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81화 (181/925)

38. 청소년 수련회 (11)

문새론의 여름 방학 계획은 취재 계획으로 가득했다.

그 시작이 청소년 수련회였다.

‘소문이 안 좋은 곳이라 신경이 쓰였어.’

문새론은 청소년 수련회를 앞두고 은광고 커뮤니티 종합 게시판에 올라온 수련회 후기 글을 전부 섭렵했다.

모든 글을 읽은 후, 그녀는 의문을 하나 품었다.

‘왜 문제가 있는 곳과 계속 계약을 하는 거지? 선배들이 컴플레인도 많이 넣었다는데.’

학교와 청소년 지도사의 사이는 돈을 주고 고용한 ‘갑’과 돈을 받고 학생을 맡는 ‘을’이었고, 당연히 갑은 학교다.

그런데도 계속 이 수련원과 계약을 유지하는 건 이상했다.

‘이 청소년 수련원과 계약한 건 학기 초, 최편득이 있었을 때야. 그 희대의 쓰레기 최편득이가 남긴 빚이구나!’

이제 최편득의 지원 사격은 없다.

그러니 열약한 시설과 자격 미달인 지도사들을 보유한 이 청소년 수련원은 내년에는 은광고와 계약을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문새론은 뭔가를 캐낸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출발 전에 담임인 노영미에게 점호가 끝난 후에도 숙소 밖에서 취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뒀다.

‘청소년 지도사 사무실을 살펴보고 싶은데 그건 어렵겠지? 그 대신 할 수 있는 걸 하자!’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취재는 한정되어 있었지만 합법적이며 단순한 취재 방법이 있었다.

바로 쓰레기통 뒤지기.

더럽고 힘들고 지겹지만, 무수한 특종을 탄생시켜 온 역사 깊은 취재 기술이기도 했다.

‘살짝 들여다보니 구형 파쇄기를 쓰고 있었어. 소각 시설도 없는 것 같고. 이 정도면 할 만해!’

첫째 날 밤에 이어 둘째 날 밤도 그녀는 으슥한 곳으로 쓰레기통을 들고 가 시간을 보냈다.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한창 내용물을 뒤지다 보니 잘게 갈린 종잇조각 더미가 나왔다.

‘대애박, 이거네!’

문새론은 복구계열 이능을 가진 데다 스킬 없이도 파쇄 문서를 짜 맞추는 기자다운 특기를 갖추고 있었다.

‘파쇄 문서의 잔해가 다 모이지 않으면 이능은 못 쓰니까 일단 손으로 맞추면서 남은 조각도 찾자!’

희희낙락한 얼굴로 파쇄된 문서를 손수 복구하던 문새론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갑자기 어두워지자 달에 그림자라도 꼈나 해서 문새론이 뒤를 돌아봤다.

“문새론.”

“억, 근형 쌤!”

밤에 보니 평소보다 더 무섭고 흉흉한 얼굴을 하고 계시네욧!

이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문새론은 눈치껏 입에 브레이크를 걸고 만약을 대비한 변명거리를 줄줄 늘어놨다.

당연히 노영미의 허락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취재 계획을 다른 신문부 학생에게 말한 적이 있나.”

“아니요? 우리 영미 님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어요.”

“그렇군…….”

문새론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반에 신문부원이 둘이나 있어서 물어보신 건가?’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게임 속 전개와 문새론의 성격을 고려해 그녀의 동선을 파악한 조의신이 사전에 함근형에게 부탁을 한 거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가자.”

“네? 어디 가세요? 음, 저 취재 해야 할 게 있는데요…….”

함근형이 좋은 교사라는 걸 알고 있어도 얼굴이 워낙 무섭다 보니 적극적으로 개길 수가 없었다.

문새론은 말을 삼켰다.

“다른 걸 취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기를 꺼내고 내 뒤를 따라와라.”

함근형의 말과 행동에 의문을 품었지만, 그의 인격과 성품을 신뢰한 문새론은 무기 카드를 쥐고 함근형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플레이어의 등대였다.

시설 자체는 일반적인 등대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플레이어 협회 마크와 에너미 감지용 레이더 안테나가 건물 외관에 장착된 게 눈에 띄었다.

함근형을 따라 등대 안으로 들어가며 문새론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올, 플레이어의 등대는 처음 봐요! ……그런데 엄청 낙후되어 있네요. 정부에서 예산도 줄이고 이계부에서 지원금도 많이 빼먹었다는데 그거 영향인가?”

