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20화 (419/925)

63. 감시 (7)

붉은 사자 팀 빌딩 지하, 용족의 영역.

용족 그리고 붉은 사자 팀원 중에서도 일부만 들어올 수 있는 이곳에, 오늘은 손님이 있었다.

그 손님, 김신록과 마주치자 면식이 있는 용족들이 반가워하며 인사했다.

“용제건의 유일한 친구가 다시 와 줬군.”

“자주 얼굴을 보니 좋네. 지금은 김신록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했지?”

“신록아, 어서 와.”

“안녕하세요. 염치 불고하고 또 왔습니다.”

“염치는 무슨. 철이 들더니 쓸데없는 걸 따지는구나.”

김신록이 멋쩍게 웃으며 인사에 응하는 사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처소에 들러서 편한 옷을 갈아입고 온 용제건과 염준열이 나란히 들어오고 있었다.

용족들은 용제건은 내버려 두고 염준열을 다정히 맞이했다.

“오…… 우리 준열이도 왔구나! 둘이 인사는 했나?”

“……네.”

“네, 김신록 선생님과 같이 하교하며 인사 나눴어요. 다녀왔습니다.”

염준열은 자신을 향한 호의에 하나하나 응하며 구김 없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신록이 쓴웃음을 삼켰다.

진족에게 사랑받는 후예의 모습을 이렇게 보고 나니 씁쓸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가능하면 염준열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얼마 전, 황호는 김신록에게 파견 임무의 수락 여부를 물었다.

임무의 내용은 용족의 영역에 묶인 용살자 카드모스의 심문이었다.

용족과 연이 있는 김신록은 곧바로 파견 임무를 수락했다.

그 소식을 전달받은 청룡은 용제건에게 김신록을 용족의 영역에 데려오도록 명했다.

―신록아, 용족을 위해 와 줘서 고마워. 기왕 우리의 영역에 방문하는 김에 제안할 게 있는데…….

용제건은 특유의 뺀질거리는 말투로 김신록에게 제안했다.

성국언 건으로 말다툼을 했다가 화해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뻔뻔한 용제건은 또다시 김신록을 곤혹스럽게 했다.

―우리 준열이와 이야기해 보지 않을래?

―……왜?

―용족의 영역을 자주 드나들면 언젠가 준열이와도 마주칠 텐데. 미리 안면을 터놓는 게 좋지 않겠어?

짜증스럽게도 용제건의 말에는 나름의 일리가 있었다.

김신록이 용족의 영역을 드나들 때 염준열과 마주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용족의 영역에 처음 보는 후예가 있으면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

호족 수장의 명령을 받고 온 몸으로서 용족의 귀한 후예를 놀라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신록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면 오늘 준열이랑 같이 하교하자. 잘됐네!

하교 뒤의 상황을 생각하니 김신록의 기분이 바닥을 쳤다.

바닥을 치는 김신록의 기분과 달리 용제건은 아주 기뻐했다.

그 꼴을 보니 김신록의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용제건이 실실 웃는 게 꼴 보기 싫어서 고개를 숙이고 종이 문서를 정리하는 척했다.

―네가 신경 쓰던 우리 반의 한이 말인데…… 오늘 미로와 대련했거든. 결과가 궁금해?

―……!

김신록이 한이라는 이름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 기세에 김신록이 정리하던 종이 문서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김신록이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이미 문서는 다 쏟아진 후였다.

―한이가 있는 은광한빛보육원 말인데, 요새 청호의 제자들이 드나들더라? 그렇게 좋아하던 권제인이 한국에 왔잖아. 권제인 대신 보육원 봉사활동에 열을 올릴 줄 몰랐어.

딱! 파아앗!

용제건이 손가락을 튀기자 여기저기에서 공간이 차올라 바닥에 흩어진 종이 문서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참 얄밉지만 훌륭한 솜씨였다.

용제건이 서류를 정리해 넘겨주자 김신록이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그냥 낚아챘다.

