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99화 (398/925)

61. 라이벌 (10)

투어허 데 다넌의 수장, 광명과 빛의 신 루 라바다.

다재다능한 그는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을 보여 만능의 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루 라바다에게는 마나난 맥 리르로부터 받은 수많은 보물이 있었다.

만능의 재능과 보물을 소유한 루 라바다에게는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신화 속에선 늘 손에 든 자를 승리로 이끈다는 ‘루의 창’이 존재했다.

지금 그 루의 창이 내 손에 있었다.

파아아아아……!

내 손이 닿자 스킬 ‘만물 사용’의 발동으로 루의 창이 눈을 떴다.

남루한 천 아래, 허름한 케이스 안에 들어 있던 낡은 창에 광채가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음울한 마기가 바닥으로부터 차올랐다.

우우우웅……!

“경보가 발동했어! 야! 빨리 도망치자!”

포모르 마족이 친 결계가 발동한 건지, 마기가 우리 일행을 휘감으려 했다.

괴도 네온은 날랜 움직임으로 피하고 구슬비는 떡갈나무 지팡이를 휘둘러 마나를 발산해 마기를 상쇄했다.

하지만 내 쪽은 무사했다.

루의 창이 뿜는 빛 탓에 감히 마기가 접근하지 못하던 탓이다.

“지금 저게 신보가 맞나? 어째서 신보를 손에 쥐는 걸 허락받고 있는 거지?”

“케이스에 담아 정중히 옮기는 거면 모를까, 저렇게 다루듯이 손에 쥐면 안 될 텐데……!”

괴도 네온과 구슬비가 마기를 피하거나 받아치면서도 경악한 얼굴로 이쪽을 흘끔거렸다.

평소라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의문을 품으면 답해 주거나 말을 돌리거나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르르르!

루의 창이 날카롭게 빛날수록 날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검명 또한 커져 갔다.

루의 창은 그 혁혁한 전공(戰功)과 강력한 힘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들의 피를 탐하는 성질로도 유명했다.

루의 창으로부터 피와 살육을 향한 갈구가 넘쳐 나 멋대로 날뛰려 들고 있었다.

지금 이를 제지하고 있는 건 내 정신력과 미처르가 남긴 이능파의 영향 덕이었다.

호수의 안개처럼 흐릿한 미처르의 이능파가 루의 창을 달래고 있었다.

‘상위 존재가 달래도 이 정도라니……!’

루의 창은 명성대로 강렬한 힘을 지녔지만,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단기전으로 끝내야 해!’

머릿속에서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잠입 목표인 ‘이무기의 귀천’의 탈환에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후퇴뿐.

현재 우리의 존재가 발각된 상태니 가능하면 이쪽의 단서를 남기지 않는 방법을 택하고 싶었다.

“발로르가 움직였어!”

구슬비가 같이 온 동물들로부터 빌린 시야를 통해 마왕 발로르의 움직임을 읽었나 보다.

다급한 목소리에 이어 멀리서 ‘쿠구궁!’ 하는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이능파가 움직이는 기척도 동반하는 게, 마왕 발로르가 직접 움직이는 듯했다.

발로르가 향하는 장소를 머리에 그려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공간이 이계화, 마족의 가든화가 된 건 알고 있지?”

“……원인은 모르지만 가든이 된 건 알아. ‘긴급 탈출 아이템’이 먹통이 됐으니까.”

던전, 타워, 캐슬, 가든, 미궁 등으로 구분되는 이계에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누군가에게 지배된 이계, 가든의 가장 큰 특징은 ‘긴급 탈출 아이템’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무작위로 자연 발생한 다른 이계와 달리 가든은 누군가의 이능파로 통제되는 상태이므로 탈출이 자유롭지 않다.

참고로 흑막이 ‘이계 부르기’로 부른 이계의 경우, 자연 발생한 이계는 아니지만 이계의 제어권이 흑막 손에 있는 건 아니기에 ‘긴급 탈출 아이템’이 통한다.

