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무대의 아래 (1)
어렸을 때부터 독고미로의 꿈은 하나였다.
누가 어린 독고미로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아이돌.
노래를 듣는 것도, 하는 것도, 무대를 보는 것도 모두 멋져 보였다.
독고미로는 어렸을 때부터 몸을 곧잘 움직였고, 노래를 아주 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음색이 나쁘지 않았다.
독고미로에게 재능이 있다고 판단한 그녀의 부모는 딸의 꿈을 응원하기로 했다,
―미로가 힘들 텐데, 괜찮을까?
―요즘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연습생을 한다고 하더라!
―미로는 유치원 시절부터 전 세계의 팬과 통역 없이 직접 소통하겠다고 온갖 언어와 문화를 다 배우던데…… 차라리 연습생 생활이 덜 힘들지 않을까?
조숙한 독고미로는 유치원 시절부터 제 꿈을 준비했다.
제 꿈을 향해 착실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독고미로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우려 속에서 막 초등학생이 된 독고미로는 프로필 영상을 유명 연예 기획사에 투고했고, 곧 긍정적인 답변을 잔뜩 받았다.
그러나 어느 기획사에서도 독고미로를 연습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능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요.
―플레이어는 좀…… 이능이 사라지면 연락 주세요.
―어린 시절부터 이 정도로 강력한 이능을 가지고 있으면 17세가 되어도 이능이 남을 것 같은데.
―왜 귀한 재능을 버리려고 하십니까?
플레이어는 반드시 이능과 관계있는 직업을 갖는다.
어둠의 시대 이후, 사회에는 그런 불문율이 공공연하게 존재했다.
에너미에 대응할 수 없을 만큼 약한 이능을 갖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다면 모를까, 강한 플레이어일수록 제 꿈을 펼치기 어려웠다.
물론 한국화의 거장 홍경복 화백이나, 푸른 바이올리니스트 권제인 같은 예외가 존재하긴 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술가로서 인정받은 건 그 재능이 세계적으로 위대하고 희귀했으며, 그 예술적 재능이 사용하는 이능과도 관련이 있고, 또 그들이 고명한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평범한 집안 출신에 아직은 이능만이 눈에 띄게 우수한 독고미로로선 그들의 전철을 밟는 건 불가능했다.
―미로 정도 되는 이능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돌은 어떤가요? 미로만큼 귀엽게 생기고, 춤 좀 추고, 노래 좀 하는 애들은 적지 않죠.
―한국에서만 1년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몇 개 한다고 생각해요? 오디션 프로그램 없이 데뷔하는 사람 수는요. 한국에 가수나 아이돌 할 사람 많아요.
―미로 부모님이 애를 잘 이끌어 주셔야지 이러면 되겠습니까? 프로 플레이어의 수가 부족하다는 기사는 매년 나오는 중인데요.
―프로 플레이어가 우리 학교에서 배출되면 학교나 우리 교사나, 또 미로 부모님에게도 좋은 일이잖아요?
결국 초등학교 담임 교사를 시작으로 점점 독고미로의 꿈을 포기시키려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독고미로의 부모는 독고미로의 의지를 끝까지 존중한 탓에, 담임 교사는 제가 부릴 수 있는 권력을 사용했다.
반 아이들을 선동하는 것.
마침 같은 반에는 이능을 사용할 줄 아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고, 우수한 이능을 타고 난 독고미로를 고립시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은 독고미로가 운동장 한구석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거나 춤 연습을 하면 득달같이 알고 교사를 부르거나 휴지 조각을 던져 댔다.
시간이 좀 흐르자 독고미로의 꿈을 포기시키려는 목적은 변질되어 그저 독고미로를 괴롭히기 위해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년이 바뀔 때에는 독고미로와 짝을 하려는 아이들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독고미로는 교사가 가담한 괴롭힘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독한 년.
학년이 바뀔 때 담임 교사가 했던 말을 듣고도 독고미로는 웃었다.
