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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19화 (418/925)

63. 감시 (6)

기절한 한이의 몸이 땅에 완전히 닿기 전, 미로가 한 손으로 한이를 받았다.

독고미로는 눈을 감은 한이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대련 중에는 짓지 않던 표정이었다.

“한이야!”

“의식이 없군요. 기절 중인 것 같습니다.”

반 아이들은 함근형 선생님의 대련 종료 선언을 들은 후에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함근형 선생님이 발을 동동 구르며 한이 쪽으로 오는 반 아이들을 제지하고 한이를 살폈다.

한이의 이능파 상태를 체크한 함근형 선생님이 손에 들고 있던 회복 아이템 카드를 품에 넣었다.

“일단 양호실로 데려가야겠군.”

“한이는 괜찮나요?”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회복 아이템을 쓰지 않아도 될 거다.”

반 아이들이 눈에 띄게 안도했는데, 이중 가장 안심한 건 독고미로 같았다.

함근형 선생님이 제3체육관에 구비된 들것 아이템에 한이를 눕히며 독고미로에게 말을 걸었다.

“독고미로, 너도 같이 양호실로 오도록.”

“……저는 다친 곳이 없는데요.”

함근형 선생님이 독고미로의 주먹을 흘끗 봤다.

독고미로의 주먹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지막에 무기를 놓고 주먹을 날릴 때 저렇게 된 것 같은데.’

한이나 맹효돈 같은 맨손 격투가는 보통 손에 격투용 보호대를 착용하고 싸운다.

무기를 사용하는 플레이어는 손의 감각 때문에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보통 맨손으로 무기를 쥔다.

방어구 중에 장갑류가 있긴 하지만, 독고미로는 맨손으로 모닝스타를 사용했다.

“급소에 방어구를 착용한 걸 알면서도 맨손으로, 이능파로 감싸지도 않고 가격했지. 그렇게 싸우면 손이 남아나지 않는다.”

함근형 선생님이 엄한 목소리로 독고미로를 나무랐다.

독고미로는 마지막엔 이능파 한 올도 없이 맨손으로 주먹을 날렸고, 그 결과 손이 좀 다친 듯했다.

‘한이에게 방어구 너머로 그 정도의 데미지를 주고 저 정도로 끝나다니.’

보통 그런 짓을 하면 중수골 기저부 관절이 골절되거나 탈구되지 않나?

독고미로는 붉게 달아오른 손을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며 말했다.

“겉보기만 이렇지 별로 안 다쳤어요. 전 괜찮아요. 다음부턴 조심하겠습니다!”

독고미로가 붙임성 있게 잘 대답했지만, 함근형 선생님은 성에 안 차는 듯 이상을 느끼면 바로 양호실에 가라고 당부했다.

함근형 선생님이 한이와 양호실로 가기 전, 예상치 못한 소리를 했다.

“용제건 부담임 선생님께 맡기고 가마. 용제건 선생님, 나오시죠.”

“어, 알고 있었구나. 역시 창천명궁은 다르네.”

휙!

유희계 용이 체육관 천장에서 내려왔다.

비행 스킬을 이용해 체육관 천장 어딘가에 날아올라 있었나 보다.

용제건이 기척을 잘 숨기고 있는 데다 상대에게 적의가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용족의 총아가 못하는 게 없다는 사실에 감탄했으나 놀라긴 했다.

나만 놀란 게 아닌지 황지호를 제외한 반 아이들이 경악한 얼굴로 용제건을 봤다.

“하하하하! 다들 몰랐나 보군.”

황지호는 반 아이들을 보며 신나게 처웃었다.

‘알면 좀 미리 말해 주지.’

저 노친네는 놀란 아이들을 보면서 처웃고 싶었을 테니 절대 입을 열지 않았겠지만.

용제건은 아이들을 놀라게 한 것에 만족한 듯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수업 비슷한 걸 시작했다.

“함근형 선생님이 맡기고 갔으니까 수업을 진행할게. 뭘 할까? ……그래, 승자인 미로의 움직임을 분석해 보는 게 좋겠지. 미로야, 이쪽으로 나와 봐.”

