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04화 (502/925)

72. 늦가을 소풍 (4)

괴도 네온과 구슬비.

두 사람은 소풍을 앞두고 몹시 설렌 상태였다.

소풍 같은 유치한 이벤트에 자신들같이 위대한 존재가 들뜰 리가 없다며 말해 봤자 온몸으로 설렘을 표출하고 있었다.

1학년 0반의 반장 김유리로부터 소풍 장소와 시간을 전해 들은 이후, 그들은 소풍 생각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테마파크는 사람이 없어서 가기 싫었는데. 유원지 기분이 안 나잖아.”

“하지만 클래스메이트가 모처럼 초청해 줬으니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괴도는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친구의 제안을 소중히 여기는 아량도 필요한 법!”

괴도 네온과 구슬비는 몇 번 경기도에 위치한 유원지에 놀러 갔으나, 석촌호수 쪽 테마파크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관심에 목마른 관종들은 기왕 유원지에 간다면 사람이 많은 쪽을 택하고자 했으니까.

하지만 소풍이라는 빅 이벤트가 엮여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소풍 오랜만에 간다.”

구슬비는 오랜만에 소풍을 갔다.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용돈과 도시락 없이 가야 하는, 급식이 나오지 않는 외부 행사가 얼마나 비참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부모회에서 간식을 내줬는데 구슬비가 진학한 중학교에서는 그런 것도 없었다.

구슬비는 소풍을 비롯한 외부 행사에 모두 불참하는 대신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하곤 했다.

그 결과, 협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담임과 반 아이들과는 그리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구슬비는 낙담하지 않았다.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언젠가 멋진 미래를 맞이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바로 지금처럼.

“그렇다면 오랜만에 참석하는 소풍이니 더더욱 눈에 띄도록 준비해야겠군.”

괴도 네온은 소풍용 의상을 만들 계획인 듯했다.

구슬비는 의상은 못 만드는 대신 마스코트 캐릭터 제품을 사들이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구슬비가 디바이스 검색 창을 열어 몇 번 검색해 봤지만,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없었다.

“응! ……어, 온라인 기념품 샵이 다 문을 닫았는데. 사려면 중고로 사야 하네.”

한때 남궁 그룹에서 운영했던 테마파크는 현재 황명 그룹 측에서 인수한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명 그룹은 기존에 존재하는 마스코트, 로고, 어트랙션을 전면적으로 교체할 것을 원했다.

그 바람에 기존의 테마파크 기념품 샵은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중고라도 사야 하나…….”

구슬비는 신품을 입고 소풍에 가지 못하게 된 것과 중고 매물 판매자를 상대할 생각에 우울해졌다.

구슬비가 중고 거래 전문 사이트를 뒤져 보려 할 때, 괴도 네온이 이를 만류했다.

“걱정 마라. 내가 눈에 띄는 소풍을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나. 괴도는 한 번 뱉은 말을 반드시 실천한다!”

괴도 네온은 직접 그린 소품 도안을 홀로그램에 투영해 보여 줬다.

도안에는 테마파크의 마스코트를 어레인지한 디자인의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소품들에는 전부 오로라 빛 이계 직물이 들어갔는데, 오로라 빛 패딩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오로라 패딩에 어울리는 소품들을 소풍에 맞춰 준비했다. 곧 작업에 들어가도록 하지. 도시락 준비도 해야 하니 바빠지겠군.”

“……나도 도울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눈에 띄는 소풍 의상을 입을 생각에 구슬비는 몹시 들떴다.

얼마 전 오로라 빛 패딩을 만들어서 그런지, 괴도 네온은 이번 소풍에는 소품 만들기에 더 몰두했다.

그 결과 토요일 아침 즈음에는 마스코트 머리띠, 가방, 도시락 통 등이 완성되었다.

테마파크를 이미지화한 오로라 빛 소품들은 하나 같이 멋지고 눈에 띄었다.

미리 가서 눈에 띄고 멋진 모습으로 1학년 0반 아이들을 맞이할 생각이었던 이들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큰일 났군, 도시락 통은 만들었는데 정작 내용물이 없어!”

괴도 네온과 구슬비는 흘끗 서로를 응시했다.

둘은 만난 시간은 짧지만, 동맹을 맺은 이후 서로에 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둘은 요리를 지독하게 못한다는 점이었다.