그녀의 꿈과 목표는 저열한 성품의 교사나 동급생이 아닌, 저 멀리에 펼쳐진 무대 위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한 학년 올라갔을 때, 독고미로는 자신과 다른 이유로 따돌려지는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한이’라고 했다.
* * *
밝은 햇살 아래에 투톤으로 엮인 분홍빛 머리카락이 오묘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독고미로의 머리카락 색도 그렇지만 과연 아이돌 지망생이라 할 만큼 시선을 끄는 외모와 분위기를 갖고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두 번씩 돌아봤다.
‘그냥 무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었을 뿐인데, 연예인 같은 느낌이 나네.’
물론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도 그에 못지않게 멋지지만.
은광고 교표가 새겨진 시계탑을 올려다보는 독고미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말을 걸어야 하나?’
하지만 말을 걸기 전에 독고미로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환하게 웃으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민그린 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한 각력의 소유자인 듯, 독고미로는 스킬 없이 엄청난 속도로 발진했다.
그 끝에는 대화를 나누며 이동 중인 공청훤과 한이가 있었다.
“청훤이 오빠! 한이! 보고 싶었어!”
공청훤은 선량한 얼굴로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한이는 대놓고 질색했다.
한이는 공청훤을 끌고 달리기 시작해, 곧 시야 속에서 세 사람이 사라졌다.
은광고 안에서 추격전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오후에는 선약이 있어 그 뒤를 쫓는 건 하지 않기로 했다.
‘뭐, 오후 일정에서 저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겠지.’
* * *
중앙 구역 총동아리회관 신문부실 중 신입생방.
방학이 끝나기 전 한번 모여서 그간 쌓인 소재들, 기사 초고들을 살펴보자며 1학년끼리 모이기로 했다.
예상대로 문새론이 독고미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 ‘플레이리스트’ 티저 영상에 나온 애가 우리 학교 애인가 봄! 오늘 학교에서 뜀박질하는 거 봄요!”
정보통 문새론은 독고미로의 학교 방문을 알아챈 것 같았다.
문새론이라면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하는 분홍 머리가 학교에 왔다 하면 주목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청훤 쌤이랑 한이랑 점심 먹으러 가는 것 같더라. 둘이 아는 사이인 거 같던데? 수상한 부반장님, 뭐 아는 거 없어?”
“우리 반 애야.”
“오, 이름은?”
문새론도 한 번도 등교하지 않은 독고미로의 이름이나 자세한 프로필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나 보다.
문새론은 나와 황지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한이랑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라고? 광일동에서 옛날에 기사 한 번 크게 터진 그 학교인가 보네.”
“무슨 기사인데?”
“거기 교사랑 애들이 사고 줄줄 쳐서 난리 났었잖아. 은광구의 일꾼 국언무쌍께서 처음으로 손본 초등학교기도 하고.”
국언무쌍은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성국언 국회의원을 일컫는 말 아닌가.
성국언이 한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국언무쌍이 당선하고 임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있던 일이야.”
“아, 그거? 우리가 6학년 때 엄청 기사로 떴었는데.”
“우리 학교도 그거 때문에 난리 났었음.”
같은 1학년 부원들이 한마디 거들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들이 알 정도면 상당히 큰 사건이었나 보다.
“…….”
한편, 그 이야기를 듣는 황지호의 표정이 상당히 불쾌해 보였다.
한이의 이력에 관해서 철저히 조사한 놈이니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나 보다.
‘강력한 이능을 가진 보육원 출신의 부모 없는 아이, 청각 장애인이 초등학교를 무사히 다니긴 어려웠겠지.’
저 조건을 가진 아이 중에 괴롭힘이나 차별 없이 초등학교 생활을 보낸 아이들은 거의 없을 거다.
운이 극히 좋은 예외는 있겠지만, 사회성을 막 키우고 있는 초등학생 중에 한이를 배려해 줄 아이가 많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나름 해피 엔딩 아니야? 초등학생한테 누명 씌우려다가 다 직위 해제당했잖아.”
초등학생한테 누명?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아닌 게 확실해졌다.
