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52화 (351/925)

57. 무대의 위 (3)

독고미로에게 인터뷰 관련 이야기를 마친 후.

염준열과 여래훈은 아이들을 직접 마중하러 가겠다는 독고미로를 뒤로하고 다음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의 주인은 독고미로, 여래훈에 이어 3위로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한 플레이어였다.

염준열이 그 대기실에 도착하기 직전, 염준열의 매니저 겸 경호를 맡은 용족이 디바이스를 보며 말했다.

“준열아, 추가된 인터뷰 때문에 멘트를 좀 손봐야 할 것 같은데. 대본 체크하니까 멘트 몇 개가 인터뷰 때 할 질문하고 겹쳐.”

“아, 그래요?”

“응, 최지나 씨하고 멘트 분배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 작가님이 새 대본 주신다고 하셨어?”

염준열과 용족이 대본을 다시 체크하며 걷던 중, 문득 용족이 멈춰 섰다.

표정이 미묘했다.

“으음.”

“누나, 왜 그러세요?”

“아니, 안 좋은 예감이 들어서. 용제건이 근처에 와 있어서 그런가?”

“아, 혹시 비 오는 거 아니에요? 오늘 아침에 청룡 삼촌도 이능파 상태가 안 좋다고 하던데…….”

용왕신은 날씨와 깊게 연관된 상위 존재다.

그러나 용왕신 외에도 날씨에 관한 신화와 전설을 배경으로 하는 상위 존재가 많다 보니 그 혼자서 날씨를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용왕신을 섬기는 이들은 날씨에 따라 컨디션이 크게 좌우되었다.

즉, 용왕신의 의지와 달리 용족들의 이능파 상태가 달라질 수도 있는 셈이다.

단순한 기상 현상의 결과, 혹은 다른 상위 존재에 의해 궂은 날씨가 닥쳐도 용족은 크게 영향을 받곤 했다.

용족의 본거지인 용궁이 바다 저 깊은 곳에 숨겨진 이유도 날씨의 영향에서 멀어지기 위함이었다.

“아니, 날씨랑은 큰 상관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청룡 님이 오늘 그 모양이었던 건, 준열이 네가 요즘 바빠서 그런 걸걸? 학생회장 일이랑 촬영 일에 치여서 요즘 청룡 님이랑 못 놀아 드렸잖아.”

“최근에 주변 분들께 소홀했어요. 죄송해요. 오늘 촬영이 마무리되면 당분간 연예계 일은 멀리하고 붉은 사자 분들이랑 용족 가족들, 그리고 스승님들과 시간을 보낼게요.”

“스승님들? 아, 염방열이랑 그 방랑벽에 걸린 놈 말하는 거야? 아직 걔는 한국에 안 돌아왔는데. 뭐, 가끔 연락 정도 해 주는 게 좋겠지.”

“하하하…….”

염준열은 어설프게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세간에 염준열의 스승으로 알려진 것은 둘이었다.

하나는 염준열의 아버지, 홍염의 제왕 염방열.

다른 하나는 방랑벽을 가진 용.

그러나 염준열에게는 스승이 하나 더 있었다.

‘비록 저번 중간고사에서는 또 2등을 해서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렸지만, 학생회장에는 무사히 당선되어서 다행이야. 고개를 들고 스승님을 뵈러 갈 수 있어!’

염준열은 스승이 부른 홍룡을 떠올리며 부드러운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는 용족도 덩달아 부드럽게 웃고, 다른 스태프들도 비슷한 표정을 했다.

“그러면 준열이는 바쁜 것 같으니까 인터뷰 얘기는 내가 전할게. 먼저 가 봐.”

“어, 그래도 될까요?”

“응, 방송 시작하기 전에 형하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잘됐네. 좀 있다가 봐.”

“감사합니다!”

염준열이 복도에 멈춰 서서 보조 작가와 매니저와 대본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 여래훈이 혼자 대기실로 향했다.

세 번째 출연자는 남은 셋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로, 이계 관련 산업 회사에 플레이어 특채로 들어간 직장인이자 틈틈이 이계 공략을 투잡으로 뛰는 중인 플레이어였다.

