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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81화 (479/925)

69. 티끌 (2)

악몽의 신 인섬니움.

이 상위 존재에 관해 들은 건 12지 동맹 회담에서였다.

12지 동맹 회담이 시작된 후, 계속 침묵을 고수하던 양족의 수장이 이런 말을 했다.

未[양Zzz] “음······ 저기, 있잖아. 한마디 해도 돼?”

未[양Zzz] “여기에 악몽을 끌고 온 자가 있어. 회담을 잇는 마력 회로 너머로 악몽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 말이 나온 순간, 자기 말만 하던 12지 수장들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우두머리들은 ‘악몽’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순간 눈에 띄게 긴장했다.

그날 황명호 대저택 지하에 있던 황지호, 적호, 옥토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정을 유지하던 건 백호군 하나였다.

악몽의 존재를 부정하며 정신 승리를 하려는 12지의 수장들을 두고 양족의 수장이 일침을 날렸다.

未[양Zzz] “잠과 꿈, 그 상징의 화신인 내가 악몽을 두고 거짓을 고할 리가.”

未[양Zzz] “우리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것은 ‘불가침’의 약속뿐. 하지만 100년을 함께한 12지 동맹의 일각으로서 경고하지. 지금 이 12지 동맹에 참석한 자, 혹은 마법진 주변에 있는 자는 ‘악몽’ 그 자체다. 악몽에 삼켜지지 않게 경계하도록.”

양족의 수장은 12지의 수장 곁에 악몽이 있다는 경고의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대체 그 악몽이란 무엇인지, 악몽은 어떤 힘을 가졌으며 왜 그렇게 저들이 경계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봐도 악몽에 관해 떠오르는 게 없었다.

12지 회담 때 들었던 대화를 기반으로 악몽 인섬니움이 상위 존재, ‘신’으로 분류되는 존재라는 건 알아냈지만, 딱히 짚이는 신화나 전승을 찾기 어려웠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상위 존재는 내가 알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닌 존재도 있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마신이다.

탐욕의 마신 아바리티아와 질투의 마신 인비디우스.

이들은 내가 알고 있는 신화 체계에는 없었던 상위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악몽의 존재도 내가 알지 못하는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짐작했다.

‘백호군에게 물어봐도 답을 듣지 못했고, 조사해 봐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지.’

악몽에 관해 들은 이후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 보긴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지명도가 낮은 건지, 철저히 은폐된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명도가 낮다면 그 정도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테니 근거는 없지만 아마 후자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조의신, 악몽이 무엇인지 궁금한가?”

그야 당연히 궁금하다.

궁금하지 않았다면 굳이 내 주력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귀찮게 하면서 질문을 던지진 않았을 거다.

황지호는 갑자기 미안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모두에게 그 위험성에 관해 일러 뒀는데…… 너에게는 말한 적이 없었군.”

황지호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니 딱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런데 황지호가 말하는 걸 보니 악몽이 진족 사이에서 지명도가 높은 존재인 건 아닌가 보다.

유명한 존재라면 딱히 수장이 나서서 악몽이 위험하다고 일러 둘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황지호는 악몽의 위험성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호족들에게 알린 게 분명했다.

“조의신은 인간이니까요. 악몽의 영향을 덜 받을 겁니다.”

“그건 사실이지만, 영향을 덜 받는 것과 전혀 받지 않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김신록의 말에 황지호가 진지하게 받아쳤다.

악몽은 진족에게 더 큰 영향을 주는가 보다.

‘혹시 백호군은 그래서 악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한 건가?’

백호군에게 악몽에 관해 질문을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너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다, 조의신.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을 해라.

그래서 나는 내 주력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말을 믿고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별문제가 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황지호의 말을 들으니 뭔가 마음에 걸렸다.

‘……백호군은 왜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걸까.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분명 주의를 줬을 텐데.’

옆에서 무표정으로 걷고 있는 백호군을 올려다봤으나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왜 대답을 안 해 줬냐고 따지기도 모호한 상황이었다.

결국 입을 다물고 황지호의 설명이나 듣기로 했다.

“인간은 악몽의 영향을 덜 받는다. 무서운 꿈을 꿔도 신체에 이상이 없는 한 아침이 되면 눈을 뜨지 않는가.”

나는 꿈을 안 꿔서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지나치게 무서운 꿈을 꾸면 아직 일어날 시간이 되지 않아도 멋대로 깨어나기도 하니까.

신문부 아이들과 중국에 갔을 때, 악몽을 꾼 문새론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적도 있었다.

황지호가 말하는 걸 보니 진족은 인간과 경우가 다른가 보다.

“하지만 ‘진명’을 가진 진족과 후예는 다르다. 우리들은 인간에 비해 악몽에게 취약하다. 조의신, 우리들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 기억하나?”

황지호가 예전에 진족과 후예, 인간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정답을 맞혔다.

“진명(眞名)의 존재 여부.”

“잘 기억하고 있군. 우리에게는 혼과 육신을 묶는 진명(眞名)이 존재하지.”

악몽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그때 일을 꺼내는 걸까.

인간에게는 영향을 덜 미친다는 악몽.

진명이 존재하는 진족과 후예.

혼과 육신을 잇는 쐐기인 진명.

악몽이 언급된 순간 지나치게 경계하던 12지의 수장들.

이것들을 종합해 본 결과, 답이 나왔다.

‘설마, 진족이 악몽을 그렇게 경계하는 이유는…….’

