미 거동을 하지 못하는 학생이 스무 명.
그리고 학생들을 잠식한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송대석의 숨통도 서서히 조여 오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