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보물찾기 (5)
뚫린 바닥의 틈을 타고 지상으로 흘러나온 쥐 떼들은 일제히 노란 장미 마법진을 향해 돌진했다.
마치 무언가가 쥐 떼를 지휘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재러드 리가 알고 있는 존재 중 이 정도의 쥐 떼를 다룰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꾀돌이가 온 건가!’
쥐 떼를 구성하는 쥐들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 대신 불길한 빛을 두른 쥐색의 이능파를 발산하고 있었다.
쥐들은 마법진 안에 당도하기 무섭게 이빨을 드러내 노란 장미 꽃잎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으득, 으적.
콰드드득!
“……!”
이능파의 결정체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쥐 떼들이 이빨을 맞부딪치는 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쥐 떼가 노란 장미를 씹어 먹자 노란 장미의 기사가 비명을 참으며 몸을 뒤틀었다.
지금 불러낸 장미 형태의 마법진은 그녀와 이능파로 연결되어 있어 신체에도 영향이 간 듯했다.
충격에 몸을 떨던 노란 장미의 기사가 신경질적으로 이능파를 발산했다.
“쥐새끼가 감히!”
쉬익!
칼을 가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노란 장미에서 가시가 뻗어 나왔다.
가시가 장미의 표면을 덮자 마법진은 더 이상 장미라고 부르기 어려운 형태로 변하였다.
펑! 파직!
장미 가시에 쥐 떼들이 픽픽 터져 나갔다.
노란 장미의 기사가 벌게진 눈으로 쥐 사냥에 몰두해 외쳤다.
“그때의 그 쥐새끼구나! 모습을 드러내라!”
그렇게 외친 순간, 재러드 리를 결박하던 손에 틈이 생겼다.
축 늘어져 정신을 잃은 척하며 탈출할 기회를 엿보던 재러드 리가 기사의 명치를 팔꿈치로 있는 힘껏 가격했다.
쾅!
남은 이능파를 끌어올려 팔꿈치를 감싼 후에 가격했는데도 충격이 상당했다.
완벽한 타이밍을 잡아 기습을 가했는데도 재러드 리의 공격이 닿기 전에 이능파로 방어하는 것과 동시에 역으로 충격을 줘 반격까지 한 듯했다.
팔꿈치 뼈에 금이 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박은 약해졌어!’
재러드 리는 장미 향이 나는 팔을 뿌리치고 최대한 멀리 뛰어올랐다.
순간 팔꿈치에 격통이 느껴져 이를 악물고 이능파로 뼈를 고정했다.
팔을 희생하여 기사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난 셈이다.
‘몬스터가 따로 없군. 여전히 강해……!’
모처럼 기사로부터 벗어났으나 상황은 아직 나아지지 않았다.
혼절 직전까지 이능파를 흡수당한 상태인 데다 탈출을 하다가 부상까지 입었다.
노란 장미의 기사가 재러드 리를 노려보며 달려들려 했지만, 쥐 떼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펑! 퍼억!
그러나 쥐 떼는 노란 장미의 기사에게 닿기도 전에 픽픽 터졌다.
장미를 파먹던 쥐 떼들 역시 대부분 이미 장미 가시에 당한 상태였다.
쥐 떼는 핏자국이 남지 않고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게 진짜 쥐가 아닌 듯했다.
‘저 쥐만으로는 기사를 오래 붙잡아 둘 수 없다!’
꼴사납게 기습을 당해 전력이 크게 깎인 상태였으나, 재러드 리가 만전의 상태라 한들 저 노란 장미의 기사와 단독으로 붙어 승리할 자신은 없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은 도주였다.
현재 재러드 리가 위치한 곳은 인공섬.
그것도 테마파크 내부와 연결되는 다리와 근접한 곳이었다.
지금 상태로 호수를 뛰어넘을 순 없으니 도망친다면 저 다리를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권레나를 비롯한 1학년 0반 학생이 말려들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인질극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우리 팀원들이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재러드 리는 디바이스로 긴급 지원 요청을 한 후, 각오를 굳혔다.
도주를 포기한 재러드 리를 보고 몰려드는 쥐 떼에 짜증 나 있던 노란 장미의 기사가 웃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선택을 할 줄 알았다는 태도였다.
이윽고 마지막 쥐가 장미 가시에 몸통을 꿰뚫리고, 기사가 재러드 리를 향해 달려들 때였다.
사아아…….
갑자기 공기가 차가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길한 이능파가 주변을 쥐색으로 물들이자 노란 장미의 기사는 급히 발을 멈췄다.
기사가 발을 디딜 뻔한 곳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내 쥐를 건드린 주제에 한반도에 오다니.”
서돌의 목소리였다.
