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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39화 (239/925)

45. 처서에 비가 오지 않으면 (1)

우기환을 시작으로 원시인들인지 선배놈들인지 모를 좀비들이 차례차례 상륙했다.

해수면 위로 머리만 내밀었을 때는 알기 힘들었지만, 전원 학교 하복 체육복을 입고 있는 게 우리 학교 3학년 0반 놈들이 맞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교사진들의 표정을 보니 구면인 게 확실했다.

5천 살가량의 호랑이의 후예 김신록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기환아? 얘들아?”

그 말에 우기환이 번쩍 고개를 들어 김신록을 비롯한 교사진들이 있는 쪽을 봤다.

극한에 몰린 인간은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하게 된다.

생존을 위한 의식주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생리적 욕구.

우기환의 눈에는 그 생리적 욕구 중 ‘식욕’을 채우려는 의지가 넘쳐 보였다.

음식 냄새에 이끌린 듯한 우기환이 휙휙 고개를 돌렸다.

교사진이 몰려 있는 해변가, 1학년 1반과 2반, 마지막으로 시선이 멈춘 건 10명 정도 되는 우리 0반 쪽이었다.

“어? 이쪽을 보고 있네요…….”

“뭐야, 왜 여기를 봐.”

“그린아! 내 뒤로 와!”

1학년 0반은 현재 그룹 중 가장 인원수가 적었다.

그에 반해 일일 셰프 황지호의 신들린 음식 솜씨 덕에 풍미 넘치는 고기 향이 주변에 만연했다.

마침 황지호가 직접 제작한 특제 허브 소스를 듬뿍 바르고 속에 필래프를 채운 통닭을 그릴 위로 올렸다.

‘촤아악!’ 하고 기름 타는 소리가 퍼지자 우기환이 외쳤다.

“돌격!”

“우아아아아악!”

우기환의 돌격 지시에 따라 원시인들이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우리 0반 쪽으로 달려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교사진과 반 아이들이 할 말을 잃은 가운데, 황지호가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 나간 황지호가 들고 있던 바비큐 스큐어를 우아하게 휘둘렀다.

파아앗!

황금빛의 이능파가 마력으로 화해 1학년 0반 주변을 결계로 감쌌다.

우기환 일당이 욕구에 충실한 와중에도 결계의 위력을 감지했는지 즉시 진군을 중단했다.

“하하하! 이 몸이 직접 만든 음식은 아무나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늘 자진해서 요리를 하는 놈이 할 소리가 아닌데.

그레이엄 크래커에 피넛 버터를 잔뜩 바른 마시멜로로 만든 스모어를 챙겨 우기환 일당으로부터 도망치려던 한이도 ‘갑자기 왜 저 돌아이가 비싸게 구는 거지?’ 하는 얼굴로 황지호를 쳐다봤다.

그사이 3학년 0반 선배놈들의 약탈 대상이 바뀌었다.

“가라!”

“우아아아아아악!”

새로운 약탈 목표는 홍천에서의 흡연 미수 사건으로 강원도 찰옥수수빵의 공수를 담당하게 된 방윤섭이었다.

바비큐를 다 먹고 간식으로 배부할 빵을 나르던 빵셔틀이 습격당했다.

“억, 뭐야, 조, 좀비? 좀비가 왜 주오 아일랜드에…… 아, 아악! 좀비한테 물렸다악!”

“방윤섭 학생!”

방윤섭의 담임 교사인 노영미 교사가 구조하러 와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교사진들이 후배를 습격한 3학년 0반 선배놈들을 나무랐지만, 우기환 일당은 반성은커녕 방윤섭으로부터 빼앗은 빵을 처먹기 바빴다.

그래도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거리며 꾸역꾸역 빵을 먹는 제자들이 불쌍했는지 교사진들이 고기를 구워 3학년 0반 놈들한테 나눠 줬다.

여기까지 와서 학생 뒷바라지에 고생이 많은 교사진을 보다 제안했다.

“우리도 선배님께 음식을 나눠 주자.”

“저도 의신이 말에 찬성해요! 저분들은 0반 선배님들이잖아요!”

“하하하…… 그냥 내버려 두면 아사할 것 같긴 해.”

“그렇다 한들 이 몸의 요리는 아무나 먹을 수 없다.”

그렇게 황지호를 제외한 0반 아이들은 선배놈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십시일반으로 먹을 것을 갖다 바쳤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실컷 처먹은 선배놈들은 먹다 지쳐 모래사장에 자빠져 잤다.

