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58화 (556/925)

77. 시험의 결과 (8)

간식을 받을 생각에 신났던 아이들이 성시완의 몰골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놀라긴 해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최근 은광고의 3학년 학생들 중에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이들이 많았고, 이를 학교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아직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학생도 있고, 진로는 정했으나 시험과 면접 등의 고비를 넘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특히 프로 플레이어 팀의 면접을 보러 가는데 이능을 선보여야 하는 일이 많아 신체적으로 지친 학생이 많았다.

그래서 성시완이 좀 지쳐 보여도 딱히 눈에 띄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성시완은 대학 합격이 확정됐는데, 애들이 다 알지는 못하겠지.’

성시완은 대학에 합격한 걸 자랑하고 다닐 인물이 아니다.

정 자신을 걱정하는 것 같으면 합격 사실을 알려 주겠지만.

“시험 준비 힘내.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질문도…… 0반에는 의신이가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성시완은 다정한 말로 격려하며 간식거리가 담긴 봉투를 건넸다.

제일 먼저 봉투를 받아 든 사월세음이 밝게 인사했다.

“네! 선배님도 시험 준비 힘내세요!”

“시험 준비? 아, 고마워. 나도 너희를 응원할게.”

성시완이 대답할 때 내 쪽을 흘끗 보는 것 같았다.

성시완이 준비 중인 진로 관련 시험은 없었지만, 옛 한국 지부장의 시험은 남아 있는 상태니 거짓말은 안 한 셈이다.

간식을 받고 1학년 기숙사 건물로 가려 할 때였다.

“의신아, 잠깐 시간 좀 내 줘.”

성시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오늘은 남은 일정이 없었고, 성시완을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어서 승낙했다.

나랑 얘기하는 사이에 성시완도 좀 쉬었으면 좋겠다.

나는 무슨 화제가 나올지 예측해 보며 성시완의 뒤를 따랐다.

‘옛 한국 지부장 건 때문에 부른 거겠지.’

성시완은 지익회관의 휴게실로 안내했다.

시험 기간이라 그런지 파티션이 설치된 휴게실 여기저기에 학생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누운 채로 홀로그램으로 텍스트를 읽는 학생, 강의를 듣는 학생, 자고 있는 학생,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포기하고 노는 학생 등등이 있었다.

성시완은 음료수 자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주스 마실래?”

“곧 자야 해서 괜찮아요.”

“그래, 시간이 좀 늦었지.”

성시완은 커피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거두었다.

딱히 내가 안 마신다고 해서 성시완도 안 마실 필요는 없는데.

전 지익회장 성시완은 현 지익회장 ‘계’새끼와 비교도 안 될 수준의 배려심을 지닌 것 같다.

파티션에 설치된 패널을 조작해 조명을 켠 후 방음 모드를 설정하고 성시완이 본론을 꺼냈다.

“1, 2학년 기말고사가 끝날 때쯤에는 할아버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성시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아 걱정했는데 기우였나 보다.

그런데 방금 성시완이 할아버지라고 하지 않았나?

성시완을 그렇게 매정하게 대하고 잔혹한 광경을 보여 줬는데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다니.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시험이 끝난 덕에 도전할 기회가 많았어. 처음엔 어떻게 할지 감도 안 잡혔는데 이담이 도움을 많이 받았어.”

성시완은 계이담을 언급할 때 조심스러워 보였다.

내가 계이담을 기껍게 여기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그런 듯했다.

계이담은 여전히 탐탁지 않았으나 성시완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생각을 이었다.

옛 한국 지부장은 성시완과 계이담이 사전에 작전 회의를 짜는 걸 허락해 준 듯했다.

여전히 대결은 1대1로 진행되고 계이담은 한 번도 옛 한국 지부장과 대면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러면 시험 기간이 끝날 때쯤 약속을 잡을까요?”

“아…… 이담이도 할아버지 상대를 해야 하니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마음에 안 들었다.

