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41화 (241/925)

45. 처서에 비가 오지 않으면 (3)

황지호의 설명을 듣고 독고미로를 본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춤 잘 추시네요!”

“그려 보고 싶다. 머리카락 색이 예뻐서 큰 동작으로 움직일 때마다 화면이 화사해.”

“춤만 봐도 노래가 들리는 것 같아. 진짜 잘 춘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독고미로의 춤 솜씨를 칭찬하는 사월세음과 민그린, 권레나.

덤으로 본인 생각이 어떻건 권레나 의견에 무조건 동의할 듯한 목우람.

“우리 반 이제 열 한 명 되는 거야? 그것도 TV에 나오는 애가? 와!”

순수하게 기뻐하는 김유리.

“지금 방학 중인데 학교 와서 뭐 찍냐.”

“개학하고 촬영을 해도 쟤는 등교 안 하는 애잖아.”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맹효돈과 송대석.

황지호는 독고미로에 관해 미리 알고 있었던 데다, 등교생이 늘건 말건 저놈이 뭐라 반응할지 딱히 관심이 안 생겨서 관찰하지 않았다.

이렇게 반 아이들이 있을 법한 반응을 보이는데 한이만은 달랐다.

한이는 연유와 초콜릿 시럽을 지나치게 부은 바람에 형태가 많이 변한, 팥빙수였던 무언가를 퍼 먹는 걸 멈추고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독고미로가 카메라를 향해 눈웃음을 날리는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잠시 질색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흐음.”

황지호는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패왕 독고미로의 구역에는 광일동 은광한빛보육원이 포함되니까, 아는 사이가 아닐까?’

독고미로는 게임 속에서 한이와 공청훤이 퇴장하는 것에 맞춰 등교를 다시 거부하기 시작했으니까, 아는 사이일 가능성이 컸다.

황지호는 한이의 뒷조사를 철저히 했을 테니 둘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 거다.

그래도 황지호한테 묻기는 싫었기에 한이한테 직접 묻기로 했다.

마침 한이의 맞은 편에 앉아 직접 얼굴을 보고 물을 수 있었다.

“혹시 쟤랑 아는 사이야?”

한이가 복잡한 표정으로 답했다.

“초등학교 동창이야.”

독고미로와 한이는 초등학교 동창이었구나.

반응이 미묘해서 친하게 지낸 건지 안 친하게 지낸 건지는 구분이 안 갔다.

“한이랑 초등학교 동창이면…… 광일동에 있는 초등학교를 나온 걸까?”

“와! 한이 친구 중에 아이돌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저분 이름은 뭐죠?”

“쟤 왜 등교 안 한 거야?”

한이의 발언으로 반 아이들의 화제의 중심이 한이 쪽으로 갔다.

하지만 한이는 대부분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자주 못 봤어. 보육원에는 놀러 왔다고 하는데 그다지 마주치지는 못해서…….”

그렇게 말꼬리를 흐리긴 했지만, 한이는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는 대답했다.

한이는 신중하게 말을 골라 독고미로가 방송을 타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법한 객관적인 정보만을 말했다.

독고미로라는 이름.

출신 초등학교.

초등학교 시절에는 머리카락 색이 검은색이었다는 것이 그랬다.

그리고 주저하다가 마지막으로 작게 덧붙였다.

마지막 말은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말해도 괜찮을지 확신이 안 서는 것 같았다.

“무대 울렁증이 있어서 사람이 보고 있으면 노래 못했는데. 사람이 있다고 떠는 타입은 아닌데 노래는 다른가 봐. ……나는 걔 표정이 굳고 공기가 좀 울린다는 차이밖에 못 느꼈지만.”

그건 치명적인 거 아닌가?

사전 접수는 직접 찍은 영상을 통해서, 또 예선은 심사위원 몇 명과 함께 했으니 아직 무대 울렁증은 큰 문제가 안 될 거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방청객을 부르고 그 앞에서 생방송으로 경연을 하게 된다.

돔 구장을 가득 채운 콘서트를 몇 번이나 한 베테랑 가수들도 떨리고 실수하는 게 경연 프로그램이다.

무대 울렁증이 있는 연습생 독고미로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공개 오디션에 나온 걸 보면 극복한 게 아닐까?”

권레나의 말에 한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응, 그랬으면 좋겠다.”

한이가 독고미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이 안 됐는데, 저 얼굴을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연락이 뜸해졌다고 했지만, 두 사람은 친구였던 모양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이후에는 계속 자유 시간이 이어졌다.

날이 좋았던 탓에 학생들 대부분은 야외의 워터 어트랙션이나 바다에서 놀았다.

