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96화 (296/925)

51. 학생 대표 총선거 (4)

내 잘못된 화제 선택으로 분위기가 망한 게 아닌가 했지만, 후배를 배려해 주는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의 화술 덕에 식사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저녁 식사는 해산물 코스 요리 레스토랑에서 했다.

염준열의 입맛에 맞춰 주요리에 해산물이 포함되어 있고 향신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천동하를 위해 간을 직접 조절할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버터 활전복 구이는 평판이 좋아서 염준열과 천동하가 가족과 함께 다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후 둘은 통학생이라 다시 학교 쪽으로 올 필요가 없었지만, 소화도 할 겸 대화도 더 나눌 겸 학교 앞까지 나를 바래다줬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

“기사 기대할게.”

염준열과 천동하를 위해서 좋은 기사를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기숙사로 향했다.

‘아직 회색이네.’

기숙사 내 방.

방에 도착한 직후, 창문도 열지 않고 바로 ‘리플레이’ 기능란을 확인해 봤다.

유상훈에게 두 번째로 사용할 때는 하루 만에 다시 리플레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손민기는 그렇지 못했다.

원인 분석을 위해 유상훈과 손민기의 차이점을 떠올려 봤지만, 나이와 성별을 빼면 유사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저런 핵폐기물 쓰레기를 유상훈한테 갖다 대는 게 미안해졌다.

‘초기화까지의 시간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황지호의 말로는 손민기는 그날 잠든 직후 거의 곧바로 깨어났다고 한다.

끔찍한 꿈을 꿨는지 비명을 질러 대며 몸부림을 쳤다는데, 손민기와 대화하는 상대가 아무도 없어 아무리 감시하고 엿들어도 그 속을 캐낼 수 없었다고 한다.

외조부가 손민기의 보호자로 있긴 한데 빨대가 달린 죽그릇을 주기적으로 가져가는 것 외엔 아무런 상호 작용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손민기는 하루 내내 디바이스를 들여다본다지만, 디바이스를 통해 대화하는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손민기가 디바이스를 열 때 뒤에서 확인해 보니 유상희에게 일방적으로 인사 메시지를 보냈다는데, 유상희는 몇 주 째 답장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고 한다.

‘저번에 망설이는 척하면서 갖고 놀고 있다고 했지.’

팔다리가 잘린 손민기가 무슨 생각으로 치유 이능을 가진 유상희에게 들이대는지 짐작이 가서 불쾌해졌다.

유상희의 스트레스가 풀린다면야 말릴 수는 없지만, 그나마 이제 질린 건지 답도 안 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손민기의 외조부와 접촉해서 의사를 붙이기로 했으니, 그걸 기다려 봐야지.’

황명 그룹 쪽에서 의사를 붙여 속내를 캐내고 이능파 검사를 할 예정이라는데, 검사를 통해 리플레이의 비밀이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리플레이의 기능이 조금이라도 향상되길 바랄 뿐이었다.

‘손민기에게 계속 사용해도 단계가 상승하지 않으면, 다른 캐릭터에게 사용해야 하나.’

회색으로 변한 명단을 확인해 봤지만 사용할 마음이 드는 대상은 몇 되지 않았다.

그럴 마음이 드는 건 끽해야 환몽 게이트의 변순회나 최편득 같은 놈 정도였다.

‘일단 이번 건은 기다려 보자.’

매일 리플레이 초기화 여부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창을 닫았다.

딩동.

창을 닫은 직후, 디바이스 메시지 수신 알람이 들렸다.

아직 야근 중일 홍규빈이 보낸 메시지였다.

[홍규빈] 의신아, 고맙다. 덕분에 그 간호 장교의 심문을 완료했어.

오늘 김신록이 협회에 파견됐다고 했는데, 김신록은 하루 만에 성과를 올린 건가.

5천 년 산 후예의 힘이 발휘된 덕일까, 함께 따라간 아버지의 버프 덕일까.

둘 다일 가능성이 클 것 같았다.

‘일은 잘 풀리긴 했지만 이젠 호족과 내가 협력 관계에 있다는 걸 대놓고 알린 셈이 됐네.’

홍규빈은 공항에서 나와 황지호가 같이 있는 걸 본 순간 알아챘겠지만, 이번 건으로 나와 호족의 관계를 완전히 확정 지어 준 꼴이 되었다.