용제건은 김신록의 다소 무례한 태도가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 보육원에 호족의 감시가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시선에 민감한 용제건답게 호족의 감시 여부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황호 님께 저 용이 뭔가 눈치챈 것 같다고 보고해야겠군. 그런데 대련 결과는 어떻게 됐지……?’

옛 스승 청호의 환생인 한이가 대련을 어떻게 치렀는지 궁금한데 용제건이 대련 결과는 안 알려 주고 김신록의 속을 긁는 소리만 해 댔다.

김신록이 지금 자신의 주머니에 압정과 압핀이 몇 개가 남아 있는지, 이걸 전부 던지면 용제건의 이마에 몇 개나 꽂힐지 예측해 보고 있을 때.

―하하하!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만 놀릴게. 대련 영상 같이 보면서 점심 먹자.

용제건의 수작에 놀아나는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대련 영상을 내놓았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용제건의 해설과 더불어 보는 한이와 독고미로의 대련 영상은 청호를 기억하는 김신록의 입장에선 몹시 인상 깊었다.

‘……청호 님의 성정은 다시 태어나도 그대로구나.’

한이와 독고미로의 관계를 생각하니 더더욱 그랬다.

청호는 말로 제 감정을 설명하는 건 서툴렀지만, 행동으로 신의와 우정을 표현하곤 했다.

그리고 방과 후.

용제건이 학생회 활동을 마치고 온 염준열에게 김신록을 소개했다.

김신록이 후예라는 사실에 놀란 듯했으나 이내 밝게 말했다.

―김신록 선생님이 제건이 형 친구신 줄은 몰랐어요! 지익회 애들이 선생님 자랑하는 거 몇 번 들었는데, 상상도 못 했어요.

―지익회 애들이 신록이 자랑을 해?

―네, 지익회에 간식 들어오면 늘 고문 선생님 몫을 빼놓는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이 단 걸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지익회실을 방문할 때마다 아이들이 같이 간식을 먹자고 졸라서 먹긴 했는데, 김신록은 그런 내막이 있는 줄 상상도 못 했다.

간식을 먹을 때마다 아이들이 짓던 묘하게 따뜻한 표정이 떠올라 김신록의 낯이 뜨거워졌다.

―그 지익회 고문 선생님이 저와 같은 후예셨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김신록 선생님.

염준열의 악의 없는 말에 조금 달아오른 뺨이 순식간에 차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김신록과 용족의 후예 염준열은 전혀 같지 않았으니까.

용족 사이에서 환대받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는 염준열을 보며 김신록은 다시금 확신했다.

김신록은 염준열에게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용살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그래, 청룡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래.”

용제건은 순순히 말하며 앞장섰다.

용족의 영역 깊은 곳으로 이동하는 사이, 김신록은 정신과 이능파를 가다듬었다.

용을 상대로 고문해 본 적이 없으니 시도해 보고 싶은 게 많았다.

잔뜩 날이 선 김신록에게 용제건이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신록아, 국언이랑 얘기 잘했어?”

“너, 그걸 어떻게……!”

용제건이 짓는 황홀한 표정을 보고 김신록이 말을 멈췄다.

저 망할 용은 또 넘겨짚는 소리로 김신록을 떠본 게 분명했다.

김신록이 이를 갈자 용제건의 미소가 짙어졌다.

“응원할게, 신록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김신록이 필요 없다고 단칼에 잘라 말해도 용제건은 계속 웃을 뿐이었다.

*    *    *

나와 유상훈은 사전에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고기가 먹고 싶다는 유상훈의 의견을 받아들여 메뉴는 스테이크로 정했다.

“삼겹살 먹고 싶은데.”

“개별 룸 예약이 가능한 곳으로 잡았어.”

“어…… 그래.”

약속 장소는 룸 예약이 가능하면서도,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정했다.

지금 향하는 곳은 황명타워에 입점한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황지호의 추천을 받은 레스토랑이었다.

개별 룸이라는 말에 유상훈은 금방 수긍했다.

그 후론 우리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대화가 이어진 건 유상훈이 애피타이저로 나온 펜넬 수프를 나보다 먼저 먹은 후였다.

