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51화 (350/925)

57. 무대의 위 (2)

“어, 미로 홈마 하고 계신 선배는 어디 계세요?”

“걔는 미리 가서 사진 찍고 있겠대. 나중에 합류할걸?”

2학년 0반 소속 홈마는 오늘도 수업이 있었는데 빼먹고 독고미로 사진을 찍으러 갔나 보다.

나도 이번 주는 계속 수업을 빠졌으니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것 같은데. 언제부터 입장한다고 했지?”

“2시간 좀 안 되게 남았어. 아마 입장한 다음에도 생방송 시작할 때까지는 한참 기다려야 할걸.”

“그럼 대체 몇 시간을 기다려야 되냐.”

“생방송이니까 준비할 게 많나 봐. 아, 그래도 사전 녹화하는 파트도 있다니까 그냥 기다리는 건 아닐 거야!”

꽤 오래 기다려야 된다는 사실에 몇몇 아이들이 질린 얼굴을 했다.

우리 중에서 가장 연예계나 방송국에 관심이 없는 건 맹효돈과 송대석이었는데, 둘은 벌써 혼이 반쯤 빠져나간 얼굴을 했다.

둘을 달랠 겸, 간식이나 먹자고 제안했다.

비록 방송국으로 향하기 전에 저녁을 먹었지만, 저 둘은 잘 먹으니 또 먹자고 해도 먹을 거다.

“카페에서 기다리자. 결석하는 동안 수업 자료 챙겨 줬으니까, 내가 살…….”

“후배들에게 얻어먹을 수 없지. 우리가 사마!”

“이 근방은 우리가 잘 안다. 맡겨 두셈.”

2학년 0반 선배놈들 몫은 처음부터 살 생각이 없었는데.

제갈재걸에게 실컷 혼나고 얌전해져 있던 선배놈들은 방송국이 가까워지니 다시 팔팔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 입이 근질근질해 보이던 목우람이 입을 열었다.

“카페에 가시지 않아도 됩니다.”

“……응?”

목우람은 어딘가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나 외에도 우리 반 아이들은 그 얼굴에 강력한 기시감을 느꼈을 거다.

목우람이 어디선가 호구를 잡혀 나눔을 실천했을 때 짓는 표정이 늘 저랬으니까.

“나름 방송국에 오기 전에 공부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을 ‘총대’라고 칭하시는 어느 친절한 분께서 ‘조공 문화’에 관해 설명해 주시더군요.”

그런 문화가 있긴 한데,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미로와 여러분을 위해서 제가 커피 차를 준비해 왔습니다! 미로의 포스터 등을 인쇄하는 비용도 있었고, 음료값도 전부 선불이라고 해서 전 재산을 털긴 했지만, 뜻깊은 날이니 이 정도 써도 되겠죠.”

아직 전후 사정을 잘 알 수 없었지만, 목우람이 또 기가 막히게 호구를 잡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목우람의 말을 듣고 의문스러워했다.

“음…… 보통 커피 차 서포트할 때는 최소 주문 수량만큼의 커피값만 먼저 내고, 추가로 먹는 만큼 더 내는 방식으로 요금을 내는 걸로 알고 있어. 전부 선불이었다고?”

“미로 팬카페 가입해 있는데 커피 차 조공 소식은 첨 들어 봤음.”

“금찬 말이 내 말.”

의문이 깊어지는 가운데, 에어 셔틀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비행 스킬로 주변을 둘러본 사월세음이 이 사건의 핵심을 찌르는 아주 중요한 말을 꺼냈다.

“저기, 방송국 주변에 커피 차가 안 보이는데요.”

“응, 나도 못 본 거 같은데.”

경위가 어쨌건 커피 차를 불렀으면 커피 차가 있어야 하는데, 방송국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군요. 총대 님께 물어보겠습니다.”

디바이스를 켜서 메시지를 보내려던 목우람이 손을 멈췄다.

“디바이스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고장 난 건 디바이스가 아니라 다른 거 같은데.”

“대석아!”

송대석이 그렇게 말하며 목우람의 머리 쪽을 가리키려 했으나 민그린이 재빠르게 그 손가락을 꺾어 버렸다.

