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44화 (443/925)

65. 숨겨야 하는 것 (8)

경기도에 위치한 어느 유원지.

이곳은 현재 한반도에서 영업 중인 놀이공원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방문객도 많았다.

예전에는 남궁 그룹의 테마파크가 이 유원지와 함께 인기를 양분했다.

그러나 BJ국내산콩이 실시간 스트리밍 중, 이계가 발생해 프로 플레이어 팀이 전멸한 ‘석촌호수의 비극’ 사건이 터지며 양강 체제가 무너졌다.

그 덕에 남궁 그룹의 테마파크를 찾는 이들이 급감하고 대신 경기도 쪽 유원지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최근에 매각 과정을 밟고 시설을 정비하느라 아예 문을 닫는 바람에 사실상 경쟁자가 없어져 이 유원지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말을 맞이하여 인산인해를 이룬 유원지 안.

수많은 사람 사이에도 몹시 눈길을 끄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인물의 정체는 멀린의 제자 구슬비와 괴도 네온이었다.

“그래서, 왜 우리가 여기에 온 건데?”

“우리의 화려한 등장을 준비하기 위해 상담과 연구가 필요했으니까.”

“그건 아는데 왜 하필 유원지냐고.”

유원지 개장 시간에 딱 맞춰 입장해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숨도 제대로 안 쉬고 놀던 구슬비가 뒤늦게 물었다.

구슬비는 유원지 마스코트 캐릭터가 그려진 모자 위에 피에로가 나누어 준 풍선 아트 모자를 또 얹고 기념품이 잔뜩 든 가방을 메고 있었다.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목소리와 달리 유원지를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러자 구슬비와 함께 유원지를 만끽하고 있던 괴도 네온이 번쩍거리며 답했다.

그 번쩍임에 구슬비는 분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좀 눈에 띄는 걸 입고 올걸! 멋지고 위대한 드루이디스인 내가 괴도에게 존재감이 밀리다니!’

유원지에서 기념품으로 파는 의상과 장식품으로 도배한 구슬비 역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으나, 괴도 네온에게는 조금 미치지 못했다.

괴도 네온은 현재 물리적으로 빛나는 중이었으니까.

괴도 네온의 의상 컨셉은 ‘모래 속에서 빛나는 진주’로 무광 비즈와 스팽글로 직접 장식한 옷을 입고 있었다.

햇살을 받았더니 화이트 펄 색의 스팽글이 눈부시게 빛나 번쩍거려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의상의 완성도나 디자인 자체는 훌륭했지만, 도저히 입을 엄두가 나지 않는 옷이었다.

그러나 이 넓은 유원지에서 단 한 사람, 구슬비는 괴도 네온의 옷이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런 멋진 옷을 소화하는 괴도 네온도 아주 조금은 멋지다고 생각해서 자괴감에 빠질 정도였다.

괴도 네온은 구슬비의 속도 모르는지 과장된 어조로 답했다.

“주중에 계속 은광고에 있어서 답답하지 않았나? 천재성은 넓은 곳에서 발산해야 더욱 빛나는 법이라고!”

그건 아마 천재성이 아니라 관종력이라고 칭해야 옳겠지만, 이 자리에서 그들에게 태클을 걸 만한 이들은 없었다.

구슬비는 괴도 네온이 말하는 천재성의 존재를 인정했기에, 다른 부분을 걸고넘어졌다.

“은광고도 넓은데? 몇 번 0반 애들 놓쳤잖아.”

“……하지만, 학교 아닌가! 정해진 시간, 한정된 장소에서 지내는 건 사양하고 싶군.”

은광고는 출석도 자율 아닌가?

필수 과목이 있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과목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데.

또 괴도 네온은 어쨌든 출석하려고 마음먹고 나오지 않았던가.

학교 핑계를 댔지만, 괴도 네온이 굳이 유원지에 온 건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괴도 네온이 결국 자백했다.

“오후에 내한한 매지션 플레이어의 마술쇼가 열릴 예정이다. 이걸 놓치는 건 인생의 손해다!”

“……너 마술쇼가 보고 싶어서 여기에서 보자고 한 거구나.”

“마술쇼와 등장 준비,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었기에 여기에 올 수밖에 없었다……!”

괴도 네온이 크게 몸짓을 하며 괴로움을 표출했다.

감정이 격앙된 걸 보니 괴도 네온은 나름 열심히 고민한 듯했다.

그다지 의미 없고 쓸데없는 고민이었지만, 구슬비는 괴도 네온의 심정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깊게 끄덕이며 말했다.

