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23화 (223/925)

43. 변하지 않는 것 (4)

황지호가 부른 의료진에 의해 목우람이 끌려간 이후.

반 아이들은 복도에 멍하니 서서 목우람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레나, 아까 그분과 아는 사이에요?”

“아니…… 처음 보는 사람이야.”

“레나를 보는 것 같았는데.”

목우람의 정체는 밝혀 두는 게 좋을까?

목우람도 2학기부터는 등교할 마음이 넘쳐 보이고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거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황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방금 기절한 목우람은 우리 반이다.”

“우리 반이었어요? 아, 인사라도 할 걸…….”

“지호랑 아는 사이야?”

“통성명은 한 사이다.”

“음……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됐는지 물어봐도 돼요?”

사월세음이 묻자 황지호가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설마 요새 이것저것 숨기는 걸 때려치운 신화계 호족이 현무나 세 기사의 맹세에 대해 밝히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중국에서 양도받았다.”

황지호는 주요한 정보는 모두 생략하고 말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생략한 탓에 마치 중국에서 국제 중고 거래라도 하고 온 말투였다.

반 아이들은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리다가 서로 마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황지호는 역시 돌아이구나.’, ‘아, 우리 반은 0반이었지.’, ‘지호는 여전하네요.’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문부는 중국으로 취재 여행을 갔다고 했죠. 거기에서 우람이랑 만난 건가요?”

“그래.”

“지금 신문부랑 같이 움직이고 계신다는 2학년 0반 선배님들도 사건을 이것저것 겪으셨던데…… 많은 일이 있었나 봐요.”

사월세음은 청소년 수련회가 끝나고도 금찬왕찬 콤비하고 자주 연락하는 중인가 보다.

그 희대의 악동들과 가까이 지내는 게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착한 사월세음이 0반 선배놈들에게 물들 리가 없으니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저…… 우람이는 왜 기절한 걸까?”

권레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절했으니 신경 쓰이나 보다.

“입원 중이니까 어디가 아파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 아파서 그동안 학교에 못 나온 거구나!”

사월세음에 이어 권레나가 납득한 얼굴을 했다.

학교에 못 나온 건 권레나를 찾느라 그런 건데.

“우람이는 2학기에 등교할 수 있나요?”

“그럴 거다. 저 녀석은 건강해. 굳이 따지면 정양 겸 검사차 입원한 셈이다.”

“그러면 왜 기절한 거야?”

“원인은 짐작이 가지만, 지금 말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군. 하하하!”

황지호가 한 번 처웃고 권레나에게 그렇게 답했다.

한이는 그걸 질색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목우람은 퇴원하는 대로 기숙사에 입소할 예정이다. 기숙사생들은 곧 마주치겠지.”

“어? 진짜요? 효돈이랑 의신이처럼 같은 층에 배정받으면 좋겠네요!”

“흠. 그렇게 하도록 하지.”

“……네?”

지금 목우람이 기숙사 17층에 배정받는 게 확정되었다.

사월세음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보안 카드를 찍으며 특수 병동 안쪽으로 향하는 황지호를 보고 ‘아.’ 하고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황지호가 이사장 친척이라는 걸 새삼 다시 떠올렸나 보다.

이사장 본인이긴 하지만.

“물러나 있도록.”

고대어로 마법진을 새긴 황금색의 문 앞에 선 황지호가 짧게 경고했다.

아이들이 긴장한 얼굴로 문 저편을 보는 사이, 결계를 구축한 황지호가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쉬익—.

문이 열렸지만, 잠잠했다.

저번처럼 황지호와 김유리의 이능파가 충돌하는 상황을 예상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리야, 거기 있어?”

권레나가 발돋움을 하면서 황지호 앞쪽을 보려 했다.

그때, 병실 구석에 있던 롤스크린이 올라갔다.

롤스크린 뒤에 환자복이 아닌 사복 차림의 김유리가 있었다.

“얘들아, 어서 와!”

벽과 바닥엔 여전히 마법진이 있었지만, 김유리는 예전보다 훨씬 얼굴색도 좋았고 사복을 입고 있으니 분위기도 달라 보였다.

무엇보다 김유리 주변을 짓누르던 이능압이 옅어져 있었다.

광림을 다루는 데에 익숙해진 걸까?

“폭주할 것 같진 않군. 실내에 새긴 마법진도 있으니, 결계는 필요 없겠지.”

