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95화 (295/925)

51. 학생 대표 총선거 (3)

오늘 농구는 졌다.

3차전까지 갈 거라는 유상훈의 예상이 맞은 셈이다.

이번 경기 MVP는 사관학교 고등부의 파워 포워드였지만, 제일 거슬렸던 건 도시후였다.

어찌나 얄밉게 유상훈을 수비하는지 상대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수비 뭣같이 하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상훈이 전담 마크한 게 의신이 친구죠? 역시 의신이 친구라서 그런지 잘하시네요!”

“그 마크당한 상훈이란 애도 부반장 친구 아니야? 부반장 빵셔틀이 사 온 빵 몇 번 같이 먹은 애 같은데…… 농구하는 애였구나.”

경기 종료 후, 사월세음과 민그린이 한마디씩 했다.

유상훈이야 그렇다 쳐도 경기 시작 전에 꾸역꾸역 우리 쪽 응원석까지 와서 인사하는 도시후 때문에 도시후가 내 친구 취급받게 생겼다.

그냥 아는 애라고 했으면 좋겠다.

“부반장 친구 놈 수비 뭣같이 하네.”

한편, 농구 시합에 과몰입한 송대석이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그렇게 말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나는 역시 마음이 잘 맞는 것 같다.

하여튼 저런 소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사관학교 도시후는 수비를 잘했다.

“내일 폐막식인데 결판이 안 났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내일 폐막식을 마지막으로 사관학교 고등부와의 첫 스포츠 교류전이 끝나게 된다.

민그린의 질문에 홀로그램으로 일정표를 띄우며 답했다.

“폐막식은 해가 질 때 해. 아직 2승을 가져간 팀이 나오지 않은 종목에서 그 전에 추가 시합을 해서 승부를 낼 거야.”

“오늘 스코어를 보니까…… 남은 시합은 농구와 아이스하키네요.”

그 이후론 아이들과 다른 종목의 스코어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농구와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모든 시합에선 이미 한쪽 학교가 2승을 가져가 승부가 난 상태였다.

‘박승현의 친구가 MVP를 한 축구에선 이겼고, 사관학교 고등부 쪽에 굉장한 쿼터백이 있다는 미식축구에서는 졌네.’

각 시합의 득점 장면은 전부 동영상 클립으로 따로 저장되어 있었는데, 이능 사용은 금지되었다고 하나 일반인을 웃도는 플레이어들의 신체 능력 덕에 화려한 플레이들이 돋보였다.

영상을 재생하자 민그린은 선수들의 격렬한 플레이 장면을 스케치하듯 손가락을 움직였고, 사월세음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송대석은 농구에서 진 게 분한지 계속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경기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자 점점 얼굴을 폈고 민그린이 내일도 농구 시합을 보러 가자는 말에 완전히 기분이 나아졌다.

반 아이들이 기운을 차린 걸 확인하고 나도 안심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    *    *

학교 앞 스터디 카페.

천동하와 체스 대국을 몇 번 방문했던 곳이다.

오늘은 염준열과 천동하 둘과 만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예약한 스터디 룸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체스판을 펼친 두 사람이 보였다.

체스판 옆에 홀로그램 기보를 펼치고 무언가를 메모한 흔적이 보이는 게 대국이 아니라 복기나 묘수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이건 나와 천동하가 했던 대국 같은데.’

둘이 내 눈앞에서 내 대국을 복기하고 있으니 속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이었다.

프로 기사의 명대국도 많은데 왜 하필 내 대국인가.

아니, 저건 천동하의 대국이기도 하니까 참고할 만한 대국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의신아, 어서 와. 조금만 하면 끝날 것 같은데 기다려 줄 수 있어?”

“미안. 너 오기 전에 끝내려고 했는데 좀 안 풀리는 수가 있어서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둘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바쁜 두 사람을 인터뷰하겠다고 부른 건 나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두 사람의 비어 있는 커피잔을 보며 말했다.

“전 괜찮아요. 커피 더 드실래요?”