‘뿌득’ 하고 관절이 꺾이는 소리와 송대석의 짧은 비명을 뒤로하고 권레나가 목우람의 디바이스 화면을 함께 보며 물었다.

“우람아, 디바이스 어디가 이상한 거야?”

“여기를 봐 주십시오. 얼마 전까진 ‘총대’로 되어 있던 닉네임이 ‘사용자를 찾을 수 없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

그 커피 차 총대는 목우람을 상대로 먹튀를 한 후 디바이스를 해지하고 날랐나 보다.

목우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제갈재걸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나중에 신고하러 가자. 함근형 선생님께는 내가 말해 두마. 대화한 내용이나 입금 내역은 전부 캡처해서 기록으로 남기렴.”

“네? 무슨 신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데 저는 입금하지 않고 현금을 뽑아서 직접 드렸는데요. 현금으로 하는 게 싸다고 말씀하셔서요.”

“우람아……!”

함근형 선생님은 업무 탓에 조금 늦게 합류할 예정이라 이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아마 보면 제갈재걸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우리 뭐 먹을까.”

“……가까운 데로 가자.”

결국 커피 차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제갈재걸이 목우람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작당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딴 건 몰라도 미로 이름을 써서 등을 친 건 마음에 안 드네.”

“잡아서 족치자.”

“요새 우리 학교에 수배범 잘 잡는 그룹 생기지 않았음? 사기꾼도 잡아 주나?”

“일단 얘기는 해 봄.”

실컷 처웃던 황지호도 그 흉악한 무리에 끼어들었다.

한이의 친구인 독고미로의 이름을 빌린 게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나도 그 사기꾼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협력하마.”

황지호가 끼어들자 금찬솔과 왕찬솔이 휙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수군거리던 두 사람이 황지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황지호 후배님은 다른 거에 협력했으면 하는데.”

“그래, 얼마 전 ‘비정기 오찬회’에서 있던 일 기억 남?”

“주최자님 정체는 뭐고 대체 그분이랑 뭔 얘기를 했는지 썰 좀 풀라고!”

“하하하하!”

“아오, 그만 처웃고 대답을 하라고 후배님아!”

그러나 황지호는 처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아 금찬왕찬의 복장을 터뜨렸다.

제갈재걸이 바로 근처에 있으니 심하게 몰아붙일 수도 없고, 저 노친네가 거기에 말릴 만한 상대도 아니었기에 아마 답을 듣긴 어려울 거다.

보다 못한 제갈재걸이 금찬왕찬을 황지호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뒀을 때, 황지호가 내 쪽으로 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비정기 오찬회에서 원족의 수장을 만났다.”

……이걸 여기에서 말하나?

사람이 넘쳐 나는 카페에 와 있고, 저마다 메뉴를 고르거나 수다를 떨기 바쁘다고 하지만 듣는 귀가 몇 개라고 생각하는 건지.

용제건은 나와 황지호가 이야기하는 걸 보고 곧장 귀를 기울인 듯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아, 결계를 쳤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저기 있는 용족이나 제갈재걸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온 신경을 기울이면 들릴 수준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힘을 쓰면 이 몸도 눈치채지. 용제건은 이미 엿듣고 있는 것 같긴 하군.”

용제건은 온 신경을 기울여 이쪽을 체크하고 있었나 보다.

황지호는 비정기 오찬회의 개요와 제천대성의 제안에 관해 설명했다.

제천대성이 긴고주를 담보로 자신이 배신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무지기를 찾아주면 배신자의 처단에 협력할 예정이라 한다.

‘제천대성이 협력해 준다면 국면이 훨씬 이쪽으로 기울 거야.’

제천대성은 기록에 남은 업적이나 현재까지 이어지는 인지도를 고려해 봤을 때, 상위 존재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진족이다.

그런 제천대성이 협력해 준다면 엄청난 패를 얻게 되는 셈이다.

비록 할 일은 많지만, 그 무지기의 수색은 해 둘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황지호가 제안했다.

“그가 단서를 넘겨줬는데, 주말에 저택에 머물면서 살펴보면 좋을 것 같군.”

“……이번 주 주말?”

