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72화 (172/925)

38. 청소년 수련회 (2)

힐이 있는 롱부츠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석모도.

그 섬 중심에 있는 낙가산과 남쪽에 있는 해명산 사이에 넓게 걸쳐 있는 수련회장.

안전을 위해서인지, 동시에 여러 팀을 받아 이윤을 얻기 위해서인지 각 시설과 숙소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함근형 선생님과 권레나, 김유리와 헤어져 이동한 1학년 0반 남학생 숙소.

이를 본 송대석이 한마디 했다.

“……은광고가 완전 공정하고 공평하고 올바르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것 같네.”

“네?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이 반에는 이사장 친척이 있잖아. 그런데도 이런 열악한 숙소에 배정받았어! 특별 우대는 기대도 안 했지만 그 반대일 줄은 몰랐다!”

송대석이 우리가 배정받은 텐트를 가리키며 독설을 쏟아 냈다.

이 텐트는 이계 공략이 장기화될 때 프로 플레이어들이 애용하는 아이템으로, 학교 비품 중 하나였다.

임시로 세운 숙소긴 하지만 중형급 태풍에 견디고 웬만한 이능파에는 찢어지지 않는 소재로 만든 텐트다.

원래 1학년 0반은 교사진과 같은 건물을 쓰기로 했었지만, 내가 함근형 선생님을 설득해 텐트를 사용하겠다고 자청했다.

“다른 반이랑 같은 방 쓰기는 싫고, 그렇다고 교사진 건물에 들어가는 건 눈치 보여서.”

“부반장 네가 제안한 거였냐…….”

송대석이 불만스러운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괜찮아 보이는데 왜 지랄이야. 싫으면 밖에서 자라.”

“아, 침낭 있는데 밖에서 쓰실래요?”

“……안에서 잘래.”

짐을 풀기 시작한 맹효돈과 사월세음이 한마디 결국 거들자 송대석도 짐을 풀기 시작했다.

짐을 풀고선 텐트를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는 게 말은 그렇게 해도 처음 해 보는 텐트 생활이 신나 보였다.

“여보세요? 네, 통화할 수 있어요. 말씀하세요. 아, 네…… 도착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짐을 다 풀었을 때쯤, 사월세음이 텐트 한구석에서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큰일을 겪은 사월세음을 걱정한 가족이 연락한 것 같았다.

“아, 도착했을 때 디바이스를 반납할 뻔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막아 주셔서…….”

사월세음의 말대로, 숙소로 이동하기 전 강당에서 치른 입소식에서 일이 터질 뻔했다.

뭐가 불만인 건지 딱딱한 얼굴을 한 수련회 지도사가 ‘지금 여기 놀러 왔습니까?’, ‘전체 앉아, 일어서, 고개 숙여!’를 외쳐 댔다.

‘줄도 잘 서고 떠드는 애들도 없었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디바이스 전원을 끄고 제출하라는 요구를 했다.

위험 물품을 들여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소지품 검사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디바이스를 내놓으라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학생들이 동요하고 있을 때.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함근형 선생님이 나섰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함근형 선생님은 정중하게 말했지만, 워낙 인상이 험상궂고 무섭게 생긴 데다 실제로도 강력한 플레이어인 탓에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군기를 잡아 보려던 수련회 지도사가 움츠러드는 게 보였다.

—플레이어SAT-K의 이계 경보를 수신하는 디바이스의 몰수라니요. 이런 중대한 사항을 사전 협의 없이 처리하셔도 되는 겁니까?

—관례상 몰수하게 되어있어서…….

—관례상? 그간 수련회에 참가한 1학년 학생의 디바이스를 항상 몰수하신 겁니까?

함근형이 얼굴이 점점 험악하게 굳자 수련회 지도사가 이번엔 봐주네 어쩌네 하면서 물러갔다.

‘학교로 돌아가면 함근형이 이번 일을 단단히 조사하겠지.’

최편득과 리베이트로 단단히 묶여 있던 수련회.

돈을 잔뜩 받아먹은 최편득 측 교사는 수련회 지도사들이 학생에게 험하게 굴어도 모르는 척하거나 다른 교사들의 시선을 돌리거나 입을 막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편득은 없어졌고, 남아 있는 교사 중에 돈에 혹해 학생을 팔 만한 사람은 없었다.

‘게임 속에선 1학년 1반 담임이던 최편득과 함근형이 말다툼을 했는데.’

결국, 게임 속에선 1학년 0반의 유일한 참가자였던 김유리와 취재 자료 백업용 예비 디바이스를 숨겨 둔 문새론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의 디바이스가 몰수당했었다.

디바이스가 몰수된 학생들을 염려한 함근형은 수련회 기간 내내 밤마다 순찰을 돌았고 이는 피해를 최소화한 한 수가 되었었다.

“아뇨…… 아직 그분은 못 찾았어요. 염준열 선배님하고는 만나 뵈었는데요. 네…….”

