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53화 (551/925)

77. 시험의 결과 (3)

지직, 우우웅…….

폭발음이 멎자 노이즈가 낀 화면 너머로 연기가 보였다.

바로 디바이스 안정화 시스템이 작동한 건지 화면의 흔들림과 노이즈는 가라앉았으나 연기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가 폭발했나? 디바이스가 파손되지 않은 걸 보니까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은데.’

면접관은 예기치 못한 폭발에 반사적으로 이능파를 전개해 스스로를 방어한 듯했다.

연기 사이로 보이는 면접관들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폭발의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폭발을 저지하기 어려울 만큼 갑작스러웠고 그 중심에는 방금까지 면접을 보던 아이들이 있었다.

면접관들은 폭발의 원인이 은서호와 은이호의 이능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둘은 폭발 직전에 특기를 선보이다가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으니, 이능을 다루다가 실패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플레이어들이 이능의 폭주로 부상을 당하는 건 드물지만 없는 일은 아니었다.

플레이어 특목고의 교사진들은 당연히 그런 사례를 잘 알고 있었다.

―얘들아!

―세상에, 피투성이야……!

면접관들이 급하게 책상을 박차고 후예들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이제 거의 가라앉은 먼지 사이로 피투성이가 된 은서호와 은이호가 보여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폭발 직전까지 바른 자세로 자리에 앉아 웃던 아이들이 부서진 의자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면접관의 말대로 아이들의 몸에는 여기저기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고 지혈이 되지 않는 듯 바닥에 피웅덩이가 퍼지고 있었다.

은광고의 교사진은 이 사태에 침착하게 대응하려 했다.

―제가 회복 아이템 카드를 쓰겠습니다. 즉시 양호실과 황명병원 응급실에 연락을…….

―……CPR을 써야 해! 맥이 안 잡혀!

회복 아이템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고 이능파가 흐르는 육체에 사용할 수 있는 것.

심장과 뇌의 기능이 정지한 육체는 이능파 순환이 잘되지 않아 회복 아이템이 잘 통하지 않는다.

효과적으로 회복 아이템을 사용하려면 심폐소생술을 먼저 하거나, 둘을 병행하는 게 맞다.

교사진이 두 사람의 기도를 확보하고 흉부 압박을 시작하려던 순간.

―짜안!

―어때요, 감쪽같죠!

벌떡, 하고 은서호와 은이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디바이스로 외부와 연락을 취하던 교사가, 심폐소생술을 쓰려던 면접관 두 명이, 울먹거리며 회복 아이템 카드를 쥐고 있던 이가 떡 하고 입을 벌렸다.

놀란 교사들을 보며 은서호와 은이호가 꺄르륵 하고 웃었다.

‘저 아이들의 시체 놀이가 이렇게나 발전하다니……! 수천 년 산 진족의 눈을 속일 만하구나.’

저기에 있는 교사진들이 이능파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숨이 멈췄다고 판단하도록 속이다니.

황지호, 적호, 거기에 옥토연과 옥토윤까지 속인 죽은 척하기, 예의 그 시체 놀이가 저만큼 진화한 듯했다.

면접 자리에 있던 교사진들이 아직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후예들은 밝게 말했다.

―이게 저희의 특기 시체 놀이예요!

―0반에 들어가기 위해 갈고 닦았어요.

은서호와 은이호는 한국 최고 명문고에 입학하기 위해 제출한 서류의 특기란에 ‘시체 놀이’라고 적은 건가!

둘은 0반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일부러 저런 건가?

아니, 저 해맑은 얼굴을 보니 진짜 저걸 특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시체 연출 과정에 들어간 노력과 이능파, 결과물을 보면 특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하지만.

그나마 냉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면접관이 둘을 천천히 살폈다.

지긋한 나이의 면접관은 저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오랜 기간 은광고에서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저 면접관 교사는 학생회 고문이라고 했지.’