서돌의 주변엔 작은 쥐색 구슬이 여러 개 떠다니고 있었다.
구슬의 크기는 크지 않았으나 전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서돌이 그저 변덕스럽게 쥐를 보내기만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재러드 리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보다 더 경악한 건 노란 장미의 기사 쪽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쥐덫을 파훼한 거지……!”
말을 들어 보니 이들은 처음부터 서돌의 존재에 대비한 듯했다.
어쩌면 테마파크에 서돌이 직접 오는 걸 막고, 발을 붙들기 위해 미리 쥐덫을 깔아 놨을지도 모른다.
서돌이 여기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걸 보니 아무 소용도 없는 듯했지만.
“보물찾기에 능한 탕아가 도와줬죠.”
서돌은 아주 즐거워하며 말했다.
어떻게 노란 장미의 기사를 요리할지 기대에 들뜬 목소리였다.
* * *
테마파크 내부.
현재 이곳은 보물찾기를 하는 1학년 0반 학생들이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실내라고 해도 위로 4층, 지하 1층을 포함한 구역에서 작은 쪽지를 찾아내야 했기 때문에 수색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현재 가장 저조한 성적을 보이는 그룹은 김유리와 맹효돈이 속한 1조였다.
느긋하게 간식을 먹으며 돌아다니는 권레나와 한이, 4조보다 1조의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이번에도 꽝이잖아!”
계속 뻣뻣하게 굴던 맹효돈이 겨우 쪽지를 하나 찾아냈는데, 꽝이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파트너랑 잘 협력해서 보물을 찾아 봐. 참고로 이건 꽝이니까 얼른 다음 쪽지를 찾아!^^]
마치 맹효돈을 놀리는 것 같은 말투였다.
설마 용제건은 맹효돈이 이 쪽지를 찾을 것이라는 걸 알았던 걸까?
웃으면서 맹효돈을 달래는 김유리는 속으로 조금 의심했다.
‘대석이가 예상한 대로 정말 조를 뽑을 때부터 조작을 한 게 아닐까?’
맹효돈은 씩씩거리다가 쪽지를 휴지통에 넣었다.
분을 가라앉힌 맹효돈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김유리가 힘내서 다음 쪽지를 찾자고 제안하기 전, 맹효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야, 인공섬 가 볼래?”
“응? 인공섬? 6조 애들이 간 곳?”
“어, 부반장이랑 호구랑 돌아이가 간 곳.”
맹효돈이 의외의 제안을 했다.
그 의외의 제안에는 날카로운 분석도 덧붙여져 있었다.
“6조 놈들은 인공섬을 벗어날 수 없지만, 다른 조가 인공섬 가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잖아.”
“그렇지. 용쌤이 그런 말씀은 안 하셨어.”
아마 그걸 깨달은 건 맹효돈뿐만이 아닐 거다.
하지만 인공섬으로 향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날이 추워서 밖에 나가기 싫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뜩이나 수색 범위가 제한된 6조 아이들의 보물 쪽지를 빼앗기 싫다는 생각에 다들 인공섬에 가지 않았던 거다.
“그냥, 부반장 새끼가 좀 수상해 보여서…….”
말이 수상하다는 거지 맹효돈의 목소리엔 살짝 걱정이 어렸다.
아까부터 수색이 좀 늦어지는 것도 그 걱정 탓일지도 모르겠다.
‘효돈이도 뭔가를 느낀 걸까.’
인공섬은 호수로 둘러싸인 공간.
그곳에서 뭔가를 느낀 건지 물과 연관된 상위 존재가 계속 시끄럽게 김유리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목소리가 겹치는 탓에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하나같이 그들이 경고의 말을 쏟아 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도 걱정되긴 하는데.’
하지만 그곳으로 향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닌 조의신과 황호다.
김유리는 그 둘이 범상치 않은 능력을 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잘못하다간 둘의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잠깐 보고만 오면 안 되냐?”
맹효돈은 이미 인공섬 쪽에 정신이 팔린 듯했다.
정말 보고만 올 생각이라면 화장실을 가는 척 잠시 꾀를 부려 자리를 비울 수도 있을 텐데 맹효돈은 그냥 직접 양해를 구했다.
김유리를 그렇게 어려워하면서도 같은 조라 함께 행동할 생각인 듯했다.
김유리가 고민에 잠겨 있을 때였다.
“6조 애들의 보물을 빼앗을 생각이야? 너무하네.”
허공에서 용제건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보물찾기가 시작된 후에 어디 갔나 했더니, 모습을 숨기고 비행술로 돌아다니고 있었나 보다.
“아, 그냥 잠깐 보고만 오려고 했는데…….”
“방해하면 안 되지. 보물도 몇 개 못 찾았잖아?”
“…….”
