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35화 (334/925)

55. 스테일메이트리스 (5)

전이가 중단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환청이 들리지 않았다.

천성헌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번쩍 일어난 천성헌이 비틀거렸다.

천성헌은 서버 종료 전에 플마고의 최종장을 클리어하기 위해 계속 수면 시간을 줄인 탓에 심신이 크게 소모된 상태였다.

한순간 멍한 얼굴을 하던 천성헌이 허공에 대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러나 천성헌의 물음에 답하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좁은 고시원 방 안, 천성헌은 허망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무력감에 주저앉기 직전, 문득 자신이 왜 플마고를 플레이했는지 다시 생각했다.

스테일메이트리스, 조의신.

그를 찾기 위해서가 아닌가?

‘의신이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머릿속에 조의신의 대국 몇 개가 흘러갔다.

그중 조의신에게 스테일메이트리스라는 칭호가 붙은 계기가 된 대국이 떠올랐다.

엔드 게임에 접어든 후에도 승부는 박빙인 상황, 한 수 뒤를 내다보기 힘든 접전 속에서 조의신과 대국한 체스 기사가 꾀를 냈다.

‘그때 초등학생이던 의신이 형보다 몇 살 많았던 것 같은데, 한국 나이 기준으로 다섯 살 정도 위였던가.’

그 체스 기사는 아시안 유스 체스 챔피언으로, 당시 초등학생이던 조의신보다 연장자였고, 체스 경력이 훨씬 길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체스 기사는 새파란 애송이에게 질 수 없다며 조의신을 상대로 칼을 갈고 있었고 공격적인 인터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길 가능성, 질 가능성이 비슷해 보이자 그는 스테일메이트를 시도했다.

스테일메이트를 싫어하는 조의신에게서 스테일메이트를 따내기만 해도 제 승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시안 유스 체스 챔피언은 그간 쌓아 온 체스 경력과 수상 이력이 헛된 게 아니었는지 국면을 스테일메이트로 몰고 갔다.

그리고 10수 내로 스테일메이트가 예상되는 국면 속, 조의신이 손을 멈췄다.

‘한참 동안 체스 보드를 바라보면서 제한 시간을 모두 소모했었어.’

조의신이 멈춰 있는 동안 해설 위원이 상대의 수와 국면을 분석했다.

해설 위원은 스테일메이트가 나오는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하고 움직일 수 있는 기물과 없는 기물을 분간해 설명했는데, 조의신의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그가 얼마나 스테일메이트를 싫어하는지도 덧붙였다.

그리고 기본 제한 시간을 거의 소모하고 초읽기에 다다른 순간, 조의신이 손을 움직였다.

조의신은 수십 분 동안 멈춰 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상대가 착수하기 무섭게 노 타임으로 체스 피스를 바로 움직이며 수를 둬 무서운 속도로 몰아쳤다.

그리고 모두가 스테일메이트를 예상한 국면을 뒤집고 조의신은 체크메이트에 성공했고, ‘스테일메이트리스’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의신이 형도 모든 시간을 소모해서 국면을 뒤집었어. 내가 시간패 처리되기 전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어.’

천성헌은 플마고 서버 종료 시각에 맞춰 둔 타이머를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50분 남짓이었다.

‘의신이 형이 사라진 건 환청을 들려준 미지의 존재와 관련이 있을 거야. 즉, 미지의 존재를 최소 50분 이내로 설득해야 해.’

천성헌은 플마고 최종장 클리어 직후 일어난 일과 환청으로 들은 정보를 하나하나 분석했다.

최종장 클리어 보상.

보상을 얻은 직후 멈춘 스마트폰 화면, 그리고 들린 기묘한 목소리.

―초상(超象)우주와의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접속한 플레이어의 적합성을 심사합니다.

―심사가 종료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천성헌’을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후보로 선정합니다.

천성헌은 문득 기묘한 목소리가 제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당연히 게임에 사용하는 플레이어 이름은 본명인 ‘천성헌’이 아니었는데, 기묘한 목소리의 주인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짐작이 안 갔다.

‘내 실명을 알 정도의 정보력이 있다는 거겠지.’

사람 하나를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존재이니, 그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천성헌은 고찰을 계속했다.

‘이 게임 자체는 일종의 시험이었고, 시험을 통과한 이들을 대상으로 또 ‘적합성을 심사’한 건가. 그리고 난 그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의 후보로 선정된 거고.’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었다.

