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68화 (268/925)

48. 첫 실습 (7)

황호, 송대석, 목우람 셋이 있는 구역.

한창 교전 중인 다른 이들과 달리 유독 이 주변은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접근하는 에너미의 수도 적었고, 등장하는 족족 황호의 손에 의해 에너미가 소멸당한 탓이었다.

첫 에너미는 황호와 송대석이 대화하는 도중에 등장했는데, 대화가 끊긴 것에 심기가 어지러워진 것인지 화풀이하듯 황호의 일격이 이어졌다.

파아아……!

에너미의 소멸 이펙트 사이에서 황호가 무심한 얼굴로 봉을 한 바퀴 휘둘렀다.

가볍게 손끝으로 봉을 움직이는 게, 마력을 다루는 솜씨만큼은 아니어도 봉술도 꽤 하는 듯싶었다.

‘약점이 물리 쪽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한 방에 끝내는 거지? ……아이템의 희귀도가 높은 건가? 아니, 저거 학교에서 지급한 아이템이잖아!’

황호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송대석이 경악했다.

황호가 사용 중인 건 학교에서 지급하는 R급 아이템, ‘초보 봉술사의 철봉’이었다.

철봉에 금색의 이능파를 감아 강도를 올린 것 같은데, 그렇다 치면 이능파를 컨트롤하는 능력이 무지막지한 셈이다.

‘저번에 수련회 때 옆 반 담임이 애먹은 에너미들을 단숨에 처리한 것도 그렇고, 마력을 운용해 애들을 옮긴 것도 그렇고. 이 돌아이는 대체 뭐야!’

송대석은 붉은 눈을 한 진족, 옥토연을 떠올렸다.

본인을 월궁 소속 토족이라고 밝힌 옥토연은 ‘은인’ 발언에 관해 필사적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진짜 이 돌아이가 진족인가? 옥토연 씨와 돌아이의 은인이 우리 반에 있는 거고…… 에이, 진족이 왜 플레이어 특목고 1학년 꼴통 반에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송대석 본인도 그 1학년 꼴통 반 소속이었다.

민그린이 알았다면 또 한 소리 들을 생각을 하며 황호를 노려볼 때였다.

“무척 강하시군요! 큰일 났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토벌 기여도가 0이 되어 포상금도 0이 됩니다!”

목우람은 원래 나사가 빠진 듯한 정신을 가졌기에 지금도 그리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패닉 상태였던 목우람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같은 반 아이가 활약하는 걸 보고 ‘0반의 수준은 높군! 그렇다면 레나 님도 무사하겠지!’라고 결론을 지었다.

힘을 숨길 생각이 없는 황호의 활약 덕에 목우람, 송대석은 안정을 찾았다.

합류할 시간이 단축되고, 아군의 압도적인 힘을 눈앞에서 보니 두 사람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송대석의 안심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동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현재 너의 소속을 고려해 네가 단서를 어디서 얻었는지 추측해 봤지.”

황호는 평소처럼 처웃을 기색이 없었다.

“그 단서는 망할 달토끼가 흘렸지?”

송대석이 대답하기 전에 다시 대화가 중단되었다.

……콰앙, 쿠구궁!

미궁의 벽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힘이 감지되었다.

송대석도, 목우람도 느낄 수 있을 만큼 큰 힘이었다.

무언가는 미궁 속에서 일직선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황호는 입을 다물고 힘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달리고 그 뒤를 송대석과 목우람이 따랐다.

*    *    *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와 그에 이끌려 등장한 에너미들은 홍룡 근처로 접근하지 못했다.

막 근처에 당도한 에너미 하나가 발을 내딛자 홍룡은 불꽃이 섞인 숨을 내뿜으며 이빨을 드러냈다.

화르륵!

불꽃이 발치에 닿으려 하자 에너미는 허둥대며 뒤로 물러났다.

에너미들은 홍룡을 감히 공격하지 못했으나, 그 존재감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눈치챘다.

키이이잇!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가 삼지창을 들어 올려 바닥을 내리찍으며 날카로운 소리로 울었다.

그 소리에 이끌려 에너미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주하는 대신 에너미를 불러 모아 습격할 기회를 노리기로 한 듯했다.

이 주변에 에너미가 몰려 있기라도 한 건지 새로 등장한 에너미의 수는 금방 다섯을 넘겼다.

“어, 어떡해. 포위됐어……!”

“그, 그러니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했더라…….”

승산은 거의 0에 가까워졌으니 두 사람은 도주를 목표로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둘은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홍룡을 방패로 도망친다.

긴급 탈출 아이템을 사용한다.

두 선택지를 바로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두 사람은 당황했다.

“마, 맞다. 긴급 탈출 아이템!”

이 세계에는 이계 밖으로 플레이어를 탈출시키는 ‘긴급 탈출 아이템’이 존재했다.

