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감시 (4)
1학년 0반 학생들에게 감시를 간파당해 후퇴하는 괴도 네온과 구슬비.
이 둘은 귀국한 후 딱히 연락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은광고에서 마주칠 가능성에 관해선 생각해 두고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어제 교실에서 마주치고 오늘 또 마주치기 전까지는.
1학년 0반 교실에서 눈이 마주치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곧바로 두 관종은 서로를 알아봤다.
오늘 몸을 숨기고 1학년 0반 교실을 감시할 때도 둘은 서로를 금방 인식했다.
“야, 왜 따라와! 저리 가!”
“내가 가는 길에 네가 있었을 뿐일세.”
“한국어로 말하니까 너 진짜 이상해 보인다.”
“괴도는 원래 괴상하고 이상해야 하는 법!”
두 사람은 미리 말을 맞춘 것도 아닌데 정확히 같은 루트로 움직이고 있었다.
관심은 홀로 독차지해야 더욱 커지는 법이므로, 두 사람은 서로의 호흡이 척척 맞는 게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두 관종 앞에는 공통적인 위협이 존재했고 그로 인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괴도가 몸담을 반은 과연 다르군. 눈에 띄게 등장하기 쉽지 않겠어.”
“……오늘은 그 아이돌이 없어서 눈에 띌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이돌 독고미로는 현재 체육관에서 대기하는 중이라고 했지.”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1학년 0반은 어제부터 등교한 독고미로가 주역인 빅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지금 자신들이 아무리 화려하게 등장해 봤자 들러리 취급받고, 반 아이들에 섞여 독고미로의 대련을 지켜봐야 할 게 뻔했다.
둘은 관심에 목마른 관종이었으나 바보는 아니었다.
특히 사람들의 주목이 걸린 일이라면 몹시 기민하고 영특했다.
‘여기에선 힘을 합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대로 묻힐 순 없다! 주목도가 반으로 깎이는 게 0이 되는 것보단 낫겠지.’
구슬비와 괴도 네온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판단해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기로 했다.
한적한 산책로 한구석의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서로의 계획에 관해 논하기로 했다.
먼저 괴도 네온이 제 계획을 정연하게 읊었다.
이능파 폭죽으로 1학년 0반 학생들의 혼을 빼 놓고 그 안에서 유유히 등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낮에는 폭죽 터뜨려도 잘 보이지 않잖아. 눈에 안 띄어.”
“교실의 유리창을 막고 조명을 끄면 문제없다. 자, 이상이 내 계획이었다. 네 계획은 어떻지?”
“와서 계획을 세운다는 게 계획이었는데.”
구슬비의 말에 괴도 네온이 딱한 것을 보는 눈을 했다.
“너…… 계획이 없구나.”
“뭔 소리야? 계획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잖아! 상황에 맞춰서 드루이디스의 화려하고 완벽한 기술로 모두의 시선을 끌면 되지.”
“그런 걸 계획이 없다고 하는 거다.”
두 관종에게 있어서 계획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의견은 완벽하게 엇갈렸다.
그러나 앞으로의 행동 지침에 관해선 의견이 일치했다.
“더 완벽한 등장 타이밍을 재기 위해 감시를 계속한다!”
“그래!”
괴도 네온은 싱긋 웃으면서 악수하자는 의미를 담아 손을 내밀었다.
구슬비는 누군가와 악수를 할 만한 상황을 겪어 본 적이 거의 없어 잠시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구슬비가 철이 든 후 제대로 된 대화를 한 건 스승인 멀린밖에 없었다.
멀린과 딱히 악수를 할 만한 일도 없었으니 저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까지는 몇 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일시적이라고 하나 동맹을 맺은 사이다. 부디 내 악수를 받아줬으면 좋겠군.”
“어? 어…….”
구슬비가 뒤늦게 괴도 네온의 손을 맞잡았다.
구슬비는 먼저 그 손의 크기에 놀랐다.
‘……손 되게 크네.’
괴도 네온의 체격은 고등학생 기준 보통 이하였는데, 그에 비해 손이 컸다.
구슬비는 큼직한 손과 그 손이 주는 온기를 잠시 느끼다 손을 뗐다.
