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늦가을 소풍 (5)
소풍 혹은 현장 체험 학습.
학생들에게는 보통 나가서 노는 날로 인식되고 있지만, 엄연히 이날은 출석 체크도 하고 교사의 인솔이 필요한 정규 교육 과정의 일부다.
그러다 보니 소풍에는 전형적인 패턴, 양식 등이 존재했다.
어느 학교를 가나 비슷한 장소, 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우게 되는데 레크리에이션 타임에 대표적으로 하는 놀이가 ‘보물찾기’였다.
“보물찾기? 초등학생 때 해 보긴 했는데…….”
“내가 나온 학교에선 안 했다.”
“와, 저는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다른 분들은 해 보셨나요? 어떤 놀이예요?”
권레나, 맹효돈, 사월세음처럼 아이들의 반응은 크게 세 유형으로 갈렸다.
첫째, 경험해 본 사람.
둘째, 뭔지는 알지만 해 보진 못한 사람.
셋째, 보물찾기가 뭔지 아예 모르는 사람.
또 굳이 하나 더 꼽자면 아주 객관적으로 용제건의 말을 분석한 아이들도 있었다.
“부담임하고 보물찾기 놀이를 한 친구가 있다고?”
“……친구?”
송대석과 독고미로가 아주 예리한 분석을 했다.
용제건의 친구는 김신록 하나뿐이고, 예의 그 보물찾기 놀이는 용제건이 일방적으로 혼자 즐긴 것뿐이니까.
약 5천 년 지기는 나이를 잊고 내 앞에서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신록이가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내가 너무 쉽게 깨서 화났나 봐.
―······이벤트요?
―뭐라고 설명해야지······ 아, 보물찾기 이벤트였어.
―보물 좋아하네.
―응, 좋더라.
용제건에게 사소한 복수를 한답시고 준비한 김신록의 깜작 압정 이벤트가 보물찾기 취급 받았다.
김신록은 용제건이 아무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속이 터졌으나 용제건은 김신록의 속이 터지는 것조차 즐거워했다.
그 사건 덕에 오늘 우리 반에서 보물찾기 이벤트가 열리게 되긴 했지만, 나중에 김신록이 우리 반에서 보물찾기를 했다는 걸 알면 매우 미묘한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사전에 상품명이 적힌 종이쪽지를 숨겨 놨어. 내 이능파로 물들인 이계 종이니까, 보면 알 거야.”
용제건은 시안색으로 물든 작은 종이쪽지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일반 종이와 달리 이능파를 흡수하는 이계 종이 재질로 된 쪽지는 용제건의 이능파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룰을 설명하기 위해 준비한 쪽지였는지, 시안색 종이에는 ‘보물^^’이라는 단어가 적힌 상태였다.
“쪽지를 찾아내면 그 안에 적힌 상품을 줄게. 괜찮은 물건이 많으니까 꼭 다 찾아줬으면 좋겠어.”
용제건이 준비한 괜찮은 물건.
과연 우리가 봤을 때도 괜찮은 물건일지는 미지수였지만, 반 아이들은 흥미가 생긴 것 같았다.
아이들이 우선 주목한 건 보물의 내용이 담긴 쪽지였다.
“종이가 이능파로 물들긴 했는데, 종이 자체에서 이능파가 느껴지지는 않아.”
“굉장히 미미한 수준의 이능파군요. 이능파를 탐지해서 찾는 방식은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이와 목우람이 그렇게 말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쪽지를 통해 이능파를 느끼는 걸 포기했다.
황지호는 쪽지를 응시하며 처웃긴 했지만.
“그런가? 하하하하!”
황지호는 보물 쪽지를 통해 용제건의 이능파를 감지할 수 있나 보다.
용제건과 알고 지낸 기간이 길어서 그런 건지, 그냥 노친네의 연륜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편, 묘하게 조용하다 싶었던 옹길동과 구슬비는 모노레일 앞 좌석에 머리를 박고 좌절하고 있었다.
“보물찾기…… 이런 빅 이벤트가 사전에 있는 줄 알았다면, 보물찾기용 의상과 소품도 따로 준비하는 거였는데!”
“아쉽다, 승리를 장식할 세리머니를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어!”
“보물 하면 바로 이 몸인데, 준비를 못 하다니…… 내 아이덴티티가 위협받고 있다…… 크윽…….”
옹길동과 구슬비는 보물찾기 이벤트 소식에 좌절했다.
그러나 모노레일에서 내릴 때쯤엔 회복하여 놀이공원을 신나게 즐겼다.
관종들이 비록 보물찾기 이벤트에는 대비하지 못했지만, 다른 어트랙션을 어떻게 즐길지는 철저하게 준비해 온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적응을 잘해서 다행이네.’
비록 옹길동과 구슬비가 심각한 수준의 관심 종자라고 하지만, 1학년 0반 소속의 아이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아닌가.