그분이라는 건 ‘그 단어’인 것 같은데.

이건 엄청 중요한 이야기 아닌가?

우리 반 아이들을 상대로는 경계할 마음이 전혀 없나 보다.

짐을 푼 황지호가 눈을 반짝이며 사월세음을 보자, 그제야 시선을 느꼈는지 허둥지둥 말을 돌렸다.

“아, 저기 그러니까…… 수, 숙모는 잘 계세요? ……어?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괜찮으세요?”

잠시 가만히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던 사월세음이 말을 이었다.

“그치만 저번에 전화했을 때 세민 삼촌이랑 결혼할 거니까, 숙모라고 불러도 좋다고 하셨…… 네…….”

사월세민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사람이 있나 보다.

사월세음하고도 친할 정도라면 가족 단위로도 엮였다는 건데.

‘설마 그때 그 경비원인가……?’

환몽 경매 당시, 변순회의 뒤통수를 치고 사월세민을 불러 사월세음을 구하고자 했던 그녀.

직접 포박을 풀고 변순회를 발로 까던 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딩동.

그때,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이레나] 이쪽은 짐 다 풀었어! 남자 쪽은 텐트라면서? 놀러 가도 돼?

디바이스 주소록에는 아직 ‘이레나’로 등록된 권레나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우리 반에서 온 여학생은 권레나와 김유리 둘뿐이라 멀리 떨어진 남학생, 여학생 숙소 사이에 위치한 2인 1실 교직원용 숙소를 사용하기로 했다.

[나] 그래, 놀러 와.

[이레나] 아, 유리는 지금 세수 중인데 끝나는 대로 갈게!

김유리가 배 안에서 그런 것처럼 계속 방 안에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곧 권레나의 손에 이끌려 텐트를 향해 걸어오는 김유리가 눈에 들어왔다.

*    *    *

반 아이들이 다 모여 은광고 측에서 제공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본격적인 청소년 수련회 일정이 시작되었다.

첫 일정은 팀워크 훈련.

말이 팀워크 훈련이지 내용물은 그냥 육체훈련체조, 군대에서 하는 그 PT체조였다.

준비운동을 마치자 본색이 드러났다.

“팔 벌려 뛰기 50회! 마지막 구령은 붙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구령 나오면 연대 책임으로 기합받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활기차게 답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일반 고등학생과 같은 훈련 코스로 짰다는 팀워크 훈련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학교에서 받던 훈련에 비하면 소풍 온 기분이었다.

‘그랬으니까 선배들도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웃고 넘어가 준 거겠지…….’

하지만 이런 티를 내면 교관들이 발끈할 게 눈에 보여 다들 쉬쉬하며 맞춰 주는 분위기였다.

마지막 구령은 아무도 외치지 않았지만, 전에 외쳤던 구령의 목소리가 작았다고 트집이 잡혀 단체로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몇 차례 반복한 후.

우리 반 최약체인 권레나조차 숨이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팀워크 훈련 일정을 마쳤다.

“음, 생각보다 할 만하다!”

“그러게요! 수련회는 원래 이렇나요? 인터넷에 후기 뜬 걸 보면 상당히 고되고 힘들다고 들었는데요.”

“수련회 지도사 중에 플레이어가 한 명밖에 없으니까 플레이어의 체력이 체감이 안 가니 그런 걸걸.”

“아하…….”

기합을 준다고는 하지만 플레이어인 우리들의 체력으로 따지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수련회에 혁혁한 전설을 남긴 0반 선배 놈들도 기합을 준 직후에는 사고를 치지 않고 좀 봐주다가 선을 넘는다 싶으면 그때 난리를 친 거겠지.

“중학생 때는 어땠어요? 가 보신 분?”

사월세음의 말에 손을 드는 건 김유리뿐이었다.

권레나나 맹효돈은 돈이 드는 외부활동에는 일체 참가하지 못했고, 사월세음과 송대석은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패스했다.

나는 중학생 시절 방학마다 체스 연습에 매진했었고, 황지호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어, 진짜? 나뿐이야?”

“중학생 때 가 봤어? 어땠어?”

“어땠더라…… 나는 그때 경기도에 있는 수련원으로 갔었는데, 좀 규모가 큰 곳으로 가서 다른 학교랑 같이 진행했었어. 거기는 남중이었는데…….”

여중을 나온 김유리.

타교생들이 수련회 마지막 날에 안다인을 두고 싸워 단체로 기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쉬는 시간이 끝났다.

다음은 야외 모험 활동 시설 체험.

한 뼘 정도 되는 폭의 흔들다리를 건너고, 미로 같은 터널을 통과하고, 인공 암벽을 등반하고…….

우리 반에서 모든 코스를 가장 빨리 통과한 건 ‘하하하하!’하고 처웃으며 질주한 황지호.

그 뒤를 잇는 건 맹효돈이었다.

“……날아서 가면 안 되겠죠?”