함근형이 몇 번이나 그 존재를 잊지 말라며 당부했는데, 둘은 까맣게 잊었다가 이제야 떠올렸다.

긴급 탈출 아이템은 사용과 동시에 바로 탈출이 되는 게 아니라 아이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떠올랐다.

손이나 발을 쓸 수 없거나 아예 잘린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긴급 탈출 아이템은 목걸이 타입으로 가공되어 목에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은 즉시 목에 걸고 있던 아이템에 이능파를 불어 넣었다.

팟!

게이지 바가 눈앞에 떠올라 탈출 아이템 발동까지 남은 시각을 표시하고 있었다.

게이지가 줄어드는 속도가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남은 시각이 0으로 변하기 전에 먼저 홍룡이 사라졌다.

“붉은 용이 사라졌어요!”

쾅, 콰앙…….

그와 동시에 계속 두 사람의 귀를 울리던 소리가 점점 커졌다.

둘은 그게 제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인지, 에너미가 내는 소리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쾅, 쾅! 콰앙……!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가 삼지창을 들어 올리며 진격하자 다른 에너미들도 뒤를 따라 일제히 권레나와 사월세음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월세음이 발을 묶기 위해 바람으로 벽을 만들었지만,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가 사용한 스킬에 최후의 방어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직 반 이상 남은 게이지 바를 보며 두 사람이 눈을 질끈 감았다.

쾅!

그러나 바로 옆에 들려온 큰 파열음에 두 사람이 눈을 크게 떴다.

“어쩐지 올라간 난이도에 비해 에너미가 적은 것 같았어. 여기에 다 있었나 보네.”

가루가 된 미궁의 벽 사이로 나타난 누군가가 손가락을 튀겼다.

딱!

팟, 파아앗! 팟!

옥빛의 공간이 터져 나가며 어두컴컴했던 미궁을 환히 밝혔다.

폭발하는 공간이 내뿜는 빛 사이로 막 나타난 존재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 달리 시안색의 긴 머리카락을 드러내고 눈을 크게 뜬 용제건이었다.

용제건은 몹시 들뜨고 황홀해 보이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플로어 마스터는 희귀도에 비해 조금 단단하네. 플로어 버프를 받는 중인가 봐.”

전열에 있던 에너미 셋은 소멸했지만,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와 그 뒤에 있는 에너미들은 아직 건재했다.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의 갑주에 금이 갔으나 삼지창 끝에 모인 이능파의 밀도는 여전했다.

“저건 내가 맡을게. 다른 에너미들 좀 처리해 줘.”

“네!”

용제건의 뒤로 맹효돈, 한이, 민그린이 등장했다.

방금까지 일직선으로 미궁의 벽을 부수며 이곳으로 전진한 듯, 그들이 잔해를 넘어오는 게 보였다.

‘계속 울리던 그 소리는…… 에너미가 아니라 용제건 선생님이 벽을 부수는 소리였나?’

미궁의 벽을 다 박살 내고도 아직 힘이 넘치는지, 용제건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공간술로 플로어 마스터의 움직임을 봉인한 용제건이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 급히 실망한 얼굴을 했다.

용제건이 권레나와 사월세음에게 말을 걸었다.

“얘들아, 방금 여기에서 용 못 봤어?”

용제건 선생님은 홍룡의 기운을 감지하고 여기로 달려오신 거구나!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환몽 경매장 사건 때, 염준열이 말려든 걸 보고 붉은 사자와 용족들이 얼마나 격노했는지 금방 떠올랐다.

허둥지둥 긴급 탈출 아이템 발동을 취소한 두 사람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모아 답했다.

“아니요! 용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뇨, 용이요? 여기에는 어인형 에너미 밖에 없는데요!”

권레나와 사월세음의 말투는 몹시 꾸며 낸 티가 났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다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여기 그을음이 남아 있는데, 너희 능력은 불과는 관계없잖아.”

“어, 어 그러니까……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가 삼지창으로 빛을 쏘던데, 그 흔적 같은데요!”

“맞아요! 그럴 거예요!”

“……그래?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가 부하도 공격했나? 일부 에너미도 탄 흔적이 있는데.”

“그러니까, 그게…….”

회화는 중간에 끊겼다.

황호를 선두로 송대석과 목우람이 등장한 탓이었다.

“그린아! 괜찮아?”

“레나 님! 무사하십니까!”

권레나는 저 ‘레나 님’이라는 호칭을 거북해했지만, 이번만큼은 대화를 끊어 준 게 감사한지 밝은 얼굴로 응했다.

그때, 이계가 실체를 잃고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뮬레이션이 끝날 때 나오는 이펙트잖아! 뭐야, 여기 공략된 거야? 부담임이 쓰러뜨린 저게 보스였어?”

“아니야. 보스는 보스 룸에서 이계를 제어하니까. 아직 우리는 보스 룸에 진입하지도 않았어.”

