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87화 (386/925)

60. 파티 (10)

마족(魔族)과 마족(馬族).

둘 사이의 갈등은 플마고 게임과 이 세계에서 끊임없이 묘사되었다.

플마고 게임 속 마족(馬族)은 이계 충돌 이후 마족(魔族)과 계속 싸운 것으로 알려졌고, 그 탓인지 비중도 적고 스토리에 깊게 관여하지 못했다.

두 종족이 싸운 이유는 12지 동맹 회담에서 밝혀진 바 있었다.

―午[예민한 흑마] “나 바쁜데, 빨리 끝내. 마족(魔族) 놈들 또 쳐들어왔어.”

―酉[계룡산 구구탁예설락] “걔들 또 그래? 한국어로 마족(馬族)이랑 동음이의어인 게 아니꼬우면 한반도에서 좀 꺼졌으면;;”

이 세계에서 이계 충돌이 처음 발생한 곳은 한반도로, 가장 강력한 지력을 품게 되어 많은 진족들이 한반도로 향했다.

한반도에 정착한 이들은 자연스레 한국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마족(魔族)과 마족(馬族)의 이름이 겹치는 것도 그 과정에서 생긴 해프닝이다.

많진 않지만, 겹치는 이름이 생겼는데, 각 진족의 반응은 다양했다.

‘여우들, 호족(狐族)들은 호랑이들과 이름이 겹치는 걸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는데. 헷갈리면 그냥 여우라고 부르라고 했지.’

동명이인의 존재 여부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종족명이 겹치는 것 정도야 신경 쓰지 않는 진족도 있었으나, 맹렬하게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다.

흑마와 계족의 수장이 대화만 봐도 마족(魔族)이 얼마나 격하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이 싸운 흔적은 곳곳에서 언급되었다.

주수혁과 함께 맹효돈을 찾으러 홍천으로 갔을 때, 흑마는 이런 말을 했다.

―어제 태풍을 틈타서 마족(魔族)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바빴어.

맹효돈은 태풍이 몰려온 날, 흑마의 신수를 구했다.

흑마는 맹효돈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선물을 줄 겸, 황지호에게 한정적으로 동맹을 맺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계 충돌 이후 우리의 세계와 인간들의 현세가 겹쳐져 마족(馬族)이 한반도에 터를 잡은 이후로 마족(魔族)과의 싸움은 끊이질 않았어. 장난 수준으로 귀엽게 시비를 거는 이들부터 우리를 멸족시키려 한 무엄한 것들까지. 100년에 걸쳐 다양한 마족(魔族)을 상대했지.

―지금까지는 우리의 힘만으로 마족(魔族)에 대항하는 건 귀찮긴 해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 그런데 점점 상황이 안 좋아져서.

흑마의 말에 의하면 흑마는 모든 마족(魔族)과 적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마족(魔族)으로 분류되는 진족은 호족이나 용족에 비해 개체 수도 많고, 무리 짓지 않는 습성이 있어 다 제각각이다.

또, 포모르 마족이 적의를 불태우는 건 다누 신족이고, 본거지도 영국에 있으니 흑마와 적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도 수장인 흑마가 직접 오다니. 저번엔 신수가 위험에 처할 만큼 상황이 안 좋지 않았나? 호족과 동맹을 맺은 덕에 여유가 생긴 건가?’

켈트 신화와 말.

둘 사이에는 큰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남긴 서사시, ‘변신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말과 당나귀, 풍요와 번영의 여신 ‘에포나’.

특별한 서사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고대에서 말의 위상이 컸던 탓일까 에포나는 켈트 신화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숭배받았다.

‘예전에 흑마가 언급한 능력을 고려하면, 흑마는 에포나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흑마가 이사장실을 방문한 날, 그녀는 마족(魔族)의 사제를 생포해 고문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짧은 설명 속에서 흑마의 능력이 언급되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사제를 고정시켜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을 강제로 읽었다고 했지.’

에포나는 말을 타는 이들의 수호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 외에도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바로 죽은 자를 인도하는 것.

