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68화 (566/925)

79. 은광고 축제 (2)

호연관은 수용 인원수 천 명이 안 된다.

권제인 내한 공연 당시 1초 만에 호연관 전 좌석이 매진되었던 걸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어 보이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달랐다.

호연관을 다 채우려면 은광고 1학년 500명이 다 와도 부족하다.

다른 반과 동아리와 같이 공연하는 거면 모를까, 고등학교 한 학급이 고작 세 곡 분량의 상영회를 하며 이 정도의 인원을 모으는 건 어렵다.

하지만 지금, 에어 셔틀을 타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음…… 지호야, 호연관은 공사 중 아니었어?”

“공사는 어제 끝났다. 라운지와 출연자 전용 대기실, 스태프실처럼 최저한의 시설만 남겼지.”

김유리의 질문에 황지호가 간결히 답했다.

스태프 전용 통로로 호연관 콘서트홀 무대를 살폈다.

호연관이 오래돼서 보수 공사를 했나 싶었지만, 확장 공사를 한 건지 관객석이 크게 늘어나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엄청 넓어진 것 같은데.”

“지금은 2천 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2천……!”

독고미로가 경악했다.

큰 무대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데뷔하지 못한 개인 연습생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일 거다.

독고미로의 속도 모르고 황지호가 흐뭇해하며 말했다.

“호연관 티켓팅에 실패한 적이 있지. 이제 수용 인원수가 2배로 늘어났으니 여유가 있을 거다.”

황지호는 티켓팅에 실패한 후에 내색은 안 했지만 분했나 보다.

티켓팅이 안 되면 무대 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니, 돈 많은 노친네가 할 법한 발상이었다.

사월세음이 감탄하며 말했다.

“와, 1초 컷이 2초 컷으로 바뀌겠네요!”

“티켓팅 연습 열심히 했으니까 다음엔 성공하겠다!”

권제인이 다음에 공연을 하면 권레나와 그 친구들을 가장 먼저 초대하지 않을까?

티켓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아이들이 모처럼 의욕에 차 있으니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2천 석의 규모에 압도되어 있던 독고미로가 황지호에게 물었다.

“혹시 미리 준비하고 있었어?”

“그렇다.”

“왜?”

“반 아이들이 준비한 무대의 완성도와 화제성을 고려해 봤을 때, 교실에 모든 관객을 수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마침 호연관 공사가 마무리되었기에 준비시켰다.”

“……그래도 2천 석은 좀 많지 않아?”

독고미로의 말대로다.

현재 입장한 관객은 오백이 겨우 넘는다.

1층 관객석만 개방한 덕에 그리 비어 보이지 않지만, 좀 넓긴 했다.

하지만 황지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오늘 입소문을 타고, 나중에 상인관에서 발표회를 하면 네 노래를 듣고 싶어 할 사람들이 더 늘어날 거다. 미리 준비하는 거지.”

독고미로가 놀란 얼굴을 했다.

늘 한이를 두고 기 싸움을 벌이는 사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황지호는 독고미로를 아주 기껍게 여겼다.

황지호가 한이의 복수를 할 겸, 독고미로를 도운 것도 그렇고 옛 친우를 돕겠다고 맨몸으로 광일파출소에 쳐들어가 깽판을 친 패왕 독고미로가 마음에 드나 보다.

“입장이 끝났어요!”

관객용 출입구가 닫혔다.

원래 입장이 완료되면 바로 상영회를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사람이 이 정도 모였으니 인사해야 할 것 같았다.

보통 인사는 반장인 김유리 역할이지만 김유리는 시선을 받기 무섭게 말했다.

“미로야, 갔다 와!”

“어?”

독고미로가 뭐라 말하기 전에 김유리가 등을 떠밀었다.

패왕이 그 손길을 피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독고미로는 얼빠진 목소리를 내며 무대로 나갔다.

“미로야!”

와아아아!

짝짝짝!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독고미로의 이름을 부르는 걸 시작으로 환호와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디바이스 카메라로 촬영하는 이도 있는 건지, 독고미로의 눈이 무대의 아래를 어지럽게 훑었다.

독고미로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1학년 0반 상영회를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고미로가 조명 아래에서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분위기가 변했다.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 때마다 같이 움직이는 분홍색 머리카락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반 친구들이랑 열심히 준비한 무대예요. 부디 마지막까지 같이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 오후 늦게 상인관에서 라이브 무대를 할 예정이니 꼭 보러 와 주세요!”

맑고 높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독고미로를 바라봤다.

조명이 꺼졌으나 독고미로의 밝은 인사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이돌 지망생답게 무대 위의 존재감이 남다른 것 같다.

“이번에는 다 같이 인사하러 가자!”