나이가 가장 많다고 해도 여래훈과 몇 살 차이가 나지는 않았지만, 직장 생활로 찌든 탓인지 제 나이에 비해 나이가 들어 보여 가끔 그의 노안을 갖고 짓궂게 놀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안인 여래훈과 나란히 서 있는 게 찍힌 방송 화면 캡처 밑에 ‘아버지와 아들.jpg’ 같은 댓글이 달릴 정도였다.

똑똑.

“형, 저 래훈인데요. 들어가도 괜찮아요?”

대기실 문을 두드리자 곧 들어오라는 답변이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친 얼굴을 한 남성이 대기실 소파에 길게 뻗어 있는 게 보였다.

아직 메이크업도 받지 않고 의상도 입지 않은 탓에,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 후보라기보다는 평범한 직장인이 상사 눈을 피해 몰래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운 자세로 대충 손을 흔든 남자가 물었다.

“래훈아, 넌 긴장 안 돼?”

“긴장하고 있어요. 인터뷰 일정 잡힌 거 들으셨어요? 일단 형하고 형 일행분들 의사를 묻고 진행할 예정이에요.”

“인터뷰? 일행?”

“네, 형 응원하러 온 팬이나 친구, 가족 대상으로요.”

“인터뷰해 줄 사람 없는데.”

남자가 피로가 묻어나는 얼굴로 웃었다.

여래훈은 그 얼굴과 무대 위에서의 갭을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늘 저런 얼굴로 ‘난 이제 틀렸어, 망했어.’라고 하면서도 무대 위에서는 감성과 가창력을 폭발시키곤 했다.

그래서 여래훈은 그 인터뷰해 줄 사람이 없다는 소리도 단순한 너스레라고 생각했다.

“아까 둘러봤는데 형 직장 동료분들도 다 오실 것 같던데요.”

“……내 직장에서 왔다고?”

“아직 오신 것 같진 않은데, 자리는 있더라고요.”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남자를 향해 여래훈은 웃으며 말했다.

여래훈은 남자가 이전에 내민 명함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까 무대를 둘러보고 왔어요. 방청석 쪽도 좀 보다 왔는데, ‘남궁물산 이계 산업 1사업부’라는 팻말이 붙은 자리가 있었어요.”

그 말에 남자의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그 굳은 얼굴에 여래훈은 희미한 위화감을 느꼈다.

*    *    *

독고미로와 디바이스로 메시지를 주고받던 김유리가 밝게 말했다.

“바로 인터뷰할지도 모르니까 누가 나갈지도 정할까? 다 같이 말하면 정신없을지도 몰라. 아, 좀 있다가 미로가 마중 나온대!”

“헐, 미로랑 만나는 거야?”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그저 독고미로가 이쪽으로 오는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는데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난리가 났다.

특히, 금찬왕찬 콤비는 ‘미로’라는 단어 외에도 ‘인터뷰’라는 단어에 설레 보였다.

“자, 그럼 인터뷰할 사람…….”

“저욧!”

금찬솔과 왕찬솔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말하는 타이밍까지 정확했는데, 누군가 두 사람의 음성을 녹음해 한 번에 재생했나 싶었을 정도였다.

저놈들은 카메라 욕심도 많은지, 비록 자신들이 1학년 0반 소속은 아니나 0반 선배로서 반드시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며 자기 어필을 했다.

여태까지 장난을 치고 변명을 하는 데 도가 터서 그런지, 두 사람은 말을 잘하긴 했다.

또, 독고미로에 관한 애정도 남달라 보였다.

독고미로가 여태까지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들이나 노래 제목을 줄줄 읊어댔다.

“잘 알고 있구나. 나도 나중에 미로가 부른 노래를 따로 들어 보마. 찬솔이가 미로를 많이 좋아하나 보구나.”

제갈재걸은 후배를 아끼는 제자의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흐뭇해하는 얼굴로 한마디 했다.