“……아, 네!”

체육관 내의 기록기기에 저장된 영상을 보며 용제건이 설명하고, 독고미로가 재연하며 수업이 진행되었다.

처음엔 한이를 걱정하느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들도 점차 용제건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중간에 함근형 선생님이 돌아와 검사 결과 한이에게 이상이 없었다고 못 박자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특히 독고미로와 한이의 움직임을 전혀 읽지 못한 사월세음과 권레나가 대련의 복기 과정에서 연신 감탄했다.

“와, 그럼 저 때에는 그냥 한이의 공격을 피한 게 아니라 모닝스타의 사거리를 고려해 움직인 거군요!”

“미로 진짜 세다…….”

김유리는 독고미로에게 계속 말을 걸며 적극적으로 대련 과정에 관해 질문하고, 민그린은 기록기기에 남은 대련 영상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허공에 스케치했다.

송대석과 맹효돈은 독고미로의 움직임을 파훼해 보겠다며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토론했는데 둘 다 당장이라도 대련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함근형 선생님이 엄격한 얼굴로 바라보니 바로 꼬리를 내렸지만.

그렇게 플레이어의 전투 연습 2 수업은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신록이도 그렇고, 한이한테 많이 신경 쓰네.”

용제건이 황지호 옆을 지나치며 한마디 던졌지만, 황지호는 상대해 주지 않았다.

무시하고 갈 길을 가는 황지호를 보는 용제건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나도 일단 용제건을 상대하는 대신, 부상당한 같은 반 아이나 걱정하기로 했다.

‘한이는 괜찮을까.’

독고미로와 한이의 과거사.

두 사람의 일에 멋대로 끼어드는 건 무례한 짓일 거다.

이미 황지호의 어린 분신을 광일초등학교에 투입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개입했으나 독고미로가 숨기려 하는 사실을 한이에게 알리는 행위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그러니 황지호도 가만히 있는 거겠지.’

수업을 마치고 이동 중인 황지호의 시선이 양호실이 있는 중앙 구역 쪽을 향했다.

*    *    *

한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한이는 체육관에 있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자 목 뒤가 시큰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억지로 눈을 깜빡이며 앞을 보자 주변의 풍경이 들어왔다.

새하얀 커튼과 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여긴…… 양호실이잖아.’

한이는 예전에 권레나와 사월세음과 함께 양호실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이가 위험한 곳에 가려 하자 두 사람이 말리려 했고, 그 과정에서 싸우게 되어 셋 다 양호실에 가서 반성문을 쓰게 되었다.

코끝에 스치는 소독약 냄새에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파앗!

옆에서 이능파가 터지는 기척이 느껴져 한이가 휙 고개를 돌렸다.

이능파의 발산지는 공청훤의 손가락 끝이었다.

공청훤 뒤로 플레이어 전문의 출신의 양호교사가 지나가는 게, 방금까지 한이의 몸 상태에 관해 상담한 듯했다.

공청훤은 입 모양이 똑똑하게 보이도록 천천히 말했다.

“좀 더 쉬세요. 회복 아이템을 안 써서 아직 통증이 남아 있을 거예요.”

“……공청훤 선생님.”

“미로가 힘 가감을 잘해서 후유증은 없을 것 같은데, 오늘은 좀 아플 거예요.”

공청훤이 독고미로에 관해 언급하자 한이는 뒤늦게 실감했다.

‘……내가 졌구나.’

독고미로에게 완패했다.

한이는 전력을 다했는데, 독고미로는 한이가 크게 다치지 않게 배려하며 싸웠다.

직접 대련한 당사자로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이는 굴욕감과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공청훤이 따뜻한 물이 담긴 머그컵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한이가 천천히 물을 마시는 사이, 공청훤은 한이가 여기에 오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한이는 혹시 공청훤이 자신의 꼴사나운 대련을 본 게 아닌가 해서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함근형 선생님과 1학년 0반 반장 학생이 한이를 데려왔어요. 수업 시간이 아직 안 끝나서 저한테 맡기고 가셨습니다.”