반 아이들과 잘 어울렸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둘은 아직 반 아이들과 교류를 하는 것보다는 그 사이에서 눈에 띄고 즐겁게 노는 데에 열중하는 것 같지만, 그럭저럭 잘 섞여서 놀았다.
관종들은 이동할 때마다 눈에 띄는 셀카를 찍을 장소, 화려하게 단체 사진을 찍을 장소를 바로 짚어 냈다.
또, 둘은 당연한 듯이 모든 놀이기구를 같이 앉아서 타 반 아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았다.
“두 분은 사이가 좋네요. 늘 커플룩을 입는 것도 그렇고요.”
“음…… 내 생각엔 사귀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아. 엄청 친하긴 한 것 같은데.”
회전하는 바구니 모양의 어트랙션의 핸들을 정신없이 돌려 대는 두 관종은 사심 없이 웃고 있었다.
잘 보면 사귄다기보다는 영혼의 절친 정도로 보이긴 했다.
사회생활 능력 만렙인 김유리는 두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고 둘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 같았다.
“어? 정말로? 저러고도 안 사귄단 말이야?”
“응, 약간 대석이랑 그린이 같은 느낌.”
“아, 듣고 보니 그렇네.”
마침 민그린과 송대석, 아니, 송눈새가 탄 바구니가 근처에서 돌고 있었다.
신나게 바구니의 핸들을 돌리며 속도를 내고 있던 송눈새가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걸 들었는지 큰 소리로 물었다.
“뭐야, 왜!”
대화 내용을 들은 것 같진 않지만, 송대석보다 기민하게 상황을 파악한 민그린이 의문에 답했다.
“그냥 대석이가 눈새라는 거 같아.”
“아, 또 왜!”
그걸 모르니까 눈새라는 게 아닐까?
송눈새는 잠시 짜증을 내긴 했지만 다시 회전 바구니의 핸들을 돌리는 재미에 빠져 다시 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은 오전 내내 어트랙션을 순회하며 놀았다.
아이들이 베스트로 꼽은 건 VR기기를 착용하고 타는 롤러코스터였다.
그냥 타는 것도 충분히 스릴이 있는데, VR기기로 환경을 바꾸고 타니 더 재밌다는 게 주요 의견이었다.
다소 아쉽다는 평을 받는 건 공포 관련,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무언가에 놀라는 재미로 이용하는 어트랙션이었다.
“분장이 멋지더라. 배경 그림도 좋았어. 곳곳에 걸린 그림도 괜찮았고…….”
“네, VR이 아닌 실물로 배경을 구현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용객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는 기척을 좀 더 죽여야겠지만요.”
우리 반에는 우수한 플레이어들이 많은 탓에 다들 사전에 뭐가 튀어나올지 읽어 버렸다.
분위기에 맞춰 놀란 척을 하거나 귀신 역, 괴물 역의 분장을 구경하며 즐기는 게 대부분이었다.
맹효돈은 반사적으로 공격을 하려다가 함근형 선생님의 제지에 멈추고, 관종 둘은 갑툭튀 타이밍에 정확히 플래시를 터뜨려 괴물 분장을 한 로봇과 셀카를 찍을 정도였다.
물론, 예외도 있긴 했다.
“전 무서웠어요. 특히 입에 피 칠갑을 하고 튀어나온 늑대 인간이 너무 무서웠어요. 꿈에 나올 것 같아요.”
“……나도. 빨리 다른 거 타서 잊고 싶어.”
사월세음과 권레나는 초반에는 그럭저럭 기척을 읽고 갑툭튀에 대비했는데, 중반에 이르러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결국 두 사람은 탈출하기 전까지 계속 비명을 질렀다.
신나게 즐기다 보니 어느덧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너무 잘 논 탓에 배가 고픈 건지, 다들 점심시간을 환영하는 눈치였다.
“이쪽 테이블에 나눠 앉자! 오늘 메뉴는 나랑 레나, 지호, 세음이가 준비해 왔어!”
보온 도시락 통을 열자 화려한 색의 김밥과 롤 샌드위치가 보였다.
곱게 썰린 단면을 보니 여러 가지 색이 보이는 게 다양한 종류를 준비해 온 것 같았다.
“……우리 몫도 있어?”
“응, 넉넉하게 준비해 왔으니까 같이 먹자.”
구슬비의 물음에 김유리가 흔쾌히 답했다.
구슬비와 옹길동은 감동한 얼굴로 젓가락을 받아 들고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옹길동은 음식을 맛본 후, 다소 낯이 뜨거워질 만큼 칭찬을 쏟아부었다.
“김밥의 속 재료와 진미채가 어우러지는 맛이 훌륭해. 삼겹살이나 베이컨이 들어간 속은 느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편협하게 생각한 걸 인정할 수밖에 없군.”