“그럼 보스는 누가 잡은 거냐? 아…… 그러고 보니 그놈이 없네.”

“그래. 아마 여기에 없는 사람이 쓰러뜨렸겠지.”

맹효돈과 한이가 대화하는 사이, 통신이 재개되었다.

각자의 디바이스가 해당 좌표의 이계 공략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를 수신했다.

―플레이어SAT-K가 해당 지역의 기록 기기에 성공적으로 접근하였습니다.

―플레이어SAT-K가 이계 공략 과정의 전후 관계를 분석합니다.

―공략 최대 공헌자: 무명의 초신성

홀로그램 안내문을 본 아이들이 납득한 얼굴을 했다.

“부반장 뭐 하나 했더니 혼자 보스 잡으러 갔나 보네.”

“……아직 전 에너미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끝입니까?”

“알바 열심히 해라. 이상한 거 사지 말고.”

“네? 저는 이상한 것을 산 적이 없습니다.”

공헌도도, 소지금도 0인 목우람의 헛소리를 들으며 전원의 안부를 확인했다.

부상자는 권레나와 사월세음 두 사람뿐이었는데, 그나마 경상이었다.

‘의신이는 보스를 공략하면서도 우리를 보호한 거군요! 역시 대단해요!’

사월세음은 혼자 공략 완료 안내 홀로그램을 다시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레나도 적벽괴도님을 만난 적이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언제, 어디에서 만난 거지……. 적벽괴도님이 홍룡을 사용한 건 환몽 경매장뿐인 걸로 알고 있는데.’

사월세음의 의문은 깊어졌다.

한편, 추궁을 멈춘 용제건은 공략 최대 공헌자에 적힌 이명을 보고 실망과 황홀감이 섞인 기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용제건은 홀로그램을 한 번, 대놓고 거짓말을 한 권레나와 사월세음을 보고는 온전히 황홀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반 아이들 몇몇이 질린 얼굴을 하다 용제건으로부터 거리를 뒀다.

*    *    *

보스 에너미가 쓰러진 걸 확인한 후.

상보심금파를 다시 아이템창에 넣고 회복 아이템으로 자상을 치료했다.

보스 룸에 진입하자마자 곧바로 갈래를 사용해 끝을 낼 생각이었지만, 보스 에너미의 민첩도가 예상보다 높았고 내 정신력과 집중력은 상당히 떨어진 상태라 갈래가 빗나가고 말았다.

―……굉장한 정신력이군. 보스 룸에 들어간 후에도 10초 넘게 홍룡을 유지할 줄은 몰랐다.

원격 조종하는 홍룡으로는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를 처리하고 애들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고, 또 그쪽에 힘을 쏟으면 보스 에너미를 처리하는 데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홍룡 그 자체가 아니라 홍룡이 부를 다른 존재에게 걸기로 했다.

그 존재가 용제건이었다.

‘용제건은 염준열과 수업을 하는 구교사에도 잠입해서 내 가면을 벗기려 했었지. 용제건의 성격상 반드시 올 줄 알았어.’

예상대로 홍룡을 부르자 용제건이 바로 감지하고 미궁의 벽을 부수며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용제건은 염준열의 모습을 빌린 내 얼굴과, 내가 다루는 버전의 홍룡을 죽 보고 싶어 했다.

용제건이 멀리 있던 탓에 보스 룸에 들어간 후에도 아직 시간이 필요해 무리해서 홍룡을 유지해야 했지만.

“거래는 언제 할까요? 그 모습으로는 아이템 카드를 받아갈 수 없을 텐데요.”

―조만간.

조만간이라니.

설마 내 수명이 다할 때쯤 거래하겠다, 이런 류의 말장난은 아니겠지?

―호족의 신역에서는 활동하기가 어렵다. 계절이 바뀌기 전에 내 계약자를 대리로 조만간 만나러 가마.

지금은 가을이다.

계절이 바뀌기 전이라면, 마계 시나리오가 있을 시기까지 시간은 충분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델렌티움의 실루엣이 점점 희미하게 변했다.

―말을 편하게 하는 걸 허락하마. 내 조건을 받아들일 때는 말을 놓지 않았나.

그랬었나?

생각해 보니 조건 운운할 때 말이 짧게 나온 것 같았다.

거의 투명해진 시델렌티움이 손가락을 들어 내 옷소매를 가리켰다.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하지. 변명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다.

변명이라니, 무슨 말인가.

의문을 표하기 전에 시델렌티움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 혹시 이거 말인가.’

회복 아이템으로 치료는 마쳤지만, 소매가 피로 젖었다.

셔츠가 검은색이다 보니 티가 별로 나진 않겠지만, 변명을 준비하는 대신 소매를 접어서 걷어 올렸다.

그 직후, 이계가 허물어지고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변명을 준비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되었다.

“……피 냄새가 나는군.”

망할 노친네는 호랑이답게 후각이 예민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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