“양호실에는 우연히 계셨던 거예요?”

한이는 공청훤이 아니라고 답할 걸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공청훤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누가 이기든, 둘 중 하나는 양호실에 올 것 같아서요.”

“……미로는요?”

“미로는 못 봤어요.”

한이는 일방적으로 졌으니 승자인 독고미로를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한이는 독고미로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독고미로에게 대련을 청하고, 조건을 단 건 한이 쪽이다.

독고미로는 한이의 대련 요청을 받지 않아도 그만이었는데, 성실하게 응해 줬다.

‘이젠 미로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못하겠구나…….’

한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공청훤에게 물었다.

“미로가 저한테 얘기를 안 하는 건, 제가 약해서 그런 걸까요?”

맥락 없는 질문이었으나 공청훤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공청훤은 왜 두 사람이 대련을 했는지, 무엇을 조건으로 걸었는지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청훤은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이가 미로를 이길 정도로 강하더라도, 미로는 한이에게 아무 말도 안 했을 거예요.”

공청훤의 말에 납득했지만, 한이는 한동안 무력감에 헤어 나오지 못했다.

몇 시간이 지나 반 아이들이 점심을 같이 먹자며 찾아왔을 때에도 표정을 숨기는 게 고작이었다.

“한이야, 이동하기 힘들면 여기로 배달 음식 시킬까?”

“……여기 양호실인데.”

“지호가 제안한 거야. 지호 말로는 이사장이 괜찮다고 허락했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자신에게 말을 거는 독고미로를 보니 무력감은 더 진해졌다.

하지만 한이는 당초에 약속한 대로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한이는 시트 밑에서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말아쥐고 애써 태연한 척 굴었다.

그 광경을 옛 친우인 황호가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다.

*    *    *

방과 후.

신문부에서 문새론의 동태를 살피며 혹시 대련 이야기가 새어나가진 않았나 확인해 봤는데, 다행히 모르는 듯했다.

1학년 0반 아이들이 체육관 창문을 다 블라인드 처리한 건 알고 있었지만 독고미로가 등교한 기념으로 뭔가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번 주말에 해외로 취재하러 갈 건데. 같이 갈 사람!”

“갑자기 웬 해외?”

“그냥 바람 좀 쐬고, 취재도 하고!”

문새론은 괴도 네온 취재를 위해 해외 출장을 계획하고 있다는데, 말리고 싶었다.

굳이 취재해 봤자 좋을 일도 없고 무엇보다 괴도 네온은 한반도 내, 그것도 학교 안을 배회하며 관종 짓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염준열좌가 처음엔 적벽괴도에 관해 이것저것 묻던데, 요샌 안 그러네.”

갑자기 ‘그 단어’로 화제가 튀었다!

염준열이 단기 유학을 일찌감치 마치고 은광고로 돌아왔을 때, 문새론의 인터뷰에 응하며 정보를 캐내려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일을 문새론이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모르는 척 홀로그램 자료를 읽고 있는데, 황지호의 시선이 따가웠다.

노친네는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내 안색을 살펴 댔다.

“난 유상훈하고 약속 있어서 먼저 간다.”

“……흐음. 그래, 잘 다녀오도록.”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한 신문부 활동을 마치고 마침내 노친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후련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디바이스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혹시 유상훈이 보냈나 해서 바로 확인해 봤는데 아니었다.

알람을 울린 건 서돌이 보낸 메시지였다.

[꾀돌이] 저 귀국했어요.

[꾀돌이] 사실 오늘 온 건 아닌데, 처리할 일이 많아서 연락이 늦어졌어요. 미안해요.

연락을 기다린 게 아니니까 딱히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데.

서돌은 묻지도 않은 개인사에 관해 간략히 말한 후, 본론을 꺼냈다.

[꾀돌이] 귀국 기념 선물은 언제 드릴까요?

전에 말한 선물 비슷한 건가?

하나는 내가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르는 거고, 다른 하나는 내가 싫어할 것 같다는 그걸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서돌이 편할 때 알아서 주든지 말든지 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정중한 문장으로 바꿔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정문 앞.

유상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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