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84화 (383/925)

60. 파티 (7)

은광고 서문 앞 베이커리 ‘MITRON’의 파티시에 플레이어.

그가 모시는 분의 말씀.

까마귀.

수수께끼 같은 말과 상황이었다.

말을 하는 인물, 말의 내용, 배경을 퍼즐 맞추듯이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움직였다.

가장 큰 단서는 용제건이 한 말들이었다.

―까마귀 가면을 쓰고 다닐 거면 까마귀 마왕과 그가 아끼는 인간의 기호품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더구나.

―내가 알려 줄 수도 있어. 그 마왕 씨가 아끼는 인간이 마침 은광구에 있기도 하고.

용제건은 예전에 비탄의 웅녀가 한 말을 전하며 몇 마디 덧붙였다.

용제건의 말에 의하면 까마귀 마왕의 단서는 두 가지.

첫째, 까마귀 마왕이 아끼는 인간이 은광구에 있다.

둘째, 까마귀 마왕과 그가 아끼는 인간에게는 공통적인 기호품이 존재한다.

이 기호품에 관한 힌트는 게임 속에서 추상적으로 등장한 바 있었다.

‘빛나는 것’,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것’.

이것만으로는 감이 오지 않았지만, ‘호불호’라는 단어에 걸리는 게 있었다.

―나랑 취향이 아주 아주 맞지 않는 까마귀 마왕이 있는데, 최근 그 관계자가 눈에 띄어서.

용제건과 취향이 잘 맞는 존재는 오히려 드물지 않나?

같은 용들도 용제건이 황홀하게 웃으면 한발 물러나지 않는가.

어쨌든 까마귀 마왕과 용제건은 취향이 엇갈리는 건 사실인 듯하다.

이 용제건의 취향의 일부는 그의 유일한 친구가 말한 바 있었다.

―제 술친구는 단맛을 싫어해서요. 혼자 먹자니 흥이 살지 않아서 좋은 술인데도 먹을 기회가 없었죠.

―용제건이? 친구도 없는 놈이 우리 후예가 놀아 주면 뭐든 감사하게 먹을 것이지, 뭘 가리긴 가려.

김신록이 술과 안주를 준비한 호랑이들의 술자리에서 용제건의 취향이 언급되었다.

용제건은 단맛을 싫어한다.

까마귀 마왕의 기호품이라는 건 설탕, 혹은 그 설탕으로 만든 작품 아닐까?

‘그렇게 가정하면 은광구에 있고, 단맛과 연관이 있는 이 파티시에가 까마귀 마왕의 대리인이겠지. 그러면 앞뒤가 맞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인물은 파티시에이자 쇼콜라티에, 그리고 슈거 크래프트 장인이기도 하다.

이 파티시에는 목우람과 달리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한이가 과소비를 하게 만드는 단맛의 마술사다.

까마귀의 마왕이 단맛을 사랑한다면 아끼고, 대리인으로 삼아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이다.

‘황지호가 처음 이 파티시에를 보고 한마디 했지.’

스승의 날, 함근형 선생님과 함께 먹을 다과를 사기 위해 MITRON에 방문했을 때였다.

그날 파티시에를 처음 본 황지호가 한마디 했었다.

―진족의 가호를 강하게 받은 것 같은데. 누구지.

유명한 플레이어이기도 한 MITRON의 파티시에가 진족의 가호를 받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

‘그 진족이 마족(魔族)이었나 보네.’

무려 마족 중에서도 까마귀 마왕 시델렌티움의 가호를 받았을 줄은 몰랐다.

결정적인 건, 이 파티시에가 예전에 나한테 한 질문이었다.

‘그날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했었지.’

10월 3일 호랑이들의 생일잔치 아침.

당시 추석 연휴가 겹쳐 MITRON은 휴무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파티시에가 배려해 준 덕에 케이크를 주문할 수 있었다.

예술 작품 같은 케이크를 수령하러 갔을 때, 파티시에가 물었다.

―멋지지 않습니까? 아름답고 달콤한 예술 작품이라니······ 기온이 높으면 쉽게 녹아 버리는 걸 제외하면 완벽하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에 ‘멋지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하자 파티시에는 대금을 받지 않고 케이크를 선물로 줬다.

그 질문은 일종의 시험이었던 게 분명했다.

‘내가 마왕의 기호품을 존중하는가의 여부를 확인하는 시험이었구나.’

그리고 지금 마왕의 계약인인 파티시에가 정체를 드러내는 말을 하며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짐작이 갔다.

첫 실습 당시 이계에 개입한 시델렌티움에게 거래를 제안했을 때, 그가 조만간 만나러 온다고 했으니까.

