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81화 (281/925)

49. 스포츠 교류전 (11)

이계 충돌이 일어난 한국의 4대 재벌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 세대에 강한 이능을 타고 난 이들이 있다는 것.

황명 그룹의 주요 구성원은 호족이었고 남궁, 주오, TC 그룹의 현 총수도 이능을 타고 났다.

그 탓에 이들이 한 번 반목하면 경제적, 사회적 손실이 막대했다.

‘주오의 난’이 대표적인 사례였는데, 그룹 내의 갈등이 SSR급의 이계 수십 개가 미치는 영향보다 더 큰 피해를 줬다.

그래서 주오의 난 이후로 플레이어의 협회는 4대 그룹을 죽 주시해 왔다고 한다.

그 덕에 제보를 받자마자 도시후의 정신 간섭 건에 TC 그룹의 임원이 엮여 있었다는 걸 밝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일반 이능파 검사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타입의 저주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홍규빈은 TC 그룹의 임원에게 매수된 간호 장교가 도시후의 검사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이어 홍규빈은 TC 그룹에 엮인 비화를 풀었다.

―예전부터 TC에서 곧 분열할 조짐이 있었어. 통신, 운송, 이계 산업 부문은 TC 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될 예정이다.

증권가에서도 괴소문으로 취급받을 만한 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저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4대 그룹 암투가 벌어질 때 썩어 있던 TC 그룹의 비화가 풀리며 언급되던 사실이었다.

단, 게임 속에서는 그런 조짐이 있었다고 뒤늦게 밝혀질 뿐, 실제로 계열 분리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계열 분리를 주도하던 TC 그룹의 차기 총수가 잠실 야구장 사건으로 중상을 입어 일선에서 물러나고 다른 이들도 하나하나 사라졌던 탓이었다.

―주가 문제 때문에 외부에 공표하지는 않았지. 현재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있어. 찬성파는 점잖게 대응하고 있지만 문제는 반대파다.

―찬성파는 TC 그룹의 차기 총수…… 은광고의 현 학생회장 도원우 학생의 친아버지가 있고, 또 왕년에 이름을 날리던 선박왕도 있지.

TC 그룹 내의 대치 구도를 들으니 대략적인 인과 관계가 파악되었다.

이 세계의 결말을 고려하자면 TC 그룹의 차기 총수나 도시후가 노려진 원인은 복합적이라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흑막의 의도와 무관하게 TC 그룹 소속원이 사리사욕을 위해 저들을 노리는 게 확실해졌다.

―선박왕은 그룹 운영에는 한발 물러서 있지만 해운 쪽 지분도 많은 데다 인망이 두텁고 영향력이 커.

―선박왕을 직접 제거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쉽지 않지. 그래서 약점이 많은 그 아들을 노렸을 거다.

도시후는 잘난 놈이었지만 물에 약한 주제에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뛰어드는 미친놈이며 이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본인이야 꿈 때문에 그런다지만 정신 이상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을 거고 마음의 빈틈도 많아 마족이 간섭하기 쉬울 거다.

그 정신을 파고들어 선박왕의 외아들 도시후를 중범죄자로 만들어 죽이면 선박왕의 입지는 박살 날 거다.

한국 사회의 통념상 가족이 저지른 죄가 자신이 무관하더라도 연좌제라도 적용된 것처럼 평판과 입지가 무너진다.

거기에 더해 법적인 보호 관계에 놓였다면 책임을 따져 금전적인 책임을 모두 져야 했다.

홍규빈의 설명을 들은 내가 개막식에 있을 도시후를 조종한 도원우와 생도회장 암살 계획을 전했다.

―그렇구나. 어른들의 사정에 더해서, 도시후와 도원우 두 학생은 우수하니까 제거해 두고 싶었겠지.

홍규빈은 놀라지도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문제는 TC 그룹 임원에게 돈을 받은 이가 군 소속이라는 건데…….

TC 그룹 임원의 사주를 받아 도시후의 검사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간호 장교였다.

그 간호 장교는 도시후의 아버지, 선박왕이 해군과 협력해 작전을 수행할 때 같은 부대에 있던 인물로 도시후와 선박왕의 신뢰가 두터웠다고 한다.