문새론이 새로운 기삿감이 나왔다고 들떠 있을 때, 세 사람과 마주쳤다.

하나는 모르는 중년 남성이었지만, 방금 박스를 부수고 등장한 둘은 문새론도 잘 아는 이들이었다.

“헐, 권제인 선배님하고 그레이트 탁이시잖아요! 안녕하세요!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문새론의 인사를 받은 두 명예 교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거친 바다를 노려보았다.

문새론은 그들을 따라 새카만 밤바다를 한 번 흘끗 보다 등대 내부에 가득한 구형 기기를 구경했다.

곧 그녀는 구형 레이더에 찍힌 붉은 오브젝트들을 보고 경악했다.

“……이거 다 에너미 아니에요? 고장난 건가요?”

어른들의 표정을 보니 고장은 아닌 듯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문새론을 두고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저는 이대로 등대 위로 올라가 요격하고 엄호하겠습니다. 섬 지킴이 님에게 저희 제자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창천명궁 씨!”

섬 지킴이와 탁거산과 권제인이 등대 밖으로 사라진 후.

문새론은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고쳐 잡으며 함근형을 따라 등대를 올랐다.

“……저도 나가서 싸우는 게 좋을까요?”

“명예 교사 두 분이 계시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대신 만약을 대비해 네 몸을 지킬 준비는 해 둬라.”

함근형이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든든해졌지만, 문새론은 몇 번이나 간담이 서늘해졌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에너미들.

그 에너미의 대군을 압도하며 섬을 덮치는 바다의 광기.

어지간한 플레이어라도 이런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옆에서 묵묵하게 활에 시위를 얹어 연사하는 함근형을 보니 동요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문새론의 마음을 강하게 지지하는 건 하나였다.

‘이번 취재는 일생 첫 특종이 될 거야!’

통신이 차단된 섬에서 지금 이 상황을 가장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기자는 문새론이었다.

그녀는 소지하고 있는 모든 기기를 동원해 모든 현장과 상황을 녹화하고 녹음하며 기록했다.

설령 그녀가 죽더라도 그녀의 행동으로 이 미증유의 사태가 전해지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지금, 결정적인 명장면이 그녀의 디바이스에 새겨지고 있었다.

그녀는 벅찬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혼잣말을 했다.

“이걸 기록해 둘 수 있다니……!”

거센 해일의 파도 소리 사이에서 바이올린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권제인과 권레나, 세계 제일의 바이올리니스트와 한국 최고의 명문고 1학년 플레이어 두 사람이 멀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협연을 이어갔다.

이윽고 두 이능 바이올린의 합주로 바다가 잠잠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파도도 물결도 사라진 고요한 밤바다를 두고 두 사람이 연주를 멈췄다.

*    *    *

콰르르—!

적호가 부른 붉은 번개가 재차 전장에 작렬했다.

그러나 검게 그을린 땅과 연기 저편으로 보이는 실루엣은 여전히 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 이쪽의 통신도 끊긴 데다 ‘눈’도 먹히지 않으니 저쪽도 여기 상황을 모를 텐데. 전설계 호족과 용왕신의 총아를 상대해야 할 줄은 몰랐다고.”

번민의 곰은 돌로 된 선장(禅杖)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지 않는 번민의 곰 탓에 전선은 정체된 상태였다.

번민의 곰은 적호와 김신록을 번갈아 보며 한숨지었다.

“내가 이번에 맡은 건 웅녀의 아들의 암살이랑 통신을 방해하고 위성을 속이는 것뿐이었는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건지.”

내 아들을 죽이는 걸 통신 어쩌고 나부랭이와 같은 선상에 두다니.

그 말을 들은 적호는 수천 년 동안 봉인해 둔 험한 말버릇이 나올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적뢰를 퍼붓는 사이에 빈틈이 생겼다고 멋대로 판단하여 달려든 웅족의 목덜미를 잡아 땅에 내리꽂고 목젖을 밟았다.

“크아악!”

적호의 발끝에서 뿜어져 나온 번개에 감전된 웅족이 추하게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번민의 곰은 별 반응이 없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인질로 잡아도 번민의 곰은 꿈쩍도 않겠군.’

쓸모가 없는 인질은 짐이다.

그렇게 판단한 적호는 목젖에서 발을 떼고 상대의 마루뼈를 걷어차 기절시켰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한 웅족을 보고도 번민의 곰은 중얼거렸다.

