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45화 (444/925)

65. 숨겨야 하는 것 (9)

세 기사의 맹세 초대 팀 마스터들의 가문 문양이 얽힌 형태의 팀 마크.

그 밑에 쓰여 있는 건 목우람의 이름이었다.

봉투 안을 반 정도 살펴 봤을 때, 그 내용에 아연실색했다.

‘……이미 암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나!’

서돌이 ‘암살 계획’이라고 표현한 글 안에는 보고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올림픽 공원에서 치른 첫 실습 때 암살을 시도했다 실패했다고 한다.

자객으로 그 장소에 있던 건 세 기사의 맹세 소속의 정예 둘.

둘 중 하나가 테이밍한 에너미를 이용해 함근형 선생님을 유인하고, 그사이에 이계로 진입해 목우람을 암살할 계획이었다.

함근형 선생님의 유인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계획도 세워져 있는 게, 아주 철저히 준비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건 아무도 몰랐어. ……영원의 호수 팀이 와서 그런가?’

그날 영원의 호수 멤버들은 권레나를 응원한답시고 팀 망토를 입고 그 자리에 등장했다.

권제인의 팔불출 행위는 나날이 심해지고 있으니 정말 권레나의 응원만을 위해 등장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의도, 목우람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재러드 리는 ‘세 기사의 맹세’ 출신이고, 목우람은 권제인의 바이올린을 만들어 준 장인의 제자 아닌가.

보고서에는 암살에 실패한 이유도 제시되어 있었는데, 예상대로 영원의 호수가 언급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암살에 실패한 원인은 하나가 아니었다.

‘……영원의 호수 외에 다른 변수?’

그 당시 암살자들은 인근 옥상에서 주변에서 발생한 다섯 개의 이계를 관찰 중이었다고 한다.

이는 1학년 0반이 어느 쪽 이계를 공략하러 갈지 판단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들은 예상하지 못한 것을 관측했다.

다섯 개의 이계는 각각 강렬한 이능파를 머금었는데, 이를 멀리서 시야에 넣고 보면 이능파의 형태는 어느 형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 형상은 까마귀 마왕 시델렌티움의 인장이었다.

‘까마귀 마왕이 나와 접촉하기 위해 그 이계에 손을 쓰고 있었지…….’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날 영원의 호수 팀이 오지 않았더라도 암살은 실패했을 거다.

까마귀 마왕은 암살을 방관할 가능성이 컸지만, 꼭 그럴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은밀하고 정교하게 진행해야 할 암살 계획에 거대한 변수가 생겼으니 계획을 파기하거나 연기하는 게 현명했다.

‘실패한 암살 계획보다 앞으로의 일이 더 중요해.’

이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암살은 미수에 그쳤지만, 아직 암살자들은 한반도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영국에 도착했어야 할 보고서는 서돌이 가로채 내 손에 들어왔지만.

‘목우람의 외출 빈도는 적지만 없는 건 아니야. 혼자 외출하면 위험하겠지.’

목우람은 이런저런 하자가 많았지만 착한 놈이었다.

누가 그놈을 죽이려 하는 걸 아는데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다 읽으신 것 같군요. 어때요? 제 선물, 고맙죠?”

암살 어쩌고 하는 내용만 따지고 보면 최악이었지만, 그 자체는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같은 반 급우가 암살당할 위기에 놓였는데, 정보 제공자에게 감사 인사를 표현하는 건 부반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감사 인사도 하고, 암살 건에 관해 좀 더 캐 보기로 했다.

“네, 감사합니다. 어디에서 손에 넣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중국에서 어떤 쓰레기가 절 방해했잖아요? 영국에 놀러 간 김에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손에 넣었어요.”

서돌은 존댓말로 대답하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반말로 뱉는 말에 분노와 짜증이 묻어났다.

“하, 영국 하니까 또 말발굽에 차인 기분 나쁜 기억이 떠오르네. 왜 내가 이렇게 기분이 더러워져야 하지?”

그러고 보니 핼러윈 파티에서 서돌과 흑마가 에너미 잡기 내기를 했었다.

결과가 궁금하지 않아서 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잊고 있었는데, 서돌이 져서 흑마에게 처맞았나 보다.

