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54화 (552/925)

77. 시험의 결과 (4)

면접은 2인 1조로 치러진다.

은호도 예외가 아니었다.

홀로그램 영상 속, 면접장 안으로 들어오는 은호와 낯선 중학생이 보였다.

중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를 치른 은호는 사복이었으나 다른 수험생은 교복 차림이었다.

교복 차림의 수험생은 온화한 표정의 은호와 달리 매우 긴장한 듯했다.

‘은호는 후예보다 나중에 면접을 치렀구나.’

화면 너머의 면접장에는 폭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간단히 청소를 하고 가구를 교체한 것 같지만, 바닥에 그을음이 보였다.

아마 저 때 현장에는 이능파의 흔적과 탄 냄새가 남아 있을 테니, 은광고에 지원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아챘을 거다.

은호와 페어가 된 수험생은 이능파를 감지한 건지 자리에 앉기 직전 탄 흔적을 보며 날 선 표정을 지었다.

은호는 초지일관 같은 표정이었다.

‘은호도 저 흔적을 감지했을 텐데 태연해 보이네.’

먼저 질문을 받은 건 교복을 입은 수험생 쪽이었다.

면접관은 이계 광석을 이용한 소모형 아이템의 개발 공정에 관해 질문했고, 수험생은 몇 번 말을 더듬긴 했으나 큰 실수 없이 답했다.

다음은 은호의 차례가 되었다.

질문은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던져졌다.

교과 내용에 관해 질문하는 게 아니라 자기소개서를 언급하는 걸 보니 성적이 상당히 좋았나 보다.

그걸 알아챈 교복 차림의 수험생이 씁쓸해하는 얼굴을 애써 숨겼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생각해서 답한 자신의 처지와 비교됐나 보다.

그래도 교복 차림의 수험생이 한 답변은 나쁘지 않았으니 합격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긴 하다.

‘딱히 특별한 점이 없는데 왜 황지호가 이걸 같이 보자고 한 거지?’

황지호는 줄곧 처웃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황지호와 대조적으로 화면 속의 은호는 차분한 어조로 간결하면서도 진정성 넘치는 답변을 했다.

말 몇 마디에서 느껴지는 온화함과 지성에 면접관들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앉은 교복 차림 수험생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때, 학생회 고문, 0반 판독기 면접관이 은호에게 말을 걸었다.

―천은하 학생이 작성한 자기소개서 잘 읽었어요.

갑자기 왜 저 면접관은 은호에게 자기소개서를 잘 읽었다는 소리를 하는 걸까?

어차피 여태까지 자기소개서 내용으로 질문을 했으니 굳이 그걸 언급할 필요는 없는데.

0반 판독기 면접관이 이어서 한 말에 그 답이 나왔다.

―자기소개서에 언급된 ‘존경하는 형’에 관해 소개해 보세요.

……존경하는 형?

자기소개서에 존경하는 인물에 관해 쓰는 건 흔한 일이다.

존경하는 인물은 자신이 지향하는 삶과 가치관의 상징이니까.

자기소개서에 존경하는 인물을 언급하면 자신이 무엇에 감동하고, 어떤 것에 영향을 받고, 장래에 어떤 인물이 되려는지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뭔가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흔한 질문이긴 했다.

은호는 부드럽게 답변하였다.

―제가 존경하는 형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완벽한 분입니다. 자기소개서의 제한된 지면으로는 형에 관해 전부 설명드리기 어려웠죠.

그때부터 은호의 기나긴 형 자랑이 시작되었다.

은호는 강하고, 겸손하고, 우수하고, 훌륭하고, 멋지고, 상냥하고, 다정하고, 배려심 깊고, 동생을 아끼는 위대한 형을 묘사했다.

듣는 사람이 아득해질 정도였으나 물 흐르듯 이어지는 형 자랑을 아무도 중단시키지 못했다.

그 자랑을 듣는 내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가 형을 정말 잘 따르고 아끼고 있구나.’