[홍규빈] ……그런데 그 김신록 선생님,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고문하더구나.

[홍규빈] 제갈 선생님이랑 같이 있는 걸 몇 번 봤는데…… 음…….

홍규빈은 김신록의 살벌한 문구 고문을 본 것 같다.

그래도 제갈재걸 같은 강직한 교사가 김신록에게 고문당할 일이 있을 턱이 없는데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다.

[홍규빈] 하여튼 덕분에 이번 일을 사주한 이들의 명단을 얻었다. 규정 집행부에서 명단 외에도 추가로 증거를 잡아서 이미 신병을 확보한 상태야.

[홍규빈] 이번 건으로 TC 그룹의 파벌 하나가 무너지겠지.

홍규빈의 말투는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한동안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나] 홍규빈 팀장님?

내가 되묻자 조금 뒤에 답 메시지가 왔다.

[홍규빈] 의신아, TC 그룹이 이름을 한 번 바꿨다는 것 알고 있니?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답은 알고 있었다.

역사가 긴 대기업이 영어 이니셜로 된 기업명을 가진 경우 보통 한글, 한자 이름에서 영어로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어로 표기했을 때 발음하기 어려우면 접근성이 떨어져 여러모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TC에서 ‘T’는 ‘도’ 씨에서 따온 거고, ‘C’는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성씨에서 따왔다고 들었는데.’

[나] 네. 주오 그룹이나 황명 그룹처럼 우리말을 썼다고 알고 있어요.

[홍규빈] 그럼 TC가 한때 우리나라 제1그룹이 될 뻔한 것도 알겠구나.

홍규빈의 말대로 TC 그룹이 국내 제1그룹이 될 뻔한 건 TC 그룹이 이름을 바꾸기 전 이야기였다.

TC 그룹은 이계 산업에 제일 먼저 손을 댄 기업으로, 독자적인 기술 개발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 때문인지 그룹 지분과 경영권을 두고 창업자와 기존 경영진들, 대주주들이 혈투를 벌인 바람에 가장 먼저 콩가루화되었다.

[나] ‘T와 C의 이혼 소송 사건’ 이전의 얘기 말씀하시는 건가요?

[홍규빈] 그래.

‘T와 C의 이혼 소송’은 TC 그룹이 갈라지는 과정을 대표하는 사건이었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규모의 재산 분할이 이뤄진 이혼 소송 결과 몇 번이나 대립 구도가 뒤집히고 계열 분리가 이어져 TC 그룹의 기세는 크게 꺾였다.

결과적으로 그룹 규모가 축소되고, ‘T’, 즉 도씨가 주도권을 잡아 지금의 TC 그룹이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홍규빈의 의도가 짐작이 갔다.

홍규빈이 굳이 TC 그룹의 옛이야기를 한 건 그 ‘C’ 탓일 거다.

[나] 그 ‘C’가 이번 건과 관련이 있나 보네요.

[홍규빈] 이쪽은 증거가 없긴 해. 그래도 이번에 연루된 임원 다수가 그 ‘C’와 연관이 있을 거야.

그럼 증거가 없는데 그들이 ‘C’와 연관되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내가 의문을 품은 걸 알아챘는지 홍규빈이 메시지를 덧붙였다.

[홍규빈] 옛날에 그 사람들이 ‘C’에 관해 자주 언급했어. 교류를 한다는 것도 들었지. 꽤 예전 일이기도 하니 내 말은 증거가 안 되겠지만.

홍규빈은 예전에 TC의 임원들과 교류를 가졌나 보다.

그것도 자주.

[홍규빈] 이 건은 더 알아보고 연락하마.

그 메시지를 끝으로 홍규빈은 다시 일하러 갔다.

‘아, 홍규빈의 여동생에 관해 물어볼걸.’

야근 중인 홍규빈을 붙들고 여동생에 관해 묻기는 좀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묻기로 했다.

마침 그 인물은 내가 참여한 대화방에 열심히 메시지를 투척하는 중이었다.

[장남욱] 상훈아, 오늘도 경기 잘 봤어. 응원단은 보통 응원석을 마주 보고 있으니까 전부 보진 못했지만.

[유상훈] ㅇ

그 이후로 장남욱의 경기 감상문이 수십 줄 이어졌다.

장남욱한테는 악의가 전혀 없겠지만 진 경기 묘사를 저렇게 길게 쓴 걸 보고 있으면 유상훈의 속이 터질 거다.