“12지 중 하나, 마족(馬族)의 수장 흑마라고, 무식하고 예민한 진족이 있어. 너도 조심해.”

내가 조심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모처럼 좋은 정보를 제공해 줬으니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서돌은 처맞은 게 분한지 흑마의 뒷담화를 했는데, 그냥 내가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 건지 실컷 이야기를 하다가 기분을 풀었다.

서돌의 기분이 풀릴 때쯤 추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사람들이 왜 목우람을 노리는지 아시나요?”

“그건 목우람의 재능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목우람이 심각한 호구라서 별로 티가 안 나긴 하지만, 재능은 훌륭하다.

플레이어로서의 이능도, 바이올린 장인으로서의 솜씨도.

어느 정도냐면 한국 최고 난이도 입학시험 면접에서 헛소리를 해도 통과할 정도고, 세계 유일의 이능 바이올린 장인이 제자로 삼을 정도다.

“치하에 둘 수 없다면, 없애 버리는 게 낫겠다는 게 ‘세 기사의 맹세’의 입장인 것 같아요. 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목우람에게는 관심이 안 가서 제대로 안 알아봤어요.”

그 말은 몹시 의외였다.

홍규빈이 예전에 서돌에 관해 이런 평가를 하지 않았던가.

―그 꾀돌이는 인간의 드라마에 환장해. 내가 아는 가장 극단적인 인간 찬가론자야. ‘전, 이런 거 아주 좋아해요.’라면서 답지 않은 존댓말을 쓸 때가 가장 소름 돋아. 아마 좀 극적인 배경을 가진 인간에게 그럴듯한 이능까지 있으면 밑도 끝도 없이 들이대겠지.

목우람은 평범한 성장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능 바이올린 장인의 제자가 되어 여행을 다녔고, 스승이 사망한 후에는 뮤즈를 찾아 전 세계를 헤맸다.

목우람의 호구스러운 여행길은 꽤 비참했고 그 와중에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거기에 이 암살 위협은 현재 진행형 중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극적인 배경 아닌가?

목우람은 이능도, 이능 외의 재능도 출중한데 서돌이 관심이 없다니 뭔가 이상했다.

서돌은 목우람이 영 마음에 차지 않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저는 역경과 시련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을 좋아해요. 하지만 목우람의 머릿속은 좀 꽃밭 같더라고요.”

……그건 그렇다.

예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뮤즈를 발견한 이후의 목우람의 머릿속은 꽃밭 그 자체다.

권레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모를까, 그 외의 일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 같다.

서돌은 반말을 써 가며 혹평했다.

“시궁창에 처박혀도 거기가 시궁창인지 모를 인간이야. 관찰하는 재미가 없어. 아, 옷 입은 것도 좀 마음에 안 들어. 머릿속이 덜 꽃밭이면 제가 코디해 주기라도 할 텐데.”

서돌의 관심을 피한 건 목우람에게 있어 행운이겠지만, 이유만 들으면 최악이었다.

황지호를 비롯한 서돌을 아는 모든 이들이 그를 피하는 이유가 한층 더 명백해졌다.

이 쥐는 해로운 쥐다.

서돌이 얘기하다 말고 말을 멈췄다.

서돌이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몹시 찝찝한 느낌이 드는 시선이었다.

“전 권제인, 홍규빈, 조의신 같은 인간을 아주 좋아해요. 호족도 아주 좋아하죠! 그래서 말인데, 저한테 가호 받으실…….”

“그만 가라.”

넓은 등이 앞을 가려 서돌의 불쾌한 시선이 사라졌다.

백호군은 서돌이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시작하니 대화를 끊어 버릴 모양이었다.

역시 내 주력 플레이어블 캐릭터다운 배려심과 관찰력이었다.

서돌은 백호 너머로 나를 보려고 휙휙 몸을 뒤틀어 대며 징징거렸다.

“백호, 오랜만에 만났는데 말이 거치시네요. 나는 조의신하고 더 얘기할래요. 아직 남은 선물도 하나 있는데요!”

내가 싫어할 것 같다는 선물 말인가?

그냥 안 받고 싶은데.

하지만 또 누군가의 암살 계획 같은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으면 놓칠 수 없었다.

