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스테일메이트리스 (4)
유서는 두 장이었다.
두 장 모두 아주 간결한 말만 몇 줄 적혀 있었다.
첫 번째 장에는 조의신의 몸 상태에 관한 설명과 그가 미리 연락해 뒀다는 장례업체 번호가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천성헌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유서가 가짜라고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의신 특유의 단정한 글씨체도 알아봤고, 그가 목숨을 두고 거짓말을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사고를 바로 하지 못했다.
갑자기 조의신이 사라졌다는 이상 현상과 유서의 내용이 천성헌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의신이 형은 어디 간 거지? 그런데 병원이 아니라 장례업체에 연락할 정도로 형 몸 상태가 안 좋았다고?’
유서를 쥐고 있는 손이 떨렸다.
천성헌은 떨리는 손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다음 장을 확인했다.
[성헌이에게]
두 번째 장에는 천성헌의 이름과 작은 봉투가 하나 첨부되어 있었다.
작은 봉투에는 현금이 빼곡하게 차 있었는데, 장례식 비용과 봉안당 안치에 필요한 사용료와 관리비를 내고도 한참 남을 돈이었다.
천성헌은 속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한 거야?’
천성헌은 벌게진 눈으로 유서를 읽었다.
유서의 첫 줄부터 자신의 속마음에 답하듯 간략한 인사말과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왜 의신이 형이 나한테 사과하지? 나는 아직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는데……!’
프로 체스 기사를 꿈꾸는 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자 목표는 조의신이었다.
천성헌도 마찬가지였다.
보육원에서 생활할 때 조의신의 기보를 닳도록 보고 그가 큰 대국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찌나 기뻐했는지 몰랐다.
조의신은 천성헌이 가장 존경하는 우상이자 별이고 마음의 지주였다.
조의신이 체스를 그만둔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조의신이 오로지 자신과 엮였다는 이유로 비참한 일을 겪었는데 자신한테 사과까지 하니 미칠 것 같았다.
작은 방에 낭자한 혈흔, 장례업체 번호, 미리 준비한 장례 비용 모두 천성헌을 괴롭게 했지만, 미안하다는 말이 천성헌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
‘만약 나와 엮이지 않았다면 고시원에 있지도 않았을 거고, 취직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을 거야. 그랬으면 더 일찍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의신이 형이 이런 유서를 남길 이유가 없었겠지…….’
끊임없이 ‘만약’이라는 가정이 떠올랐다.
천성헌은 차마 다음 줄을 읽지 못하고 유서가 든 봉투를 갈무리했다.
‘의신이 형을 찾고 생각하자. 직접 이야기하고 사실을 전해야 해!’
천성헌은 주인이 사라진 좁은 방 안을 둘러보며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 했다.
천성헌이 조의신의 방의 문을 따고 들어갈 때 소란을 일으킨 탓에 복도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 입소자도 있었다.
천성헌은 문을 닫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의신이 형은 어디로 간 걸까?’
창문도 없는 좁은 고시원 방.
이 안에 숨을 곳은 없었고 비밀 통로 따위가 있을 리도 없었다.
유일한 출입구는 천성헌이 근처에 있던 문 앞뿐이었다.
‘의신이 형이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어. 방금 전까지 형은 안에 있던 게 분명해.’
천성헌은 피로 범벅된 시트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천성헌은 자신이 둘 수 있는 수를 냉정하게 생각하려 했다.
‘경찰에 연락해야 하나? 아니, 소용없을 거야.’
처음 떠오른 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여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으나, 곧 생각을 접었다.
경찰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시한부 환자를 찾는 데에 많은 인력을 투입할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천성헌이 조의신의 실종에 일조한 것으로 의심받아 공연히 발이 묶이면 조의신을 찾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있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상식적으로 대응하면 시간만 빼앗기고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몰라.’
천성헌은 본능적으로 이게 예삿일이 아니라고 감지했다.
조의신의 실종이 상식적인 일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천성헌은 행동 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정황을 확실하게 파악해야 해.’
복도와 출입구에는 CCTV가 있고, 조의신은 계속 안에 있었다.
천성헌은 고시원 관리실로 들어가 CCTV를 돌려 봤으나 조의신은 방 안으로 들어간 이후 나온 적이 없었다.
조의신의 마지막 행적지는 이 방이었다.
그렇다면 단서는 방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
‘의신이 형이 사라지기 직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지?’
천성헌은 실종되기 전, 조의신의 객관적인 행적을 키워드로 간략히 정리했다.
칩거.
기침.
게임.
천성헌은 세 번째 키워드, ‘게임’에 집중했다.
‘의신이 형은 플마고를 하고 있었을 거야. 그 증거로 설정집하고 공략법을 정리한 파일철도 펼쳐져 있잖아. 의신이 형 성격이면 게임을 마친 후에 정리해 뒀을 텐데.’
천성헌은 조의신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피가 튄 액정을 닦아 내고 화면을 보니 플마고 게임 앱이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액정 너머에 게임 메인 화면을 배경으로 선물함이 열려 있었고, 시스템 안내 메시지가 한 줄 떠 있었다.
[최종장 클리어 보상 획득이 완료되었습니다.]
보통 선물함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면 어떤 아이템을 얻었는지 안내문이 나오는데, 그저 획득이 완료되었다는 안내만 나와 있었다.
여전히 조의신이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 파악할 수 없었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의신이 형은 실종 직전에 최종장을 클리어하고 보상을 얻었어. 이게 마지막 행적인 셈이야.’
그 외에는 단서가 없었다.
플마고를 떠올리니 천성헌은 가슴 한구석이 찝찝해졌다.
한국의 모바일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국민망겜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
‘이 망겜은 이상한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야.’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는 당시 게임계 역사상 최고액의 개발 비용과 마케팅 비용이 들었다.