메시지는 전부 읽음 처리되었지만 유상훈은 어느 순간부터 ‘ㅇ’ 조차 찍지 않았다.

장남욱이 유상희가 선보인 응원 동작에 관해 언급하며 칭찬할 때는 민망한 건지 ‘ㅡㅡ’라는 이모티콘을 하나 입력하긴 했지만.

[장남욱] 그럼 내일 네 활약을 기대할게. 나도 최선을 다해 응원할 거야.

[유상훈] ㅎ

그 대화를 끝으로 메시지방이 잠잠해졌다.

‘여기에서 그 여동생에 관해 좀 묻긴 좀 그런데.’

유상훈은 도시후 사건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 괜히 시합 전날에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진 않았다.

짧은 고민 끝에 장남욱에게 1 대 1로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나] 혹시 홍씨 성을 가진 여자 생도가 있어?

사관학교 고등부는 여자 생도가 적으니 아마 어렵지 않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거다.

[장남욱] 우리 기수에는 없어.

홍규빈의 여동생은 장남욱과 같은 기수가 아니었나?

홍규빈에게 협력해 간호 장교를 빼돌리는 건 굳이 같은 기수가 아니어도 가능하긴 할 거다.

[장남욱] 의신아, 혹시 시후 사건이랑 관련 있는 질문이야?

이건 대답해도 괜찮을지 아닐지 판단이 쉽게 서지 않았다.

그래도 장남욱이 갑자기 되물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홍규빈의 여동생의 안전도 관련이 있으니 답하기로 했다.

[나] 어.

[장남욱] 저번에 지리산으로 틸트로터 운전해 왔다는 애 기억나?

그거야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이계 시뮬레이터를 야전삽으로 부순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 출신의 괴짜 아닌가.

[장남욱] 사실 우리 기수 중에 걔만 교류전 개회식에 안 왔어. 특이한 애라서 단독 행동을 해도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장남욱] 교류전 개회식 다음 날 아침, 걔가 징계실로 끌려갔어. 원인은 생도들에게 고지가 안 됐는데 아무래도 시후 사건이랑 연관된 것 같아.

[장남욱] 걔가 군인 하나를 임의로 협회에 넘겼다는 말이 있는데, 그거 시후 검사를 조작한 간호 장교 말하는 거지?

도시후의 검사 결과를 조작한 간호 장교 건은 비밀스럽게 처리되고 있지만, 기수장인 장남욱에게 귀띔해 준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 여동생이 분명해.’

홍씨 성을 쓰지 않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 그래.

[장남욱] ……그렇구나.

[나] 걔는 괜찮아?

장남욱은 길게 홍규빈의 여동생의 안부를 전했다.

[장남욱] 규연이가 국방부 연구소에 오래 있었던 것도 있고, 교칙 위반 여부도 따지기 모호해서 그런지 그 이상으로 금방 풀려나긴 했어.

[장남욱] 지금은 이능 사용 봉인구에 묶인 후유증 때문에 쉬는 중이야.

[장남욱] 어디 잘못되거나 다친 곳이 없는지 내일 다시 확인할게.

장남욱은 직접 그 이능 사용 봉인구에 묶여 징계실에 가 본 적이 있으니 지금 그 상대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알 거다.

그 이후로 장남욱이 상대를 걱정하는 말이 줄줄 이어졌다.

‘그런데 방금 장남욱이 메시지로 규연이라고 했지.’

홍규빈.

규연.

어쩐지 비슷한 이름이었다.

그 괴짜는 장남욱과 같은 기수다.

그런데 장남욱과 같은 기수 중에 홍씨 성을 쓰는 여자 생도는 없다.

장남욱이 진정하자 확인차 물었다.

[나] 그 규연이라는 애 성씨가 ‘홍’이 아니야?

[장남욱] 응? 아니야.

[장남욱] (링크)

장남욱은 링크를 하나 첨부했다.

링크를 눌러 확인하니 사관학교 보도 자료 페이지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사관학교 고등부에서 치러진 공모전 시상식 사진이 있었다.

최상단에 대상을 수상한 생도의 이름과 사진이 보였다.

[대상 남궁규연]

그 이름과 정중앙에 있는 여학생의 사진을 보니 홍규빈의 비밀을 알 것 같았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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