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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61화 (261/925)

47. 패자 부활전 (8)

이계 충돌 이후로 한반도 국토 방위에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며 불안한 시국 탓에 나라의 경제도 크게 흔들렸다.

그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게 현재 대한민국 4대 기업으로 꼽히는 주오, 황명, TC, 남궁 그룹이다.

도시후는 그 4대 그룹 중 하나인 TC 그룹의 자제였다.

거기에 아버지는 ‘선박왕’으로 이름난 기업가이자 플레이어였다.

선박왕은 황명 그룹으로부터 이계 금속을 가공해 배를 건조하는 조선(造船) 기술을 샀고, 위축되었던 해상 운송 사업을 일으켰다.

그는 이계부, 해양수산부와 협력해 이계 발생 빈도가 낮은 방향으로 해로를 재정비하고, 이계 충돌로 정체되었던 물류 운송의 활로를 찾았다.

“이거 다 아빠가 한 거야?”

“그래. 그런데…… 둘이 있을 땐 괜찮은데, 사람들 앞에서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 특히 가족 모임에서는.”

“응! 쓸게! 얘기 더 해 줘!”

어린 도시후는 바쁜 아버지가 직접 들려주는 활약상을 즐겨 들었다.

아버지의 별칭 뒤에 ‘왕’이 붙은 것도 좋았고, 왕 다운 행보도 매우 좋았다.

해로 정비 과정에서 있던 진족과의 충돌을 선박왕이 몸소 나서서 담판을 지은 사건.

이계 충돌 이후 처음으로 재개된 해상 운송 과정에 참가해 에너미에 의해 침몰당할 위기에 놓인 배를 구한 것 등등.

그 이야기에는 과장도 허위도 섞여 있지 않았고, 도시후는 그런 업적을 가진 아버지를 매우 존경했다.

콩가루 집안 TC 그룹의 권력 다툼에서 한발 물러나 원점부터 사업을 일으킨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시후는 아버지와 달리 바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도시후는 처음으로 배를 타고 뱃멀미로 사경을 헤맸다.

가족들은 시무룩해 있는 도시후를 잘 달랬다.

“배를 타지 못해도 괜찮다.”

“우선 물에 익숙해지면 어떨까, 시후야. 수영 교실 다녀 볼래?”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시후는 배를 타지도, 물에 익숙해지지도 못했다.

도시후는 우수한 운동 신경을 타고 났으나 도통 물에 뜨지를 못했다.

도시후는 수영 교실에서 1년간 트라우마와 망신만 적립했다.

같은 수영 교실을 다니는 두 살 연상의 육촌 형, 도원우가 있어 더 비교되는 바람에 더욱 시무룩했다.

“한심한 놈.”

수영 교실을 다니고 몇 달 지나자 도시후를 철저히 무시하던 도원우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도원우는 다가가기 힘든 타입이었는데, 이능 센터를 다니고 나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말을 나누기 편해졌다.

그 결과 또래의 친척 중에선 도원우와 비교적 친하게 되었다.

“원우 형은 수영 잘해서 좋겠다.”

“좋긴. 넌 그냥 앞으로 물 근처에서 놀지 마. 죽고 싶어?”

말은 험하지만 수영 교실에 다니는 동안 도시후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면 도원우가 가장 먼저 달려와 꺼내 주곤 했다.

언젠가 물에 뜰 날을 기대하며 도시후는 꿋꿋하게 수영 교실을 다녔다.

그러나 이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 계기가 된 게 ‘도시후 유괴 사건’이었다.

TC 그룹의 친인척의 의뢰로 도시후가 배로 납치되었고, 직접 구출 과정에 나선 선박왕은 큰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 탓에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타고난 환경을 기준으로 사람을 승자, 패자로 나눈다면 도시후는 승자에 해당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로 도시후는 패자가 되었다.

“아직도 그 사건을 마음에 두고 있나?”

“네 성적이면 은광고에 갈 수 있잖아. 원우도 은광고에 다니고 있으니 거기에 가는 게 어때?”