라면을 끓이거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레토르트 음식을 데우는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김밥을 마는 등의 요리 기술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이제 테마파크로 출발해야 하는데 두 사람의 성에 차는, 소풍에 가져갈 만한 눈에 띄는 요리를 이제 와서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고민 끝에 구슬비가 제안했다.

“과자라도 넣자.”

“흠, 그렇군. 이 멋진 도시락 통을 비워 두는 건 괴도답지 못한 행동이지!”

아쉬운 대로 도시락 통에는 구슬비가 사 뒀던 과자를 채워 넣었다.

제과점에서 파는 쿠키와 마카롱, 마트에서 파는 대용량 스낵과자가 뒤엉킨 기묘한 구성이 되었으나 구슬비 입맛에 맞는 과자 도시락 통이 완성되었다.

그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고 테마파크에 도착했다.

마침 테마파크 정문 쪽에 사용하지 않는 마스코트 탈 인형 더미가 쌓여 있어 숨기에도 딱 좋았다.

그리고 괴도 네온과 구슬비는 단체복을 입은 1학년 0반을 목도하고 말았다.

순간, 그들의 마음속 기대감이 순식간에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    *    *

괴도 네온과 구슬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풍을 기대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관종들은 척 봐도 기성품이 아닌 소품들로 도배된 상태였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직접 저걸 다 만든 걸까?

특히, 테마파크 로고를 이미지화한 오로라 빛을 뿜는 찬합의 존재감이 상당했다.

저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는 관종들도.

모처럼 우리 반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관종들은 서러움에 가득 차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저 애들도 불렀나?”

“……아, 네. 소풍 사전 답사 왔다가 만났어요.”

함근형 선생님은 두 사람에 관해 알고 있는지 몹시 기뻐했다.

비록 한 번도 제대로 된 출석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반 아이들을 쫓아다니고, 교무실에 학 차림으로 쳐들어가 출석부를 훔쳐 달아났긴 했지만 소풍에 온 게 반가운 모양이었다.

함근형 선생님의 기뻐하는 얼굴이 험악한 인상 탓에 다소 무섭게 보이긴 했지만, 오늘은 ‘전원 출석까지 3명’이라고 새겨진 반 티를 입어서 그런지 덜 무서워 보였다.

함근형 선생님은 우리들이 입은 단체 의상을 울먹울먹한 얼굴로 보는 관종들을 향해 외쳤다.

“구슬비, 옹길동! 잘 왔다. 왔으면 와서 아이들하고 인사해라.”

“크억!”

이름을 부르는 악의 없는 함근형 선생님의 부름에 갑자기 괴도 네온이 비명을 내리며 무너져 내렸다.

과장된 몸짓으로 괴도 네온이 땅을 짚고 비극 속의 주인공처럼 외쳤다.

“이 몸의 본명이 이렇게 허무하게 드러나다니……!”

괴도 네온, 아니, 옹길동은 서러움과 당황스러움, 슬픔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옹길동은 고전 소설 속에서 등장한 의적과 몹시 흡사한 이름인데.

옹길동의 부모님은 괴도를 지망하는 아들의 장래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걸까.

저 반응을 보니 굳이 ‘루이스 페레나’라는 가명을 사용한 이유는 본명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괴도 네온보다는 옹길동 쪽이 더 나아 보이는데.

구슬비도 같은 의견인 것 같다.

“네온이나 루이스보다 길동이 쪽이 좋은데.”

구슬비는 놀란 얼굴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구슬비는 괴도 네온의 본명을 처음 들은 걸까.

출석부도 훔쳐 갔으니 보면 알았을 텐데, 괴도 네온이 자신의 개인 정보를 바로 숨겼나 보다.

절망하는 괴도 네온을 향해 반 아이들이 따뜻한 말을 걸어 줬다.

“아, 루이스 쪽이 좋으면 루이스라고 부를게!”

“해외 생활 오래 하는 애들은 영어 이름이 있다고 들었어.”

“루…… 보다는 본명 쪽이 외우기 편한데.”

“둘 다 그게 그거 아니냐?”

“……대석이 별명은 이대로 가면 송눈새로 완전히 굳어질 것 같아.”