그러나 금찬왕찬의 이어지는 말이 그 흐뭇함을 박살 냈다.

“그래도 제갈 쌤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데요!”

“왕찬 말에 동의합니닷!”

“……그래, 고맙다.”

“하하하, 일단 우리 반 상대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거니까 반 아이들 의견을 들어 볼까 하는데…….”

김유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반 아이들을 둘러봤다.

카메라 앞에 나서겠다는 의욕을 보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황지호의 경우.

“이 몸은 최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언론은 신중하게 선택할 생각이다. 정 인터뷰하겠다면 못 할 것도 없긴 하지만…….”

“다른 애들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조의신,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맹효돈과 한이, 권레나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나가도 상관없긴 한데.”

“할 사람이 없으면 할게. ……초등학교 시절 질문은 안 했으면 좋겠어.”

“어떡해, 미로에 관한 질문이 나오면 선배님들만큼 제대로 답할 자신이 없어!”

그리고 민그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기에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저는 하고 싶은데요!”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선 유일하게 사월세음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제갈재걸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월세음을 단호하게 말렸다.

제갈재걸이 사월세음에게 뭔가 속삭이자 ‘아…….’ 하고 탄성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한발 물러났다.

‘사월 가문 출신의 아이가 예능 프로그램에 대놓고 나오는 건 좀 그렇겠지.’

환몽 경매 직후, 사월세음에게 제갈재걸의 연락처를 알려 줘 도움을 받게 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제갈재걸이 사월세음을 챙기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인터뷰는 김유리와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맡기로 했다.

김유리가 앞장서서 방송국 후문으로 향했다.

불투명한 유리문 앞에는 경비가 서 있었는데, 방청권을 보여 주고 김유리가 설명을 하니 곧바로 통과되었다.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에는 보안 검색대와 플레이어로 보이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플레이어가 입고 있는 재킷에는 그럭저럭 유명한 팀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방송국은 보안이 철저하구나.’

예전에 방송국을 어느 미친 진족과 에너미가 점거해 거대한 방송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뒤늦게 플레이어 협회와 근방에 있던 플레이어 팀이 수습하긴 했지만, 한 번 전파를 타고 나니 되돌릴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모든 방송국이 리모델링을 하거나 신사옥으로 옮길 때, 보안을 최우선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안 검색대를 설치하고 플레이어 팀을 고용하는 건 물론이고, 일부러 내부 구조를 복잡하게 만든 후 시설 안내도에는 일부 시설만 공개하게 되었다.

삐이!

맹효돈이 제일 먼저 검색대를 통과하려다 붙잡혔다.

플레이어 경비가 맹효돈에게 물었다.

“무기나 무기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습니까?”

맹효돈은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아이템 카드를 꺼냈다.

“어, 학교에서 받은 카드는 있는데요…… 그런데 그거를 무기라고 해야 하나, 보호대인데…….”

“제가 이 아이들의 인솔 책임자입니다.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맹효돈이 제대로 말을 못 하자 제갈재걸이 나서서 반 아이들이 소지한 무기 아이템을 확인해 줬다.

플레이어 경비는 카드 위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이게 했다.

스티커에는 이능파로 봉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보안 검색대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스티커를 제거하거나 무기를 실체화하면 알람이 갑니다. 주의해 주세요.”

무기로 실체화하면 방송국 경비팀과 그 경비 플레이어가 소속한 프로 플레이어 팀 쪽에 연락이 간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학교에서 지급한 무기가 300개였던 탓에 아예 덱으로 묶어 스티커를 붙이게 되었다.

덱 위에 스티커를 붙인 후에는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아이템창에 들어간 아이템은 보안 검색대에 걸리지 않는구나.’

상보심금파가 걸리면 어떻게 변명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편, 황지호는 이쪽을 보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걸리지 않은 거지? 두고 온 건가? 아니, 조의신의 성격을 고려하면 두고 왔을 리가 없을 텐데.”

노친네가 어디에서 뭘 주워들은 건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지호는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혹시, 그게 ‘혜택’ 중의 하나인가.”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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