중학교 시절, 진로 조사 결과를 본 도시후의 부모가 걱정 어린 얼굴로 도시후를 봤다.

이런 집안에서 도시후를 태어나게 한 걸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 뱃멀미도 낫고 수영도 할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그때를 대비해서 준비하고 싶어요.”

도시후의 지망 고등학교는 전부 바다와 관계된 학과가 있는 곳뿐이었다.

“언젠가 아빠를 대신해서 바다에서 싸울 거야.”

도시후의 부모는 끝까지 말렸지만, 결국 도시후의 뜻을 존중해 줬다.

그러나 모든 해상학교의 입학시험 과목으로 수영 시험이 존재했다.

도시후는 모든 입학시험에서 과락 처분을 받았다.

해상학교 측에서는 대기업의 자제가 자교에서 죽어 나갈까 봐 몸을 사린 것이다.

결국 유일하게 붙은 곳은 플레이어 군사관학교뿐이었다.

“네 성적이면 은광고에 충분히 들어갈 텐데. 군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 것 같고…….”

“은광고는 입시 전형 일정이 늦은 편이니까 지금이라도 추가 지원을 하면 어떠냐.”

플레이어 군사관학교에 붙은 이후에도 그런 권유를 수차례 받았지만 도시후는 고집을 부렸다.

‘군사관학교에 가서 해군 커리큘럼을 받으면 돼. 괜찮아!’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도시후는 만족하기로 했다.

도시후는 플레이어 군사관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입학 전에 수석과 차석이 관례 행사처럼 받는다는 인터뷰 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장남욱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크게 긴장하여 뻣뻣하게 구는 올해 차석, 장남욱과 마주쳤다.

“그럼 장남욱 군, 자리에 앉아 주세요.”

“네, 아, 여기에 앉으면 됩니까?”

한편,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도시후는 그 자리에서 빵 터질 뻔했다.

인터뷰 진행자의 말이 다소 빨라 제 귀에는 장남욱의 이름이 좀 다르게 들렸던 탓이었다.

‘장나무꾼!’

혼자 실실거리는 바람에 이상한 놈 취급받긴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도시후는 장남욱과 반드시 친해져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장남욱 군은 은광고 실기 시험 사건에 휘말린 13조였죠. 그게 군사관학교 지원 동기와 관련이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주변에서 반대하지는 않았나요?”

“네, 하지만 군사관학교에서 배우고 싶은 게 많습니다.”

장남욱은 긴장하긴 했지만, 입학 동기에 관해서는 막힘 없이 제 뜻을 전했다.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군사관학교에 입학한 과정이 자신과 비슷해, 도시후는 장남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장남욱은 잔소리가 많긴 했지만 좋은 친구였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도시후는 옛 생각에 잠겨 있다가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주마등처럼 여러 장면과 감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 문득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후야! 야! 도시후!”

뺨을 치는 감각이 어쩐지 멀게 느껴졌다.

도시후가 퍼뜩 정신을 들고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보였다.

공용 생활관 옥상 위였다.

바로 앞에서 장남욱이 한 손에는 도시후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도시후의 뺨을 때리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있어?”

“……기억이 안 나? 네가 갑자기 옥상 위로 뛰어 갔잖아!”

도시후는 자신이 맨발로 옥상 난간 위에 서 있다는 걸 깨닫고 놀란 표정을 했다.

공용 생활관에 붙어 있는 운동장에서 동기들이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야! 그냥 떨어뜨려!”

“아오, 저 미친 새끼 잠버릇 고약하네.”

밑에는 훈련용 에어 매트가 여러 개 깔려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생도들이 추가로 에어 매트를 깔고 있었다.

“……나한테 몽유병이 있었나?”

“몽유병이 어떻게 그렇게 행동함요?”

장남욱의 뒤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벽에 기대선 남궁규연이 야전삽을 들고 있었다.

“옥상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근 건 기억함? 내가 안 부쉈으면 고생 좀 했을 듯요.”

