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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77화 (177/925)

38. 청소년 수련회 (7)

청소년 수련회에 가기 전.

황명호 대저택.

“생각이 있는 것 같군. 말해 봐. 그 ‘알고 있던 것’과 관련이 있나?”

생각에 잠겨 지도와 청소년 수련회 일정표를 보다 고개를 드니 황지호를 비롯한 호랑이들의 시선이 이쪽에 몰려 있었다.

적호의 보고가 끝난 후에 꼼짝도 안 하고 화면만 바라보고 있으니 신경 쓰였나 보다.

“가장 먼저 없애 두고 싶은 변수가 있어.”

“변수?”

“청소년 수련회 정보를 ‘그자’에게 넘긴 자.”

그 말을 들은 황지호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

“내가 ‘그자’라면 그렇게 행동할 거야. 제물로 삼을 학생들, 방해가 될 교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습격할 타이밍을 잡기 위해 청소년 수련회의 스케줄과 배정된 숙소의 위치를 파악하겠지.”

나는 적호 쪽을 보며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1반 담임이신 김신록 선생님을 노리기 위해서 0반, 1반, 2반의 정보를 확인하고 싶을 거야.”

1학년 청소년 수련회는 다섯으로 나뉜다.

장소도, 날짜도 전부 제각각이다.

한 곳을 노리고 나면, 다른 청소년 수련회는 취소되거나 일정을 바꾸거나 심하게 경계할 테니 한 곳만을 노릴 것이다.

그리고 표적이 김신록이라고 밝혀졌으니 흑막이 노리는 게 0반, 1반, 2반의 수련회임이 분명했다.

“청소년 수련회에 참가하는 날짜 정도는 학교 홈페이지에서도 공개하지만, 정확한 스케줄은 나와 있지 않아. 언제 밥을 먹고, 언제 점호를 하는지는 알 수 없어. 숙소의 위치나 배정 상황도 그렇지. 학생들이 시간별 예정표를 받는 건 입소식 때다. 즉…….”

황지호가 교직원 명단을 홀로그램으로 띄우며 말했다.

“……담임이나 부담임 그리고 결재를 한 교무 부장과 교감, 교장. 이들 중에 배신자가 있나?”

이름과 얼굴을 전부 훑어본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분들은 아닐 거야.”

저 홀로그램 위에 나와 있는 이들.

0반, 1반, 2반 담임과 부담임, 그리고 황지호가 언급한 직급의 교사는 게임 속에서 전원 사망하니까.

“내 생각에는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 정보를 흘린 자가 있었을 것 같아.”

“학교 밖……? 아.”

황지호가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편득 일당이 은광고에서 오랜 기간 개판을 쳐 놨으니 배신자가 학교 내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외부인 중에도 청소년 수련회에 관해 파악하고 있는 자가 있습니까?”

“네.”

적호의 물음에 답한 내가 띄우고 있던 홀로그램 창을 크게 확대해 테이블 위에 전개했다.

“청소년 수련회의 지도사들이요.”

“어째서, 이자들이……!”

“조사해 보면 나오겠지만, 이들은 오랜 기간 부패한 교사들의 리베이트로 이득을 봐 왔어요. ‘그자’는 그런 교사들과 연줄이 있었으니까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죠. 지도사들은 수입도 떨어진 참이니, 돈만 주면 얼마든지 정보를 넘길 거예요. 김신록 선생님의 암살이나 학생들의 제물 선정에 관여할지는 미지수지만요.”

얼마나 돈을 받고, 얼만큼 계획에 참가할지 알 수 없는 게 골치 아프다.

나는 황지호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들은 어떻게 행동할지 알기 어려워. 학생, 교사, 주민들 사이에 섞여서 방심시키다 인질을 잡아 넘길지도 몰라. 사전에 이들을 배제하면 ‘그자’가 계획을 바꿀 가능성도 있으니 손을 대기도 어렵고. 일이 터지면 우선 지도사들을 전원 제압해 줘.”

