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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12화 (212/925)

42. 소원을 이룬 대가 (4)

은광고등학교 은휘관.

남궁 그룹에서 부른 용역 업체가 은광구에서 학생을 상대로 협잡질을 한 것으로 확인된 직후.

황명호 이사장의 모습으로 기계적으로 업무를 보던 황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호가 새하얀 대리석 바닥을 밟고 이사장실 중앙에 서서 이능파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때.

똑똑.

“이사장님, 들어가겠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이사장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덜컥하고 황금의 호랑이가 양각으로 조각된 문이 열렸다.

가면 같은 표정으로 긴장을 숨긴 비서의 손에는 무기 아이템 카드가 숨겨져 있었다.

“침입자는 없다. 방금 귀국해서 이쪽을 들른 거다.”

갑작스러운 이능파의 흐름과 황호의 움직임에 반응했던 비서가 긴장을 풀었다.

한반도 밖에 있을 황호가 무리하여 이능파를 움직일 정도라면 문제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던 탓이다.

무기 아이템 카드를 품에 넣고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연락 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급히 결정한 귀국이다. 괘념치 마라.”

황호는 말을 마치고 힘을 개방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고 힘의 격류가 소용돌이쳤다.

‘이쪽으로 본신을 옮기셨어……! 해외로 나갔던 ‘황지호’는 아직 은광구 밖에 계신 건가.’

비서가 그렇게 판단할 때, 황호가 황명호의 굵고 낮은 음성으로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몸은 신역의 수호자. 내가 마음먹는 한 은광구 안에 비밀은 없다.”

그 말이 끝나자 황호를 중심으로 황금의 원과 압력이 퍼져 나갔다.

파아아아……!

바닥 밑으로 퍼져 나간 황금의 입자가 보이지 않게 은광구 전체를 감쌌다.

신역의 수호자 황호.

그가 본신으로 은광구에 있을 때라면 권능을 통해 은광구 전역을 지켜보는 게 가능했다.

황호가 수호자로서의 힘을 개방하는 광경을 오랜만에 본 비서가 감탄하며 이를 주시했다.

“……흐음.”

황호가 미간을 좁히다가 비서를 바라봤다.

눈치 빠른 비서는 홀로그램을 켜 지시 사항을 정리할 준비를 했다.

“하명하십시오.”

황호가 비서에게 몇 개의 지시를 내리고 비서가 물러난 후.

황명호의 모습을 한 분신은 다시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    *    *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 경찰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수십 년간 나랏돈을 날로 먹은 광일파출소의 경찰들은 부패했을 뿐이지 무능하거나 멍청하진 않았다.

오히려 긴 기간 민원과 감사를 버티고 꿀벌통을 지키며 살아남은 베테랑들은 운도 좋았고 이런 긴급 상황에 남다른 임기응변력을 보였다.

웬 미친 소녀가 파출소로 쳐들어와 깽판을 치는 일은 처음 겪는 일이긴 했지만, 그들은 조용히 대응하기 시작했다.

“……셋, 어디서 눈깔이랑 손을 굴려!”

까앙!

소녀가 야구 배트로 무언가를 후려쳐 날렸다.

인근 지구대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이머전시 콜 버튼을 누르려던 경찰의 손에 알루미늄 덩어리가 꽂혔다.

퍼억!

“으악! 끄으으…….”

데구르르 하고 바닥에 굴러 떨어진 알루미늄 덩어리의 정체는 알루미늄 음료수 캔을 뭉친 것이었다.

캔을 저 정도로 작게 뭉친 것도 놀랄 일이었지만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성인 남성이 주저앉을 정도의 데미지를 입힌 건 더 경악할 일이었다.

‘플레이어다……!’

‘보통 실력이 아니야!’

퍽! 퍼억! 콰앙!

소녀의 실력을 짐작하고 완전히 멈춰 선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겁도 없이 디바이스에 손을 뻗은 이들이 추가로 알루미늄 캔 세례를 받았다.

까앙! 깡!

“악!”

“크억!”

경찰 셋이 쓰러져 바닥을 구르는 사이, 패기를 띈 소녀가 이머전시 콜 버튼 주변에 서 있던 남자를 걷어차 먼 곳으로 보내 버렸다.