언뜻 보기엔 교복 차림의 두 소년소녀의 청춘 영화 같은 한 장면이었지만, 실상은 국제적인 관종들의 동맹을 맺는 현장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 *
1학년 전용 제3체육관.
이동 중에 1학년 0반 소속 관종들이자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과 마주치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무사히 체육관에 도착했다.
“걔들은 여기 안 오나 보네.”
“이 주변에는 없다. 멀리 달아났군.”
“그런데 넌 어떻게 바로 안 건데. 스킬 썼냐?”
“저 정도의 은신술로 이 몸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다. 하하하!”
맹효돈은 황지호가 무슨 스킬을 쓴 건가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노친네는 대답 같지 않은 소릴 하고 처웃었다.
황지호가 관종을 감지한 건 스킬이 아니라 연륜과 출신에서 우러나온 능력 덕일 거다.
이곳이 신역이고, 황지호가 신역의 수호자인 것도 관계가 있을 거고.
“……얘들아, 들어가자!”
김유리는 가장 뒤에 서 있다가 반 아이들이 모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반 아이들은 체육관 안에 들어온 후에야 대련에 관한 화제를 입에 담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소문이 퍼지진 않았나 봐.”
“……학교에 미로 팬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김유리의 말에 민그린이 안심한 얼굴로 말했다.
한때 미술부와 동양화 소모임 일당들에게 시달린 민그린은 독고미로가 걱정되나 보다.
창문도 전부 블라인드 모드로 되어 있는 게, 다들 이번 대련이 가십거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듯했다.
그때,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와라.”
체육관 중앙, 교직원용 체육복 차림의 함근형 선생님이 서 있었다.
함근형 선생님을 중심으로 체육관 안쪽에는 한이가, 우리와 가까운 쪽에는 독고미로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우리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지, 함근형 선생님 건너편에 있는 서로를 노려보며 몸을 풀고 있었다.
“음, 인사는 나중에 해야겠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인사할래.”
“과자랑 음료수 사 왔는데 그냥 안 드리는 게 낫겠죠? 아, 대련 보면서 먹는 건 좀 그럴까요?”
“오, 뭐 사 왔냐.”
탈의실로 향하던 사월세음과 맹효돈이 멈춰 서서 봉투를 열기 전, 방금 전보다 한결 더 무뚝뚝해진 목소리가 울렸다.
함근형이 무서운 얼굴로 봉투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업 시간이다.”
“네…….”
“끝나고 먹어라.”
반 아이들이 싸운다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딱히 긴장한 것 같지 않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나와 방윤섭이 수업 첫날 대련하던 그 분위기였다.
그날과 달리 함근형 선생님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버티고 있고, 문새론이 준비한 BGM이나 전광판도 없긴 했지만.
“어, 레나 왔다!”
“어서 오십시오, 레나.”
탈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권레나가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 늦잠 잤어.”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 아냐. 그냥 뉴스랑 이것저것 찾아보느라 좀 늦게 자서…….”
권레나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권레나가 뉴스를 찾아본다는 말에 곧바로 권제인을 떠올렸지만, 권제인의 콘서트 계획이 잡힌 것도 아니고 인터뷰 기사가 새로 올라온 것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나?’
하지만 스마트 기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청소년이 좀 늦게 잔 건 큰일이 아니긴 했다.
권레나가 그랬다는 건 좀 의외긴 하지만, 바이올린이나 권제인에 관한 일이라면 다소 무리해서 늦게까지 일어나 있을 법했다.
어쨌든 권레나가 지각한 건 아니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지나갔다.
반 아이들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종이 울렸다.
“……어디에서 들어 본 것 같은데?”
“플레이리스트에서 미로가 부른 곡입니다.”
“대석아, 이거 미로가 처음 예선에서 부른 곡이잖아. 나랑 같이 봤는데 기억 안 나……? 요새 많이 피곤해?”
“아니, 그게…….”
오늘의 수업종은 독고미로가 처음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했을 때, 예선에서 처음 부른 곡을 해금으로 연주한 커버곡이었다.
독고미로가 부른 건 어느 인기 아이돌의 메인 보컬이 처음 솔로 활동을 하며 낸 파워풀한 가성이 돋보이는 곡이었는데, 해금으로 연주하니 느낌이 색달랐다.
