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64화 (363/925)

58. 천적 (6)

다섯 가지의 색은 동양문화권에서 우주 만물의 변화 양상과 인식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음양오행(陰陽五行)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음과 양, 두 기운은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 다섯 가지 기운을 만든다.

이 다섯 기운 ‘오행’은 중앙과 동서남북에 상응하고 이는 다섯 색으로 표현된다.

중앙이 황(黃), 동쪽이 청(靑), 서쪽이 백(白) , 남쪽이 적(赤) 그리고 북쪽이 흑(黑).

이 다섯 색은 다섯 방위를 상징한다는 뜻에서 오방색(五方色)으로 불렸다.

‘하지만 오색이라 함은 오방색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이 무녀들처럼.’

오색 하면 흔히 오방색을 연상하지만, 오간색(五間色)이라고 불리는 다섯 색도 존재한다.

오방색이 음양 중 양(陽)의 색이라면, 오간색은 음(陰)의 색에 해당했다.

오간색은 상색간색, 상극간색 두 가지가 존재했는데, 지금 용왕신의 다섯 무녀가 입고 있는 색은 후자 쪽이었다.

상극간색에 속하는 녹(綠), 벽(碧), 홍(紅), 유황(硫黃), 자(紫).

오방색을 섞었을 때 나오는 색들이었다.

‘용왕신의 무녀가 용왕신과 용, 인간을 잇는다는 의미를 고려하면 오방색보다는 오간색이 잘 어울릴 거야.’

그리고 이 오간색의 무녀 중, 배신자가 있었다.

간첩, 스파이를 간자(間者)라고 칭한다는 점에서 오간색의 무녀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도 어떤 의미론 어울렸다.

옥상에 착륙하기 전, 용제건에게 물었다.

“지금 저는 어떤 입장으로 와 있죠?”

“준열이의 손님. 나나 염방열, 청룡에게 있어서는 은인이지만, 네 내력을 숨기려고 그렇게 해 놨어.”

용제건은 ‘잘했지?’ 하는 얼굴로 나를 봤다.

그 얼굴을 보니 안심과 동시에 씁쓸함이 차올랐다.

‘……용제건은 이 건물 안에 배신자가 있을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구나.’

용제건은 눈을 크게 뜨고 붉은 사자 팀 빌딩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로로 열린 동공이 시안색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배신자는 용이야? 아니면 인간이야?”

“어느 쪽이라고 단정 짓긴 어려워요.”

“배신자가 있는 건 확실하구나. 짐작은 했지만.”

“왜 그렇게 짐작하셨어요?”

용제건은 특유의 화법으로 배신자의 유무에 관해 캐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리 기분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용제건이 자신의 추리를 읊었다.

“오늘 촬영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잖아. 생방송을 앞두고 대본을 바꾸는 바람에 준열이 스케줄도 조정됐지. 추가된 인터뷰와 맞는 나레이션을 다시 녹음해야 한다고 말이야.”

용제건의 말대로, 관객 인터뷰 추가로 촬영 일정과 대본이 수정되었다.

출연자인 독고미로도 급하게 그 사실을 전해 듣는 바람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사과도 했다.

용제건이 염준열과 합류하기 전, 이렇게 물었을 정도였다.

―준열이 위치는? 사전 녹화가 끝날 때쯤 스튜디오로 온다는 건 들었는데.

붉은 사자와 용족들은 염준열의 스케줄을 공유하는지, 용제건이 설명을 더했다.

“나는 준열이 스케줄을 아침에 확인했거든. 오늘 매니저 겸 경호를 담당한 용이 업데이트했지만, 오후에 바뀐 스케줄까진 확인을 못 했어. 하지만 그 용살자는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지.”

카드모스는 곧바로 염준열이 있는 플로어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무슨 짓을 한 건지 그 층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최신 정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방송국 관계자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준열이 경호 담당은 매일 제비뽑기로 정하거든. 이건 방송국 관계자가 알 리가 없어. 오늘 준열이를 경호한 게 용족이 아니라 붉은 사자 팀원일 수도 있었는데, 용살자를 집어서 보낸 게 마음에 걸려.”

만약 오늘 염준열을 경호한 게 용족이 아니라 염방열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사로잡히진 않았더라도 염준열이나 용제건의 암살은 절대로 불가능했을 거다.

