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19화 (318/925)

53. 두 번째 시도 (9)

다음 날, 방과 후.

중앙 구역 총동아리회관, 신문부실 중 1학년 전용 부실.

부실에 도착하자마자 문새론이 해외발 기사를 1학년 부원들에게 뿌렸다.

“이거 그때 우리가 본 그거 아님?”

문새론이 건넨 기사는 두 개였는데 하나는 영어, 하나는 덴마크어로 되어 있었다.

두 기사에 첨부된 사진에는 새 떼와 각종 사족 보행 동물들이 일제히 달리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기다려 봐. 아직 다 못 읽었어.”

“영자 신문 빨리 못 읽으면 그냥 번역 애플리케이션 써라.”

“덴마크어 할 줄 아는 사람?”

“라틴 문자는 대충 읽을 수는 있는데…….”

다른 신문부원들이 기사를 읽는 사이, 문새론이 나와 황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아, 너희들은 그때 없었으니까 모를 수도 있겠네. 그때 우리가 보여 준 사진 중에 예카테린부르크 도착하기 전에 찍었다는 사진 기억 남?”

“그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전에 사건이 있었다고 했지. 그때 찍은 사진하고 비슷하군.”

“그치? 여기에 찍혀 있는 것들도 다 희귀 동물이거나 멸종된 걸로 알려진 동물밖에 없음요.”

지난 여름방학, 신문부는 2학년 0반 선배놈들과 기묘한 모험을 했다.

그 여행에서 겪은 일들은 대부분 미스터리로 남았는데, 그중 하나가 ‘희귀 동물들과 거북의 대이동의 목격’이었다.

“기사에 나온 설명도 그렇고, 그때 우리가 본 그게 맞는 거 같은데?”

“아니, 왜 러시아에 있던 짐승들이 이번에 왜 북해에 있냐고.”

이번에 그 동물들이 발견된 것은 대서양의 연해인 북해, 덴마크의 이윌란 반도와 영국 사이였다.

“대체 어떻게 저기까지 간 거야?”

“이능을 썼겠지. 아무리 돌아서 간다고 해도 국경을 넘어야 했을 텐데 목격담이 거의 없는 건 이상해.”

“목적지는 영국이었나 봐. 정해진 시간에 조금씩 이동하고 있던 게 아닐까?”

“영국도 경유지일 가능성이 있지 않음? 아직 아무도 모름요.”

‘영국’이라는 단어에 어제 성국언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국언] 현재 ‘이무기의 귀천’의 소재지는 영국으로 파악되었다.

[성국언] 핼러윈에 그 지역의 유력 진족이 개최하는 파티에서 경매 매물로 올라올 것 같다더군.

소재가 파악되었다면 바로 가도 되지 않을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냐고 묻자 성국언이 디바이스 메시지를 통해 호쾌하게 웃었다.

그의 성격을 고려하면 실제로 메시지를 입력하면서 크게 웃었을 것 같았다.

[성국언] 하하하!

[성국언] 올해 1학년 0반은 얌전하다고 들었는데, 부반장은 0반답구나.

졸업한 지 한참 된 국회의원이 1학년 0반의 얌전함을 알고 있다니.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모르는 게 없었다.

[성국언] 그 진족이 머무는 성은 좀 특별하다.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는 건 핼러윈뿐이야.

[성국언] 그러니 그전까지는 계획을 세우고 핼러윈에 실행해야 될 거다.

입장 제한 조건이 있나 보다.

학교에서의 일정과 플마고 상의 스토리 전개를 핼러윈 일정과 엮어서 생각하고 있자니 성국언이 추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성국언] 우선 내가 파악한 정보는 넘겨주마. 대신 움직이기 전에 내게 말하겠다고 약속해라.

0반 대선배님이 후배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져 기꺼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성국언은 내 대답에 만족하여 자료를 보냈다.

‘핼러윈에 영국에서 열리는 진족의 파티와 북해에서 발견된 희귀 동물의 대이동……. 설마 관계가 있나?’

만약 관계가 있다면 어떻게 엮여 있을지 고심하고 있을 때, 황지호가 불쑥 말을 걸었다.

“또 수상한 생각을 하고 있나 보군.”