맹효돈이 죽상이 되었다.
맹효돈의 말솜씨로 용제건을 누르는 건 불가능했다.
김유리는 화제를 돌릴 겸, 용제건 주변에 떠 있는 시안색의 불투명한 공간을 가리켰다.
“어? 저 공간은 뭐예요? 상품인가요?”
“하하하, 이건 보물이 아니야. 지뢰라고 해야 할걸.”
학생들에게 보물찾기를 시킨 사이 용제건은 지뢰찾기를 했나?
용제건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궁금해? 보여 줄까?”
딱!
아무도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용제건이 움직였다.
용제건이 손가락을 튀기자 시안색 공간이 잠시 투명해졌다.
공간 안에는 쥐덫처럼 생긴 노란색 이계 금속 덩어리가 뭉쳐져 있었다.
“저게 뭐…….”
“아, 저런 게 있었군요. 그럼 저희는 보물 찾으러 갈게요!”
위기감을 느낀 김유리는 얼른 이 자리에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맹효돈이 그게 뭐냐고 묻기 전에 김유리가 얼른 그의 등을 밀며 말했다.
“효돈아. 우리 저기 찾아 보자.”
“잠깐, 미…… 미, 미, 밀지 마.”
김유리가 미는 방향은 인공섬과 이어지는 통로와 반대편이었다.
김유리의 귓가에 잘했다는 칭찬의 말이 쏟아졌다.
상위 존재들도 용제건은 꺼리나 보다.
김유리는 또다시 무언가를 떠드는 상위 존재를 무시하고 보물찾기에 열중하기로 했다.
* * *
현재 그랜드 크로스는 서돌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서돌이 올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했겠지만, 용제건이 협력하는 한 문제없을 것이다.
‘용제건을 설득하는 게 제일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둔 수의 최종 목표는 목우람의 암살 저지였고, 그 목표를 위해 수를 조심스럽게 골랐다.
온 힘을 다해 세 기사의 맹세와 부딪친다는 어리석은 수를 둘 수 없었다.
비록 고등학생을 암살하려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세계 10대 프로 플레이어 팀.
이들을 정면에서 적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 호족, 용제건이 이들의 타깃이 되도록 할 수는 없었다.
‘이미 표적이 된 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목우람과 재러드 리.
그리고 까마귀 마왕.
이들을 제외한 존재들을 수면에 드러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용제건에게는 보물찾기 이벤트로 무대를 만들고, 서돌을 서포트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용제건은 그 요청을 받아들여 줬다.
“…….”
한편, 그랜드 크로스가 오지 않는다는 말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방금 전까지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겠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나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빠르게 손을 놀려 아이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상하다.
결계 안에서, 그것도 총탄도 막아 내는 내 바람술을 뚫고 공격용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때, 벼락같이 어떤 생각이 스쳤다.
―도주가 불가능하지만, 저를 제압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자 자살했어요.
―상당히 독특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더군요. 아이템에 담긴 효과가 발동한 순간 그 금발의 몸은 물론이고 착용 중인 모든 것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어요. 그전에 이걸 건져 왔답니다.
중국에서 서돌이 세 기사의 맹세 팀 마크를 발견했을 때, 서돌과 마주친 이는 자살했다고 들었다.
지금이 바로 도주가 불가능하지만, 상대를 제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폭하려는 건가……!’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무명의 운명 카드를 사월세음에서 도원우로 교체해 바로 광림을 발동시켰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대상 캐릭터의 광림, ‘철쇄연쇄(鐵鎖連鎖)’를 사용합니다.〉
촤아아악!
광림 발동과 동시에 이능의 사슬이 허공에 무수한 선을 그리며 뻗어 나갔다.
저들이 손에 쥔 자폭용 아이템 카드에 이능파가 실리기 전, 수십, 수백 개의 사슬이 그들을 옭아매었다.
그들이 거세게 저항했으나 도원우의 광림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기에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는 거지?”
나는 습격자들의 얼굴을 가린 것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처음 목우람을 습격한 2인조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그들을 제외한 추가 인원은 마름모꼴 모양의 구멍이 뚫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촤르륵!
사슬을 움직여 결박당한 이들의 얼굴을 전부 드러내자, 목우람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동요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똑같은 얼굴이잖아!’
선글라스를 착용한 두 명의 습격자 외에 이들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외모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10대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해외 모델 같은 준수한 외모였으나, 이렇게 여러 명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섬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디에서 본 것 같은데…….’
이 세계에서 알게 된 외국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
금발을 보고 설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건…… 아니…….”
목우람이 충격받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목우람은 제 눈을 의심하듯 몇 번이나 금발의 얼굴을 보다가 말했다.
“……재러드 씨의 젊은 시절과 똑같습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