카드모스의 움직임은 오늘 염준열이 용족과 동행하고, 은광고의 플레이어들과 떨어져 있을 가능성을 고려한 움직임이었다.

“의신이 네가 왜 호족이 아니라 우리 용족에게 용살자를 맡겼는지 생각해 봤어. 정보를 캐기 위해서라면 청룡보다는 황호 이사장 씨가 저자를 잡아 두는 게, 의신이 네게 있어서 편할 텐데…… 왜 우리 용족에게 저자를 넘긴 걸까?”

용제건의 말 그대로였다.

단순히 카드모스를 심문하고 정보를 캐기 위해서라면 호족에게 그를 넘기는 게 더 편했다.

호족의 신역은 내 생활 범위 안에 있었고, 호족 중에는 고문 전문가인 김신록도 있지 않은가.

또, 내가 염준열을 울린 걸 알면 불벼락을 날릴 청룡보다야 황지호가 더 나았다.

내 사정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용제건의 추리는 정확했다.

“너도 용족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카드모스를 협회나 호족이 아닌 용족에 맡겨서 뭔가를 찾으려 한 거지.”

용제건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눈을 가늘게 떠 평소의 실눈으로 웃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해서 오늘 의신이는 ‘용족의 은인’이 아니라 ‘준열이의 손님’으로 취급할 예정이야. 우연히 용살자의 습격에 휘말린 친한 후배지.”

내 정체가 알려지면 그건 그거대로 나를 미끼로 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의신아, 설마 이 상황에서 미끼가 되려고 생각한 거야?”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아, 준열이가 네 걱정을 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네. 뭐라고 답장하면 좋을 것 같아? 방금 네가 한 말 그대로 전해도 돼?”

용제건의 말에 생각이 정지되었다.

내 제자는 딱히 내가 아니더라도 학교 후배가 그런 짓을 한다고 하면 걱정할 거다.

나는 고개를 힘없이 저었다.

“싫어? 그래, 그럼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자.”

어차피 내가 내 입으로 용족의 은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쓸데없는 짓은 애초에 못 한다.

‘그렇다면 염방열과 청룡에게만 내 정체가 알려진 건가?’

둘 다 배신자일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이들이었다.

용제건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둘에게 내 이야기를 전한 거겠지.

“다섯이 다 나올 줄은 몰랐는데. 준열이의 손님이 누군지 많이 궁금했나 봐. 준열이 교우 관계는 넓은 편이지만 이곳으로 초대한 적은 없거든.”

“용제건 선생님이 부르신 게 아니었나요?”

“응. 다섯 명 다 부른 게 아니야. 음…… 그 표정을 보니 무녀들을 잘 지켜봐야 할 것 같네.”

그 말을 끝으로 나와 용제건은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가 들릴 만큼 용왕신의 무녀들과 가까워진 탓이었다.

파아아앗!

고도가 점점 내려갔을 때, 오색 채운이 둘로 나뉘어 우리를 삼켰다.

오색 채운도 일종의 결계였는지, 구름 사이를 뚫고 착륙하는 사이 정순한 이능파의 기운이 느껴졌다.

“용제건 님, 오셨어요?”

“어서 와요.”

유황색의 옷을 입은 무녀를 필두로 무녀들이 용제건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녀들은 오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옷과 같은 색의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용왕신의 무녀는 50년을 주기로 바뀌고 내년에 무녀 계승식이 열리니 아주 어린 나이에 무녀로 선정되었다 한들 이들의 나이는 최소 50이 넘었을 터.

그러나 옷깃 사이로 보이는 하얀 손이나 매끄러운 목소리에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생각에 다다르니 어떤 설정이 하나 떠올랐다.

‘용왕신의 무녀는 불로(不老)의 가호를 받는다고 했지.’

옥토연과 같은 불사(不死)는 아니어도 늙지 않는 불로(不老).

용왕신이 건재한 이상 용왕신의 무녀는 세월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응, 다녀왔어. 다들 나와 줄 줄은 몰랐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용제건은 학교에서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 줄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답인사를 했다.

몇 분 전에 허공에서 두 눈을 번뜩이며 배신자에게 적의를 불태웠던 용과는 다른 용 같았다.

“준열이가 손님을 데려온 건 처음이잖아요.”

“얼른 손님과 인사하게 해 줘요.”