황지호가 결계를 풀었다.

결계를 풀자 사월세음과 한이, 권레나가 김유리 옆으로 후다닥 다가갔다.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친구를 보자 김유리가 기뻐했다.

“이제 퇴원하시는 건가요?”

“아니, 아직! 그래도 저번처럼 환자복 차림으로 맞이하기 싫었어. 너희들이 오니까 선생님 허락받고 사복 입은 거야.”

김유리의 입원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반 아이들이 올 때라도 기분 전환할 겸, 아이들의 걱정을 덜어 줄 겸 사복 차림을 한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이 안부를 묻고 선물로 가져온 아이스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8월이 제철인 체리가 듬뿍 들어간 아이스 케이크와 버터가 잔뜩 들어간 아이스 초콜릿 슈는 금방 수가 줄어들었다.

특히 MITRON 단골인 한이와 사월세음이 아주 잘 먹었다.

“있잖아, 그린이한테 무슨 일 있어? 그린이가 디바이스 메시지를 확인 안 하는 거 같은데…….”

민그린이 메시지를 받지도 않고 오늘 반 아이들끼리 온 문병에 민그린과 송대석이 보이지 않으니 신경 쓰였나 보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우리 반 반장답게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에도 반 아이들을 염려하고 있었다.

“오늘 민그린 집에 가 볼 예정이야.”

“아…… 그래! 의신이가 가 준다면 괜찮겠다.”

“네, 의신이랑 저희가 가니까 문제없어요! 다 잘 될 거예요!”

내 말에 김유리와 사월세음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헤어지기 전, 김유리는 좋은 소식을 하나 전했다.

“나 곧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아. 선생님께서도 컨트롤 능력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셨어. 빨리 퇴원해서 그린이랑 대석이랑 효돈이도 만나고 싶어!”

“진짜?”

“유리가 퇴원하면 반 아이들이랑 다 같이 놀러 가요!”

김유리의 병실을 나서는 반 아이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오늘은 비록 마법진 안에서라고는 하지만 황지호의 결계 없이 김유리와 이야기를 나눴고, 놀러 갈 계획도 짰다.

“오늘 그린이 일정도 확인하고 싶은데…….”

“대석이는 갈 수 있을까?”

“그린이가 있으면 가겠지.”

“효돈이는 연락 돼?”

황지호가 수배한 에어 셔틀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아이들은 놀러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맹효돈은 내가 데려올게.”

“의신이가 데리러 가면 문제없겠네요!”

“……세음이가 의신이를 많이 따르게 된 것 같은데.”

“네! 전 의신이를 많이 따라요.”

사월세음이 지나치게 들떠 있긴 했지만, 다들 기쁜 마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민그린의 집 앞.

길가에 에어 셔틀을 세우고 내린 우리는 의외의 인물과 마주쳤다.

바로 AR 글래스를 끼고 후드를 뒤집어쓴 민그린 본인이었다.

“그린아, 나와서 기다려 준 거야?”

권레나가 묻자 민그린이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민그린의 뒤에선 홍경복 화백과 송대석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 나…… 한이를 만나서 직접 얘기하려고 했는데…… 직접 너희들이 온다고 해서…….”

민그린은 그냥 겁에 질려서 방에 틀어만 박힌 게 아니었구나.

한이를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려고 용기를 짜내고 있었나 보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어.’

민그린은 한 번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 민그린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녀의 손에 AR 글래스가 들려 있었다.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아니, 그런 일이 없어야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민그린은 맨눈으로 한이를 똑바로 응시했다.

“나도 같이 싸울게……!”

놀란 표정을 짓던 한이는 웃으며 답했다.

“고마워.”

한이가 이렇게 밝게 미소 짓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저번 일은 그린이 잘못이 아니야. 자책하지 말아 줘.”

“……응!”

그 이후, 민그린은 반 아이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눴다.

김유리가 곧 퇴원한다는 말을 들은 민그린이 몹시 기뻐했다.

송대석은 내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입을 다물었다.

짧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눈치가 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수다가 일단락됐을 때, 홍경복 화백이 제안했다.

“다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꾸나. 내가 사마.”

점심 식사는 홍경복 화백이 소개한 면옥에서 했다.

홍경복 화백은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술부 사람들도 불러 점심을 샀다.