“마술쇼 보러 가는 대신 놀이기구는 내가 타고 싶은 거 탈래. ‘토네이도 샷 롤러코스터’ 한 번 더 타자.”

“그거 좋지! 정점에서 내려가기 직전, 사진을 찍어 주는 게 괜찮더군. 이번엔 다른 포즈를 시험해 볼 거다.”

“다음 포즈는 내가 더 눈에 띌 거야!”

롤러코스터를 타러 이동하는 두 사람은 지나치게 눈에 띄는 차림새였지만,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원지라는 공간의 특성상, 두 사람은 그저 주말을 맞이해 컨셉을 특이하게 잡고 유원지 데이트를 즐기는 고등학생 커플로 보였던 것이다.

실체는 단순한 관종들의 작당질이었지만 그건 둘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주변의 따뜻한 배려와 오해 속에서 관종들은 신나게 놀았다.

두 관종이 마술쇼를 보러 가기 위해 이동하려 할 때였다.

“오, 저기에서 풍선을 나누어 주는군. 필요한가?”

“필요해! 가자!”

괴도 네온이 가리킨 곳은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누어 주는 마스코트 인형 탈 알바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유독 인기 없는 마스코트가 있었다.

개설된 지 얼마 안 된 공룡 체험관 대표 마스코트인 공룡 캐릭터 ‘티렉’이었다.

티라노사우르스에서 모티브를 딴 인형 탈을 쓴 마스코트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애들한테 장난을 걸었지만, 영 반응이 없었다.

옆에 있는 다른 마스코트 캐릭터들은 긴 역사와 인기를 가진 것과 달리, 신입 마스코트는 아이들 사이에선 그저 듣도 보도 못한 잡캐릭터였으니까.

“…….”

“…….”

그 광경을 본 괴도 네온과 구슬비는 자신들의 처지가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관찰 결과, 1학년 0반 아이들 중엔 유명인도 많았고 서로 엄청 친했다.

그러니 1학년 0반 사이에서 관심을 받기 어려울 거라고, 두 사람은 멋대로 생각 중이었다.

두 관종은 ‘티렉’ 외에도 듣보잡 취급 받는 신입 마스코트 공룡 캐릭터들 모두에게 과몰입했다.

두 사람은 눈물을 삼키며 공룡 캐릭터들로부터 풍선을 받아 갔다.

“언젠가, 언젠가는 저들의 풍선을 탐내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역사를 쌓으면 인기가 생기겠지!”

“다른 캐릭터도 신입인 시절이 있었잖아. 그사이에 홍보도 많이 하고, 유원지도 더 커지고, 팬도 늘어나고, 하여튼 달라질 거야.”

“그렇지, 새 캐릭터가 등장해 이들이 고참이 되는 시점 정도 되면, 분명……!”

여전히 잔뜩 남은 풍선 사이에 있는 공룡 캐릭터들을 보던 두 사람에게 갑자기 벼락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관종의 사고회로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군. 내가 인정한 파트너답구나!”

“괴도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것치곤 쓸 만하네!”

둘은 드디어 답을 찾아낸 걸 기뻐하며 화색을 띠었다.

“등교하지 않는 애들을 찾으러 가자! 그럼 우리가 고참이 되는 거 아냐!”

“그래, 그렇게 되면 지금 등교하는 애들과 경쟁할 필요 없어. 새로 등장한 아이들 사이에서 튀면 된다!”

관종이 아닌 일반인들이 들으면 이해도 못 할 소리였지만, 두 사람은 진지했다.

그렇게 둘은 등교하지 않는 세 명의 학생을 찾기로 결의했다.

*    *    *

늦은 점심을 먹고, 차까지 마신 후 황명호 대저택을 나섰다.

별채 현관 앞까지 마중 나온 은호가 물었다.

“동하 형은 의신이 형과 같이 학교로 가시나요?”

“아니, 황명 연구소 쪽으로 갈 거야. 연구소에 개천신화에 관한 서적이 꽤 있어서 공부하려고.”

천동하는 오늘 들은 대화 내용 중에 모르는 점이 많아 공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하는 일도 바쁠 텐데, 천동하는 의욕에 찬 얼굴로 말했다.

“가능하면 지맥과 지력에 관해서도 익히고 싶어. 우리 학교는 물론이고 내 동생과도 관련 있는 것 같으니까.”

“다음에 뵐 때는 제가 직접 정리한 책을 드릴게요, 동하 형.”

은호는 천동하의 말에 기뻐하며 답했다.