두 사람은 사양했지만, 내 몫의 음료를 가지러 갈 겸 가져오겠다 말하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커피 머신과 냉장고가 스터디 룸에 각각 마련되어 있어서 별 수고도 아니었다.

“그럼 난 에스프레소 룽고로. 머신에서 가장 가까운 캡슐 디스펜서에 있어.”

염준열이 캡슐 커피 머신 쪽을 가리켰다.

천동하는 그 옆에 있는 전기 포트를 흘끗 봤다.

“뜨거운 물만 가져와 줘.”

믹스 커피는 직접 준비한 건가.

천동하는 볼 때마다 믹스 커피를 마시는 것 같다.

내 몫의 오렌지 주스를 포함해 음료를 들고 오니 둘이 하던 복기도 어느덧 마무리되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아뇨,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대국 복기 과정도 흥미로웠어요.”

이 자리를 주선한 건 염준열이었다.

원래 스포츠 교류전에 관한 인터뷰는 디바이스를 통해 간단히 마칠 예정이었다.

그런데 내 착한 제자에게 학생 대표 총선거를 언급하자 천동하와 저녁 약속이 있으니 함께 보자는 제안을 했다.

내 선량한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신문부 후배를 배려해서 마련한 자리이므로 몇 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었다.

“무슨 시합 보셨어요?”

“미식축구. 연장전까지 갔는데 아깝게 졌어.”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사관학교 교류전 소감에 관해 이야기했고, 곧 자연스럽게 인터뷰로 이어졌다.

인터뷰는 주로 염준열이 화제를 던지면 천동하가 한마디씩 거들고 내가 추가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게 둘은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

전교 1등 자리를 다투고 체스 시합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라이벌이지만, 사석에서는 격 없는 친구인 모양이었다.

“교류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시합과 관련된 내용은 아닌데.”

“그건 나도 그래. 갑자기 이사장님 지시로 일정표가 바뀌었을 때 당황하기도 했고.”

“그거 이사장 지시였어?”

“응. 개막식 전날에 갑자기 이사장님이 직접 학생회실에 연락했는데…….”

둘 다 교류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개막식에서 백호군이 선보인 벽사의 검무를 꼽았다.

학생회 소속인 염준열이 갑작스럽게 바뀐 일정표에 관한 비화를 풀고, 벽사의 검무를 춘 학생이 누군지 궁금하다는 코멘트를 했다.

천동하는 그 외에 인상 깊었던 것으로 은광고 응원단을 언급했다.

“명수 형이 광림 써서 애들을 띄워 올리고, ‘신탄의 사수’가 허공에 불꽃을 수십 발 쏴 올린 장면이 인상 깊었어. 호흡이 잘 맞던데.”

“연습할 땐 없던 장면이라서 놀랐어. 잘돼서 다행이야.”

“……그거 명수 형이 한 애드립이었어?”

염준열의 말에는 나도 놀랐다.

축구 시합 중에 은광고 응원단이 선보인 환상적인 장면이 애드립이었다니.

응원단 퍼포먼스 중 갑자기 지명수가 광림을 쓴 것을 보고 놀랐는데, 그게 즉석에서 한 연출이라는 것에 더 놀랐다.

지명수는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답게 담이 컸고 그 애드립을 재치 있게 받아친 타이틀 히로인 안다인도 훌륭했다.

내일 있을 폐막식 퍼포먼스도 기대하며 이번 화제는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은 학생 대표 총선거에 관한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니까 난 떨어질 수도 있잖아.”

“그래도 후보로서의 포부를 밝혀.”

선도부에서 자체적으로 선출하는 선도부장과 달리 학생회장은 선거를 치를 때까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5년 전 학생회장이었던 성국언이다.

학생회 소속도 아니고 0반의 이름난 문제아가 갑자기 학생회장 선거 후보자로 등록했을 땐 아무도 그가 당선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당선이 목적이 아니라 선거라는 축제에서 한몫하고 자기 PR을 위해 후보자 등록을 하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허수를 막기 위해 학생회장 후보자 등록을 위해서는 학생 추천서 하나와 추천인 50명의 서명이 필요한데, 성국언은 당시 1, 2, 3학년 0반들의 서명을 끌어모아 간신히 조건을 충족했다고 한다.

