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49화 (547/925)

76. 은광고 입학 시험 (11)

일단 상황 파악을 위해 후예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우기환이 뿌린 정신 나간 책 하나를 읽고 저 착한 아이들이 우주의 기운을 찾겠노라고 선언하는 건 이상했다.

왜 입학하기 전에 그런 걸 찾으려 하는 건지 묻기로 했다.

[은서호] 0반에는 개성적인 분이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저희는 후예인 걸 제외하면 별로 특이한 게 없어서요…….

[은이호] 우주의 기운을 찾으면 0반에 들어가기 쉬워지지 않을까요?

오늘 우기환이 날뛰는 걸 보고 질린 모양이다.

3년간 축적된 2등의 광기를 아직 어린 아이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데.

현역 0반 중에 우기환만큼 미친 자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 반만 해도 황지호를 비롯한 몇 명을 제외하면 우기환에 갖다 대기 미안할 정도로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영유하는 중이다.

역시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후예들이 고민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은서호] 시험 보러 가는 길에 진족과 후예를 많이 마주쳐서…… 0반에 못 들어갈 거 같아요.

[은이호] 은광고에서 후예는 그리 특이한 존재가 아닌가 봐요. 준열이 오빠도 0반 아니라고 하던데요.

그거야 0반을 뽑는 기준은 딱히 눈에 띄고 말고가 아니니까.

우리 반 관종들 같은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주목도로만 0반 학생을 뽑는다면 1학년 중에서는 주수혁과 안다인이 0반 소속이 되어야 할 거다.

은서호와 은이호는 가다가 마주친 진족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교문을 통과하기 전, 학교의 경계인 천익산 산자락에서 호족이 아닌 진족과 마주쳤다고? 적호는 그걸 내버려 뒀고…….’

더벅머리의 여성 진족.

후예들이 한 외모 묘사만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확실한 건 그 여성이 긴 꼬리의 후보로 꼽히는 우족과 사족은 아니라는 점이다.

적호가 이를 못 알아봤을 리가 없는데, 만약 긴 꼬리 후보가 둘에게 접근했다면 가만히 방치했을 리가 없다.

리플레이를 경험하고 온 적호가 경계를 소홀히 할 리가 없으니까.

은호의 후예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긴 꼬리 후보가 아닌 진족이라도 일단 경계부터 할 거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호족은 아닌 것 같다고 했고, 저 아이들이 모르는 걸 보니 토족은 아니야. 그렇다면…….’

나는 단서를 하나씩 종합해 봤다.

은광고에 들어가기 전 마주친 더벅머리 여성 진족.

은광고 주변에서 은호의 후예들과 진족이 마주친 상황을 용인한 적호.

퍼스트 크리스마스 시나리오를 대비한 주말의 회의.

눈 속에 갇힐 은광고.

12지 동맹과 결계.

이들을 종합해 보자 그 진족의 정체를 예상할 수 있었다.

‘견족(犬族)의 수장이구나.’

황지호가 배신자가 아닐 거라고 단언한 진족은 견족이다.

황지호는 녹족의 수장인 향록을 상대로도 몇 번 시험을 하며 배신자일지 아닐지 가늠해 보았다.

청룡이 황지호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김신록의 친우 용제건이 교원 계약으로 묶여 있는데도 내가 확신을 줄 때까지 용족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견족은 달랐다.

황지호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딱히 숨기려고 한 건 아니지만, 호족은 배신자가 아닌 긴 꼬리를 하나 파악하고 있어. 이쪽은 ‘증거’도 있다.

―견족과 우리 호족은 은밀히 동맹을 맺었어. 맹우인 달토끼보다 가까운 사이야. 각각의 신수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서로의 신기를 일부 공유했었지.

나의 천사, 호족의 신수 올무는 그 신뢰의 상징이었다.

호랑이들이 강아지의 모습을 한 천사를 신수로 삼는 건 그만큼 견족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신뢰가 없었다면 이 비상시에 견족의 신기를 품은 신수를 호랑이 저택에 둘 리가 없다.

‘황지호뿐만이 아니야. 적호는 용족을 믿지 않았다고 했지. 신뢰했던 건 토족과 견족뿐이라고 했어.’