황지호는 내가 추측해 냈다고 판단한 건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악몽은 꿈을 통해 우리의 무의식을 침범한다. 그렇게 침입한 악몽은 우리가 심중(心中)에 봉인한 진명을 삼켜 버리지.”

악몽은 진족과 후예의 진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황지호는 예상대로의 답변을 했다.

“악몽에 잠식되어 진명이 삼켜진 자들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지곤 한다. 말 그대로 악몽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세계에 그런 변수가 존재하다니……!

그 악몽은 12지의 동맹 내부에 있지 않은가.

내가 알고 있는 진족이나 후예가 어느 날 갑자기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나지 않는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존재가 있으면, 토벌해야 하지 않아?”

“악몽은 실체가 없고 꿈을 통해 이동하니 그 존재를 잡기 어렵다. 꿈에 관해 정통한 진족, 몽마(夢魔)나 양족의 수장이 적극적으로 협력하면 가능성이 오르긴 하겠군.”

“몽마들은 본능적으로 악몽을 따른다고 들었습니다.”

황지호와 김신록의 말을 들어 보니 왜 12지가 악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건지 알 수 있었다.

몽마는 악몽을 따르고, 양족의 수장은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친 걸 보면 경고 이상으로 무언가 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렇다면 몽마의 후예는 어떨까…….’

순간 구슬비의 스승, 몽마의 후예인 멀린이 떠올랐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멀린은 지금 호수의 여인 니뮤에에 의해 봉인되어 있는 상태다.

만약 멀린이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구슬비가 목숨을 잃을 때 손 놓고 지켜보지 않았을 거다.

새로운 변수, 악몽의 존재에 관해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조의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말없이 걷던 백호군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백호군의 말에 어지럽게 돌아가던 머릿속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백호군에 이어 황지호도 말을 걸었다.

“백호의 말이 맞다. 악몽은 우리의 꿈을 손쉽게 파고들지만, 정신력이 강한 자의 꿈을 완전히 잠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태풍 속에서 염료 가루를 뿌린다 한들, 바람의 색을 바꿀 수 없지 않겠느냐.”

황지호의 비유는 알기 어려웠지만, 노친네는 자신이 넘쳐 보였다.

두 신화계 호족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어쩐지 악몽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황지호가 악몽에 관해 설명할 때 ‘완전히 잠식하는 건 불가능’이라고 묘사한 게 걸렸다.

악몽이 저들의 꿈을 완전히 잠식해 진명을 삼키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영향을 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걱정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무력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 변수의 존재에 관해선 생각해 두기로 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위치한 호족의 가든은 ‘산’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산새, 벌레 하나 없는 탓에 과도하게 적막했다.

악몽에 관해 이야기한 후, 침묵이 계속되자 김신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건 악몽 그 자체가 아니라 악몽이 남긴 티끌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티끌은 진명에 영향을 주지 않나요?”

“네, 이건 그저 악몽이 지나간 흔적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김신록은 이 악몽의 티끌을 어떻게 구한 걸까.

악몽에 관해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 질문했다.

“어디에서 티끌을 구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 질문에 김신록이 조금 주저하다가 말했다.

“……친구가 선물해 줬습니다. 고문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요.”

김신록의 친구는 딱 한 명밖에 없지 않나?

……용제건이 준 건가!

이 말은 황지호도 처음 듣는 건지 못마땅해하며 말했다.

“도움이 됐다고는 하지만 그 망할 용이 네게 그런 걸 선물하다니.”

……뭐, 김신록도 압정 같은 걸 여기저기에 숨기면서 강제로 선물하는 중이니 그게 그거 아닐까?

김신록은 선물할 의도가 없었지만, 어쨌든 용제건은 압정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나중에 악몽의 티끌을 어디에서 구한 건지 용제건에게 물어봐야겠다.’

김신록은 악몽의 티끌의 출처에 이어 다른 사항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악몽 인섬니움은 꿈을 꾸는 대상의 공포, 분노, 슬픔 등을 자극하여 그 감정을 양분으로 삼는다고 한다.

악몽은 꿈을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보통 현세에 흔적이 남지 않지만, 가끔은 티끌을 남긴다고 한다.

“이 티끌이 심어진 대상은 악몽을 보게 됩니다. 대상의 이능파를 자극하지도 않고, 신체적인 고통도 주지 않지만 꿈을 지배하여 정신을 헤집을 수 있죠.”

“잘 보니 티끌에 당신의 이능파가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죽호가 김신록의 손에 들린 봉투를 뚫어지게 보며 묻자, 김신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신록이 붉은 이능파를 흘리자 봉투가 허공으로 조금 떠올랐다.

“네, 단순히 악몽의 티끌을 심는 것만으로는 고문이 안 되니까요. 이 티끌이 심어진 대상은 꿈에서 암시를 받게 될 겁니다. 필요한 정보를 말할 때까지, 악몽은 끝나지 않을 거라고.”

김신록의 설명에 죽호가 감탄하며 티끌을 봉인한 봉투를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둘은 티끌에 이능파를 섞은 원리와 과정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그 광경을 황지호가 흐뭇해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호족 부부도 이를 경청했다.

김신록은 웅족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으므로, 정신을 헤집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에 크게 공을 들인 것 같았다.

“……이제 도착한 것 같군.”

황지호가 불쾌해하며 발을 멈췄다.

호랑이들의 시선이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 쪽으로 향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에이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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