시대가 달라도 0반의 유대감은 남달랐나 보다.

‘0반의 의리가 여기에서 빛났구나. 우기환이나 금찬왕찬도 다른 1학년 반에 비해 우리 반을 신경 쓰는 눈치였으니까.’

성국언의 공약과 연설은 은광고 표심을 뒤흔들었고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지금이야 그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 제2의 성국언이 될 만한 재목도 없으니 염준열이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아니, 2학년인 두 사람의 눈에 든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 인터뷰 중이겠다 질문을 던졌다.

“현재 신경 쓰이는 후보는 있나요?”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바뀌었다.

염준열의 표정은 까칠하게 변하고 천동하는 질린 얼굴을 했다.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오르나 보다.

“진승이가 준열이한테 라이벌 의식을 불태워서 후보 등록을 하려 했어.”

마진승이 또 무슨 짓을 저질렀나 보다.

“슬로건을 타도 ……홍룡으로 지어서 2학년 건물이 불바다가 될 뻔했어.”

설마 슬로건을 ‘타도 소홍룡’으로 지으려고 한 건가.

그렇게 되면 홍보 포스터에 저 글자가 들어가게 되는 건데, 염준열의 역린이 학교 전체에 뿌려지게 되는 셈이다.

“싸움을 걸면 받아 줘야지.”

염준열의 목소리에 마진승을 향한 적의가 묻어났다.

진짜 저 슬로건을 걸고 마진승이 학생회장 후보로 나왔으면 2학년 건물이 불바다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 불바다 속에서 용제건이 황홀한 표정으로 참전할 게 금방 연상이 되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진승이가 추천서를 본인이 직접 작성하더라도 50명 추천인 서명은 못 받을 거야. 주변엔 다 말해 뒀어.”

천동하가 단호하게 말했다.

추천인 서명을 하나도 못 받을 마진승이 좀 애처로워 보이긴 했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내가 선도부장이 되면 진승이한테는 선도부 부부장을 맡기려고 해.”

“마진승한테 부부장을 맡길 거라고?”

“어.”

염준열이 다소 불쾌해하는 얼굴이었지만 천동하는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진승이는 학생회로 안 갔으면 좋겠어. 어차피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도 떨어지겠지만.”

천동하는 마진승을 선도부 부부장으로 뽑을 만큼 인정하고 있었지만, 평가는 냉정했다.

하긴 지금 평판으론 마진승이 염준열을 이길 수는 없었다.

다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라 우열을 가리긴 어렵지만 은광고의 표심은 냉혹할 것이다.

“그럼 인터뷰는 여기까지 할까? 더 질문할 거 있어?”

“아뇨, 괜찮아요.”

마진승 이야기는 기사화하기 어렵겠지만, 이미 좋은 기삿거리를 잔뜩 받았기에 분량 확보에는 문제가 없었다.

“자, 그럼 저녁 먹으러 가자. 의신아, 뭐 먹을래?”

자리에서 일어난 염준열이 부드럽게 물었다.

까칠했던 염준열은 마진승 이야기가 끝나니 다시 친절하고 신사적인 내 제자로 돌아왔다.

나는 플마고 시절 염준열과 천동하가 좋아했던 메뉴를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동 중, 문득 예전에 천동하가 언급한 인물이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

“동생분은 잘 지내는 중인가요? 이제 수험 준비 중이겠네요.”

이 말에 천동하보다 염준열이 먼저 반응했다.

“동하야, 너한테 동생 있었어? 외동인 줄 알았는데.”

반응을 보니 염준열은 천동하에게 동생이 있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천동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지내고 있어.”

왜 저런 표정으로 답하지?

천동하 본인이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계속 개인사를 꺼내는 것도 그래서 그 뒤로 그 동생의 화제는 꺼내지 못했다.

염준열도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배려심 깊은 내 제자답게 묻지 않았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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