백호군은 내 의사를 묻는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보고 있었다.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백호군이 반걸음 비켰다.

덕분에 서돌의 얼굴이 반만 보였다.

“무슨 선물인가요?”

“아, 다름이 아니라 다음 시즌에 ‘느루’의 앰배서더 하실 생각 없나요?”

저건 뭔 소리인가.

왕찬솔네 기업 산하에 있는 세계 5대 명품 브랜드 ‘느루’ 말하는 건가?

플레이어가 명품 브랜드의 엠배서더가 된 적은 있지만, 그건 권제인 급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등학교 1학년이 무슨 명품 앰배서더인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얼굴을 팔고 싶지 않다.

“아니면 이번 시즌 모델이라도! 아, 일단 저 혼자 생각한 건데 디자인 초안은 나왔거든요? 은광고 교복하고 함께 입을 수 있는 액세서리가 메인이라 부담이 적을 거예요. 가칭 ‘Unnamed Supernova Edition’ 어때요?”

서돌이 뭐라고 열정적으로 떠들긴 했지만,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별 고민 없이 곧바로 답했다.

“싫어요.”

서돌이 내민 선물은 서돌 생각대로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싫다고 딱 잘라서 말하자 백호군이 더 이상 서돌을 봐주지 않았다.

“조의신은 싫다고 의사를 밝혔다.”

“물론, 싫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설득하려고 직접 온 거거든요! 이번에 검은색에 꽂혔는데, 이능파가 검은색인 플레이어가 은근 흔치 않아서…….”

파아아아…….

백호군의 주변에 순백의 이능파가 피어올랐다.

외출하느라 검게 물들였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걸 보고 서돌이 입을 딱 다물었다.

호족 최고의 무재 앞에서 힘으로 개길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나 보다.

“첫 번째 선물은 감사했습니다. 그럼 다음에 뵈어요.”

“……전 포기하지 않았어요! 또 연락하고, 또 선물 줄 거예요!”

크르르르!

서돌의 말이 길어지니 어디선가 또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타이밍이 이상하긴 했지만, 정황상 서돌이 흥분해서 낸 소리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짐승이 내는 소리가 잦아지고, 백호군이 발산하는 이능파의 밀도가 짙어지니 서돌은 결국 물러났다.

다시 조용해진 산책로 위, 나는 서돌을 퇴치한 백호군과 착하게 기다려 준 올무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 인사에 더해 제안을 하나했다.

“조금만 더 산책하다가 들어가자.”

“알았다.”

왕왕!

오늘의 귀갓길은 해프닝도 있었고 몇 배나 길었지만 마무리는 완벽했다.

그렇게 돌아온 기숙사 내 방.

요새 해도 짧아져서 그런지 좀 어둡고 춥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택에서 출발하기 전에 원격으로 기숙사 방의 조명과 난방을 켜 둘 걸 그랬다.

서둘러 조명과 난방의 전원을 넣고 디바이스를 열고 메시지 확인이나 하기로 했다.

‘어, 이건…….’

낯선 발신자에게서 온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발신자는 까마귀 마왕의 대리인, MITRON의 파티시에였다.

*    *    *

황명호 대저택, 은호의 별채.

아무도 없는 별채 안, 은호는 창문을 모두 닫고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야 현관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조금 늦었네요. 산책이 길어졌나 봐요.”

별채 안으로 들어온 백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은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은호는 백호 몫의 차를 준비하며 말했다.

“백호 형님은 예전에도 말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더 심해지셨네요.”

백호는 은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찻잔을 기울였다.

은호의 말이 계속되었다.

“제가 잠든 후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호족 분들은 거의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청호 님은 인간이 되셔도 옛 성정 그대로시죠. 하지만…….”

은호가 말을 중간에 멈췄다.

달변가인 은호가 이렇게 말을 머뭇거리는 건 드문 일이었다.

“…….”

“…….”

차를 한 잔 비우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호는 다음 차를 준비하는 대신, 준비해 둔 것을 꺼냈다.

백호는 테이블 위에 펼쳐지는 물건들을 가만히 지켜봤다.

은호가 꺼낸 건 체스판과 체스 피스가 담긴 케이스였다.

세팅을 마친 은호가 말했다.

“백호 형님, 저와 체스를 둬 주세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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