소녀는 언뜻 보기엔 생각 없이 대담무쌍하게 구는 듯했지만, 용의주도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머전시 콜 버튼과 디바이스를 철저하게 경계하는 게 그러했다.

‘설마 다 알고 온 건가!’

‘……파출소내 기록기기는 전부 꺼져 있는데!’

보통 파출소에는 내부를 촬영하는 기록기기가 수십 개 설치되어 있고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한다.

그러나 이 광일파출소는 기록기기는 있으나, 파출소의 내부를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지는 않았다.

평소 광일파출소에서는 ‘정상적으로 근무하는’ 가짜 영상을 기록기기에 남기고, 민원인이 접근하면 그때 기록기기를 실시간 모드로 전환했다.

이 미치광이는 어떻게 광일파출소에 쳐들어온 건지 파출소 외부 담장 주변으로 사람이 접근할 때 울리는 알람을 무시하고 왔다.

즉, 이 소녀의 난동은 단 한 컷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상태였다.

“어제 내 구역에서 삥 뜯은 새끼만 내놓으라고 하잖아. 다 같이 뒤지고 싶어? 여기 있는 짭새들이 다 한통속인가 보네. 꼴에 의리 세우냐?”

경찰들이 눈치를 봤다.

소녀가 찾는 중인 ‘어제 내 구역에서 삥 뜯은 새끼’.

그 정체는 플레이어 자격을 가진 광일파출소장 김 경감이었다.

플레이어 출신에 경찰대를 나온 김 경감은 아직 젊은 나이로, 학생을 상대로 하는 협잡질 같은 더러운 일을 자청해 맡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다녔다.

예전에야 경찰대 졸업 후 즉시 파출소장으로 부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순찰 업무, 생활 안전, 수사과를 돌며 순환 보직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럼에도 구린 구석이 많은 김 경감이 광일파출소장으로 꽂혔다는 건 보통 뒷배가 있다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다시 센다. 남은 시간 3초였지? 셋, 둘…….”

이미 경찰 여럿의 손을 아작 낸 소녀가 말했다.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역량 차가 확연한 소녀를 제압하는 것도, 그렇다고 이 중에 가장 계급이 높은 김 경감을 내놓는 것도 이들에겐 불가능했다.

그때.

퍽!

“……어?”

총이라도 겨누어진 것처럼 양손을 올리고 비지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신참 순경이 튕겨 나왔다.

누가 뒤에서 발로 걷어찬 탓에 밸런스를 잃고 구를 뻔한 신참 순경이 돌아보니, 소녀가 오기 전까지 그와 잡담을 하던 고참이 보였다.

신참 순경이 입은 근무복 위로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저 새끼입니다, 선생님.”

신참 순경을 걷어찬 고참이 그렇게 말하자 소녀가 곧바로 카운트다운을 멈췄다.

“쟤 맞아?”

소녀가 못 박힌 야구 배트로 여전히 양손을 위에 든 어정쩡한 자세로 얼어 있는 신참 순경을 가리켰다.

그러나 서로 눈치를 볼 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맞냐고 묻잖아!”

깡!

소녀가 위협적인 자세로 야구 배트를 땅바닥에 꽂자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어제 비번은 쟤였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막내가 발랑 까져 가지고…… 죄송합니다, 선생님!’ 따위를 주절거렸다.

졸지에 제물이 된 신참 순경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지만 반박도 못 하고 벌벌 떨었다.

계급이 깡패인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신참 순경은 곧 닥칠 불합리한 폭력에 겁을 집어먹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모든 말을 들은 소녀가 야구 배트를 높게 들어 올렸다.

퍼억!

“끄악!”

소녀는 번개같이 움직여 신참 순경을 희생양으로 지목한 고참 경찰의 머리를 가격했다.

죄 없는 부하를 팔아먹고 방심한 경찰은 입에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뒤질려고 어디서 약을 팔아. 깡패 새끼들이 그 새끼한테 굽신거리는 거 다 봤는데 어리버리한 피라미로 땡 치려고? 어제 지랄한 게 누구냐고 묻잖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던 소녀의 시선 끝이 무궁화 두 개, 김 경감의 계급장을 향했다.

소녀는 확신에 차 말했다.

“아, 제일 높은 새끼가 그런 거구나.”

기계음으로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선언이 내려지자 김 경감이 품에서 이능 총 아이템 카드를 실체화했다.