천은하의 형은 천동하, 은호의 형은 백호군.

둘을 생각하면 저 수식어와 자랑이 당연하긴 했다.

나는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관한 자랑을 속으로 삭일 때가 많은데, 저렇게 초면인 상대에게 당당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은호의 기나긴 자랑 속에는 체스 이야기도 들어가 있었다.

―체스를 둘 때 보여 주시는 깊은 집중력과 통찰력에는 늘 감탄하고 있어요. 아직 단 한 번도 체스로 이기지 못했지만, 언젠가 형을 이기거나 스테일메이트로 대국을 마무리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러고 보니 천동하와 백호군도 체스를 매우 잘 뒀다.

은호는 둘의 공통점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언급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자랑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 보니 어느샌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화면 속의 면접관들과 교복 차림의 수험생이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면접장에 있는 이들은 은호의 말은 이상하게 끊을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어서 저 긴 형 자랑을 듣고만 있어야 했다.

은호는 처음과 다름없는 온화한 말투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은광고의 면접 시간은 최장 30분이었죠. 시간이 되었으니 이상으로 답변을 마칠게요.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호의 답변을 끝으로 면접이 마무리되었다.

면접이 아니라 형 자랑 프레젠테이션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홀로그램 영상 재생이 끝나자마자 애써 웃음을 억누르던 황지호가 처웃었다.

“하하하하하! 잘 들었나? 백호, 조의신! 네 동생이 이렇게 너희를 잘 따르는구나.”

“황호 님께서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앞에서 백호군이 보고 있으니 조금 쑥스러워할 법도 한데 은호는 당당했다.

차를 권하고 마시는 모습에서는 조금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백호군은 동생의 형 자랑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손을 뻗어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호는 천은하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둘은 나이 차가 있어 보이는 형제처럼 보였다.

백호군이 나직하게 말했다.

“……고맙다.”

“별말씀을요. 백호 형님은 말수가 적잖아요. 그러니 제가 더 존경과 감사를 표현할게요.”

이래서 황지호가 백호군과 같이 보자고 한 건가.

면접 영상을 공개한 걸 계기로 두 호랑이의 우애가 깊어진 것 같았다.

황지호가 이렇게 훈훈한 일을 앞두고 왜 그렇게 처웃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형제의 모습이 흐뭇하다 보니 처웃게 된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은호가 생긋 웃으며 나를 봤다.

은호 외의 호랑이들도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설마 제 ‘존경하는 형’ 중에 의신이 형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시겠죠?”

은호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평소보다 몇 초 이상이 더 걸렸다.

은호의 존경하는 형들은 천동하와 백호군 아닌가?

현재 호적상 형과 신화 시절부터 함께한 의형제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하하하하! 조의신이 무슨 생각을 할지는 뻔하지. 저 표정을 봐라, 은호!”

“그러면 의신이 형을 두고 다시 한 번 말씀드려야겠네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은호의 형 자랑이 다시 시작되었다.

면접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모든 주어에 내 이름이 들어갔다는 거다.

존경의 표현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 속에서 나는 정신 없이 휩쓸려 다니며 아득해지는 사고를 잡기 위해 애써야 했다.

면접 시간은 30분 정도라고 했으니 그만큼만 버티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내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면접 때에는 시간제한이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는 여유 있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저는 의신이 형이 처음 저를 도와주시기 전부터 체스 기사인 형을 존경하고 있었어요.”

30분가량이 지나자 면접 때 나오지 않은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은호는 몇 번 차를 내밀었는데, 차 맛을 알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중간중간에 올무가 귀엽게 짖어 내 정신을 돌려놓고, 황지호의 처웃는 소리가 귀를 때리곤 했다.

왕왕!

“하하하하하!”

밤이 깊어져 은호의 이야기가 일단락되었을 때에는 그로기 상태였다.

날이 늦었으니 별채에서 하루 자고 가라는 소리가 나왔는데 거절할 기력이 없었다.