그러나 ‘가든’의 경우, 아무리 희귀도가 낮아도 긴급 탈출 아이템을 소모해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계 전체가 이능파로 통제되니, 감이 좋은 플레이어들은 출구의 위치를 짐작하는 게 가능하긴 하지만.

“가든의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겠어?”

내가 던진 질문에 두 사람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괴도는 언제나 탈출로를 확보하고 움직여야 하니까.”

“나도 대충은.”

둘 다 알고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단 말인가!

두 사람 성격을 생각하면 출구를 파악하고도 일단 목표 달성을 우선시했을 것 같긴 하다.

그러니 가든 안에서 길을 헤매면서도 ‘이무기의 귀천’과 신보를 찾아 헤맨 거겠지.

“발로르가 지금 출구로 추정되는 장소를 등지고 있어. 신보 쪽에 설치한 결계가 깨진 걸 알았으니, 배수진을 친 거야.”

“그럼 곧 이쪽을 응시하겠군.”

태평하던 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딱딱해졌다.

발로르를 지나쳐 가는 건 재능이 넘치는 둘에게 있어서도 쉬운 일이 아닐 거다.

쓰러뜨리는 것도, 그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도.

둘이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신보 중 하나는 내 손에 들어왔고, 네가 노리던 ‘이무기의 귀천’도 이미 탈환을 마쳤어.”

“뭐라고! 선수를 빼앗겼군!”

괴도 네온이 세상을 잃은 어조로 말했다.

내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발로르에 관한 상념이 머리에서 증발된 것 같았다.

“나도 그 그림은 주인에게 돌려줄 생각이야. 지금은 탈출을 먼저 생각하자.”

“미끼를 만들어 발로르를 유인할까?”

“그것도 괜찮지만, 위험 부담이 커. 미끼를 만들면 발로르가 아니라 이 가든의 주인이 대신 확인하러 올 거야.”

나는 여전히 피를 달라며 아우성치는 루의 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걸 사용할 거야. 같이 밖으로 나가자.”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루의 창은 손이 아플 정도로 맹렬한 이능파를 뿜으며 울부짖었다.

걱정 어린 시선으로 루의 창을 든 손을 보던 구슬비가 물었다.

“……왜 처음 보는 사이인데 그렇게까지 해 줘?”

그 말엔 바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구슬비의 성장 과정을 고려하면 그녀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호의를 무작정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부모가 변덕을 부리는 것처럼 가끔 던졌던 호의에 구슬비가 희망을 품었다가 얼마나 빠르게 절망으로 내던져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구슬비는 주수혁이 같은 반 친구로서 베푸는 호의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괴도 네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괴도로서 느끼는 동지 의식에서 비롯된 선의라고 생각한다.”

구슬비의 물음은 지당한 반면, 괴도 네온의 대답은 틀려먹었다.

구슬비는 나와 같은 심정인지 어처구니없어했으나 상황이 급박하여 상대하는 대신 괴도 네온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스승님이 만일의 경우가 생겼을 땐, 꿈으로 도망치는 것보다 안전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했어.”

“꿈보다 안전한 장소?”

“……어. ‘무슨 일이 생기면 까마귀 가면을 따라가면 안전할 거다.’라는데.”

멀린이 구슬비에게 그런 말을 했나.

내 존재는 플마고에서는 없었기에 멀린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같이 갈게.”

하지만 지금은 그 말로 충분했다.

나는 광림을 발동시키며 말했다.

“둘 다 눈을 감고 있어.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데에만 집중해.”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내가 선택한 캐릭터는 비행과 공간술을 사용하는 용제건.

마왕 발로르가 기다리는 곳은 이계화된 가든 안의 호수 너머다.

두 사람과 함께 날아서 가기 위해 비행술과 공간술을 응용해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해당 캐릭터의 스킬, ‘비행’을 사용합니다.〉

〈해당 캐릭터의 스킬, ‘공간술’을 사용합니다.〉

파아앗!

두 사람 아래에서 공간이 형성되고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도 안정적으로 버텼다.