약탈, 취식, 취침으로 이어지는 게 야만인 그 자체였다.

그나마 야만인의 대장 우기환은 체력이 남아 있는지 눈을 뜨고 있었다.

“우기환, 무슨 일이 있었지? 임연화 선생님은 어디에 계시나.”

동행한 교사진 중 직급이 가장 높은 함근형 선생님이 대표로 물었다.

‘임연화’라는 단어에 반응한 우기환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교사들이 당황한 가운데에 우기환은 근손실도 개의치 않고 펑펑 울어 댔다.

“태풍이 왔을 때, 식량 저장고가 파괴되는 바람에…… 자급자족을 하게 됐습니다…….”

무인도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이라니.

언뜻 듣기엔 낭만이 넘쳐 보이지만, 자급자족을 위한 준비나 지식, 도구가 없을 때 저 상황에 놓이면 꽤 비참한 식사를 하게 될 거다.

바닷물을 증류해 물을 마시고, 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과일을 먹고, 양념도 바르지 않고 물고기를 구워 먹는 식생활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우기환의 비참한 무인도 생활기가 끝나고 본론이 나왔다.

“수중 훈련 중에 얼어 있는 이계의 입구를 발견했는데…… 입구를 부쉈더니 갑자기 독 같은 게 나와서…….”

얼어 있는 이계의 입구, 독.

그 말을 듣자마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동결형 이계.

지배당한 이계가 냉기와 독기를 머금은 상태로 비활성화된 상태.

한반도 곳곳에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동결형 이계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3학년 0반 일당은 동결형 이계와 맞닥뜨렸나……! 주오 아일랜드 근처에도 동결형 이계가 심어져 있었구나!’

기껏해야 부트 캠프 탈주극을 기대했는데.

그러면 3학년 0반 담임인 임연화는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제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건가…….

“임연화 선생님은 어떻게 됐지?”

동결형 이계의 존재에 관해 아는 김신록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황지호도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곧 우기환이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치적거린다고 우린 꺼지라고…… 그리고 혼자 그 이계를 공략해 버렸습니다…….”

……이능독을 뚫고 동결형 이계를 혼자 공략해 버린 건가!

황지호도 내장이 녹는 고통을 참고 향록의 해독약을 먹으면서 버텼는데.

그 강한 담임 임연화는 정말로 인간인 건가.

“그 강한 담임은 독도 안 통하고, 끄흑…… 어떻게 이길 수 있는 거야. 에이씨…… 그거 때문에 싸우고 우린 탈출함요……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파서…… 흐어엉!”

우기환은 그간 쌓이고 쌓인 원통함이 폭발한 듯 횡설수설하며 곡을 해 댔다.

“……학교나 협회 측에 도움을 청하지.”

“그럼 담임한테 지는 기분이잖아요!”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이미 3학년 0반은 임연화한테 처절하게 패배한 것 같은데.

울다가 기력을 다 쓴 우기환도 곧 잠들었다.

분신을 움직여 상황을 확인한 듯한 황지호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협회의 임지화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결형 이계 중 하나를 발견한 것 같다고. 정보 조작을 하는 중이라더군.”

강한 담임 임연화는 언니이자 위성 관리팀의 팀장인 임지화에게 연락을 취했나 보다.

‘두 사람이 자매라서 다행이네.’

플레이어 협회 쪽에 공적인 루트로 신고했으면 정보 조작이 힘들었을 거다.

나와 같은 생각인지 황지호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행지에서 이런 해프닝이 터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샘플이 늘어난 셈이니 연구진이 기뻐할 거다. 아, 임연화와 접촉해서 말을 맞춰 놔야겠군.”

문제는 교사진과 0반 아이들이 우기환의 헛소리를 들었다는 점이지만.

다행히 우기환은 척 봐도 제정신이 아니라서 우기환의 발언을 심각하게 여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김신록이 중간에서 우기환이 했던 말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화제를 바꾸는 사이에 주수혁이 이쪽으로 왔다.

“선생님! 선배님들을 숙소로 옮길까요?”

“우리한테 맡기렴. 갑자기 이런 일이 터져서 미안하구나. 주오 그룹 스태프 쪽에는 내가 얘기하마.”

“하하, 아니에요. 사실 사관학교 애들도 부를 생각이었거든요. 숙소나 먹거리도 넉넉하게 준비해 놔서 괜찮아요.”

주수혁은 타이틀 히어로다운 배포를 보여 줬다.