“그래. 실종된 지 꽤 된 것 같으니, 빨리 착수하는 편이 좋겠지.”

그 의견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조금 곤란했다.

이번 주말에는 이미 중요한 일정이 잡혀 있었으니까.

‘이번 주 토요일은 핼러윈이야. 그 전에 출국하고, 사전 조사를 해야 해. 또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일이 빨리 풀리면 일요일 늦게 황명호 대저택에 갈 수 있겠지만, 그 전은 어려울 거다.

아예 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니 그냥 약속을 잡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주말에 약속 있어.”

“약속?”

“성국언 선배님 뵙기로 했어.”

“……성국언? 성국언과 그 정도로 친했나?”

주말에 선배를 만나는 것 갖고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무슨 소리야.”

“말하는 걸 보니 잊고 있는 것 같군. 다음 일요일은 11월 1일이다. 조의신, 그날은 네…….”

딩동.

황지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디바이스 수신음이 들렸다.

황지호도 메시지를 받았는지 이어링을 눌러 알람을 끄는 게 보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뭔지, 나를 비롯해 주변에 있는 이들 중에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많은 듯했다.

마침 대화의 흐름도 끊을 겸, 메시지나 확인하기로 했다.

[옥토연] 은인아, 나 놀고 싶어ㅠㅠ!

[옥토연] 서호랑 이호랑 재호도 보고 싶은데, 같이 놀면 안 돼?

메시지를 보낸 이는 옥토연이었다.

대충 저 메시지의 속내를 해석해 보니 놀고 싶은데 할 일이 많아 놀지 못하는 상황이라 나를 구실로 빠져나가고 싶다는 것 같았다.

‘아직 은호에 관해선 듣지 못했겠지.’

옥토연과 은호는 인연이 있었던 것 같으니, 조만간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호족에게도 은호의 존재를 공표하지 않은 상태라 당분간 토족에게 알릴 일은 없겠지만.

옥토연에게 정중하되 속뜻은 ‘일하세요’라는 요지의 메시지를 작성할 때였다.

“야, 나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아.”

송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했다.

홀로그램을 켜 둔 게, 송대석도 아까 그 타이밍에 메시지를 받았나 보다.

“응? 갑자기 왜?”

“어…… 연구실 쪽에 갑자기 무슨 일이 있나 봐. 이미 내 쪽으로 에어 택시 보냈다는데.”

“그렇다고 이 시간에 고등학생을 불러내냐.”

다른 애들이 한마디씩 던지며 말려 봤지만, 어지간히 급한 일인가 싶어 붙잡지 못했다.

민그린은 몹시 아쉬워하며 송대석을 배웅했는데, 둘이 헤어지는 게 애틋해 보였는지 금찬왕찬이 한마디씩 했다.

“쟤들 사귐?”

“한 몇 년 사귄 거 같은데.”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반면, 제갈재걸은 송대석을 에어 택시가 대기한 곳까지 바래다주며 혹시 원치 않게 혹사당하는 상태가 아닌지 두 번 정도 확인했다.

“월궁계도에 뭔가가 관측되었다 한다.”

메시지를 바쁘게 주고받던 황지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니, 옥토연은 이런 중요한 말을 안 하고 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건가?

“어디에? 뭐가?”

황지호는 ‘뭐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지만, ‘어디에’라는 질문에는 답했다.

“아직 좌표는 확정되지 않은 듯하지만…… 이 방송국이 포함되어 있다.”

그 말에 여전히 의문은 남았으나,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이곳의 전력은 충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어렵지 않게 대항할 수 있겠지.’

진족이 둘에, 진족에 준하는 능력을 가진 제갈재걸도 있다.

그리고 현재 방송국에는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내장산의 성자 여래훈도 있다.

“여태까지 없던 타입의 관측물이라 해석에 시간에 걸리는 것 같더군. 특정 짓는 대로 대처하면 될 거다.”

한편, 비교적 평화로운 메시지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독고미로와 부쩍 친해진 김유리였다.

“얘들아, 미로한테서 메시지 왔어. 오늘 미로가 초대한 은광고 학생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데, 조금 일찍 들어가게 될 것 같아.”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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