적호의 리플레이 보고서에 따르면, 적호는 확실한 맹약을 나눈 토족, 견족과 접선하려 했다고 한다.

웅족의 배신을 경험한 호족은 상당히 배타적인 경향이 있다.

호족은 그만큼 내적으로 단단해졌지만 고립되기 쉬웠고 플마고에서 좋은 결말을 맞지 못했다.

‘내가 호족 사이에 섞인 게 이상할 정도야.’

호족의 성향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거리를 둬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앞으로 호족의 힘을 빌려야 하거나, 추이를 지켜봐야 할 사건이 존재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호족을 배려하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흑막을 저지하고, 이 세계의 배드엔딩을 막은 후에…….’

생각을 잇지 못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 뒤의 일을 잘 떠올릴 수 없던 탓이다.

눈앞이 반짝거려 고개를 들어 보니 은호의 후예들이 작성한 디바이스 메시지가 갱신되고 있었다.

조금 넋을 놓은 사이 후예들이 그 진족 여성의 정체를 추리해 보고 있었다.

[은서호] 용제건 선생님처럼 교직원이 아닐까?

[은이호] 아니야, 학생일지도 몰라!

그냥 적호에게 물어보면 답을 알려 줄 텐데.

후예들은 집에 올 때까지 우기환이 뿌린 서적에 넋을 놓느라 물어볼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나는 내가 확실하게 아는 정보를 바탕으로 메시지를 작성했다.

[나] 처음 마주친 진족은 은광고 소속이 아니야. 우리 학교에 진족과 후예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

[은이호] 정말요?

이건 추측이 아닌 사실이다.

현재 은광고의 교직원 중, 호족을 제외한 진족은 용제건 하나뿐이니까.

은광고 내에는 진족과 후예가 그리 많지 않다는 말에 둘은 조금 안심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우기환이 뿌린 광기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은재호] ……우주의 기운 찾으러 갈 때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사진 잘 찍을게요.

막내 은재호마저 저런 소리를 하다니!

은재호가 조용하다 싶었더니 은서호와 은이호가 준 망할 책을 읽고 있었나 보다.

차마 함께 우주의 기운을 찾으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말리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들떠 있어서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은호의 후예들이 아직 우주의 기운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아 걱정이었으나 그냥 아는 형인 내가 뭐라고 세게 말할 수도 없었다.

결국 현재 경호를 담당 중인 적호의 말을 잘 들으라는 간접적인 말로 메시지를 마쳤다.

‘당분간 적호가 함께 행동한다니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지.’

그리고 다음 날, 점심시간.

현재 입학시험 기간이기에 오늘도 오후 수업이 없었다.

비록 학교 정식 일정은 없지만 하교한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입학시험 안내역을 맡거나 축제 준비를 위해 자진해서 학교에 남았으니까.

그 얼마 없는 하교생 중, 내 빵셔틀이 있었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가려다가 급선회하여 방윤섭을 쫓기로 했다.

팟!

마침 방윤섭이 1학년 전용 편의 시설이 밀집된 골목을 따라 걷고 있어 벽을 차고 건물 위로 올라갔다.

이제 벽을 타고 올라가는 것 정도는 광림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내 신체 능력으로 할 수 있었다.

3층 높이 정도의 발코니에 안착한 나는 방윤섭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바람이 거세게 불자 방윤섭이 인상을 구기며 교복 재킷을 여몄다.

그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담배도 보이지 않고, 담배 냄새도 안 나. 철저하게 감추고 탈취했거나, 안 피웠거나…….’

맹효돈은 탁거산과 둘이서 훈련 중이라고 하니 여전히 훈련은 빼먹지만, 흡연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훈련도 안 하고, 학급 행사에 참가도 안 하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데 방윤섭은 어딘가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목우람의 증언에 따르면 그를 떨쳐 낼 만큼 강해졌다고 하는데, 어딘가 피로한 기색이었다.

공부를 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집에 처박혀서 게임이라도 하는 걸까?

곧 전 세계를 휩쓸 명작 게임은 출시되지 않았는데.