저번에 계이담이 거슬리는 말을 하다 만 것도 그렇고 그 악플러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얼마 전, 나는 내가 공략을 올리지 않았다는 안다인의 히든 퀘스트를 두고 ‘계’새끼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무슨 내용이야?

―······2학년 때 있던 일인데, 안다인이 별로 등장하지 않아서 잘.

무시하려다가 참고 무슨 내용이냐고 묻고 말할 기회를 줬는데 계이담은 끝까지 퀘스트 내용을 떠올리지 못했다.

실제로 안다인의 히든 퀘스트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계이담이 안다인을 두고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성시완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런 광경을 보는 게 힘들긴 해. 하지만 그런 일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 이담이도 극복해 줬으면 해.”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피곤해 보이고, 광대뼈가 더 두드러지게 보였으나 성시완의 눈빛은 결연했다.

성시완은 계이담이 이 계획에 끝까지 함께하길 원하는 듯했다.

대체 무슨 복이 있어서 계이담은 이렇게 훌륭한 선배와 친하게 지내고 그 뒤를 이어 지익회장 자리에 오른 건가.

어찌 됐든 계이담을 옛 한국 지부장이 보여 주는 잔혹한 환상 속에 넣어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실컷 굴려서 전력으로 삼는다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계이담과 동행하겠다는 성시완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러면 약속은 다음에 잡죠. 그분을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하셨나요?”

“응, 할아버지가 허락해 주셨어.”

성시완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 할아버지 때문인지, 계이담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 이후로는 옛 한국 지부장의 얘기와 잡담을 조금 나누다가 성시완의 배웅을 받으며 1학년 기숙사 건물에 도착했다.

딩동.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메시지 알람이 들려 홀로그램 화면을 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정신이 딴 곳에 팔린 덕에 추위가 덜했다.

메시지를 보낸 건 옥토연이었다.

[옥토연] 은인아, 은인아! 뭐 해?

[옥토연] 서호랑 이호 시험 끝났잖아, 오랜만에 서호랑 이호랑 재호랑 은인 보고 싶다!

[옥토연] 나는 바로 시간 낼 수 있는데!

옥토연은 이제 시험이 끝난 은호의 후예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시간을 낸다고?

송대석이 기말고사 기간에 위성 건으로 가끔 결석할 정도인데, 월궁계도를 다루는 옥토연이 한가할 리가 없다.

옥토연이 이런 메시지를 보낸 걸 옥토윤이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옥토연] 은인아, 은인은 기말고사 준비한다고 바쁘다면서?

[옥토연] 왜 너희들은 맨날 시험 쳐? ㅠㅠ

그야 학생이니까 자주 시험을 칠 수밖에 없다.

옥토연은 은호의 후예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내 기말고사 소식을 들었는지 조금 징징대다가 물러나 줬다.

[옥토연] 그래ㅠㅠ 시험공부 잘해라.

[옥토연] 대신 축제 때에는 꼭 나 불러야 돼! 알았지?

토족의 수장이 일개 학생이 축제 때 뭐 하는지 보러 와도 되는 걸까?

옥토연이 호족과 가깝게 지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니 은광고에 놀러 와도 이상하지는 않을 거다.

황지호가 몹시 싫어할 것 같긴 한데, 그건 별로 상관없을 거다.

옥토연을 달래기 위해 축제에 초대하겠다는 말을 덧붙이고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다음 메시지도 12지의 수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꾀돌이] 넥타이핀 착용한 사진 잘 받았어요. 잘 어울리던데요? 새로 디자인을 몇 개 뽑아 봤는데, 마음에 드는 걸로 보내 줄게요.

[꾀돌이] (사진)

서돌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저번에 서돌은 느루의 앰배서더가 되어 달라면서 넥타이핀을 선물로 보냈다.

그러고는 착용한 모습이 궁금하다며 은광고로 쳐들어올 기세라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랬더니 서돌이 괜한 창작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서돌이 지금 존댓말을 쓰고 있으니까 무시하면 더 귀찮아질 것 같은데.’