‘플마고에선 천동하가 형으로서는 어떤 인물인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차가운 인상과 달리 이타적인 성품의 노력가.

플마고를 플레이한 이들이 천동하를 품평한 내용은 이러했는데, 만약 게임 안에서도 동생이 등장했다면 평가가 더 좋아졌을 거다.

끄응…….

한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착하게 밖에서 기다렸다던 올무의 꼬리가 나가는 나를 보고 축 내려갔다.

하지만 서돌이 쳐들어오는데 그냥 저택에 있기 어려웠다.

저녁에 약속이 생겨서 어쩔 수 없다고 설득하니, 착하고 똑똑한 올무가 리드를 골라 왔다.

왕왕!

대신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같이 산책하자는 뜻 같았다.

너무나도 천재스럽고 배려심이 넘치는 올무의 행동에, 돌아가는 길은 최대한 천천히 걷기로 했다.

백호군이 리드 줄을 잡고 나가자 호랑이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산령은 내가 지켜보고 있으마. 걱정 말도록. 흠, 저녁은 후예들이 준비한다니 그 앞에 던져 주는 게 좋겠군.”

황지호의 말에 산령이 혼비백산하여 뛰쳐나가려 했으나 물론 도망칠 수 없었다.

황지호가 손가락을 들어 산령을 가리키자 황금빛 이능파가 산령을 향해 뿜어졌다.

파앗!

황지호가 부른 결계에 갇힌 산령이 버둥거렸지만, 결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산령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나를 울먹울먹한 눈으로 올려 봤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은호의 후예들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산령과 많이 친해졌으니 간만에 좀 놀아 줬으면 했다.

……후예들이 만드는 요리는 먹기 좀 힘들겠지만.

“상의하고 싶은 게 있어요. 다녀오세요, 백호 형님.”

은호의 말에 백호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황명호 대저택을 나와 은광고로 향했다.

오늘은 나 혼자가 아니라 백호군과 나의 천사 올무가 함께였다.

왕왕……!

리드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던 올무가 갑자기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은광고가 가까워지자 산책이 끝난 것 같아 아쉽나 보다.

이제 날이 짧아진 탓에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지만, 아직 늦은 시각은 아니었다.

나는 올무의 뜻을 헤아려 제안했다.

“그래, 더 천천히 걸을까?”

왕!

내 말이 정답이었는지 올무가 발치에서 재롱을 부렸다.

나와 백호군은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시간을 들여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뒤에 서 있어라.”

휙!

백호군이 갑자기 내 앞으로 달려갔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생각했을 때 이미 백호군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백호군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백호, 전 조의신과 약속이 있으니 비켜 줄래요?”

“…….”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꾀돌이, 서돌이었다.

크르르르……!

백호군이 가만히 서 있자니 어디선가 귀청을 울리는 낮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돌이 낸 소리인가?

학교 근처이니 좀 저런 무서운 소리를 내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

“이자와 약속이 있었나?”

백호군은 비키지 않고 내게 물었다.

엄밀히 따지면 약속이라 하기 좀 그렇긴 했다.

서돌이 일방적으로 오겠다고 통보한 것뿐이니까.

그래도 백호군을 번거롭게 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자, 백호군이 조금 비켜섰다.

“조의신, 안녕하세요? 약속대로 왔어요.”

“안녕하세요.”

“이대로 대화할까요? 이 산책길, 운치도 좋고 사람도 없어서 좋네요.”

우리가 이용한 산책로는 멀리서 은광고가 보이긴 했지만, 산을 타고 멀리 돌아가는 길이었기에 인적이 드물었다.

서돌과 이야기하려고 고른 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잘됐다.

서돌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선물은 두 개인데요, 어느 걸 먼저 받으실래요?”

하나는 내가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르는 것.

다른 하나는 내가 싫어할 것 같은 것.

둘 다 싫었다.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자니, 멋대로 서돌이 먼저 말을 꺼냈다.

“고를 수 없어요? 그럼 그냥 제가 주고 싶은 것 먼저 줄게요.”

“……이건 어느 쪽이죠?”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유용하긴 할 텐데, 내용이 좀 그렇거든요.”

서돌은 갈색 얼룩이 있는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저 얼룩은 혹시 핏자국이 변색된 것 아닌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종이봉투에 ‘세 기사의 맹세’의 인장이 찍혀 있는데…….’

봉투를 연 순간, 서돌이 그 내용물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 안에 든 건, 당신의 반 친구 ‘목우람’의 암살 계획이에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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