―거래는 언제 할까요? 그 모습으로는 아이템 카드를 받아 갈 수 없을 텐데요.

―호족의 신역에서는 활동하기가 어렵다. 계절이 바뀌기 전에 내 계약자를 대리로 조만간 만나러 가마.

그 말대로 은광구의 밖에 있을 때, 주변에 다른 진족이 없을 때를 노려 만나러 온 것 같다.

첫 실습을 치른 건 9월, 지금은 핼러윈을 눈앞에 둔 10월 말이니 까마귀 마왕은 제 말을 지킨 셈이다.

내 대답을 기다리며 나를 보고 있는 파티시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그분의 대리인이시죠? 약속대로 계절이 바뀌기 전에 만나러 오셨군요.”

파티시에가 까마귀 마왕의 대리인이 아닐 가능성을 고려해 해석의 여지가 남는 말을 했다.

내 예상이 전부 맞아떨어졌는지, 파티시에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듣던 대로 예의 바르고 총명하시군요. 놀라시거나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놀라는 건 둘째 치고, 만약 못 알아보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내 의문에 답하는 것처럼 파티시에가 한마디 덧붙였다.

“만약 조의신 학생이 제가 그분의 대리인이라는 걸 못 알아보셨으면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했겠죠. 거기에 더해 실망스러웠을 텐데, 다행이네요.”

저 말을 들으니 파티시에와 시델렌티움의 닮은 구석이 보였다.

마왕이 첫 실습 때 난제를 던진 것도 그렇고, 파티시에를 통해 취향이 맞는지의 여부를 확인한 것도 그렇고, 여기에서 모호한 말로 사람을 떠본 것도 그렇고.

마왕과 그 대리인은 사람을 시험하는 걸 좋아하는가 보다.

“여기에서 거래하실 생각인가요?”

“아뇨, 조의신 학생이 해외에 귀중한 아이템을 들고 출국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나요?”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에 아이템창 기능이 없었다면 아마 그랬을 거다.

당장 내가 사용해야 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 카드라면 어떤 식으로든 들고 다녔겠지만, 거래에 쓸 예정인 아이템을 소지하고 다니는 건 패착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

“설령 조의신 학생이 지금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출국 전에는 없던 UR급 아이템을 소지한 게 발각되면 번거롭게 되겠죠. 지금 거래 생각은 없어요.”

파티시에는 지금 아이템 카드를 받아 갈 생각이 없을 단단히 밝혔다.

그럼 왜 말을 건 거지?

“사실 제가 모시는 분이 핼러윈 파티에 초대받았거든요. 저는 그분을 대리해 파티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포모르 마족이 마왕 시델렌티움도 초대했나.

포모르 마족은 이번에 다누 신족의 신보를 확보했으니 최대한 많은 파티객을 끌어모으고 싶을 거다.

그 상황에서 마왕 소리를 듣는 고위 마족에게 초대장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조의신 학생이 지금 영국에 있다는 건, 그 파티에 참가할 예정이라는 뜻이죠?”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거래 관련 얘기를 할 생각이 없는데, 시델렌티움의 계약인이 갑자기 나를 불러내 할 말이 있다니.

‘설마 ‘그 행위’를 요구할 생각인가? 평소라면 상관없는데, 지금은 때가 안 좋은데……! 아니, 아닐 가능성도 있는데 속단해선 안 돼.’

나는 희망을 품고 물었다.

“……전언의 내용을 물어봐도 될까요?”

“이번 핼러윈 파티의 참가객들은 모두 가면을 써야 하는 건 들으셨겠죠.”

파티시에가 내 헛된 희망을 완전히 박살 냈다.

“파티장에서 까마귀 가면을 쓰세요.”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괴도 네온 앞에 ‘그 단어’와 관계가 있는 까마귀 가면을 써야 한다고?

얼마 전에 신문부에서 ‘그 단어’와 괴도 네온을 비교하는 기사를 내지 않았던가.

괴도에 관한 소식이라면 뭐든지 찾아 읽는 괴도가 그 기사를 안 봤을 리가 없다.

분명 쓸데없는 라이벌 의식을 피우고 있을 게 분명한데!

‘아니야, ‘그 단어’와 까마귀 가면의 연관성이 대중에게 드러나진 않았어. 까마귀 가면을 쓰더라도 내가 ‘그 단어’의 인물이란 걸 못 알아볼 가능성이 있어.’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파티시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불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괴도 네온은 늘 이상한 데서 감이 좋았으니까.

*    *    *

이름이 막 붙은 어느 괴도의 아지트.

