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24화 (522/925)

74. 모델 (8)

은광고 3학년의 기말고사 기간.

교사는 기말고사 기간 전후로 시험 문제 출제, 감독, 채점, 성적 처리 등으로 한창 바쁠 시기지만 오히려 김신록은 여유를 찾았다.

드디어 고문 대상자를 하나 줄였기 때문이다.

그 고문 대상자는 용족이 의뢰한 용살자 카드모스.

김신록은 최근 카드모스로부터 유의미한 정보를 얻으며 한 건을 마무리했다.

‘유의미한 정보를 얻었다. 세 기사의 맹세를 상대하기 전에 카드모스 건을 정리해서 다행이군.’

지금은 용족의 손에 떨어졌다고 하나 카드모스는 전설적인 영웅이다.

신체와 정신 조작으로 얻어 낼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카드모스의 고문 자체는 웅족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용살자라고 하나 카드모스는 용이기도 하다.

카드모스는 자신이 용인 점을 이용해 후예인 염준열을 죽이려 했으나 잡힌 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용왕신의 협력이 더해지니 그의 정신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상대는 잡힐 때를 대비해서 정보를 차단시켜 둔 것 같군. 굉장히 철저해…….’

카드모스와 계약한 누군가는 그가 붙잡힐 가능성도 상정한 듯했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는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계약한 상대에 관한 정보는 거의 전무했다.

결국 카드모스에게서 얻어 낸 주요한 정보는 두 가지였다.

정보 첫 번째는 ‘카드모스가 그자를 위해 무엇을 하려 했는가’다.

‘이건 내가 잡은 정보가 아니라 청룡과 용왕신의 무녀들이 알아냈었지.’

카드모스는 특정 능력을 가진 대상의 척살을 목표로 움직였다.

방송국 습격 당시 카드모스는 용제건과 염준열의 경호 담당 용족도 노리긴 했으나, 궁극적인 목표는 염준열 하나였다.

용제건을 비롯한 다른 용족은 방해가 되어서, 혹은 향후 계획에 지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서 제거하려 한 듯했다.

카드모스가 염준열을 노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 준열이는 엄밀히 따지면 용족이 아닌 후예이지만, ‘용’을 부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능력을 가진 후예는 척살 대상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왜 용을 부르는 광림을 가진 자를 노린 것인가.

그 이유는 카드모스도 모르는 듯했다.

카드모스는 그런 이능을 가진 자를 제거해 달라는 계약에 응한 것뿐이다.

‘내가 노려진 것도 광림 탓일까.’

김신록도 염준열의 광림 홍룡소환과 유사한 광림을 지니고 있다.

말이 유사한 거지, 홍룡소환의 호족과 웅족 버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김신록은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적이 왜 저 이능을 가진 자를 노린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이능이 강한 축에 속하긴 했으나 더 강력한 광림이 존재하는데 왜 자신을 노리는지 알 수 없었다.

‘우선 알아낸 정보에 집중해야겠군.’

카드모스로부터 알아낸 정보 두 번째.

‘카드모스는 왜 그자와 계약했는가’였다.

아무리 계약 상대가 정보를 제한하고, 신중하게 행동해도 카드모스의 동기는 어찌할 수 없었다.

용왕신의 영향력 아래에서 무너지면서도 카드모스는 끝까지 동기를 숨기려 했으나 김신록의 집요한 고문 아래 그 비밀이 드러나고 말았다.

카드모스가 원한 건 그의 아내,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와의 재회였다.

‘이계 충돌이 이상향 엘리시온에도 영향을 주다니.’

이계 충돌 이후, 용족인 카드모스는 진족으로서 여신 하르모니아는 상위 존재로서 분류되었다.

이계 충돌이 발생하자 엘리시온에 머물던 신은 전부 신의 세계로 사라졌다고 한다.

졸지에 생이별을 하게 된 부부는 재회를 위해 움직였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최후에 용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으나 그리스 신화의 여신 하르모니아는 지나치게 신성이 강력해 진족으로서 인간계에 내려올 수 없었다.

또, 카드모스는 신화에 이름을 남기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웅이자 용으로서 기록되었기에 상위 존재로 취급받는 건 불가능했다.

신으로도 칭해지는 상위 존재는 가호, 기적, 빙의, 강림, 계시 등의 형태로만 인간의 세계에 간섭할 수 있었다.

절망한 카드모스에게 그자가 접근했다.

그자는 하르모니아와의 재회를 걸고 계약을 제안했고, 카드모스는 이에 응했다.

‘그자는 상위 존재를 이 땅에 붙잡아 둘 수 있는 힘이 있는 건가? 카드모스가 믿고 계약에 응할 정도라면 뭔가가 있겠지.’

김신록이 황호에게 제출할 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나니 늦은 시각이 되었다.

카드모스 관련 보고서를 교무실에서 작성할 수 없으니 교직원 전용 사택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에 일을 시작하다 보니 김신록은 늦은 시각까지 보고서에 매달려야 했다.

물건이 많지 않은 방 안에서 멍하니 휴식을 취하던 김신록의 눈에 곶감 선물세트 상자가 들어왔다.

일요일 아침에 갑자기 쳐들어온 김신록의 악우, 용제건이 두고 간 거였다.

‘그 용은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였지.’

기분 나쁠 정도로 신나 있었던 용제건을 생각하니 괜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으나 곶감에게는 죄가 없었다.

김신록은 개별 포장된 곶감을 하나 집어 들었다.

곶감을 선물한 게 용제건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용제건에 관해 떠올랐는데, 점점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망할 용.’

얼마 전 김신록의 경애하는 아버지인 적호와 용제건이 함께 술을 마셨다.

적호는 용제건 앞에서 무방비하게 잠들 정도로 취했다.