‘나를 알아챌 만큼 성장한 것 같지는 않아…… 어?’

휙!

관찰을 마치고 물러나려 할 때, 고개를 푹 숙이고 걷던 방윤섭이 휙 내 쪽을 올려다봤다.

즉각 건물 그늘에 몸을 숨겨 발각되는 건 피했지만, 내 기척을 읽은 것 같았다.

정말 방윤섭의 실력이 는 것 같긴 하다.

“…….”

방윤섭은 휙휙 고개를 돌려 여기저기를 살폈다.

결국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윤섭이 다시 갈 길을 가려 할 때였다.

“……어디 가?”

최영희가 방윤섭 앞에 서 있었다.

방윤섭만큼은 아니지만 최영희도 예전에 봤을 때보다 핼쑥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정 입학 건 때문에 시험 기간이 되면 귀신처럼 공부를 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무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방윤섭을 신경 쓰는 것을 보니, 저놈에게도 가망이 없는 건 아닌가 보다.

방윤섭이 칙칙하게 굳은 꼴을 보니 그냥 실연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2반 애들이 너 찾고 있었어.”

“……어쩌라고.”

2반 애들은 저 비협조적인 놈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주수혁이 있는 반이니 다수가 소수를 따돌리는 상황이 발생할 리가 없긴 했다.

지금 보면 방윤섭이 일방적으로 2반 아이들을 비롯한 세상을 따돌리고 있는 것 같지만.

방윤섭이 최영희를 스쳐 지나가려 할 때였다.

덥석.

최영희가 손을 뻗어 방윤섭을 붙잡았다.

방윤섭은 화들짝 놀란 것 같긴 하지만 그녀를 뿌리치지는 않았다.

최영희는 초조해 보였다.

“……너, 이상한 사람하고 엮이지 않았어?”

“뭔 소리야.”

“그게, 그러니까…… 갑자기 네가 힘이 세졌잖아, 혹시 그 이상한 사람이…….”

“……내가 세진 게 이상한 일이냐?”

대체 뭐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 방윤섭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했다.

자격지심에 젖은 방윤섭의 귀엔 모든 말이 왜곡되어 들리는 듯했다.

“응……?”

“내가 세진 게 이상하냐고. 여전히 주수혁 같은 괴물 새끼한텐 전혀 못 미치는데?”

“수혁이 얘기가 왜 나와…….”

“세졌네 마네 한 건 너잖아!”

방윤섭이 세졌다고 하나 미행 중인 나도 눈치채지 못하는데, 1학년 최강인 주수혁보다 강해졌을 리가 없다.

방윤섭은 그게 마음에 걸린 모양인데, 어쨌든 최영희에게 생트집을 잡고 있는 건 변함이 없었다.

최영희는 지금 방윤섭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꺼져!”

아무 말도 못 하는 최영희에게 방윤섭이 소리 질렀다.

비록 최영희가 최편득 손에 부정 입학 하였고, 플마고에서 구슬비를 괴롭힌 주수혁 악개라고 하지만 방윤섭의 불합리한 화풀이에 당하는 꼴은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최영희는 1학년 구역 밖으로 빠져나가는 방윤섭을 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방윤섭이 정신적으로 점점 불안해지고 있어. 어쩌면…….’

최악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방윤섭 건에 안배는 해 두고 있지만, 더 빨리 준비를 마쳐야 할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디바이스에 알람이 도착했다.

목우람이 보낸 메시지였다.

[목우람] 완성했습니다. 첨부 파일을 확인해 주십시오.

[목우람] 연습 중에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만, 부반장의 파트는 거의 변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축제 준비 건인가?

목우람은 점심시간에도 일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고생했다고 할 겸, 근처에 있으면 뭐라도 사 줄 겸 답장을 하려 했을 때였다.

“의신아, 거기에서 뭐 해?”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말을 건 건 방윤섭보다 좋은 눈과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 천동하였다.

‘천동하가 왜 1학년 구역에…….’

그 자리에 있는 건 천동하만이 아니었다.

밑을 내려다보니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보였다.

지상에는 도원우와 천동하 그리고 천은하의 모습을 한 은호가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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