벽면을 가득 채운 홀로그램 화면들이 빅 벤에 적힌 예고장을 비추고 있었다.

소년은 거대한 예고장을 날리느라 이능파를 전부 소진해 기진맥진하고 무방비한 상태였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예고장 한 방에 괴도로서의 이름이 생긴 덕이었다.

“괴도로서의 이름이 붙은 걸 축하해요, 괴도 네온.”

서돌의 말에 괴도 네온이 환하게 웃었다.

서돌이 봤을 때 괴도 네온은 이능파가 한 줌도 안 남은 상태라 웃을 힘도 없을 것 같은데, 그는 쌩쌩했다.

괴도 네온이라는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드는 건지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 괴도의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괴도다운 행보를 보이겠어요!”

“응원할게요.”

서돌은 괴도 네온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몸소 가져다 바치며 정성을 다했다.

괴도 네온이 컨디션 난조로 핼러윈 파티에 불참하게 되면 구경거리가 없어질 것이다.

서돌은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어 안 하던 짓을 했다.

“저한테 따로 부탁할 건 없나요? 예고장 제작만 돕고 물러나는 건 멋이 없잖아요.”

“이미 서돌 디자이너께는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아, 부탁이 있습니다.”

한없이 들떠 보이던 괴도 네온이 진지한 얼굴을 했다.

서돌도 덩달아 진지하게 그의 부탁에 귀를 기울였다.

“파티장에서 까마귀 가면을 쓴 사람을 찾아 주세요.”

“……까마귀 가면이요?”

‘까마귀 가면’이라는 말에 서돌은 곧바로 까마귀 마왕을 떠올렸다.

마족이 여는 파티에서 까마귀 가면을 쓴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면 누구나 까마귀 마왕을 연상했을 것이다.

“까마귀 가면을 찾는 이유가 뭐죠?”

서돌의 질문에 괴도 네온이 답했다.

“까마귀 가면을 쓴 사람은 어떤 괴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괴도요?”

괴도가 그렇게 흔한 직업이었나?

이 괴도 네온 말고 이상한 아이가 하나 더 있었나 보다.

서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괴도 네온이 말했다.

“저보다 먼저 한국 언론에게 이름을 받은 괴도, 적벽괴도요!”

“아, 그 적벽괴도에 관해선 저도 알고 있긴 한데요. 그가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었나요?”

서돌은 올해 초 한국을 뒤흔들 환몽 게이트를 부순 어느 괴도의 존재를 떠올렸다.

환몽 게이트 수습 과정에 자신이 가호를 내린 플레이어들이 엮였기에 서돌도 그 사건에 주목했었다.

하지만 서돌이 기억을 더듬어도 ‘까마귀 가면’에 관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다.

괴도 네온은 설명을 위해 디바이스를 켜 어느 파일을 불러왔다.

‘이건 그때 돌아다니던 환몽 리스트인가? 거기에서 내용이 더 추가된 것 같네.’

괴도 네온이 꺼낸 건 환몽 게이트에 연루된 자들의 신상 명세를 담은 자료였다.

괴도 네온이 추가로 작업을 한 건지, 각 인물명에 설명과 신문 기사와 사진 등이 여러 개 링크되어 있었다.

괴도 네온은 ‘최편득’ 페이지를 펼치며 어느 기사를 보여줬다.

기사 속 사진엔 까마귀 가면을 쓴 인물이 흐릿하게 찍혀 있었다.

“이 사건은 환몽 게이트에 연루된 어느 인물의 실종과 관계있습니다. 여기에서 까마귀 가면을 쓴 의문의 인물이 등장했죠.”

그렇다고 해서 까마귀 가면을 쓴 인물과 적벽괴도를 동일 인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 않나?

서돌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괴도 네온의 열변은 계속 이어졌다.

“괴도는 가면이든 모노클이든 써서 얼굴을 가리는 게 국제 룰입니다! 저번에 쓴 건 염준열 씨의 얼굴이었고, 다음에 쓴 게 까마귀 가면이었겠죠.”

“……그런 룰이 있었나요?”

“그리고 제 감이 적벽괴도가 이후에는 까마귀 가면을 쓰고 괴도 행위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괴도끼리는 느끼는 게 있다고요.”

괴도 네온의 답변에 서돌의 사고는 미궁으로 빠졌다.

괴도끼리는 느끼는 게 있다고?

나도 그 괴도의 감을 느끼려면 괴도 짓을 해야 하나?

괴도 네온은 딴생각을 하려는 서돌에게 다시 당부했다.

“까마귀 가면을 발견하면 붙잡아 두시거나 제게 알려 주세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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