“손이 다치는 건 싫은데.”

다른 코스는 그럭저럭 잘 통과했지만, 사월세음과 권레나는 암벽 등반 코스에서 꽤 고생했다.

“빨리 와! 암벽 다 올라오면 외줄 활강이다! 이건 완전 개꿀이고 재밌는데!”

외줄 활강이 재밌었는지 송대석은 애처럼 들떠서 다시 암벽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활강이라는 말에 흥미를 얻었는지 두 사람도 힘을 내 다시 클라이밍 홀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낙오자 없이 모든 오후 일정을 마친 후, 미묘한 맛의 저녁을 먹었다.

“이 수련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맛대가리 없는 저녁밥이군.”

“학교 급식에 비하면 진짜 별로지만 배고파서 그런지 맛있다…….”

오늘 저녁밥은 잡곡밥, 지나치게 묽은 카레와, 눅눅한 생선가스, 흐물흐물한 우엉조림과 신김치였다.

미식가인 황지호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았고 다른 애들은 열심히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여 잘 먹었다.

“다음 해부터는 외주 업체를 내가 직접 선정하겠다.”

거의 밥을 남긴 황지호가 분개해 그렇게 선언했다.

이사장의 정체를 모르는 입장에서 들으면 상당히 이상한 말이었지만, ‘돌아이가 또 돌아이했네.’라고 하며 반 아이들은 넘어갔다.

저녁밥을 먹은 후에는 레크리에이션이 열렸다.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말에 따라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쳤지만, 점점 반복되는 패턴에 질려 가고 있을 때, 강사가 외쳤다.

“자, 지금부터 반별로 점수 드리겠습니다.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은 반에는 마지막 날 점호 없습니다!”

와아아…….

여전히 맥 빠진 목소리가 나왔다.

“소리 작다, 함성 발사!”

와아악!

어쩐지 화가 나 있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쨌든 소리는 커졌기 때문에 강사는 만족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가장 열렬한 함성을 낸 1학년 2반에게 500점!”

오오오!

1학년 2반 쪽을 보니 단순한 사고 회로의 내 빵셔틀, 방윤섭이 신나서 소리지르는 게 보였다.

“와, 정말 저거 1등 하면 점호 없어요? 밤새워서 놀 수 있는 거예요?”

“저거 거짓말일걸?”

사월세음이 순진하게 묻자 김유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유일하게 청소년 수련회를 경험한 김유리는 결국 온갖 핑계를 대 점호를 하고 애들을 재울 거란 걸 아나 보다.

“레크리에이션 강사에게 수련회와 은광고 측에서 정한 일정을 수정할 권한이 있을 리가 없지. 소음으로 항의하는 주민이 있거나, 밤에 학생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질 수도 없고. 구라인 게 뻔해.”

송대석도 시니컬하게 말하긴 했지만, 아까 전까지만 해도 강사의 말에 따라 박수를 요란하게 치던 놈이 저러니 설득력이 떨어졌다.

“너무 하네요! 전 이제 열심히 안 할 거예요!”

충격을 받은 사월세음과 다른 아이들은 의무적으로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뒤에서 지켜보던 수련회 지도사가 기합을 주려 했지만, 다른 지도사가 말리자 뒤로 물러났다.

귀 밝은 황지호가 말하길.

“0반에게 기합을 준 후 일어났던 괴현상을 언급하자 얌전해졌어.”

“괴현상?”

“뭐 지도사 숙소를 덮친 도깨비불이랑, 화장실 창문 밖에 설치된 소복 차림의 마네킹이랑…….”

역대 0반이 남긴 업적에 대해 듣다 보니 밤 일정도 끝났다.

남은 건 점호뿐.

점호를 담당한 건 각 반의 반장과 부반장, 총 6명.

마침 학급 임원들의 성비가 적절히 나뉘어서 인원 점검과 보고 담당을 맡게 되었다.

1반, 2반 남학생의 점호를 맡은 유상훈과 주수혁과 잡담을 하다 돌아가 보니, 애들은 이미 대부분 잠들어 있었다.

“야, 난 나갔다 온다.”

“동행하지.”

깨어 있던 황지호와 함께 더미를 만들어 놓고 은신 아이템을 써서 숙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앞으로 터질 일을 대비해 지형을 직접 몸으로 익혀 두고, 여러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한숨도 잠들지 못하고 지도를 확인하며 석모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금방 해가 뜨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호족을 이 섬에 소집하면 일은 간단하게 끝날 거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황지호가 불쑥 말을 걸었다.

“그런 짓을 하면 이유를 밝히려 들겠지. 적호가 잠입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더라도 토족과 협회 일은 드러날 거야.”

“안다.”

날이 샐 녘.

새벽 여명 사이에서 황지호가 나를 곧게 보며 말했다.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걸 기억해 두라고.”

황지호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짐작은 갔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렇게 수련회 첫째 날이 끝났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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