김신록이 간호한 지 얼마 안 되어 적호는 금방 제정신을 찾았으나 뭔가 서운하면서도 찝찝했다.

자신 앞에서 한 번도 취하지 않았던 적호가 어째서 용제건과 마실 때는 취한 건가?

‘그 용이 무슨 수를 쓴 건가? 아니, 적호 님이 그 용의 수작에 당할 리가 없지. 만에 하나 그 용이 그런 수를 쓸 수 있다면 진작에 여기저기 써먹으면서 놀았을 거고…….’

김신록은 곶감 세 개를 먹는 사이 계속 생각에 잠겼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고문할 대상에게 이런저런 심리 트릭을 쓰고, 대상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건 쉬운데 호족이나 망할 용을 상대로는 그게 잘 안 됐다.

특히 용제건을 상대로 속을 떠보고 장난질을 치려다가 역으로 공격당해 김신록만 열불 터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답 없이 불쾌한 기분만 들었기에 김신록은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요새 우리 반 아이들이 바쁘던데, 내가 도울 일은 없나?’

김신록이 담당하고 있는 1학년 1반의 움직임이 묘했다.

1반뿐만이 아니라 지익회도 어쩐지 1반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듯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한 김신록이 반장 안다인에게 말을 걸어 봤지만, ‘축제를 준비하는 중이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얼마 안 있으면 은광고 축제이니 미리 준비하는 것 같은데, 김신록이 도울 일이 없냐고 물어도 한사코 사절했다.

안다인은 일견 차가워 보이는 눈으로 곧은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김신록 선생님, 이번 축제는 저희한테 맡겨 주세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말하는 제자의 모습이 상당히 믿음직스러웠기에 김신록은 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학급 일을 거의 도맡아 해결하는 안다인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뿐인데, 담임으로서 참 면목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적호 님께서 안다인 학생의 안부를 물었지.’

적호가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리플레이 속 적호는 안다인과 함께 행동한 적이 많은 듯했다.

김신록은 잠시 리플레이 내에서 보인 안다인의 활약상에 관해 떠올리다가, 적호가 가능하다면 한 번 더 리플레이를 받아 보고 싶다는 말을 한 걸 떠올리며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리플레이를 다시 받는다면 그건 김신록 자신이 되었으면 했다.

적호와 달리 자신의 리플레이는 상당히 짧지 않은가.

김신록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사실을 바탕으로 어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황호를 비롯한 호족들이 조의신 앞에서 리플레이에 관해 말도 못 꺼내게 하지만.

‘한 번 더 리플레이를 받아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조의신에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을 때.

김신록의 생각을 방해하듯 디바이스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상대가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메시지를 본 순간 김신록의 머릿속에서 리플레이 생각이 날아갔다.

[용] 신록아, 모델 할래?^^

*    *    *

3학년들의 기말고사 기간은 월, 화, 수 3일간.

오늘은 기말고사가 끝나는 수요일이다.

3학년들은 기말고사를 마치고 한창 놀 시간이지만, 학생 대표들은 그렇지 못했다.

방과 후에 4/4분기 학생 대표 회의가 열리니까.

그간 분기별 학생 대표 회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 열렸다.

‘1, 2학년 기말고사는 아직이지만, 3학년에게 맞춰야 하고 축제도 곧 열리고…….’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 대표 회의를 하고 그때부터 축제 준비를 하면 늦는다.

그래서 마지막 분기 대표 회의는 일찍 하여 축제를 준비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덕분에 3학년이 기말고사를 치르는 동안 1, 2학년 학생 대표들은 대표 회의를 준비해야 했다.

3학년도 대표 회의에 참석을 하지만, 이번 분기 회의를 주도하는 건 2학년 학생 대표들이다 보니 자치 기구 소속 학생들은 바쁜 시간을 보냈다.

우리 반 반장이자 학생회 소속인 김유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의신아, 이번에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

김유리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1학기 때에는 김유리가 거의 도맡아서 학급 운영 자료를 정리하지 않았던가.

김유리가 바쁠 때에는 내가 대신하는 게 당연했다.

“아니야. 학생회 일은 어땠어?”

“1학년은 거의 잡일밖에 안 했어. 복잡하거나 힘든 일은 2학년 선배님들이 다 하셔서…….”

중앙 구역 학생회관 복도를 걷는 동안 김유리는 학생회 선배 칭찬을 늘어놓았다.

유능한 김유리가 정말로 잡일만 했을 리가 없는데, 선배들을 생각해서 제 공을 감추는 것 같았다.

뭐, 학년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김유리의 진가가 드러나겠지만.

우리 반 반장,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겸손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금방 학생 대표 회의용 대회의실 A 앞에 도착했다.

“뭣하면 협력도 할게! 취재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은…….”

“새론이가 협력해 주면 고맙지. 하지만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회의실 앞에선 문새론과 안다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다인 뒤에는 유상훈이 있었는데 대화에 참여하진 않았고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1학년 1반이 준비하고 있는 건을 두고 문새론이 취재를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유상훈은 여전히 중립을 지키고 있나 보다.

셋이 저렇게 있는 걸 보니 걸리는 점이 있었다.

‘주수혁은 어디 갔지?’

평소 같았으면 주수혁과 안다인이 또 독서회 토론 따위를 하고, 문새론이 아이들을 쫓아내서 둘만의 세계를 유지하게 하는 게 일상 아니었나?

그때, 안다인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복도 저편을 응시했다.

“아…….”

안다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주수혁이 걸어오고 있었다.

플마고가 자랑하는 타이틀 히로인의 시선 끝에 타이틀 히어로가 있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주수혁이 오혜지와 함께, 아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등장했다는 점이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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