워터 어트랙션 중에선 4인승 튜브를 롤러코스터처럼 타고 내려가는 토네이도 슬라이드와 주오 아일랜드의 경치를 즐기며 떠다니는 유수풀이 인기가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오늘은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는 예상하에 주오 아일랜드의 다른 시설을 즐기기로 했다.

‘워터 어트랙션을 타다가 민그린의 후드나 AR 글래스가 벗겨질 수도 있어. 사람이 많을 때는 피하는 게 좋겠지.’

아마 말은 안 했지만 반 아이들도 같은 생각일 거다.

반 아이들은 사람 몰리는 게 싫다는 핑계로 주오 리조트 내의 기념품 DIY 공방을 찾았다.

이곳에는 주오 아일랜드를 방문한 이들이 직접 기념품을 만들거나 전문 강사에게 기념품 제작을 부탁할 수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직접 만드는 쪽을 택했다.

“와, 그린이는 소조(塑造)도 잘하네.”

“기분 전환으로 가끔 손을 대는 정도야.”

“그린아, 뼈대는 내가 만들게! 철사에 손이 다칠지도 모르잖아!”

민그린과 송대석은 반 아이들을 데포르메한 찰흙 작품을 만들었다.

한편, 손재주에 자신이 없는 아이들이 뭘 만들지 고민하자 공방에 상주하는 강사가 이능파 결정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강사는 투명한 이계 광석 덩어리를 보여 주며 말했다.

“지나치게 무른 탓에 무기로 가공이 불가능해 가치가 적은 이계 광석들입니다. 여기에 이능파를 불어넣으면 광석들이 자신의 이능파 색을 띄게 됩니다. 이능파가 적으면 색이 옅고, 지나치면 광석이 부서지니 주의하세요.”

강사의 지시에 따라 반 아이들이 이능파 결정을 만들어 보는 가운데에 맹효돈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이건 주오 아일랜드가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지 않나?”

“여행지에 와서 체험하고 만들고 그걸 남기는 데에 의미가 있어!”

맹효돈의 우문에 김유리가 현답을 하자 맹효돈도 납득하고 서툰 솜씨로 이계 광석을 깎기 시작했다.

맹효돈은 주먹 모양의 장식품을 만들 생각인 것 같았는데, 아무리 봐도 돌멩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황지호는 은호의 후예들에게 줄 선물을 만드는지, 이계 광석을 호랑이 모양으로 가공하여 그 안에 자신의 이능파를 심는 게 보였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호랑이를 보고 강사가 황지호를 몇 번이나 칭찬했다.

실컷 칭찬받으며 처웃던 황지호가 나한테 물었다.

“조의신, 너는 뭘 만들 생각이지?”

“뭘 만들지 안 떠올라.”

기념품으로 삼을 만한 조각을 만들 손재주도 없었다.

거기에 내 이능파 색은 검은색이니 이능파 결정을 만들면 기념품으로 삼기엔 칙칙할 거다.

“그래? 그럼 이 몸이 만든 작품에 줄무늬라도 넣도록.”

황지호가 황금색의 호랑이들을 내밀었다.

황지호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건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이 호랑이 모양 결정들은 후예들을 위한 것이니 해 보기로 했다.

컨트롤에 실패해 호랑이 장식품 전체가 검게 물들거나 광석이 박살 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황지호가 척척 새 결정을 만들어 왔다.

“하하하! 미숙하구나, 조의신. 좀 더 집중해라!”

저 노친네가 입을 다물면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험한 말이 올라왔지만, 후예 아이들을 생각하며 참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열 마리가 넘는 호랑이 이계 광석과 분투를 한 후에야 겨우 작업이 끝났다.

“수고 많았다. 이건 네 몫이다.”

황지호가 호랑이 결정을 하나 내밀었다.

저 호랑이 결정 중 하나는 내 몫이었나 보다.

황지호의 이능파가 들어가 있는 게 찝찝했지만 은호의 후예들과 같은 기념품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

각자 완성품을 비교하던 중 황지호의 시선이 한이의 작품에서 멈췄다.

태호권 도복 모양을 어설프게 흉내 낸 이계 광석이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호수의 빛 같은 권제인의 푸른색과 달리 군청(群靑)에 가까운 짙은 파랑이었다.

태호권의 특성상 이능파를 몸 안에 갈무리하며 자세를 취하니, 황지호가 한이의 이능파 색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청호와 같은 색인가 보구나.’

각자 완성품을 들고 단체 사진을 찍는 내내 황지호는 처웃는 걸 멈췄다.

점심시간이 되니 다시 평소대로 돌아오긴 했지만.