메시지를 보니 점점 귀찮음이 더해졌다.

[꾀돌이] 답장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꾀돌이] 아, 제가 직접 가도 괜찮긴 해요.

시험 기간에 서돌이 학교로 온다고?

서돌이 괜찮아도 내가 안 괜찮다.

고민 끝에 서돌이 보낸 디자인 시안 중 적당한 걸 고르자 만족하고 넘어가 줬다.

꾀돌이가 은광고에 난입하는 사태는 막았지만, 어쩐지 서돌의 꾀에 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메시지는 유독 길었다.

[장남욱] 의신아, 상훈아. 기말고사 준비 잘되고 있어? 입학한 첫해의 마무리를 하는 시험이니까 최선을 다하여 아쉬움이 안 남게 노력하자. 사관학교는 일찍 기말고사를 치러서 오늘 시험이 막 끝났어.

[유상훈] ㅊㅋ

[장남욱] 고마워, 상훈아. 시험이 끝나니까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어. 마지막까지 시후를 한 번도 못 이겼거든. 시후는 계속 수석 자리를 지켰어.

장남욱은 길게 기말고사 소감을 이어 갔다.

유상훈은 글을 전부 다 읽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짧게나마 꼬박꼬박 답변했다.

‘도시후는 계속 수석을 했나 보네.’

장남욱은 도시후보다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물에 약하다는 약점도 없는데 1년 내내 도시후를 이기지 못했다.

도원우도 그렇고, 천동하도 그렇고 TC 그룹은 썩어 있는 것에 비해 우수한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랬기에 지금도 세를 유지하고 버티고 있는 거겠지만.

장남욱은 긴 기말고사 시험 소감을 마친 후 축제 후기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남욱이 가끔 메시지방에서 언급하긴 했는데,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고등부 축제는 간소하게 끝마친 듯했다.

‘사관학교 축제는 졸업할 예정인 3학년 생도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했지.’

사관학교 축제 중 진행되었다는 의식 행사 영상을 보니 감탄이 나왔다.

예식복 차림의 사관생도가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장남욱] 우리는 시험이랑 축제도 다 끝나서 좀 한가해. 혹한기 훈련이 시작되면 다시 바빠지겠지만. 훈련을 마칠 때쯤이면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

[유상훈] 축제 옴?

[장남욱] 은광고 축제 말하는 거지? 훈련 시작 전이니까 갈 수 있을 거야. 아마 사관학교 생도들은 거의 다 은광고 축제에 갈 것 같아. 스포츠 교류전 건도 있어서 생도회를 통해 초대받았거든. 단체 행동을 할 예정이긴 한데 자유 시간도 있어. 그때 상훈이랑 의신이네 반에는 꼭 들를게.

[유상훈] ㅇ

유상훈이 모처럼 긴 문장으로 물은 게 기뻤는지 장남욱은 아주 긴 문장으로 답신했다.

장남욱은 그 이후로도 기나긴 문장을 쏟으며 은광고 축제에 대한 기대감과 기말고사를 응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나도 가끔 짧은 답장을 던지며 장남욱의 메시지를 읽었다.

‘은광고와 사관학교의 교류가 계속되고 있구나.’

흑막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은광고를 고립시키려 했다.

은광고뿐만이 아니었다.

은광고, 황명 그룹, 호족 전부 흑막에 의해 묶여 있었다.

고작 학교 간의 교류이지만 은광고가 고립되지 않았다는 증거 같아서 메시지를 읽는 내내 기쁜 마음이 들었다.

장남욱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긴 탓에 읽던 도중 잠들긴 했지만, 어쨌든 다음 날에 일어나 전부 읽긴 했다.

그리고 아침, 1학년 0반 교실.

일찍 교실에 도착했더니 황지호가 있었다.

“청룡을 통해 들었다. 적호와 용제건이 무사히 용궁에 도착한 것 같더군.”

둘은 사고 없이 무사히 용궁에 도착했구나.

안심하고 있을 때, 황지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용왕신과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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