앞에서 올무가 종종걸음으로 안내하는 걸 혼이 나간 얼굴로 따라갔다.

그냥 민망한 이야기가 잔뜩 나온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인사를 하고 물러날 때, 뒤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은호가 황지호에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 시험이 끝났으니 그것을 만들려고 해요. 천신께서 허락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은호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은호는 백호군의 백아를 만들 정도의 기술자라고 듣긴 했는데, 또 무기를 만드는 걸까?

아니, 천신에게 허락이 필요하다면 무기는 아닐 것 같은데.

발을 돌려 물어봐야 하는 걸까.

멍한 머리로 사고를 이어 가려 했으나, 백호군의 목소리에 의해 생각이 중단되었다.

“조의신, 오늘은 이만 쉬어라.”

왕왕!

올무와 함께 나를 안내하던 백호군이 그렇게 말하니 갈 수 없었다.

백호군이 말릴 정도면 황지호나 은호도 같은 소리를 할 것 같았다.

결국 얌전히 저번에 묵었던 방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오늘도 등교일이었기에 학교로 향했다.

황지호가 피곤하면 쉬어도 좋다는 소리를 하긴 했지만, 저번에 잠을 며칠 못 잤을 때에 비해선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무시했다.

등교를 앞두고 은호가 아침 인사를 했다.

“황호 님, 의신이 형, 학교 잘 다녀오세요.”

“그래, 다녀오마.”

‘다녀올게’라고 답하려다 멈칫했다.

그 말은 오늘도 호랑이 저택으로 오겠다는 말 같지 않은가.

결국 머뭇거리다가 그냥 고개만 끄덕이자 은호가 웃으며 배웅했다.

이상하게도 덫에 걸릴 뻔했다가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1학년 0반 교실.

교실 분위기는 상당히 칙칙했다.

“……큰일 났다. 후배들 입학하는 거랑 축제 준비로 너무 들떠 있었나 봐.”

김유리가 퀭한 눈으로 노트를 보고 있는 권레나를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권레나 옆에선 맹효돈이 죽은 얼굴을 하고 조용히 있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는 걸 보니 평범한 돌멩이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1, 2학년을 대상으로 한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동아리에서는 모든 시험이 끝난 3학년 외의 학생들은 부 활동을 자제하는 중이었다.

“기말고사가 얼마 안 남았죠……. 요즘 축제 준비를 하느라 복습을 소홀히 해서 걱정돼요.”

“공부는 수업 중에 하면 되잖아. 축제 준비가 더 빡센데…… 윽!”

송눈새 송대석이 사월세음의 말에 조금도 공감하지 않았다.

민그린이 등짝을 때리지 않았으면 또 눈치 없는 소리를 했을지도 모른다.

“추가 시험을 치르면 축제에 참가하기 어려울 텐데…… 한이야, 공부 같이 하자!”

“다른 과목은 잘 모르는데.”

독고미로도 여유가 있는 건 아닌지 조금 초조해 보였다.

목우람은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말했다.

“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틈틈이 공부를 해 뒀습니다. 레나, 어떤 과목이든 질문해 주십시오.”

“우람이가 나랑 과목이 많이 겹치긴 하는데, 같이 안 듣는 것도 있지 않아?”

“네, 그래서 미리 공부해 뒀습니다.”

“……?”

설마 목우람은 권레나가 듣는 과목 전부 혼자 독학해 둔 건가!

나도 시간이 있었으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수강하는 과목을 전부 공부해 뒀을 텐데.

‘이 세계에 오기 전에 공부했던 과목이라면 괜찮지만.’

예를 들자면 맹효돈이 듣는 수학 과목이 그러했다.

추가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유급 걱정을 해야 하는 맹효돈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내가 제안했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일 거다.

“스터디 그룹 짜자. 오늘부터 다 같이 공부할 사람?”

학교 축제 전 닥친 거대한 위기, 1학년 마지막 시험 기말고사에 대항해야 할 때가 되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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