“너희 부담임이 우리 담임한테 자꾸 시비 거는 것 같던데.”

용제건이 김신록에게?

그건 아마 거의 몇천 년을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라 내 힘으로 막긴 어려울 거다.

얼마 전에 싸웠다가 다시 화해한 것 같은데 또 용제건이 그새를 못 참고 시비를 걸었나 보다.

‘오늘은 카드모스 건을 처리하느라 용족의 영역으로 파견될 예정이라고 했지.’

친우가 자기 집에 놀러 오는 게 신난 용제건이 평소보다 더 시비를 걸었을 게 눈에 선했다.

“우리 반 담임 팬이 많아. 계속 담임이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용제건을 공격할 예정이란다. 난 안 말릴 예정이고.”

……유상훈네 반은 얌전한 편 아니었나?

0반이나 할 것 같은 계획에 잠시 멍해졌다.

또 그 말에 이어서 떠오른 어느 사실에 더욱 정신이 멍해졌다.

‘잠깐, 1학년 1반 반장은 안다인이잖아. 안다인이 있는 데도 저런 계획이 나온 건가?’

안다인이 그 공격에 가담한다면 성공 확률이 오르지 않을까?

신탄의 사수 안다인이 이끄는 1학년 1반과 용제건의 대결을 생각하니 양쪽 다 응원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은광고 안에서 펼쳐질 희대의 격전을 두고 잡담을 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메인 요리를 전부 비웠을 때, 유상훈이 본론을 꺼냈다.

“상담하고 싶은 게 있는데.”

유상훈은 그렇게 운을 뗐지만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과연 상담을 해도 좋을지 혼란스러워하는 태도였다.

나는 유상훈을 독촉하지 않았다.

유상훈이 여기에서 그냥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렸을 때 몸이 약했다고 한 거 기억나냐?”

유상훈은 말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상훈은 담담히 자신의 투병 과정을 요약했다.

유상훈은 가감 없이 사실만 말했는데도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지독한 내용이었다.

방금까지 스테이크를 몇 접시나 비운 걸 보면 완전히 그 병마를 떨쳐 낸 것 같았지만.

“내가 그 병이 나은 건, 이능을 각성한 이후야. 그런데 그 각성 과정이 뭔가 이상해.”

“어떤 점이?”

“타이밍이나 시기가.”

유상훈은 자신이 유상희의 손에 이끌려 TC 연구소에 가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TC 연구소에 가기 전날, 발작을 일으켰어.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심장이 한 번 멎어서 CPR을 받아 소생했다고 하던데. 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늑골에 금이 갔어.”

유상훈의 말에 그 광경이 상상 갔다.

계속 흉부에 압박을 가해도 유상훈의 심장은 오래도록 뛰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늑골에 금이 갈 정도로 심폐 소생술을 반복한 후에야 유상훈이 살아났던 거다.

“한 번 더 발작을 일으키면 소생시키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어. 그리고 이틀 뒤였나, 갑자기 날 휠체어에 싣고 이능 센터로 가던데.”

주어는 생략되어 있었지만 유상훈을 데리고 간 건 유상희였을 거다.

유상훈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상희가 움직인 게 분명했다.

“그 이능 센터에서 있었던 일은 기억이 잘 안 나. 좀 기억해 보려고 애쓰니까 몇몇 부분은 떠오르긴 했는데…….”

유상훈은 이능 센터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설명했다.

“거기에 이능 센터 직원은 없었어. 대신 TC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 있던 것 같다.”

TC 연구소의 로고.

뭐든 하겠다고 제발 도와달라며 우는 유상희.

그리고 이상한 로고가 그려진 로브를 입은 누군가.

“그 로고의 모양은 기억나?”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어.”

유상훈은 홀로그램을 켜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로고를 완성했다.

조금 찌그러진 그림이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걸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7대 죄악의 마신 중 하나, 탐욕의 아바리티아.

유상훈이 그린 건 그 마신의 사제가 입은 로브에 새겨진 문양이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2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