“간단한 일이군. 여기에 배정된 지도사 중에 플레이어는 한 명밖에 없어.”

황지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다음은?”

“그럼 여학생 숙소 쪽으로 가 줘. 1반은 무사하겠지만, 2반은 안 그럴 거야. 이능독이 퍼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 점도 문제없다.”

황지호가 한지에 포장된 환약을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녹족에게서 이능독의 해독제, 치험약 버전을 받았으니까.”

황지호는 뒤에서 그런 걸 준비하고 있었나……!

진짜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나 보다.

“인간도 쓸 수 있어? 대량 생산은 가능해?”

“시험 삼아 먹어 봤더니 부작용이 있더군. 진족이 아니면 사용하는 건 어렵다.”

“어떤 부작용이 있는데?”

“독을 몰아내는 대신 장기에 손상이 생겨. 진족급의 자가치유력이 없으면 이능독에 중독되진 않아도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쓰러질지도 모르겠군.”

설명만 들으면 해독제가 아니라 독약 같은데.

해독제도 지나치면 독이 되긴 하지만.

“너는 어때? 그거 먹고도 싸울 수 있어?”

“이 몸을 뭘로 보는 거냐. 이 정도는 아무 문제 없다.”

그런 대화를 나눈 게 며칠 전의 일이었다.

황지호는 그렇게 말했는데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몰라도 예정 시각보다 2반 숙소에 가는 게 늦었다.

방금 맵에서 점 하나가 번개처럼 2반 숙소로 이동하는 걸 보니, 황지호가 뒤늦게 합류한 것 같았다.

‘송대석이나 2반 애들은 무사할까…….’

초조했지만 눈앞에서 사월세음이 온 힘을 다해 광림을 전개 중이라 티를 낼 수 없었다.

사월세음은 목소리를 전부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는지 ‘왕이 가라사대’의 사용을 멈췄다.

산개하는 따뜻한 이능파 입자 사이로 그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대피 완료했어요!”

“잘했어.”

“네……! 고마워요!”

뭐가 고마운 건지 배시시 웃던 사월세음은 몹시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사월세음을 팔을 뻗어 지지해 주니 힘없이 말했다.

“미안해요…… 몸에 힘이 풀려서…….”

“괜찮아. 쉬고 있어.”

처음 발동하는 광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사월세음을 업고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사용하는 캐릭터는 지금 잠든 사월세음.

그의 비행술을 이용해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침착하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어!’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려고 해도 머릿속은 다음 목적지와 처음으로 광림이 발동했을 김유리 생각으로 가득했다.

*    *    *

콰아아아아!

김유리를 중심으로 이능파의 폭풍이 몰아쳤다.

상위 존재들이 김유리의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여 왔다.

[천후(天后)의 말씀을 전합니다. 당장 광림을 개방해 주십시오. 존체가 상합니다.]

[우리는 ‘너’를 해칠 생각은 없어. 그 힘이 폭주하여 강산을 뒤엎더라도 너만은 우리의 권능으로 지켜 주마.]

[‘고귀한 녹색의 귀부인’께서 당신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흥, 나는 별로 걱정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지만, 나와 인연을 맺은 이가 제힘에 휩쓸리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

머나먼 곳에서 들려오는 신들의 목소리에 김유리는 더욱 겁에 질렸다.

그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김유리는’ 지켜 주겠다고 속삭였다.

광림을 개방하면 김유리는 무사하겠지만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호의를 베풀어 김유리와 가까운 이는 구해 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알고 지내더라도 가깝지 않았던 이들은?

면식도 없었던 이들은?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구초 꼴이 날지도 몰랐다.

“어떡해, 유리한테서 이능파가, 으윽……!”

“야, 넌 뒤로 물러나!”

권레나와 맹효돈이 김유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맹효돈은 김유리를 짓누른 이능압을 견디고 한 걸음씩 걸어오고 있었지만, 권레나는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흐릿한 시야와 격통 속에서 그 장면을 본 김유리의 마음이 흔들렸다.

콰직, 콰드득!