‘국악부에 독고미로의 팬이 있었나?’
독고미로가 어제부터 등교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송부에서 부랴부랴 독고미로 특집으로 곡을 편성한 듯했다.
연습할 시간도 얼마 없었을 텐데, 팬심은 위대했다.
그런데 뛰어난 해금 연주를 듣다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3학년 0반 선배놈들 중에도 해금 잘 켜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기환이 사회를 본 주오 아일랜드의 캠프파이어 촛불 의식.
그때 분위기를 잡는다고 3학년 0반 선배놈 중 하나가 해금을 연주했다.
촛불과 해금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데, 선배놈의 연주 솜씨가 지나치게 출중하여 그 자리에 있던 학생, 교사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댔던 게 인상 깊었다.
한편, 수업종이 울리기 시작하자 독고미로가 잠시 멈춰 섰다.
“아…….”
수업종으로 자신이 처음 플레이리스트에서 불렀던 곡이 절절하게 울려서 그런가.
독고미로는 긴장이 풀린 얼굴을 했다.
멀리 관객석 쪽에 앉아 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손까지 흔들어 줬다.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독고미로는 해금 연주에 맞춰 몸을 풀었지만, 수업종을 들을 수 없는 한이는 반응하지 않고 태호권 기본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쉽군.”
황지호는 한이 쪽을 보며 중얼거렸지만, 무엇이 아쉬운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았고 다른 반 아이들은 늘 그랬듯이 노친네의 말을 흘려들었다.
팡!
수업종이 끝나자 함근형 선생님이 손바닥에 이능파를 실어 손뼉을 크게 쳤다.
그 소리에 체육관은 삽시에 조용해지고 한이도 이능파를 감지해 고개를 들어 함근형 선생님 쪽을 봤다.
“설명하지 않아도 너희의 대련을 허락한 이유는 잘 알 거다.”
함근형 선생님의 얼굴은 지나치게 흉흉해 심약한 학생들이 봤다면 그냥 이유 없이 잘못했다고 말할 것 같았다.
그러나 독고미로나 한이, 둘 다 보통 담이 아니었기에 묵묵히 함근형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 대련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길 바란다.”
짧은 훈계를 마친 함근형 선생님은 자신의 입 모양이 똑똑히 보이도록 한이를 보며 규칙을 다시 설명했다.
광림 사용 금지.
무기를 제외한 소모형 아이템 사용 금지.
SR급 이하의 회복 아이템으로 회복 불가능한 데미지를 입을 시 대련은 즉각 중단.
대련 제한 시간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설명을 마친 함근형 선생님이 손을 들었다.
“두 사람, 제 자리에!”
함근형 선생님이 디바이스를 조작하자 체육관에 두 개의 원이 떠올랐다.
하나는 한이의 자리에, 다른 하나는 독고미로의 자리에 위치했다.
원 위에는 홀로그램으로 숫자가 떠 있었는데, 1초에 하나씩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니 대련 시작까지 남은 초를 카운트하는 듯했다.
10초 정도 남았을 시점에 독고미로가 말했다.
“한이가 나랑 싸우고 싶다니까 받아는 주는데, 지금이라도 철회하는 게 어때?”
그렇게 말하며 독고미로가 학교에서 지급한 R급 초보자용 모닝스타를 막대풍선 돌리듯 한 손으로 가볍게 움직였다.
휘익!
가벼운 움직임이었지만, 그 여파는 무거웠다.
모닝스타에서 뿜어져 나온 풍압에 독고미로의 사이드 테일로 묶은 머리가 크게 휘날리고 한이의 단발머리도 흔들었다.
‘오오!’ 하는 소리가 반 아이들 사이에서 터졌다.
초등학교 패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했다.
“······저거 두 손으로 쓰는 무기 아닙니까? 왜 한 손으로 쓰는 겁니까?”
“편해서 그런 거겠지. 나도 한 손으로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목우람의 우문에 맹효돈이 현명한 답변을 했다.
독고미로의 도발에 한이는 답변하지 않고 태호권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시작!”
함근형 선생님의 신호에 독고미로와 한이가 격돌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