“아아, 그놈은 제 수하도 여기에 내버려 두고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제물 하나 제때 데려오지 못하고.”

이 웅족은 번민의 곰의 수하가 아닌 건가?

적호가 그렇게 판단하는 사이, 번민의 곰의 수하임이 확실한 남녀 둘은 용제건을 상대하고 있었다.

얇은 양날칼을 든 여성과 주술을 사용하는 남성.

학생들을 인질로 잡았다던 그들은 용제건의 공간술에 압도되어 권속을 부릴 틈도 없는 듯했다.

그나마 그의 옆에 우뚝 서 있는 김신록을 노려 정신을 분산시키는 게 고작이었다.

“까다롭군. 주인을 잃은 권속이 미쳐 날뛸 걸 생각하면 바로 죽일 수도 없어. 살려서 제압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네.”

용제건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산산이 부서지는 옥빛 공간 너머로 보이는 표정에서는 여유가 넘쳤다.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번민의 곰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지 않고 적호와 용제건이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이니 점점 서 있는 웅족의 수가 줄어들었다.

적호가 번민의 곰에게 다시 적뢰를 퍼부으려 할 때였다.

“……더 귀찮은 것도 오고 있는 것 같은데. 음, 버티다가 그 흉내꾼이 오면 떠넘기려고 했는데 안 될 것 같아.”

번민의 곰이 허공을 향해 선장(禅杖)을 크게 휘저었다.

그러자 번민의 곰과 수하 둘을 제외한 모든 웅족의 움직임이 단번에 멈추었다.

선장의 끝, 봉과 수평하게 고정된 날에서 구정물 색을 한 이능파가 스멀스멀 뿜어져 나왔다.

“적호 씨! 방어해!”

무거워진 공기 속에서 용제건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말한 직후, 용제건은 수십 개의 공간을 자신과 김신록의 주변에 소환해 냈다.

적호도 적연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김신록 앞에 섰을 때.

“너희들이 범에게 붙잡히는 굴욕, 그 괴로움을 감당할 수는 없겠지. 그 번민을 끝내 주마.”

그렇게 말하며 번민의 곰이 선장을 내리쳤다.

쾅!

선장의 끝이 바닥을 찍은 순간 웅족들이 땅 위로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쓰러진 웅족의 신체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웅족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번민의 곰을 바라봤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웅족의 신체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퍼어억! 콰직! 쾅!

신체를 구성하는 뼈와 살에 스며든 진족의 진기와 고밀도의 이능파가 공기에 닿으며 일으킨 거대한 폭발이 지축을 흔들었다.

*    *    *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이능압이 주변을 내리누르다 사라졌다.

갑자기 멈춰서 결계술을 펼치던 황지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피 냄새다. 진족이거나 인간의 것이군.”

피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놈은 코도 좋은가 보다.

이능압이 사라졌다고 판단했는지 황지호가 결계술을 거두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이동할 때, 시스템음이 들렸다.

〈웅족의 간섭이 종료되었습니다. 통신이 복구됩니다.〉

이 세계에 온 첫날.

백호군이 등장하며 튜토리얼이 끝났을 때 들었던 그 메시지였다.

‘통신 장애를 일으킨 웅족의 영향력이 사라졌어. 행동 불능이 되었거나 퇴각한 거야……!’

그리고 통신이 복구되고 위성의 이계 경보 수신이 가능해졌다면 앞으로 문제 될 게 없었다.

플레이어 협회에서는 통신이 복구된 시점에서 개입할 테니, 곧 지원도 올 것이다.

“통신이 복구됐어.”

“적호에게 연락해 보겠다.”

곧 황지호가 답 메시지를 받은 듯 한결 풀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는 있는 것 같다만…… 전원 무사하다더군.”

그 말에 긴장이 풀렸다.

가장 불안했던 변수도 무사히 풀렸던 것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달리면서 디바이스를 가동해 보니 갑자기 부재중 알림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 시각에 연락할 사람은 없을 텐데.

연락할 만한 사람들은 전원 이 작전을 알고 있거나, 몰랐지만 나와 같이 통신이 막힌 지역에 있어서 메시지를 보낼 수 없는 이들뿐이었다.

의아해하며 홀로그램을 확인해 봤다.

‘……민그린?’

디바이스 수신 이력은 민그린의 이름으로 가득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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