구슬비는 비행 속도가 오르자 몸을 낮추고 떡갈나무 지팡이를 공간 위에 찍어 버텼는데, 괴도 네온은 꼿꼿하게 서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안전장치 없이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버티는 건 괴도의 특기다!”

괴도 네온은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힘이 빠져 루의 창을 제어하는데 날이 서 있던 신경이 좀 진정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였다.

무거운 이능파가 우리 일행을 짓눌렀다.

“크윽……!”

괴도의 균형 잡고 버티기 특기가 무색하게 괴도 네온이 비틀거렸다.

“마왕이 이쪽을 보려고 해!”

파앗!

구슬비가 눈을 질끈 감고 공간술 위에 순식간에 마법진을 그려 방패가 그려진 나무를 소환해 내 앞을 막았다.

그 직후, 우리가 날고 있던 호수의 표면이 부글거리며 증발하기 시작했다.

마왕의 시선이 닿아 가든의 호수가 죽었지만, 드루이드의 마법의 나무는 조금 시들해졌을 뿐 버티는 데에 성공했다.

사아아…… 파스스스……!

그러나 발로르에게 가까워질수록 마법의 나무는 형체를 잃고 바스러졌다.

“길게 못 버틸 것 같아……!”

눈을 감아 즉사는 면하더라도 그 시야에 닿는 생명을 모두 죽인다는 전승이 있는 한, 버티기 어려울 거다.

두 사람에게는 축복이 걸린 아이템이 있다고 하지만 미처르는 그걸 ‘한 번 정도는’ 막아 줄 거라고 표현했다.

얼마나 오래 방어가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가능하면 상위 존재가 내린 축복은 앞으로를 위해 아껴 뒀으면 좋겠어.’

한편, 나는 발로르의 시야 속에서도 무사했다.

발로르 마왕의 눈을 격파했다는 신화가 있는 루의 창에는 그 힘이 닿지 못했으니까.

상위 존재가 루의 창을 내게 맡겼으니 루 라바다가 신화 속에서 한 것처럼 투창은 할 수 없어 지금은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사정 범위에 도달하지 못했어!’

투창은 불가능했으나, 나는 플레이어였다.

이능파를 루의 창에 실어 발산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이능파가 닿을 때까지 앞으로 3초, 2초……!’

어둠 속에서도 발로르 마왕의 눈이 똑똑히 보일 정도로 접근했다.

하나밖에 없는 눈에 비추어지는 건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이건 마치…… 이 세계에 오기 전에 그…….’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저 물리적인 죽음을 예상했다.

이능파의 압력에 짓눌린 결과 발생하는 게 발로르가 주는 죽음이라고 생각했지만, 달랐다.

죽음을 상징하는 신화 속 존재의 위엄 그대로 죽음 그 자체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발로르가 보여 주는 죽음의 눈 속.

그 안에는 이 세계에 오기 전, 시한부를 선고받고 죽어 가던 조의신이 있었다.

하루하루 늘어 가는 신체적인 고통과 그에 동반하는 절망.

발로르의 눈은 잊으려 했던 나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외면할 수 없어.’

그러나 그 눈을 피할 순 없었다.

지금 여기에는 나의 죽음만이 달려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눈을 감으면 빗나갈 수도 있어!’

전신을 짓누르는 공포를 외면하고 피와 생기를 요구하는 루의 창에 이능파를 실었다.

루의 창이 이능파를 기다렸다는 듯 울부짖었다.

파아아아앗!

칠흑 같은 이능파가 루의 창에서 뿜어져 나와 죽음의 눈을 삼켰다.

내 특유의 검은 이능파가 발로르의 외눈을 검게 물들여 죽음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어둠에 묻힌 것 같은 외눈 마왕의 뒤, 출구를 향해 날아갔다.

“마왕이 눈을 감았어!”

“이계 밖으로 벗어난다. ……해치웠나?”

“아니, 이 미친 괴도는 왜 부활의 주문을 외우고 있어!”

둘이 투닥거리는 소리 뒤로 시스템 메시지가 하나 더 들렸다.

〈스킬 ‘만물 사용’의 레벨이 5에서 6으로 상승하였습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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