게임에 관심이 없는 고등학생이었던 천성헌조차 플마고 광고는 알고 있을 정도였다.
웹상에도, 길거리에도 플마고 광고가 가득했다.
마치 한 번이라도 플레이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플마고는 시원하게 망해 버렸다.
그럼에도 운영은 계속되었다.
‘여러 주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플마고가 나온 적이 있었어. 유명 스트리머도 플마고의 비밀을 밝힌다면서 게임사와 연락을 취하려 했었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많은 프로그램과 유명 스트리머들은 플마고가 얼마나 망했는지 분석해 왔다.
플마고의 기본 개발 비용, 마케팅 비용, 서버 유지비, 신규 업데이트 콘텐츠의 개발비.
플마고의 유저 수와 과금 콘텐츠 등의 과금 구조.
다들 이 두 가지를 다양한 자료와 저마다의 방법을 통해 심도 있게 분석했는데, 결론은 늘 같았다.
플마고는 투자한 비용의 1할도 회수하지 못했을 거고,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이다.
플마고를 아직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도 미쳤지만, 개발자와 게임사는 더 미쳤다.
천성헌은 그 결론에 조의신이 까이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으나 틀린 말은 없었기에 납득했다.
‘지금도 온갖 어두운 루머가 도는 중이니까 맞는 말이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지만, 플마고의 운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대중들은 무수한 가설을 세웠다.
가설은 그럴싸한 것부터 허무맹랑한 것까지 수도 없이 있었다.
대표적인 가설을 꼽자면 다음과 같았다.
‘플마고는 조직 폭력배들의 자금 세탁을 위해 만든 온라인 돈 세탁장이다.’
‘플마고는 거대한 심리 테스트 장소로, 불법적인 심리 실험을 위해 만들어졌다.’
‘플마고는 게임 하는 청년 백수들의 멘탈을 자극해 현실로 돌려보내기 위한 정부의 작품이다.’
‘플마고는 유저들의 정신을 파괴하기 위해 만든 귀신의 소행이다.’
그러나 어느 가설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국민망겜으로 회자되며 수익 구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늘자 국세청에서 세무 조사를 실시한 적은 있으나, 아무리 털어도 플마고는 그저 단순히 심하게 망한 게임일 뿐이라는 결론만 나올 뿐이었다.
‘어?’
천성헌이 오랜만에 자신의 스마트폰에 깔린 플마고를 업데이트해 접속했을 때였다.
플마고에 공지가 떠 있었다.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 서버 종료 안내.]
플마고는 아무리 욕을 먹고 유저가 떠나고 이로 인해 돈을 날려도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았고, 서버 종료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종장 업데이트 직후에 곧바로 서버 종료를 한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천성헌은 곧바로 가설을 세웠다.
‘플마고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지금껏 서버 종료를 하지 않았고, 그 목적을 달성했기에 이제 서버 종료를 하는 게 아닐까?’
단순히 최종장 업데이트가 이 게임의 최종 목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마고의 열성 플레이어 조의신이 최종장 클리어 이후에 갑자기 사라졌다.
근거는 없었으나 천성헌은 이 둘이 관계가 있다고 직감했다.
‘서버가 닫히기 전에 의신이 형이 했던 것처럼 최종장을 클리어해야 해!’
단서는 플마고뿐인데, 플마고의 서버가 곧 닫힌다.
천성헌은 곧바로 플마고를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가끔 하긴 했는데, 스토리 모드를 어디까지 했더라? 나비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흑막의 손에 죽은 이후였는데…….’
천성헌은 조의신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가 서둘러 플마고를 공략하기로 했다.
천성헌은 조의신이 남긴 공략집과 설정집을 펼쳐 두고, 스마트폰을 켜 플마고를 열었다.
덤으로 노트북을 켜 조의신이 플마고 플레이 기록을 남긴 블로그도 확인했다.
조의신은 성실하게 리플레이한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의신이 형, 공략집하고 설정집 빌려 볼게요.’
천성헌은 그 이후로 조의신의 방에 틀어박혀 플마고를 플레이했다.
조의신이 남긴 공략 덕에 빠르게 엔딩까지 볼 수 있었다.
처참한 스토리에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조의신이 남긴 유서를 한 줄씩 읽었다.
그러면 다시 플마고를 플레이해 조의신의 단서를 캘 의욕이 솟았다.
서버 종료를 약 1시간 남긴 시점, 천성헌은 무사히 플마고 최종장 클리어에 성공했다.
‘……정말 꿈도 희망도 자비도 없는 배드 엔딩이구나. 의신이 형은 몸도 안 좋은데 이런 엔딩을 보고도 괜찮았을까?’
엔딩을 본 직후, 알림이 도착했다.
[최종장 클리어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선물함을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천성헌은 서둘러 선물함을 열었다.
‘클리어 보상이 의신이 형이 있는 곳의 단서일 거야!’
그리고 화면이 멈추고, 머릿속에 기묘한 목소리가 들렸다.
〈초상(超象)우주와의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접속한 플레이어의 적합성을 심사합니다.〉
〈심사가 종료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천성헌’을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후보로 선정합니다.〉
천성헌은 자신이 환청을 듣는 건가 의심했으나 이 환청도 조의신을 찾을 단서라는 생각에 귀를 기울여 집중했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후보 ‘천성헌’의 정보 개변과 차원 동기화 및 전이를 진행합니다.〉
차원 동기화?
전이?
환청 같은 소리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밖에 없었으나 ‘전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사라진 조의신과 관련이 있다고 여겼다.
이동을 대비해 천성헌이 마음을 굳혔을 때였다.
〈정보 개변에 성공했으나 차원 동기화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후보의 보호를 위해 차원 동기화와 전이를 중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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