홍규빈은 오고 간 금액도 알려 줬는데, 군법을 어기고 전우의 아들을 살인범으로 만들 만한 금액이라기엔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애매한 돈이었다.

―그래도 이번 건은 규정 집행부가 나설 거다. 피해자와 가해자 중에 플레이어가 있으니까.

그런데 플레이어라고는 하지만 간호 장교는 플레이어군 소속 군인이다.

군인은 플레이어 특별법보다 군법을 먼저 따라야 했고, 범죄를 저지르면 군대 내의 사법 기관의 규제를 받게 된다.

이번 일에 규정 집행부가 나설 수 있을까?

―사관학교 안에 협력자가 있어. 그 아이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먼저 심문할 예정이야.

그러나 예외도 있다.

플레이어 군인이 범죄를 일으킬 경우, 심각한 인명, 재산 피해를 낼 가능성이 있어 군사경찰을 기다릴 수 없는 경우에 기민한 대처가 필요했다.

군사 시설, 병무 시설 등이 있는 군사보호구역 밖에서 체포된 플레이어 군인의 경우, 군사경찰의 요청이 있어도 일정 기간 동안 규정 집행부가 직접 심문하는 게 가능했다.

사관학교 내부의 협력자는 그 간호 장교가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부지 밖, 즉, 군사보호구역 밖으로 나가도록 유도하면서도 도주를 방지하는 데에 협력할 예정이라 한다.

‘‘그 아이’라 한 걸 보면 사관생도 같은데.’

준군인 신분으로 그런 짓을 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행위일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말려 보긴 했는데, 들어주질 않았어. 내 여동생은 한 번 고집을 부리면 꺾지 않아.

그 협력자는 홍규빈의 여동생인 듯했다.

나중에 홍씨 성을 가진 여자 사관생도에 관해 장남욱에게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통화를 마쳤었다.

‘홍규빈 남매가 나섰으니 그쪽은 문제가 없겠지.’

문제는 이쪽이다.

제갈재걸의 언령으로 묶인 아바리티아의 사제를 바라봤다.

아바리티아의 사제는 언령으로 인해 완전히 무력화된 듯 독기를 발산하지도, 이능파를 운용하지도 못했다.

그저 내가 쓴 까마귀 가면을 향해 입을 뻐끔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성대를 비롯한 발성 기관의 기능을 막아 둔 탓에 마족이 입술을 움직여 봤자 바람 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마족의 눈빛은 분함이나 나를 향한 증오를 품었다기 보다는, 뭔가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리가 안 나도 거슬려.’

〈해당 캐릭터의 스킬, ‘언령’을 사용합니다.〉

파아아……!

플레이어의 궤적으로 발동한 제갈재걸의 스킬, 언령을 사용해 손끝을 움직일 때마다 허공에 글자가 하나씩 새겨졌다.

허공에 몇 획 추가되기 무섭게 마족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멈췄다.

소리로 발동하는 타입의 이능력을 막기 위해 발성 기관을 막아 둔 탓에 자칫하면 질식할 우려가 있어 입은 움직이게 했는데, 폐 쪽에 구멍을 뚫어 직접 공기를 넣는 한이 있더라도 미리 막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족의 얼굴 근육이 입을 벌린 상태로 굳어져 버렸다.

“주제를 모르는군. 제갈재걸에게도 직접 손을 쓸 수 없어 교활한 책략을 짜 낸 네 놈이 나와 이자에게 대적할 수 있을 리가.”

30대의 모습을 한 황지호가 그렇게 말하며 약을 올렸다.

황지호는 완전히 무력한 마족을 병균 취급하듯 결계를 하나씩 입혀 가며 외부와 격리했다.

‘어?’

언령으로 묶인 마족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한순간이지만 마족의 몸으로부터 이능파가 다시 피어올랐다.

‘이 마족이 부린 이능파가 아니야. 혹시 마신이……!’

언령을 사용하기 전에 황지호가 발길질을 했다.

“헛수작 부리지 마라.”

퍽!

황지호가 목젖을 걷어차자 아바리티아의 사제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가 마지막에 무슨 짓을 하려는 건 분명했는데, 그게 실패로 돌아간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미안하군. 제정신을 유지한 채로 붙잡으려 했는데.”

황지호가 혀를 찼다.