에포나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고 가는 여신이기도 했다.

흑마의 능력은 에포나의 권능과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오늘은 핼러윈.

죽은 자가 돌아오는 날의 파티에 흑마가 등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군. 이래서야 무영이보다 늦겠어.”

우리 일행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탓에 흑마는 앞서 교량을 건너기 시작했다.

흑마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만약을 대비해 성국언에게 알리기로 했다.

“마족(馬族)의 수장이 있어요.”

“홍천에 자리 잡은 12지의 수장을 말하는 거군. 어디에 있지?”

성국언은 놀라거나 의문을 표하는 대신 위치부터 물었다.

마족(馬族)은 성국언의 본가가 있는 홍천군에 자리 잡아서 그런지 성국언도 그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검은 말의 갈기를 가면에 장식한 여성분이요. 가면 밑으로 보이는 피부는 어두운 편이고, 스리피스 바지 정장 위에 프록코트를 입으셨어요.”

내가 방향을 가리키며 설명하자 성국언은 흑마를 찾았는지 한동안 가만히 응시했다.

머릿속으로 그 모습을 새겨 넣는 듯했다.

성국언은 흑마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입을 열었다.

“네가 그 흑마와 아는 사이인 줄은 몰랐구나.”

이 건에 관해선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 자리엔 우리 학교 애들도 있었고 탁거산도 있었으니까.

“예전에 홍천에 방문했을 때, 같은 반 아이가 흑마에게 감사 인사를 받은 적이 있어요.”

“감사 인사? 무슨 일로 0반 후배가 진족에게 인사를 들은 거지?”

성국언은 추궁한다기보다는 정말 0반 후배가 무슨 일로 진족과 엮인 건지 궁금해하는 말투였다.

나는 순순히 태풍이 불던 날 있던 일을 전했다.

성국언은 0반 후배의 활약에 감탄하면서도 마족(馬族)의 신수가 마족(魔族)에 의해 살해당할 뻔하고, 그걸 맹효돈이 구했다는 사실에 미묘한 얼굴을 했다.

“진족끼리의 대립은 흔한 일이지. 거기에 인간이 말려드는 것도.”

성국언은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화의 주제는 탁거산, 맹효돈 사제로 바뀌었다.

“효돈이가 그 탁거산 선생님의 수제자 맞지? 화백님께 말씀 들었다. 늦게 본 제자 자랑을 어찌나 하는지 모른다고.”

성국언은 홍경복 화백, 무쇠팔 송만석과 친분이 있어서 그런지 탁거산도 알고 있나 보다.

맹효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는데 성국언이 노린 걸까.

이야기를 하는 사이, 우리는 자연스레 교량을 넘어갔다.

컴컴한 바다 위로 길게 뻗은 교량을 반 정도 건넜을 때였다.

바다 안개 사이로 보이지 않았던 저편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 바다 안개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안개 결계였군. 초대장 없이 강행 돌파했다면 계속 교량 위를 걷게 됐을 거다.”

포모르 마족이 쓴다고 알려진 마법을 분석해 온 건지 성국언이 안개의 정체를 바로 간파했다.

우리를 초대객으로 인식한 바다 안개는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숨겨져 있던 성을 드러내었다.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이 솟은 첨탑과 바닷바람을 맞는 플라잉 버트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다누 신족의 신보를 고딕 양식 건물의 성에서 팔아 치울 생각인가. 악취미네.’

켈트 다신교가 종교가 아니라 신화, 전설의 형태로 남게 된 원인과 고딕 건축 양식이 어느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지 잘 생각해 보면 그랬다.

포모르 마족들은 대놓고 다누 신족에게 싸움을 거는 게 분명했다.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 뒤에 숨겨진 의도나 악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절벽 너머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외딴 성은 운치가 넘쳤다.

자정이 넘은 시각, 허공에 떠 있는 호박 등과 하얀 장갑이 초대객을 인도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끼이이익……!