“하하하하! 이 몸이 만든 음식은 모두 맛있으니 당연하지.”
옹길동이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말하긴 했으나 테마파크의 분위기와 노친네의 맞장구 덕에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실제로 도시락의 맛이 훌륭했으니 문제될 것도 없었다.
옹길동이 권레나가 만든 블루베리 잼 샌드위치를 극찬했을 때, 목우람이 좌절하긴 했다.
“저에게 저만한 말솜씨가 있었다면, 좀 더 잘 칭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마음은 충분히 전달된 것 같으니 괜찮지 않을까?
김밥과 샌드위치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구슬비와 옹길동이 오로라 빛 도시락 통을 꺼냈다.
도시락 통 안에는 규칙성 없는 간식류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제과점에서 파는 고급 과자도 있었고, 마트에서 대용량으로 파는 스낵 과자도 섞여 있었다.
“……이거 먹어도 되는데.”
“급하게 준비하긴 했지만, 전부 슬비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괜찮다면 같이 들었으면 좋겠군.”
구슬비와 옹길동의 권유에 반 아이들이 기꺼이 응했다.
상당히 달콤한 과자도 섞여 있었는데, 구슬비와 한이의 입맛이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매콤하고 짠 스낵 과자를 보니 완전히 맞는 건 아니고 반 정도인 것 같긴 하지만.
마트에서 파는 대용량 스낵 과자는 양이 많다 보니 꽤 남았는데, 그 남은 과자는 옹길동과 내가 다 먹었다.
남으면 구슬비가 서운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남을 것 같은 과자부터 먹었는데, 옹길동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다 먹은 후, 자리를 정리한 후, 용제건이 앞에 섰다.
“점심도 다 먹었으니 보물찾기를 해 볼까? 자, 시작 전에 질문 있는 사람.”
“저요!”
제일 먼저 손을 든 건 사월세음이었다.
사월세음은 보물찾기가 처음이었고, 또 비행 스킬이 있어 자신이 쪽지를 가장 많이 찾을지도 모른다며 들뜬 상태였다.
“보물을 숨긴 장소의 범위를 알고 싶어요!”
“이 테마파크 전체.”
용제건의 말에 목우람이 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 테마파크는 13헥타르입니다. 꽤 범위가 넓군요.”
“13헥타르면 어느 정도냐?”
“3만 평 정도.”
한이의 대답에 맹효돈이 고뇌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헥타르도, 평도 대충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
그저 다른 애들이 놀란 걸 보니 넓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던 용제건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플레이어잖아.”
용제건이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도발하듯이 말하는 용제건 앞에서 불만의 말이 쏙 들어갔다.
반 아이들이 조용해지자 용제건이 다시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때, 송눈새가 정적을 깼다.
“어차피 나는 벌써 쪽지 찾았으니까 상관없는데.”
“뭐, 벌써?”
“흥, 다들 주의력이 부족한 거 아니냐? 나는 놀이기구 타는 사이에 쪽지 찾아 뒀다.”
송대석이 주머니에서 시안색 쪽지를 꺼내며 말했다.
“대석아, 쪽지 찾았어?”
“그래, 두 개 찾았다. 나보고 눈치가 없다고 하더니 너희들 눈치가 더 없는 거 아니냐?”
송대석은 송눈새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나 보다.
하지만 송대석이 눈치가 없는 건 사실인데…….
“아, 내가 1등이겠네.”
송대석은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쪽지를 펼쳐 내용물을 살폈다.
쪽지 안에는 용제건의 손글씨로 추정되는 유려한 필기체로 단어가 쓰여 있었다.
[꽝^^]
“저게 뭐냐?”
“꽝이네.”
“다행이군. 1등을 빼앗기지 않았어! 첫 보물은 내가 찾는다!”
“내가 먼저 찾을 건데?”
반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얼굴이 벌게진 송대석이 쪽지를 하나 더 들어 보였다.
“아, 아직 하나 더 있다!”
쪽지 뒤로 비치는 내용을 보니 그 안에는 ‘꽝’보다 긴 문구가 적혀 있는 것 같았다.
송대석은 환한 얼굴로 쪽지를 펼쳤다.
[다음 기회에^^]
“아아악!”
송대석이 스트레스와 창피함을 못 이기고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잇값 못하는 두 진족이 신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어트랙션 타는 순서를 다 알고 있었는데 그 주변에 숨길 리가 없잖아. 미리 찾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용제건은 알면서도 송눈새가 하는 짓을 지켜봤나 보다.
황지호의 처웃는 소리가 잦아들 때쯤, 용제건이 말했다.
“그럼 조부터 정할까.”
“조요?”
“응.”
용제건은 불길하게 느껴질 만큼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이번 보물찾기는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전으로 진행할 거야.”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