*    *    *

점심을 먹은 후, 우리 반 아이들은 워터 어트랙션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인이한테 들었는데, 지금 워터 어트랙션에 사람이 적대. 어제 안 자고 오전까지 놀다가 지쳐서 낮잠 자러 간 애들이 많나 봐.”

김유리가 밝은 얼굴로 말하자 민그린이 들뜬 얼굴을 했다.

아마 민그린이 워터 어트랙션을 가는 건 처음이거나 초등학교 시절 이후일 테니 들뜨는 건 당연할 거다.

송대석도 들떴는지 이동하는 내내 워터 어트랙션 안내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송대석, 잠깐 보자.”

이동 중인 우리 앞에 함근형 선생님이 나타났다.

오전 내내 임연화와 3학년 0반 사건 뒷수습으로 바빠 보였는데, 앞을 보며 걷지 않는 송대석에게 주의를 주려고 오신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함근형 선생님은 평소보다 덜 흉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노영미 선생님이 보자는구나. 황지호도.”

노영미가 송대석과 황지호를?

의외의 조합이었지만, 황지호의 이름까지 나오니 바로 왜 불렀는지 짐작이 갔다.

그러나 내 짐작과는 별개로, 송대석은 돌직구를 잘 날리고, 황지호는 눈치 없이 잘 처웃는 놈이다.

두 사람이 노영미에게 실수라도 한 건 아닌가, 반 아이들이 걱정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대표로 김유리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희도 가도 되나요?”

함근형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국 반 아이들이 단체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동한 곳은 로비 가까운 곳에 있는 레크리에이션 룸이었다.

그 안에는 노영미 뿐만이 아니라 주수혁, 문새론, 방윤섭을 비롯한 1학년 2반 학생들이 전부 있었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합니다. 송대석 학생, 황지호 학생.”

“……무슨 일인데요?”

송대석이 머뭇거리다가 묻자 노영미가 미소 지었다.

냉정하고 침착한 인상의 노영미가 저 정도로 부드러운 얼굴을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감사 인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그날 송대석 학생은 2반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남았었죠. 또 유리창이 깨질 때 반 아이들을 감쌌다고 들었습니다.”

예상대로 노영미는 청소년 수련회 사건을 꺼냈다.

노영미와 2반 여학생들은 사건 직후엔 중상을 입고 이능독에 중독되어 입원해 있었다.

퇴원할 즈음에는 송대석이 협회 연구소에 들어갔으니 감사 인사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을 거다.

노영미는 황지호에게도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두 학생 덕분에 반 아이들이 무사했습니다.”

노영미에 이어서 그날 숙소에 기절해 있던 학생들이 송대석과 황지호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송대석은 그렇게 인사받을 줄은 몰랐는지 얼떨떨해하는 표정이었고 황지호는 당연해하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방윤섭은 조금 기운이 없어 보였다.

‘더위를 먹었나? 아니면 빵을 나를 때 좀비들한테 물린 영향이라도 받은 걸까.’

마지막으로는 타이틀 히어로이자 1학년 2반의 반장인 주수혁이 인사했다.

“우리 반 아이들을 지켜 줘서 고마워.”

“어, 어…….”

송대석은 민망해하는 얼굴을 했고 처음엔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숨어 있던 민그린은 어느 사이엔가 송대석 옆에서 뿌듯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 우리는 2반 학생들과 헤어져 워터 어트랙션으로 이동했다.

워터 어트랙션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송대석이 인사를 받는 모습에 힘을 받은 덕일까, 민그린은 숨지 않았다.

송대석은 워터 어트랙션에서 노는 동안 내내 멍청한 얼굴이었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    *    *

밤 일정은 캠프파이어였다.

보통 캠프파이어는 여행 마지막 날에 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특별 게스트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 하루 당기기로 했다.

“반별로 모여 주세요. 아, 3학년 0반 분들은 1학년 0반 뒤쪽으로 가 주세요!”

교사진들이 나서서 대열을 정리하는 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교사가 하나 있었다.

‘용제건이 안 보이는데?’

유희계 용족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    *    *

해가 조금씩 지기 시작한 어느 무인도.

용제건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 레이스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

지나간 밤, 임연화 수색 당시 발견한 이 레이스 손수건에는 희미하지만 진족의 기운이 남아 있었고, 이능파로 무인도의 GPS 좌표가 새겨져 있었다.

정체불명의 이계가 목격된 상황에서 홀로 그 수상한 좌표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게 판단했으나 용제건은 혼자 오는 것을 선택했다.

그 레이스 손수건의 색이 붉었던 탓이다.

“오랜만이야, 웅녀. 또 재미있는 일을 알려 주려는 거야?”

그리고 용제건의 예상대로 붉은 드레스 차림의 비탄의 웅녀가 등장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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