미술부원이 열 명이 넘게 몰려왔는데도 민그린은 겁에 질리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    *    *

‘느루’의 한국 본사.

수석 디자이너 서돌의 사무실.

최근 갑자기 중국 출장을 다녀온 서돌은 일에 몰두했다.

살살 웃으며 존댓말을 사용하는 서돌을 본 서족들은 열심히 서돌을 피해 다녔다.

뭔가 귀찮고 심상치 않은 일을 벌이고 있다는 신호였던 탓이다.

“급한 일은 다 끝냈으니, 놀러 갈 거예요. 짐꾼으로 셋 정도 따라왔으면 하는데요. 다들 안 바쁘죠?”

서돌의 말에 수하들이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어디에 가실 예정입니까?”

“영국이요.”

밑도 끝도 없이 영국이라니.

권제인이 있을 때는 영국에 자주 있긴 했지만, 이제 영원의 호수는 한국을 거점으로 삼고 있으니 갈 필요가 없을 텐데.

수장의 심복은 의문을 품었지만,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최근 하고 계시던 연구에 진전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서돌은 은광구를 보는 ‘눈’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으나 진전이 없었다.

“‘눈’을 격파하기 위해선 아직 좀 더 데이터가 필요해요. 지금은 기다리는 게 좋겠죠.”

서돌이 영국의 지도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동안 영국에서 좀 놀려고요.”

“무엇을 하실 예정입니까?”

“궁금한 게 있어서 알아볼 생각이에요. 술래잡기도 좀 하고요.”

서돌은 영국에서 ‘세 기사의 맹세’의 본부가 있는 지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편도로 티켓 네 장 끊어 놔요. 같이 갈 쥐는 당신이 알아서 뽑으세요.”

명령을 받은 서돌의 심복이 다른 서족을 돌아보니 다들 고양이라도 보는 표정으로 심복을 바라봤다.

*    *    *

반 아이들과 저녁 식사도 함께한 후 돌아온 기숙사.

최근 기숙사가 아닌 해외의 호텔이나 황명호 대저택에 머물렀던 탓일까.

오늘 반 아이들과 오래 시간을 보낸 탓일까.

계속 사람이 많은 곳에만 있던 탓인지 몰라도 기숙사에 도착하니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막하게 느껴졌다.

—네가 방학 동안 내 저택에 머물면 우리의 후예들도, 신수도 기뻐하겠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황지호는 간접적으로 저택에 머물 것을 제안했다.

올무와 은호의 후예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렸지만, ‘자주 놀러 갈게.’라는 말로 거절했다.

황명호 대저택에 머무르면 조용히 움직이기 어려웠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그래. 녹족의 맞춤 영약이 완성되면 반드시 들르도록.

그 말에 황명호 대저택 방문 의욕이 급격히 떨어졌다.

넓은 기숙사 방에서 홀로 영약의 맛을 떠올리니 머리가 절로 아팠다.

‘다른 생각을 하자.’

마침 지금 생각해야 할 게 많았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천단수 앞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그날 레벨이 올랐었지.’

〈스킬 정보를 열람합니다.〉

[스킬명]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

[희귀도] EX (측정 불가)

[스킬 레벨] 5

[효과] 동일한 차원에 존재하는 객체에 대해 초월적인 간섭과 정보 열람이 가능해진다.

[설명]

초상(超象)우주의 적합성 심사를 통과한 적합체 전용 스킬.

적합체의 차원 이해도, 차원 적응도에 따라 사용 범위가 증가한다.

처음에는 레벨 1이었던 전용 메뉴는 이 세계에서 사건을 겪을 때마다 레벨이 올라 5에 이르렀고, 새로운 기능도 여럿 추가되었다.

첫 번째는 첫 초상우주와의 교신이 끝났을 때, ‘게임 라이브러리’ 즉, 설정집 열람 기능이 추가되었다.

두 번째는 12지 동맹 회담이 끝났을 때, ‘로그 다시 읽기’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는 ‘이능파 링크’의 개념을 이해했을 때, ‘주변 지도 열기’가 가능해졌다.

네 번째는 며칠 전에 초상우주와 교신했을 때였다.

‘이번에는 무슨 기능이 추가되었지? ……이게 뭐야.’

여태까지는 플마고에도 있는 기능들뿐이었는데.

새로 추가된 기능은 게임 속에서는 없던 것이었다.

추가된 항목의 이름은 ‘리플레이’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2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