수상한 생각일 리가.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첫 작품을,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제보를 통해 찾아낼 계획을 세우는 건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리플레이 사용은 최소 일주일의 텀을 둘 생각이다. 열흘 이상 시간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황지호는 눈치 빠른 노친네였지만, 이번 건에 한해선 정보가 부족했는지 내가 뭔 생각을 하고 계획하는 중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계속 속이 읽히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그래.”

“……왜 순순히 그러겠노라 답변을 하는 거지? 더 수상하군.”

아, 여기에선 좀 더 망설여야 했나?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무시하고 답변을 하지 않으니 황지호가 계속 멋대로 추리를 이어 가다 결론을 내렸다.

“김신록을 걱정한 건가? 아, 김신록한테는 당분간 경호원을 붙여 뒀다. 조의신 네게 직접 찾아간다 해도 문제없을 거다.”

황지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신문부 활동이 끝나 권레나와 만나기로 한 호연관 앞으로 가는 길에 총동아리회관 주변에 잠복해 있던 김신록과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김신록은 호족의 후예가 아닌, 처음 내가 봤던 서글서글한 인상의 지익회 고문이자 옆 반 담임의 모습을 가장해 내게 말을 걸었다.

“의신아, 할 말이 있는…….”

그러나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말이 채 이어지기 전에 붉은 안개가 스멀스멀 그의 뒤에서 피어올랐다.

동시에 주변에 옥색의 이능파가 벽을 만들어 나와 김신록 주변을 덮었다.

파아앗!

붉은 안개가 김신록의 어깨를 휘감더니 순식간에 그의 전신을 삼켜 버렸다.

붉은 잔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때에는 김신록은 흔적도 남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곧 상황 파악을 했다.

‘적호가 옆에 있었나.’

아들이 허튼짓을 할까 봐 적호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나 보다.

“의신아, 안녕.”

“……안녕하세요, 용제건 선생님.”

이 장면의 목격자는 나 외에도 한 명 더 있었다.

황홀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용제건이었다.

용제건이 한순간 불투명한 공간으로 결계를 쳐 납치 장면을 다른 학생이나 교사로부터 숨긴 듯했다.

‘나와 김신록 주변을 감싼 이능파의 주인이 용제건이었나 보네.’

갑자기 이능파가 발산된 탓에 이쪽으로 달려온 학생들이 몇몇 있었으나 황홀한 얼굴의 용제건을 보고 즉각 뒤로 물러나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용제건이 뭔가 했을 거라 생각하고 넘어가는 듯했다.

용제건은 아주 흡족하게 웃다가 염준열을 마중하러 가는 건지 학생회관 쪽으로 가 버렸다.

다시 중앙 구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로워졌다.

‘……못 본 걸로 하자.’

김신록을 제외한 모든 진족이 행복해하는 것 같으니 이번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실현을 위해 못 본 척하기로 했다.

호연관을 향하는 길에 아는 얼굴을 또 마주쳤다.

“아악!”

“이눔아, 어딜 가는 거냐! 화장실 간다는 놈이 왜 교문 쪽으로 가고 있어!”

“에이씨, 시험이 끝났으면 최소 한 주는 놀아야 할 거 아냐!”

“고얀 놈! 하늘 같은 스승께 에이씨라니!”

방윤섭과 탁거산 도인이었다.

탁거산은 방윤섭의 귀를 손가락 두 개로 잡고 질질 끌고 가고 있었는데, 가볍게 잡은 것처럼 보였는데 방윤섭이 아무리 용을 써도 꿈쩍을 하지 않았다.

방윤섭이 요즘 실기 수업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는 있다 해도 아직 탁거산에게 저항하기에는 어림없는 수준인 듯했다.

‘맹효돈은 저기에 없는 걸 보니 성실하게 훈련을 잘 받고 있나 보네.’

내 빵셔틀은 여전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맹효돈이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 만족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일을 겪고 도착한 호연관 앞.

바이올린 케이스를 품에 안은 권레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생활관, 남자 기숙사동.

일찍 저녁을 먹고 기숙사에 와 있던 도시후가 시무룩한 얼굴로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왜 확인을 안 하지?”

어젯밤, 도시후는 유상훈과 조의신, 두 사람에게 각각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둘 다 답변은커녕 메시지 읽음 처리도 되지 않았다.