천성헌은 플마고의 최종장을 클리어하는 시험도, 그 적합성에 대한 심사도 통과한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후에 ‘정보 개변과 차원 동기화 및 전이’도 진행된 것이라고 추측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보 개변에 성공했으나 차원 동기화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후보의 보호를 위해 차원 동기화와 전이를 중단합니다.

심사를 통과한 천성헌은 세 가지 과정을 거친 듯했다.

첫째는 정보 개변.

둘째는 차원 동기화.

셋째는 전이.

‘정보 개변에는 성공했다고 했어. 하지만 차원 동기화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어 차원 동기화도, 전이도 실패한 거야.’

그 심각한 오류라는 것을 내가 해결할 수 있나?

천성헌은 면밀히 생각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상식 외의 힘과 정보력을 가진 미지의 존재도 해결하지 못한 일이니 자신이 처리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다른 수를 생각해 보자. 저 오류의 해결은 지나치게 문제가 복잡해.’

천성헌은 미지의 존재가 한 말을 되새겼다.

천성헌이 생각에 잠긴 사이에도 서버 종료까지의 시간은 계속 줄어들었다.

천성헌은 눈을 감고 냉정하게 제가 가진 수를 분석했다.

결론을 내린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후보의 보호를 위해 차원 동기화와 전이를 중단하셨다고 했죠? 그 후보는 날 칭한다고 하셨으니, 당신은 저를 보호하기 위해 작업을 중단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고 끝에 꺼낸 목소리는 정중하고 부드러웠다.

허공에 대고 말을 하는 모습은 그리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은데, 천성헌의 예의 바른 어조 덕에 그 비정상적인 분위기가 상쇄되었다.

천성헌은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한 미지의 존재를 상대로 계속 말을 걸었다.

“저를 보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소 문제가 있어도 괜찮아요. 차원 동기화와 전이를 실행해 주세요.”

천성헌이 말을 마친 후에도 반응이 없었다.

천성헌은 초조함을 숨겼다.

지금 자신이 제안을 하는 것도 ‘심사’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니 평온을 가장할 수 있었다.

그때, 눈앞에서 푸른 빛이 잠시 일렁였다.

〈…….〉

명확한 목소리는 들리지는 않았지만 이명이 울리다 그친 게, 미지의 존재가 천성헌의 제안에 반응한 것 같았다.

‘망설이고 있는 게 분명해.’

반응이 없었다면 제안하는 것을 중단하고 ‘심각한 오류’의 분석에 매달려야 했겠지만, 이렇게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천성헌은 미지의 상대로 설득을 이어 갔다.

“당신은 이 게임을 통해 누군가를 선정하려 한 게 아닌가요? 하지만 긴 분량의 게임을 클리어한 사람 수는 많지 않을 거예요. 또 클리어한 사람 중에서 적합성을 심사해야 한다면 이를 통과한 사람은 더 적겠죠.”

〈…….〉

빛의 일렁임이 미세하게 늘어나고 이명도 조금 커졌다.

천성헌은 제 말이 사실임을 직감했다.

“그 ‘심각한 오류’로 인해 제가 패널티를 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의신이 형이나 당신이 하는 일에 협력하겠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천성헌이 상대에게 협력하겠다는 말로 들렸으나 이 말에는 뼈가 있었다.

‘의신이 형이나 당신이 하는 일’.

‘이나’라는 이 말은 즉, 당신에게 협력하지 않아도 조의신에게는 협력하겠다는 의사가 담겨 있었다.

이 말에 담긴 진짜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미지의 존재가 목소리를 내었다.

〈경고, 오류를 무시한 차원 동기화와 전이는 강력한 부작용이 예상됩니다.〉

“괜찮습니다.”

대화를 하는 중에도 서버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미지의 존재는 망설이는 건지, 아직 더 필요한 과정이 있는 건지 반응이 없었다.

‘……다른 수를 둬야 하는 건가. 아니, 조급한 모습을 보이면 내 가치가 떨어져 보일 수도 있어. 아슬아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

천성헌이 온화한 얼굴로 다음 수를 고안하고 있을 때, 드디어 목소리가 들렸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후보 ‘천성헌’의 차원 동기화 및 전이를 진행합니다. 완료까지 앞으로 100초.〉

그 뒤로는 미지의 존재가 100부터 시작해 천천히 카운트다운을 했다.

천성헌은 안도한 마음을 숨기며 담담하게 100초 동안 주변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제거될 경우를 상정하고 익명으로 예약 메일을 준비해 뒀는데.’