“직위 해제는 신분을 계속 보유한 상태로 직무 담임만 해제되는 잠정적인 조치라 언제든지 다시 복귀 가능할 듯.”
“조용해지면 어디 새로 발령 내지 않았을까?”
“여전히 잘 처먹고 잘 살겠지. 술 먹고 술안주로 삼을 무용담처럼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까?”
“아, 알 것 같음요. 멍청하고 빽없는 학생 인생 조지려다가 되려 망할 뻔했지만 지금은 멀쩡하다고.”
“생각 없이 발 뻗고 자겠구나.”
신문부 소속 아이들은 이런 큰 사건에서 주목도가 떨어진 이후에 어떤 일이 터지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어두워졌을 때, 황지호가 불쑥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들은 잘 처먹고, 잘 살지도 못할 것이다. 발 뻗고 잘 일은 더더욱 없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황지호가 뭔가 했나 보다.
‘한이와 관련된 사항인 것 같으니 허언은 아닐 거야.’
말 그대로 사고를 친 놈들은 치아나 위장이 작살나서 잘 처먹지 못하거나, 뻗을 발이 없어서 발 뻗고 자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아이들은 저게 뭔 소린가 했지만, 돌아이로 이름난 황지호의 발언이라 별로 마음에 담지 않는 모양인지 ‘그랬으면 좋겠네.’라고 말하며 넘어갔다.
사담을 마친 우리 1학년은 본격적으로 1학기 동안 작성한 기사와 모은 소재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소재가 가장 많이 나온 건 2학년 0반과 함께했던 기묘한 취재 여행이었다.
온갖 사건에 휘말린 이들이 사진과 동영상을 띄우며 ‘대체 어디까지 기사로 써야 할 것인가’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는 이 괴도가 신경 쓰임요! 기사 1면의 자리는 이 ‘Phantom Thief’에게 줘야 해!”
문새론이 뱉은 ‘괴도’라는 단어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진 속에서는 챠케틸라를 번쩍이며 과장된 몸짓으로 적을 물리치는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찍혀 있었다.
손이 오그라들려는 와중, 문새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이 괴도께서 무슨 일을 한 줄 알아? 그 비밀 경매에 나온 물품들이 어떻게 됐나 찾아봤거든?”
문새론은 영국 정부와 유명 박물관에서 공개한 보도자료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각 사진에는 붉은색으로 표시한 단어가 있었는데, 전부 예술품들을 칭하는 영어 단어였다.
“예술품들은 전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거나, 주인이 없는 건 정부나 박물관에 골고루 기부됐어. 이 행보는 마치…… 올해 초 한국에서 이름을 날린 그 괴도 같지 않아? 이건 비교 기사를 쓰면 주목도가 오르지 않을까?”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입을 막고 싶어지는 일은 드물었는데.
손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결국 그 단어가 나왔다.
“적벽괴도!”
* * *
영국 제2위의 도시(Second city of the United Kingdom)라고도 불리는 맨체스터의 히턴 공원.
히턴 홀 주변을 느긋한 걸음으로 걷던 서돌이 멈춰 서서 부하의 보고를 들었다.
디바이스 너머로 들려온 보고에 서돌의 입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짐꾼 역할을 맡은 서족 하나가 그 미소를 보며 불안해했다.
“세 기사의 맹세가 그런 연유로 만들어졌다니. 재미있네요.”
“……세 기사의 맹세 공식 홈페이지에 설립 목적은 ‘유럽 대륙에 산재한 에너미 토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그럼 유럽에만 처박혀 있어야지 왜 중국에서 나한테 지랄했겠어요?”
세 기사의 맹세가 서돌에게 지랄했다기보다는 그 반대가 아닌가?
서돌은 재미있어 보인다고 멋대로 중국으로 갔다가 사건에 휘말려 세 기사의 맹세 구성원으로 보이는 누군가를 공격했을 뿐이다.
서돌은 고민에 빠진 눈치였다.
“그 맹세라는 게 ‘그것’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니…… 어떡하죠? 조금 협력하고 싶어졌어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