‘물어볼 게 있는데…….’

도시후가 들은 유상희에 관한 소문을 도원우에게 전했을 때, 그는 겉보기엔 평정심을 유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도시후는 도원우가 유상희 건에 관해선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잘 알았기에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혁이한테 물어보니까 원우 형은 평소 대로라고는 하는데…….’

주수혁에 이어 유상희와 가까운 사이인 유상훈과 조의신의 의견도 들어 볼 생각이었으나 메시지를 보지 않아 물을 수가 없었다.

마침 생도회에 다녀온 장남욱이 도시후의 풀 죽은 얼굴을 보고 말을 걸었다.

“시후야, 왜 그래?”

“의신이랑 상훈이 말인데, 혹시 연락 잘 안 돼?”

“아니? 오늘 아침에도 메시지 주고받았는데.”

장남욱은 단체 메시지방을 보여 줬다.

장남욱이 현재 유행하는 독감에 관한 정보를 수십 줄 써 놨는데, 모두 읽음 처리되어 있었다.

자음과 단답밖에 없었지만 조의신과 유상훈은 장남욱의 말에 모두 답변한 상태였다.

도시후는 더더욱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    *    *

중앙 구역 호연관 콘서트홀.

몇 달 전 권제인의 내한 공연을 연 당시, 스태프로 일하기 위해 호연관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이곳에 온 건 처음이었다.

그때는 관객들과 스태프들로 사람이 넘쳐 났는데, 지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인상이 많이 다르네.’

사람과 일에 치이고, 권제인의 강렬한 존재감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던 호연관의 구조와 오밀조밀한 장식품들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물결을 연상시키는 공예품과 하늘이 보이는 유리 천장 사이로 들어오는 풍경이 마치 물 안에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권제인이 왜 더 큰 홀을 놔두고 천 석도 되지 않는 아담한 호연관을 택했는지 뒤늦게 이해가 갔다.

‘규모가 작은 걸 빼면 시설은 나쁘지 않아. 영원의 호수 팀 빌딩의 인테리어와 비슷한 점도 있고…… 권제인 취향에도 맞을 것 같아.’

그런데 왜 권레나는 여기에서 사월세음을 보겠다고 한 걸까.

권제인의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

권레나는 긴장한 얼굴로 문 쪽을 봤다.

우리가 서 있는 건 호연관의 무대 위로,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나와 권레나뿐이었다.

권제인과 재러드 리도 와 있다고는 하는데 사월세음을 배려해 떨어져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곧 약속한 시각이 되어 기다리던 상대가 도착했다.

“레나,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아요? 어, 의신이도 왔어요?”

“안녕.”

사월세음이 살갑게 인사했으나 권레나는 바로 답인사를 하지 못했다.

사월세음은 권레나가 아직 몸이 안 좋다고 생각한 건지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을 했다.

권레나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권제인에게 맡겨 비어 있는 두 손을 마주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음아, 나, 나…… 그러니까…….”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온 사월세음이 몇 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다가왔는데도 권레나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사월세음은 권레나가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나, 그 자리에 있었어…….”

“……네?”

사월세음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이 ‘그 자리’라고 하면 이해가 안 갈 거다.

권레나는 입을 몇 번 뻐끔거리며 말을 하려고 했으나 쉽게 그 자리가 무엇인지 언급하지 못했다.

“…….”

결국 권레나는 주저하다가 뭔가를 꺼내 들었다.

손에 든 것은 권제인이 선물한 백금색의 이능 바이올린과 활이 그려진 아이템 카드였다.

파앗!

바이올린을 먼저 실체화한 권레나가 손에 들고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활 없이 손으로 뜯는 피치카토.

그 도입부를 듣자 곡의 제목이 바로 떠올랐다.

‘이건 그날 들었던 곡이잖아……!’

권레나가 연주한 곡은 예전에 권제인이 이 장소에서 처음 발표하고, 공연이 끝난 후, 권레나가 코드를 따 즉석에 연주했던 신곡 ‘Homecoming’이었다.

그 자리에는 나 말고도 김유리, 사월세음이 있었다.

사월세음도 곡 제목을 안 건지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권레나의 광림 ‘허상 연회’가 발동하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2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