김신록이 눈치를 주자 용제건이 귀찮아하면서도 공간으로 들어 올려 3학년 0반 선배놈들을 옮기는 게 보였다.

*    *    *

바비큐 파티가 끝난 후에는 각자 숙소에 적응할 겸 반별로 자유 시간을 가졌다.

0반, 1반, 2반이 함께하는 일정도 있었지만, 첫날은 반 아이들끼리 자유롭게 보내자는 의견에 참석자 대부분이 찬성했다.

리조트를 전세 낸 상황이니 반별로 플로어를 하나씩 배정받았는데, 0반은 인원수가 적어서 그런지 라운지가 넓게 느껴졌다.

함근형 선생님과 용제건이 협회와 연락한 이후 위치 파악이 안 된다는 임연화를 수색하러 떠나서 그런지 더 넓게 느껴졌다.

각자 싸 들고 온 보드게임을 늘어놓던 아이들이 서운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함근형 선생님하고 밤새워서 놀려고 했는데!”

“맞아요. 저번에 완패했으니까 갚아 주고 싶었어요. 용쌤이 어떻게 게임 하는지도 궁금했는데요…….”

“나도. 함근형 선생님하고 게임 하고 싶었는데…….”

은광고에 오기 전부터 함근형과 친분이 있고 한강에서 한 봄 소풍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민그린이 슬퍼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임연화 수색에 참가해서 빨리 함근형 선생님을 반 아이들과 합류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오늘 처음으로 1학년 0반 아이들이 10명이나 모였잖아! 드디어 두 자릿수가 되었어!”

목우람이 합류하며 우리 반의 등교생은 10명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빠지면 9명, 한 자릿수가 되고 만다.

이렇게나 기뻐하는 김유리를 두고 갈 수 없었다.

“저…… 우람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게임을 못 하는데.”

“이 정도의 거리감이 저에겐 적절한 것 같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레나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고도 아이들과 거리를 둔 목우람이 예의 바르게 답했다.

목우람은 틈만 나면 아이들, 특히 권레나가 던질 법한 예상 질문과 그에 따른 모범 답안을 작성해 이를 암기하고 연습했다.

‘저런 질문과 답안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상식이 있다는 뜻 아닌가?’

목우람이 어딘가가 고장 나고 맛이 간 제 정신머리를 고치는 대신 정상인인 척 연기하려고 마음먹었다는 게 비범해 보였다.

물론 그렇게 나름 정상인 흉내를 내도 목우람의 비범함은 숨겨지지 않았다.

목우람이 대놓고 이상하긴 했지만, 착한 반 아이들은 ‘특이한 애구나!’ 하고 넘어가 줬다.

평소라면 송대석이 추한 소리를 한 번 정도 할 법한데, 송대석은 평소보다 얌전했고 가끔 입을 다물고 아이들을 가만히 관찰하곤 했다.

‘……위성 생각이라도 하는 걸까?’

송대석의 아이들을 탐색하는 것 같은 눈초리가 신경 쓰였지만,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모처럼 덜 추해졌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없어 나도 입을 다물었다.

또 막상 게임을 시작하니 송대석은 아이처럼 승부에 집중했고, 나도 그에 진지하게 응했다.

플레이한 보드게임이 열 자리 정도 넘어갔을 때.

아이들이 하나둘씩 잠들기 시작하자 남은 아이들은 적은 인원수로도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하하하! 다음 턴에서 결판이 나겠군.”

“…….”

1 대 1로 즐기는 심리 보드게임 ‘고스트’로 황지호와 한이가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한이는 푸른색의 기물을 전진시켜 황지호의 진형을 파고들지, 황지호의 붉은색의 기물을 찾아내어 쓰러뜨릴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아직 깨어 있는 김유리가 즐겁게 관전하고 있었고, 맹효돈은 여전히 룰을 이해하지 못해 뭐가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추, 추워하시는 것 같은데…….”

목우람은 잠든 권레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목우람은 권레나한테 에어컨 바람이 직접 닿지 않도록 제 몸으로 막고 담요를 두 장이나 덮어 줬는데도 아직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로비에서 담요랑 간식을 더 가져올게.”

“네! 부탁드립니다!”

부반장으로서 화석으로서 반 아이들과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을 때였다.

“어, 아직 안 자고 있었냐.”

나와 비슷한 용건으로 온 듯한 유상훈과 마주쳤다.

빨리 인사하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 전에 유상훈이 입을 열었다.

“얘기 좀 하자.”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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