남궁규연의 말은 사실인지 장남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시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에어 매트가 깔린 바닥과 박살 난 옥상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장남욱은 매뉴얼을 그대로 옮긴 듯한 바른 생활을 준수하는 놈이다.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건 보통 급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바로 답하기로 했다.

[의신아, 지금 통화할 수 있어?]

“어, 괜찮아.”

장남욱은 침울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오늘도 내일을 대비해서 정시에 잠들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져서 일어나 봤더니…….]

장남욱은 군사관학교 공용 생활관에서 일어난 괴사건에 관해 간략히 설명했다.

심야, 도시후가 갑자기 일어나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다 밖으로 나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장남욱은 안경을 벗고 ‘별 처녀의 눈’으로 도시후를 관찰하며 뒤따랐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집중해서 보니까 시후의 몸이 수백 가닥의 줄기에 연결되어 있었어…….]

그 이후 도시후는 무언가에 조종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용 생활관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고 한다.

마치 추적을 차단하는 것처럼 옥상 문을 잠그는 짓까지 했다고 한다.

[어쩐지 시후의 손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문을 잠근 것 같아. 정신없어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장남욱이 이동 중에 동기들에게 도움을 청한 덕에 사관생도들이 몇몇 모였다고 한다.

옥상 문은 야전삽으로 부숴서 그 뒤를 따랐다고 한다.

[난간 위에 올라간 시후를 끌어 내리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어.]

그 상황에 이르자 만약을 대비해 다른 동기는 에어 매트를 깔고, 당직을 선 조교에게 알렸다고 한다.

도시후가 중간에 정신이 들어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도시후는 신체, 정신 양쪽에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어느 쪽에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청소년기에는 이능파가 불안정하잖아? 그 영향으로 몽유병 비슷한 발작을 일으켰다고 결론지은 것 같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장남욱은 ‘저주의 씨앗’에 대해 걱정하는 듯했다.

‘아직 도시후가 죽는 시기도 아니고, 너무 허술해.’

이번 일은 장남욱이 없었더라도 충분히 막았을 일이다.

또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공용 생활관은 총 3층이다.

도시후가 생활관 옥상에서 떨어졌더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뭔가 일어날 징조인 게 분명해.’

고민 끝에 답했다.

“한 번 더 벽사 의식을 치르자.”

[……고마워! 언제 볼 수 있어?]

장남욱과 약속을 잡고 난 후에는 도시후와 TC 그룹에 관해 계속 고민했다.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게임 속의 전개와 달라진 현재 상황과 도시후와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의심 가는 정황은 하나 있었다.

‘설마 그 이벤트를 노리는 건가.’

확증은 없지만 대비는 해 두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어떤 수를 놓을지 고민하다 늦게 잠들었다.

*    *    *

“의신아, 안녕.”

“…….”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기숙사 건물을 나설 때, 지익회장 성시완과 차기 지익회장 계이담이 말을 걸어왔다.

두 사람은 아침부터 지익회 일로 바쁜 듯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아…… 할 말 있었는데.”

성시완은 주변을 둘러보다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담이도 국언이 형을 돕기로 했어.”

성국언이 홍천에서 도움을 청했던 일 말하는 건가.

계이담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는데, 결국 수락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나 보다.

“계이담 선배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계이담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익회장이 저 정도로 과묵하면 일하기 어렵지 않을까?

내가 지익회 소속이 아니니 뭐라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나도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등굣길을 서둘렀다.

*    *    *

1학년 0반 교실.

현재 등교 중인 10명이 모이자 다들 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수비대는 선생님이 맡고, 공격대는 학생들이 하는 거였지?”

“응.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랑 부담임 선생님 중에 한 분은 따라오실걸?”

“함근형 선생님이 오셨으면 좋겠다.”

“전 용쌤이요! 비행 스킬을 실전에서 어떻게 다루나 보고 싶어요.”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이번 주말, 첫 공격대 실습을 할 예정이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이날 주수혁과 안다인이 동결형 이계를 발견할 텐데.’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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