김경감은 이능파를 있는 대로 끌어모아 소녀를 향해 총을 발사하려 할 때였다.

“제기랄! 아아악!”

뻑!

콰아앙!

완전히 발사되기 전에 소녀의 야구 배트가 이능 총의 총신을 휘어 놓아, 총이 폭파되었다.

이계 금속으로 만든 이능 총의 총신을 엿가락처럼 휘어 놓은 게, 소녀의 야구 배트 역시 이계 금속으로 만든 듯했다.

“악, 아아악……! ”

이능 총 폭발의 여파로 피투성이가 된 손을 움켜쥔 김 경감이 악을 썼다.

“죽여, 저, 저년을 죽이라고!”

눈치를 보던 이들이 김 경감의 말에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계급도 계급이었지만, 소녀의 구역으로 추정되는 은광한빛보육원 근처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들에 저마다 조금씩 엮여 있던 탓이었다.

이 중에서 뒷배인 남궁 그룹의 최 실장한테 접대를 안 받아 본 이들이 없었다.

지금 소녀를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할 거라는 생각에 이들은 사력을 다해 움직였다.

그러나.

퍼어억! 와장창! 깡!

“끄악!”

“으아아악!”

난투극은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소녀에게 처맞은 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살기 위해 복무규정이고 뭐고 실탄을 장전해 발사하고 테이저 건을 쏜 이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삽시에 제압되었다.

총알은 소녀가 든 야구 배트에 막히고, 소녀는 테이저 건을 정통으로 맞아도 멀쩡하게 움직여 배트를 휘둘렀다.

소녀는 특별히 자신에게 공격을 시도한 이들의 급소를 야구 배트에서 녹슨 못이 박힌 부분으로 휘둘렀다.

대다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바닥을 기며 살려 달라고 비는 몇몇 이들에게 소녀가 툭 말했다.

“앞으로 우리 구역에서 깝치면 뒤진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파출소 하나를 완파한 소녀가 피투성이가 된 야구 배트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갔다.

끼이익, 하는 마찰음이 기괴하게 들렸다.

“아저씨, 착하게 살아. 안 그럼 줘패러 올 거니까.”

난리통 속,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신참 순경이 소녀를 향해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였다.

신참 순경을 제외한 광일파출소의 모든 것을 파괴한 소녀는 유유히 밖으로 사라졌다.

*    *    *

은광구로 이동하는 에어 셔틀 안.

공항에서 확인하지 못했던 걸 물었다.

“우리만 움직이는 게 아닌 것 같다니, 무슨 소리야?”

“방금 본신을 은휘관에 있는 ‘황명호’로 지정했다. 은광구에서 신역의 수호자로서의 권능을 썼어.”

신역의 수호자로서의 권능?

별 설명도 없이 나온 말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황지호가 사용할 만한 능력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만우절에 쓴 그거인가!’

은호의 후예들을 구했던 만우절.

황지호는 황금의 입자에 둘러싸여 은광구의 모든 것을 봤다.

지금 우리는 아직 은광구에 도착하지 못했으니, 은광구에 있는 분신을 본신으로 치환해 능력을 발휘했나 보다.

“만우절에 썼던 그 능력 말하는 거야?”

“그래. 그 권능으로 신경 쓰이는 걸 발견했다.”

황지호가 디바이스를 가동해 홀로그램을 내 앞에 띄웠다.

홀로그램에는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애쉬 핑크, 체리 핑크가 적절히 어우러진 투톤 그라데이션 염색을 한 아이의 사진이 있었다.

‘이 아이는…….’

사진 속 소녀는 나도 알고 있는 아이였다.

게임 속, 2학기가 되자 한이 밖에 남지 않은 1학년 0반에 한이와 등교한 NPC였으니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임 속에서는 머리 색이 검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이름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일치했다.

화사한 머리 색과 생김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 ‘독고미로’ 넉 자가 사진 밑에 쓰여 있는 게 보였다.

황지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 독고미로라는 학생은 1학년 0반 소속의 등교 거부자 중 하나다. 그리고 방금 은광구의 파출소 하나를 습격했지. 주변에 보낸 부하의 보고를 확인해 보니 무사히 파출소 제압에 성공한 후 도주 중인 것 같군.”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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