고밀도의 이능파가 응집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저 발산될 뿐이었던 이능파가 분명한 형태를 갖게 되었다.

광림이 발동되려는 징조였다.

‘안 돼, 안 돼……!’

김유리가 필사적으로 이능파를 제어하자 이능파의 응집은 멈췄다.

그러나 여전히 몸을 지배하는 통증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때.

“반장!”

칼날같은 이능파의 폭풍을 헤치고 온 맹효돈이 어느샌가 김유리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김유리의 어깨를 움켜쥔 맹효돈이 말했다.

“부반장이 전하랬어. 무슨 일이 있으면, 전에 부반장이 너한테 한 말을 떠올리라고!”

김유리는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에 부반장 조의신이 해 준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괜찮아.

—네 이능이 폭주해도 상관없어. 마음대로 광림을 써도 괜찮다는 뜻이었어.

—괜찮을 거야. 함근형 선생님이나 우리 반 아이들이 쉽게 당할 것 같아?

김유리는 최근 이상하게 구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김유리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부모님.

광림 봉인술식이 사라진 걸 알고 배려해 주던 함근형 선생님.

싸인펜으로 봉인술식 그림을 그려 주던 민그린.

김유리 몫의 간식을 더 챙겨 주던 반 아이들.

그리고 이런 위협 속에서도 자신에게 다가와 준 맹효돈과 권레나.

—괜찮으니까 주변 걱정은 그만해. 네 광림이 폭주하는 것보다 네가 다치는 게 힘든 사람들이 많아.

조의신은 그렇게 말하며 수상하게 웃었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참 수상해 보이는데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그 얼굴을 떠올린 직후, 김유리는 광림을 해방했다.

파아아아아앗!

쓰러지는 김유리의 몸을 맹효돈이 지탱한 순간,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온 이능파가 목련꽃의 꽃잎 모양으로 바뀌었다.

수만, 수억 개의 하얀 이능파 꽃잎이 바다로 흘러갔다.

막 육지에 당도해 민가를 향해 진군하던 에너미들도 그 환상적인 광경에 일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능파 목련 꽃잎들이 바닷물 위에 잠기었을 때였다.

쿠구구구구…….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퍼지고 강풍이 쏟아졌다.

맹효돈과 권레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바람의 저편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권레나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들의 시선 끝에 바다가 움직이고 있었다.

파도나 물결, 겨우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바다가 섬을 삼키기 위해 그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벽 같기도, 신족의 피를 이었다는 신화 속의 거인 같기도 했다.

끼이이이……!

그오오오오!

모습을 바꾼 바다는 수백의 에너미를 물거품을 가라앉히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수장해 버렸다.

상륙하지 못한 에너미들은 살기 위해 해변을 향해 뛰어들기 시작했지만, 바다는 해변은 물론, 섬도 가라앉힐 기세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혹시, 유리의 광림이야……? 이거, 마치, 그 서구초 사건 자료로 봤던 광림 같은데…….”

권레나의 말에 넋을 잃고 있던 맹효돈이 정신을 차렸다.

맹효돈도 시험 범위에 포함되어 있었던 서구초 사건은 알고 있었다.

그 해일이 어떻게 사람들과 건물을 삼켰는지 떠오르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가자! 최대한 높은 곳으로 도망치자!”

“……응!”

맹효돈이 기절한 김유리를 안아 들고 달리려 할 때였다.

“저기 누가 있어!”

권레나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녀의 말대로 텅 비어 있던 해안가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허우적거리며 달려드는 에너미와 거대한 해일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누군가가 조용히 아이템 카드를 꺼내 실체화했다.

그 아이템의 실루엣을 본 권레나가 경악했다.

“저건, 설마…….”

그 누군가가 손에 든 것은 바이올린과 활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활을 들어 현 위를 긋자 웅장한 음색과 이능파가 허공을 타고 널리 퍼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음색을 들은 권레나는 확신에 차 외쳤다.

“권제인 선배님!”

수면을 노래하게 만드는 푸른 바이올리니스트 권제인이 바다와 에너미의 대군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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