자치 기구에도 일단 명목상 고문이 있긴 하다.

선도부 고문 함근형 선생님.

지익회 고문 김신록.

총동아리회 고문 임연화.

그리고 학생회 고문직에는 0반을 가려내는 일명 ‘0반 판독기’로 꼽히는 저 면접관 교사가 있었다.

0반 판독기 면접관이 질문을 던졌다.

―그냥 죽은 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어째서 이런 촌극을 준비한 건가요?

면접관의 말대로였다.

둘의 이능파, 신체를 컨트롤해 시체처럼 기척을 억누르는 기술만 보여도 다들 감탄했을 거다.

그러자 은서호와 은이호가 냉큼 멀쩡한 의자를 끌고 와 반듯한 자세로 앉아 답했다.

여전히 주변은 쑥대밭이지만 질문이 들어 왔으니 면접 모드로 돌아가려는 모양이었다.

―차별화된 자기소개를 위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특기를 선보일 때 순간에도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은서호와 은이호는 번갈아 가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이능파의 폭주로 인한 사고 현장 연출 과정’을 설명했다.

자기소개서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저게 과연 맞는 걸까?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 것 같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면접에서 자기 어필을 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 듯하다.

‘결과는 정해진 것 같은데.’

은서호와 은이호의 면접을 본 이들은 모두 확신했을 거다.

저 아이들은 0반으로 보내야 한다.

사고 회로나 잠재 능력을 미루어 보았을 때 평범한 교사가 감당할 만한 재원이 아니었다.

황지호는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서호와 이호가 우수한 건 사실이지만, 나름의 충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렇게 뛰어난 아이들한테 내 충고가 필요할까?

은서호와 은이호가 준비한 연출이 다소 과하여 면접관들을 놀라게 했지만, 아이들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게 아닌가.

장난기가 많은 게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은서호를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목숨을 걸고 도움을 청하러 호랑이 저택 응접실에 온 은서호는 기가 죽어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 모습은 아주 보기 좋았다.

‘축하한다, 서호야, 이호야……. 0반 후배가 되었구나.’

나는 순수하게 둘을 축하하기로 했다.

면접은 끝났지만 반 배정은 아직이라 0반 확정이 안 됐으니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반 배정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은 둘에게 마음껏 0반에 관해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황지호가 옆에서 혀를 찼다.

“그 얼굴을 보니 조의신 네 도움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군. 하긴, 너도 아직 한참 어리지. 누군가를 교육하기보다는 교육을 받을 대상이야.”

황지호가 갑자기 나이 이야기를 들먹였다.

이 세계의 조의신은 17세니까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내용물은 그렇지 않고 황지호도 그걸 알 텐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반박해 보기로 했다.

“내 진짜 나이를 알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

“하하하! 조의신, 네가 다소 어른스럽긴 하나 이 몸에 비해 한참 어리지.”

노친네가 나이 자랑을 하고 앉아 있었다.

예전 세계의 나이를 더해 봤자 신화급 노친네의 춘추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기에 저건 말로 이길 수 없었다.

나이 자랑을 시작으로 노친네는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충 네 몸을 생각하고 걱정해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컨디션 관리를 하고 있는데 왜 저런 소리를 하나 싶었으나 괜히 받아치면 몇 배의 잔소리가 돌아올 거 같아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본채의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문이 열린 순간, 노친네의 잔소리는 아무래도 좋아졌다.

왕!

현관에는 천사가 있었다.

문이 열린 직후에 올무는 입에 산령의 팔꿈치를 야무지게 물고 있었는데.

나를 발견한 순간 즉각 산령을 한구석에 던지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다리를 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 올무가 이렇게 성장해서 산령 사냥에 성공하다니!

올무의 노력에 감격이 차올랐다.

나는 내 품에 뛰어든 천사를 안아 들고 저하된 지능을 어렵게 수습하여 칭찬을 시작했다.