학교 정문 앞 버스킹에서 부른 곡을 마지막으로 상영회가 끝난 후, 우리가 무대 인사를 하러 올라가기 전까지 박수가 이어졌다.

악기 구성이 중구난방이라 반응이 안 좋을까 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편곡과 연주자, 이를 하나로 묶는 보컬이 워낙 좋은 덕인 듯했다.

인사를 하다 보니 독고미로의 홈마 정해온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진을 찍는 게 보였다.

‘입덕이 늦어 버스킹을 놓친 걸 그렇게 후회하더니.’

정해온이 버스킹 영상을 본 걸 계기로 홈마가 된 건 유명한 일이었다.

사진과 같이 올리는 후기에 툭하면 버스킹을 직접 보지 못한 걸 후회하는 말을 쓰더니, 영상회 제일 앞줄에서 본 게 감격스러워 우는 것 같았다.

라이브를 볼 때에는 대성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열심히 했구나. 힘내라.”

“의신아, 음악은…….”

“아무 말도 하지 마! 제인아, 하려면 레나 양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그러면 다음에 보도록 하지, 의신 군.”

무대에서 인사를 마치고 관객들의 퇴장을 도울 때, 나는 하늘 같은 대선배들로부터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내가 한마디씩 들을 때마다 황지호는 계속 처웃었다.

송만석이 처웃는 황지호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갔는데, 그건 신경 안 쓰이나 모르겠다.

“수상한 부반장도 못하는 게 있었구나…… 못하는 건 수석뿐인 줄.”

“지금 성적 유지하려면 음악 과목은 택하지 마라.”

“트라이앵글 연주에 흠잡을 곳이 없었는데요!”

금찬솔과 왕찬솔의 헛소리에 선배놈들과 친분이 있는 사월세음이 반박했다.

내 편을 들어 주는 건 고맙지만, 어쩐지 말리고 싶었다.

“뭐, 트라이앵글이니까. 초등학생 중에 아주 잘 치는 애 수준으로는 하더라.”

“두 번째 곡 첫 번째 소절 들어갈 때 박자 놓칠 뻔한 거 다 봤음.”

“미로의 무대에 지장이 없으면 됐지.”

……트라이앵글도 쉽지 않았는데.

이 소리를 하면 더 비웃음을 살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슬슬 당번 시간이 끝나 황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다 웃었으면 가자.”

“생각날 때마다 웃을 것 같군. 저택에서도 상영회를 하면 또 웃게 될 텐데.”

망할 노친네는 여기에 두고 갈까?

일단 노친네가 신문부였기에 함께 취재한다는 명목으로 같이 축제를 보러 다니기로 했지만 혼자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

먼저 발길을 옮기자 ‘하하하하! 미안하다, 축제라서 들뜬 것 같군.’이라고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따라왔다.

원래 1학년 교실부터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상영회 장소 이전으로 인해 중앙 구역에 왔으니 동아리들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회관을 개방하는 것만으로는 동아리에서 준비한 것들을 선보이는 게 불가능해 현재 중앙 구역 전체를 동아리 측에서 사용하는 중이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공청훤과 한이가 있는 태호권 소모임이었다.

“네 친우가 보러 왔다!”

“…….”

황지호의 입 모양을 읽은 한이가 못 볼 걸을 본 표정을 지었다.

태호권 기본 동작을 선보이느라 쥔 한이의 주먹에 힘줄이 솟는 게 보였다.

“어서 와요. 취재를 할 거라고 했죠? 편하게 보고 가요.”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공청훤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문답을 주고받았다.

공청훤은 취재에 응했지만, 마무리하는 말은 좀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축제 때에는 빠지지 않으셨네요.”

“……죄송합니다.”

“제때 오셨는데 죄송할 일이 없죠.”

일반 에너미학 수업을 빠진 횟수를 생각하면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방문객을 상대로 질문을 받던 한이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본자세 ‘호랑이 발걸음’과 공격기 ‘덫 부수기’를 동시에 사용할 때, 도약 스킬이 없을 경우 말씀이신가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지 한이가 설명을 머뭇거렸다.

공청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전, 자칭 한이의 친우가 먼저 나섰다.

“이 몸이 시연을 도와주마!”

“…….”

황지호가 집어던져지는 역할을 맡는다는 조건으로 시연이 진행되었다.

황지호가 메쳐지는 장면을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만족스럽게 취재를 마쳤다.

태호권 소모임 기사는 반드시 황지호가 땅바닥에 꽂히는 사진과 함께 낼 거다.

“대기하시는 분들 앉으시라고 의자랑 과자 좀 들고 왔습니다!”

“드시면서 하시죠!”

황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손에 의자와 달달한 간식이 든 바구니를 든 청호의 제자들이 등장했다.