애써 기절시키지 않은 이유는 일부 마족들이 모시는 상위 존재, ‘마신’과 꿈을 매개로 접촉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니 뭐라 하기 그랬다.

‘기절하기 전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지금 아바리티아의 사제가 한 무언가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인 듯했다.

그래도 마족의 주변에 몇 번이나 탐지 스킬을 사용해도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우선 돌아가라. 나는 이자를 부하에게 맡긴 후 학생의 모습으로 합류하겠다.”

이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곧 통신이 부활하고 마족의 ‘눈’도 다시 이 주변을 살필 것이다.

그 전까지 나는 다시 신문부원 조의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아바리티아의 사제를 사전에 준비한 통신이 단절된 차량 안에 감금해 이송할 필요가 있었다.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는 나중에 알아내면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동을 시작했다.

가면을 벗고 교복을 입었을 때, 통신 차단망을 펼친 돔의 지붕이 열리며 다시 통신이 복구되었다.

통신이 재개되자 홍규빈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홍규빈] 무사히 간호 장교를 확보했어.

[홍규빈] 심문 후에 다시 연락할게.

홍규빈은 오늘 야근이 확정되긴 했지만, 더 큰 고초를 겪을 여동생을 생각한 건지 투정 부리지 않았다.

*    *    *

도원우와 군사관학교 고등부 생도회장의 개회 선언에 이어 선수단 대표들의 선수 선서가 있었는데, 그 선서가 끝날 때쯤엔 나와 황지호는 무사히 0반 아이들이 있는 곳에 합류할 수 있었다.

“부반장이랑 돌아이 왔다.”

“좀만 더 일찍 오지! 개회사 직전에 한 퍼포먼스 엄청났어!”

“개천신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검무였는데, 진짜 벽사 스킬을 쓰더라……. 우리 학교 사람 같은데 누굴까.”

반 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아쉬워하는 얼굴로 벽사의 검무에 관해 이야기했다.

당연히 그 퍼포먼스가 굉장했을 거란 건 잘 안다.

무려 개천신화 속에 직접 등장한 내 주력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재현한 거니까.

백호군의 검무를 못 본 나와 황지호를 위해 반 아이들이 열심히 검무를 묘사했는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족과의 대치가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의신아, 지호야, 저기 봤어요? 플레이리스트에서 촬영 왔어요!”

나와 황지호가 자리에 앉자 사월세음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응원 단상을 가리켰다.

응원 단상 위에는 염준열이 있었다.

염준열이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며 손을 흔들다가 황지호를 보며 아주 조금 얼굴을 굳히는 게 보였다.

신화계 호족이 10대 청소년 사이에 앉아 있는 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황지호는 태평하게 말했다.

“독고미로의 노래는 나쁘지 않지. 촬영을 허가했다.”

황지호는 플레이리스트의 촬영 여부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플레이리스트는 현재 출연자끼리 2인 1조로 짝을 이루어 미션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독고미로의 파트너는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내장산의 성자였다.

상승세라곤 하지만 겨우 데스 매치를 통과한 독고미로는 여태까지 성적을 종합하면 최하위에 해당했기에 밸런스를 고려해 최상위의 성적을 이어 가는 내장산의 성자와 짝을 이루게 되었다.

“축구 시합 전까지 개막식에 이용된 무대를 치우고 그라운드를 정비할 거다. 그사이에 플레이리스트를 촬영할 예정이었다.”

반 아이들이 무대를 기대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흰색의 구교복을 입은 독고미로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와아아아―!

데스 매치 버스킹 영상으로 은광고 유명인이 된 독고미로를 향해 환성이 쏟아졌다.

독고미로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카메라가 테스트 촬영을 하는 순간 얼굴을 굳히긴 했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자연스러워지긴 했다.

그때,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한이는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무대 울렁증이 있어서 사람이 보고 있으면 노래 못했는데. 사람이 있다고 떠는 타입은 아닌데 노래는 다른가 봐. ……나는 걔 표정이 굳고 공기가 좀 울린다는 차이밖에 못 느꼈지만.

그러나 한이의 그 말과 달리 독고미로는 무대가 아닌 카메라를 무서워했다.

‘그러고 보니 한이는 독고미로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반 아이들을 발견한 독고미로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한이는 복잡한 얼굴로 무대 위의 독고미로를 바라봤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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