김유리와 권레나 외에는 딱히 따뜻한 말을 한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괴도 네온은 고마워했다.

반 아이들이 뭐가 됐든 옹길동을 이름으로 놀려 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보다.

“……고맙다.”

함근형 선생님의 주선으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누긴 했는데, 구슬비와 옹길동은 여전히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반 티 때문인 것 같았다.

두 관종은 단체복을 입은 우리 사이에서 상당히 눈에 띄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소외된 것처럼 보이긴 했다.

관종들은 반 아이들과 대화하는 내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반 티를 응시했다.

“아, 슬비랑 길동…… 루이스 몫의 반 티도 있어요!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해 볼래요?”

“아마 맞을 겁니다. 저는 눈으로 수치를 가늠하는 게 특기입니다.”

목우람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목우람이 민그린의 반 티 문구를 작성할 때 ‘송대석-25cm’라고 쓰자 반 아이들이 두 사람의 키를 재 봤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25cm가 딱 맞았다.

그래서 두 관종의 반 티 사이즈를 고르는 일을 목우람에게 맡겼고 목우람은 두 사람 몫의 반 티 사이즈를 바로 골라 냈다.

“단체 티셔츠다!”

“우리 것도 있었어? 진작 주지!”

사월세음이 반 티를 건네자 감동 어린 눈으로 옹길동이 이를 받으며 말했다.

“고맙다, ‘닭?’.”

“닭이라니! 이름으로 불러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그쪽은 나를 루이스라고 불러 줬는데…….”

사월세음은 반 티에 쓰인 ‘닭?’이라는 문구를 내려보다가 울상을 지었다.

옹길동은 사월세음의 이름이 특이하다 보니 별명으로 불러 주는 쓸데없는 친절을 베푼 것 같았다.

관종 둘은 반 티를 건네받자마자 빠르게 갈아입고 왔다.

오로라 빛 소품들은 포기할 수 없었는지 반 티 위에 이것저것 액세서리가 얹어지긴 했지만, 그들은 반 티에 새겨진 문구가 잘 보이게 옷을 입었다.

‘루이스 페레나’

‘위대한 드루이디스’

두 사람의 문구는 첫 등장 시 자기소개 하던 그대로를 넣었다.

둘은 그 문구가 아주 마음에 드는지 서러움을 날려 버리고 환하게 웃었다.

반 아이들은 그동안 구슬비와 옹길동에게 궁금한 게 많았는지 이것저것 물었는데, 관심받는 상황이 기쁜 건지 둘의 기분은 점점 좋아졌다.

“그러면 오늘 일정표 나눠 줄게! 점심시간 전까지는 같이 놀이기구를 탈 예정이야.”

우리는 이후 김유리의 인솔을 따라 테마파크를 순회했다.

테마파크 전체에 손님이라곤 우리 일행뿐이었으니 가고 싶은 곳, 타고 싶은 놀이기구를 기다릴 필요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성에도 들어가 보고 싶은데요. 나중에 자유 시간에 같이 가실 분?”

“공사 중이라 아마 밖에서 보는 것만 될걸.”

모노레일에 올라타 테마파크를 도는 사이, 반 아이들이 경치를 보다가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모노레일이 생각보다 느려 잡담이 길어졌는데, 조용히 일정표를 재확인하던 한이가 물었다.

“점심시간에 있는 ‘레크리에이션’ 때에는 뭐 해?”

“아, 그거?”

김유리는 미묘한 얼굴로 맨 뒷줄에 혼자 탄 용제건을 돌아봤다.

용제건은 햇살을 받은 시안색의 머리카락을 빛내며 웃고 있었다.

소풍이 시작된 이후부터 용제건은 죽 본래의 머리카락 색을 숨기고 있지 않았다.

“그거 내가 진행할 거야. 부담임으로서 가끔 반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 싶어서.”

아직 용제건에 관해 잘 모르는 관종 둘과 지나치게 용제건에 관해 잘 아는 황지호 외에는 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용제건이 무슨 일을 벌일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 내 친구랑 한 놀이가 있는데, 너무 잘 놀았거든. 다른 사람과도 해 보려고.”

“아하하…… 무슨 놀이를 하실 예정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김유리가 불안해하면서도 총대를 메고 용제건에게 물었다.

용제건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보물찾기.”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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