황지호를 발견하자 반사적으로 인사할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소리에 환장하는 청호의 제자들이 놓칠 수 없는 동아리 행사들이 많은 데도 이들은 태호권 소모임을 도울 예정이라 한다.

‘보육원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구나. 반 아이가 신세를 졌으니 좋은 앨범을 발견하면 선물할까.’

태호권 소모임 취재를 마친 후에도 중앙 구역 순회가 계속되었다.

중앙 구역을 소리로 가득 메운 음악 동아리의 연주, 곳곳에 장식된 이능 광석과 직물로 만든 장식물들, 플레이어 비상식을 맛있게 개량한 요리 동아리의 음식 등등 놓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시간이 더 있으면 허채아가 진행하는 도서관 투어에도 참가했을 텐데.’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하는 행사들은 전부 체크해 놨는데 시간이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

사전 예약을 받아 긴 시간 진행되는 도서관 투어가 그러했다.

아쉽지만 나중에 업로드될 예정이라는 영상을 통해 즐겨야겠다.

아쉬움을 삼키고 다음 취재 장소로 향했다.

“……왔냐?”

다음에 도착한 곳은 플레이어 협회에서 낸 부스였다.

은광고 이사진과 학생 자치 기구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은광고 축제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소수의 외부 단체도 참가 가능하다.

은광고 학생들의 주요 취직처인 플레이어 협회도 그중 하나였다.

플레이어 협회 측에서는 위성 관련 신규 앱 출시를 홍보할 겸 참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가 넘쳐나는 은광고 축제에서 누가 위성 애플리케이션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그래도 사람이 너무 없네.’

송대석은 눈에 띄게 시무룩해하고 있었다.

그동안 뼈 빠지게 개발했지만, 무심한 사람들은 그냥 ‘협회에서도 왔구나.’ 정도의 관심만을 보이고 지나칠 뿐이었다.

일부 매니악한 취미를 가진 이들은 열성적으로 위성에 관한 질문을 퍼부은 것 같지만,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거다.

같이 동행한 협회원들이 풀 죽은 송대석을 안쓰럽게 여기는 듯했다.

‘신기술을 이용한 이계 변수 변환 예측 및 지표 해석…… 맹효돈은 설명을 한 줄도 이해 못 하고 도망치겠다.’

협회에서 송대석이 하는 일을 생각하면 이 신규 앱의 중요성은 상당하지만, 접근성이 최악이었다.

홍보팀장 홍규빈은 대체 뭐 하는 건가?

은광고 축제 기간 실컷 놀 예정일 테니 나중에 일 좀 시켜서 앱 보급을 돕게 해야겠다.

홍규빈의 야근 일정을 짜며 일단은 송대석을 달래기로 했다.

“미술부랑 동양화 소모임에서 하는 합동전 취재 갈 건데, 같이 갈래?”

“간다.”

“입장권은 많이 남았어?”

“아까 한 장 썼으니까 이제…….”

말을 하던 송대석이 멈췄다.

역시나 송대석은 제일 먼저 민그린과 미술부, 동양화 소모임의 합동전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민그린의 합동전을 갔다 온 걸 들켰지만 뻔뻔해지기로 했는지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합동전이 열리는 회장 앞에 늘어선 줄을 보며 곧장 포기했다.

“2시간은 기다려야 된다고?”

“아니, 사람이 뭐 이렇게 몰렸어.”

“아까 거물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몰려든 다음에 사람이 확 늘어서…….”

설마 호연관에 공연 보러 온 사람이 다 여기로 왔나?

홍경복 화백과 무쇠팔 송만석이 0반 공연을 본 후에 여기로 오면서 사람들을 다 끌고 왔나 보다.

결국 지금 합동전을 보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합동전 다음은 어디로 갈 차례지? 사람이 몰려서 그쪽을 먼저 돌아야 할 것 같군.”

“스테일메이트. 체스 소모임에서 10면 대국에 참가할 도전자를 모집한다고 해서…….”

황지호와 동선을 짜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우리를 불렀다.

“의신이 오빠 찾았다!”

“응? 은인이 있어?”

인파 사이에서 붉은 눈과 마주쳤다.

상대는 옥토연, 그것도 은호의 후예 삼 남매를 데리고 있었다.

옥토연을 발견하고 송대석이 경악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옥토연과 송대석은 월궁계도와 위성 건으로 안면을 튼 사이였지.

옥토연을 발견한 황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바로 옆에 있는 은호의 후예들을 보며 참았다.

그러나 그 인내심은 길게 가지 못했다.

황지호와 옥토연이 공통으로 아는 존재가, 그것도 존댓말로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군요.”

서족의 수장 꾀돌이, 서돌이 등장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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