“올무야, 잘 있었어? 산령과 훈련한다고 들었는데 성과가 있었구나. 고생 많았어.”

왕왕!

한편, 너덜너덜해진 산령이 바닥에서 서운해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예전에 산령은 이런 말을 했다.

―쟤를 도우면, 쟤가 나를 도와줄 거라고 했어.

산령에게는 나와 같은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 스킬이 있다.

산령은 실체가 분명해지기 전에는 초상우주와 비교적 자유롭게 교신했다고 한다.

긍정, 부정 여부만 파악할 수 있는 나와 달리 산령은 구체적인 의사소통을 하였고, 그 결과 나를 도우면 내가 산령을 도울 거라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너무해.”

보자마자 너무하다니.

저번에도 같은 말을 하지 않았나?

똑똑한 올무와 달리 산령은 할 수 있는 말이 한정되어 있는 건가.

잘 보니까 산령은 예전보다 실체가 더 분명해진 것 같긴 했지만 말하는 걸 보니 한참 멀었다.

나는 산령을 무시하고 올무를 열심히 칭찬했다.

“황호 님, 의신이 오빠, 어서 오세요!”

“시험 끝났어요!”

올무를 칭찬하는 사이, 은서호와 은이호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둘 다 머리가 덜 마른 걸 보니 귀가 후에 샤워하다가 제대로 건조하지도 않고 뛰쳐나온 듯했다.

전신 드라이기가 설치되어서 금방 마를 텐데, 그사이를 참지 못할 정도로 급했나 보다.

뒤에 서 있는 백호군이 둘에게 드라이기와 수건을 건넸다.

아이들의 환영과 백호군의 마음씨에 감동하여 인사했다.

“시험 보느라 고생했어.”

황지호가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 백호군과 함께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말려 주며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 디바이스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으니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이들의 화젯거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시험을 치르는 기간에 외출하며 만났던 이들과 겪은 사건들에 관해 듣다 보니 금방 저녁 시간이 지나갔다.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의신이 형 방에서 이야기하면 안 돼요?”

황지호가 준비한 만찬에 옥토연이 보낸 괴명떡을 디저트로 먹고 나니 어느덧 늦은 밤이 되었다.

은서호와 은이호는 시험으로 지친 건지 꾸벅꾸벅 졸면서 이야기를 했다.

‘본채에는 손님이 별로 안 오다 보니 손님 방을 내 방으로 부르는 건가.’

내 방은 은광고 주거 구역의 1학년 기숙사에 있는데.

나중에 아이들이 원하면 방 구경을 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만 자도록. 어차피 얼마 이야기하지도 못할 거다.”

황지호가 달래도 은서호와 은이호는 잠에 저항했으나 결국 얌전히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평소라면 나도 슬슬 기숙사로 갔겠지만, 일정이 더 남아 있었다.

이 호랑이 저택에는 오늘 시험을 마친 이가 하나 더 있었으니까.

‘은호는 면접을 어떻게 봤을까?’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은호는 완벽하게 시험을 치렀을 거다.

천성헌 시절, 그는 단 한 번도 시험이나 면접에 떨어진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그가 부정 입학, 성적 논란에 휩싸였을 때 지나치게 완벽한 성적이 증거랍시고 돌아다녔을 정도다.

조작 취급 받을 정도로 천성헌은 성적이 좋았다.

옛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황지호가 말했다.

“은호의 면접 말인데, 이건 별채에 가서 보도록 하지.”

은호의 면접 과정도 보여 줄 생각인가?

노친네는 처웃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황지호는 뭔가 물어봐 줬으면 하는 눈치였기에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은호가 머무는 현대식 별채에 도착한 후.

황지호가 은호의 앞에서 면접 영상을 보자는 말을 꺼냈다.

“이미 보여 주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은호는 생긋 웃으며 차를 내밀었다.

“같이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백호, 너도 와서 앉아라.”

곧 은호의 면접 영상이 재생되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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