뒤쪽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우리가 건넌 교량이 움직이고 있었다.

교량은 절벽 쪽과 성 쪽, 양쪽에서 들어 올려졌다.

‘이 다리는 도개교였나. 하긴, 마법으로 모습을 감춘다 해도 다리를 설치된 채로 놔두면 발각될 가능성이 크지.’

다리가 사라져 일견 고립된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플레이어 중에 이 정도 바다를 건너지 못할 사람은 없다.

임연화처럼 바다 위를 맨발로 뛰어서 건너는 고수도 있고 용제건처럼 비행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으며 아이템 카드의 힘을 빌린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뭐, 도시후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러니 바다 사이에 뭔가를 준비해 놨겠지. 포모르 마족은 바다에서 싸우는 게 유리할 테니까.’

여러 설이 있지만 포모르라는 단어가 게일어로 ‘바다’를 의미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다누 신족도 바다에 관련한 전승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아마 일방적인 싸움은 되지 않을 거다.

“굉장하군. 웬만한 박물관보다 나은 것 같은데.”

홀로 이어지는 회랑을 걷는 사이, 성국언이 마족의 소장품을 보며 감탄했다.

회랑에는 정교한 액자 틀에 들어간 그림, 조각상, 가구 따위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호박 등불의 희미한 빛 사이에서도 얼마나 훌륭한 작품들인지 가늠이 갔다.

중앙 홀에 도착하자 가면을 쓴 파티 초대객들이 여기저기에서 환담을 나누는 게 보였다.

그 광경에서 언뜻 환몽 경매의 파티장에서 사교 행위를 하는 이들을 떠올렸지만, 금방 생각이 바뀌었다.

‘환몽 경매보다 사람 수는 적지만, 이쪽이 질적으로 우위인 것 같은데. 파티장 그 자체도, 주최자도, 파티 참여자들도.’

우리 쪽에만 해도 국회의원이 있고, 이 회장 어딘가에 12지 동맹의 일각인 흑마도 있다.

파티 초대객들을 눈에 담고 있자니 성국언이 크리스털로 된 칵테일 잔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술을 마시고 싶다면 한 잔 정도는 해도 좋다. 술은 어른한테서 배워야 하는 법이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성국언이 건넨 음료는 무알코올 칵테일이었다.

성국언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 영락없이 파티를 즐기는 초대객이었다.

눈빛이나 정돈된 이능파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긴 했지만.

땡…… 땡…….

맑은 종소리가 울리자 중앙 홀의 소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종소리가 울린 곳은 홀의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연단 위였다.

연단 위에는 둘이 서 있는데, 한 명은 종을 들고 허리를 낮추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성대 쪽에 손가락을 올려 목소리를 증폭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푸른 가면을 쓴 사내가 파티장 전체가 울릴 정도의 음성으로 파티의 개시를 알렸다.

“우리의 파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죽은 자가 돌아오는 기념적인 날, 최고의 파티와 상품으로 여러분의 여흥을 책임지겠습니다.”

푸른 가면을 쓴 사내는 박수를 한 번 ‘팡’ 하고 쳤다.

그러자 연회장 여기에서 처음 밖에서 우리를 인도한 하얀 장갑들이 등장했다.

하얀 장갑들은 금으로 된 트레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호박 모양의 배지가 놓여 있었다.

“여러분이 기대하는 경매는 파티의 끝에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지금은 파티 그 자체와 우리가 준비한 게임을 즐겨 주십시오.”

파티의 끝.

그 말에 나와 성국언이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이 파티장 어딘가에 있을 전무영도 아마 이 말을 듣고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그사이 하얀 장갑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파티 초대객들에게 배지를 배부했다.

그 ‘게임’이라는 게 뭔지 몰라도 이 배지를 착용해야 하나 보다.

‘위치 추적 기능 같은 게 있으면 성가신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여기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성국언도 같은 생각인지 바로 배지를 받아들여 착용했다.

“자, 우리가 할 게임은…….”

와장창!

그 순간, 홀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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