“어머나, 이능파 상태가 엉망이네. 얼른 인사하고 치료하러 가요.”

무녀들은 따사로운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나를 봤다.

호의가 넘치는 음성, 이 자리에 없는 염준열에 대한 애정, 그 염준열의 손님인 나에 관한 호기심과 관심.

평소라면 그 모든 게 쑥스럽고 속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을 텐데, 왠지 이 장면이 하나의 촌극 같아서 공연히 긴장되었다.

“내가 은광고에서 부담임으로서 반을 맡는다는 건 알고 있지? 우리 반 아이이기도 해.”

“안녕하세요, 조의신입니다.”

“후후후, 예의 바른 아이네요. 그럼 우리도 소개할게요.”

녹(綠), 벽(碧), 유황(硫黃), 자(紫)의 무녀가 자기소개를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부여받은 색 자체를 이름으로 삼는 듯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도 무사히 무녀 후보생에서 무녀가 됐다면 저 이름 중 하나를 받았을까?’

아직 중학생일 그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다잡혔다.

내년에 용궁에서 무녀 계승식이 열리고, ‘용왕신의 무녀’의 시나리오에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누군가의 계략에 의해 사망한다.

여기에서 무녀 중에 배신자가 있을 거라는 복선이 깔리고, 그 복선은 염준열이 사망한 이후 최악의 형태로 회수된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지키고, 염준열을 지켜야 해……!’

나는 그 일념으로 용왕신의 무녀들의 이름과 목소리를 하나하나 기억했다.

녹(綠), 벽(碧), 유황(硫黃), 자(紫)의 무녀와 인사를 마쳤을 때였다.

“홍(紅)아, 너도 이리 와서 준열이의 후배와 인사하렴.”

“네, 네에…….”

염준열의 홍룡과 같은 색의 이름을 가진 무녀가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용왕신의 무녀들도 다 한결같은 성격은 아닌지, 홍의 무녀는 매우 낯을 가렸다.

적색과 백색의 간색, 홍색의 베일을 입은 무녀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마쳤다.

“용제건 님도 동행하시나요?”

“바로 준열이의 방송을 보러 가 버릴 줄 알았는데. 제자에게는 각별한가 봐요.”

정말로 나를 용족의 영역으로 데려갈 생각인지 무녀들은 나를 지하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로 인도했는데, 용제건은 바로 내 옆에 붙어 이동했다.

“응, 준열이의 후배이자 우리 반 아이잖아. 잘 지켜봐야지.”

용제건이 자리를 뜨지 않은 건 배신자를 염려해서 그런 거겠지만.

여기에서 나 하나 없애겠다고 배신한 무녀가 칼을 들 것 같진 않은데.

우우웅……!

용왕신의 무녀들과 염준열의 학교생활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숫자를 가리키던 엘리베이터 패널은 1층을 지난 시점부터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지하 층수부터는 표시되지 않는 건가?’

층수가 아닌 다른 게 표시되지 않을까 해서 패널을 주시했지만 전원이 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비쳐지지 않았다.

그 대신 엘리베이터의 문에 푸른 용의 문양이 떠올랐다.

문양을 본 무녀들이 ‘어머!’ 하고 감탄했다.

“청룡 님이 정말로 문을 열어 주셨네요!”

“아무리 준열이의 후배라도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았는데.”

이 엘리베이터는 청룡의 힘이 없으면 지하로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보인 것은 지하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넓은 정원이었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고 초목이 우거진 게, 내가 밖에 나왔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문밖으로 한걸음 나서자 이능압에 몸이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황명호 대저택의 지하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힘의 밀도가 높아……!’

과연 용족의 영역다운 곳이었다.

무녀들이 나를 안내한 건 정원 가운데, 오방색의 용 조각이 있는 마법진 위였다.

무녀들은 내가 마법진 중앙에 서도록 안내했다.

“그럼 용왕신의 힘을 빌려 손님의 몸을 살피겠습니다.”

녹(綠)의 무녀가 하늘을 향해 노래를 부르자 다른 무녀들이 그녀의 목소리에 맞춰 연창했다.

은은한 이능파가 노랫소리에 섞여 내 몸을 감쌌다.

이능파가 천천히 내 안으로 스며들어 내 기력을 북돋아 줬다.

그리고 노래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시스템 음이 들렸다.

〈스킬 ‘운명력’이 발동했습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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