혹시라도 천성헌의 집안사람이 그가 짠 계획을 알아채고 자신을 제거할 경우도 대비했다.

천성헌이 주기적으로 예약 일자를 갱신하지 않으면 경쟁 업체와 언론사, 시민 단체, 국회의원 쪽에 제 이름이 들어간 추가 제보가 제공되도록 손을 써 놨다.

자신이 당한 가정 폭력의 증거와 담합이 벌어진 사교회장의 녹취록, 정부의 고위 인사에게 뇌물이 오가는 순간을 직접 촬영한 영상 등이 그러했다.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배후에 자신이 있었다고 들통나는 증거물이었다.

천성헌이 이대로 사라진다면 그 메일들이 친척들에게 넘어간 회사의 남은 기반까지 완전히 무너뜨릴지도 몰랐다.

‘뭐, 상관없나.’

천성헌은 남은 100초를 조의신의 방을 정리하는 데에 사용했다.

〈2…… 1…… 0 .〉

미지의 존재가 0을 알린 순간, 새하얀 빛이 천성헌의 시야를 덮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천성헌은 병원의 1인실 침대 위에 있었다.

정신은 온전했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신체 중에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곤 눈꺼풀과 안구 정도였다.

‘이게 그 부작용인가?’

천성헌은 제 감각을 모두 동원해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무언가에 의해 자신의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씨는 여전히 천 씨였으나 이름은 성헌이 아니었다.

나이는 열다섯으로, 해가 바뀌면 열여섯이 된다고 했다.

또 어느 재벌가의 버려진 서자로, 감금 증후군에 걸린 이후 누군가가 병원비를 대 주기는 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했다.

‘어딜 가나 서자 신세로군.’

비참한 신세였으나 천성헌은 서자인 부분 만큼은 그 ‘심각한 오류’의 부작용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미지의 존재는 자신과 걸맞은 신분을 준비하려다 이런 걸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이능과 플레이어 운운하는 걸 보니…… 이 세계는 플마고와 유사한 세계 같은데.’

천성헌의 의문에 답을 준 것은 어느 날 나타난 이복형의 존재였다.

“……안녕, 내가 네 형이야.”

플레이어블 캐릭터 천동하.

그가 천성헌의 새 이복형이었다.

“의사소통이 어렵네. 룰을 정할까? 대답이 긍정일 때는 눈을 한 번, 부정일 때는 눈을 두 번 깜빡여 줘.”

자신의 이복형과 천동하가 비교되어 미묘한 기분이 들었으나, 화면 너머로 본 천동하가 바른 인물임을 아는 천성헌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고작 눈을 한 번 깜빡인 건데 천동하가 기뻐했다.

이복형이라곤 하나 이제 막 고1에서 고2가 됐을 뿐인 천동하는 이복동생과 친해지려 노력했다.

천동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외부의 소식을 전해 줬는데, 그중에는 조의신의 소식도 있었다.

조의신은 무려 그 ‘이름 없는 조연의 튜토리얼’에서 전원을 구하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의신이 형은 원래 이름 그대로 왔어. 그 튜토리얼에선 조연의 이름이 없었지. 그 이름 없는 자리를 받아서 의신이 형은 그대로 조의신이 된 게 아닐까?’

천성헌은 서자라곤 하지만 천동하와 돌림자를 써서 이름이 지어진 상태였다.

이 상황을 고려해 천성헌은 가설을 세웠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도 의신이 형이 나보다 한 살 위야. ……의신이 형이 먼저 이 세계로 왔으니, 의신이 형 기준으로 내 입장이 정해진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상황이 납득이 되었다.

천성헌은 천동하가 전하는 조의신의 소식을 들으며 추리를 거듭했다.

적벽괴도가 조의신임을 알아채기도 했다.

‘게임과는 다른 전개야. 이건 분명 의신이 형이겠지. 의신이 형이 환몽 경매를 내버려 둘 리가 없으니까.’

어쩌면 이 세계에 저 말고 다른 적합체나 그 후보가 존재할지 모르고, 그 후보라는 인물이 나선 결과물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저 적벽괴도는 조의신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철저하게 환몽 게이트의 전모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해 퇴로를 막는 게 조의신이 두는 수를 연상시켰으니까.

그리고 어느 날, 천동하는 천성헌에게 어느 기보를 보여 줬다.

스테일메이트리스, 조의신이 둔 기보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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