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71화 (682/925)

79. 은광고 축제 (5)

주수혁이 초대한 이들 중 친척은 둘이었다.

한 명은 육촌 형인 주수겸 전무이사, 다른 한 명은 사촌 동생인 주수리였다.

주수리는 사촌 오빠인 주수혁을 몹시 잘 따랐다.

주씨 집안에서는 그간 많은 걸출한 인재를 배출했는데 그중에서도 주수혁과 주수겸은 특별했다.

문무를 겸비하고 용모단정한 두 사람을 주오 그룹의 미래라고 부르고, 오씨 집안에서 딸들을 둘 중 한 사람과 맺어 주려고 안달복달할 정도였다.

주수리 입장에서는 자상하지만 어딘가 무서운 구석이 있는 주수겸보다는 다정다감한 주수혁이 좋았다.

그런 주수혁에게 변화가 생겼다.

‘수혁 오빠가 은광고에 들어간 후에 이상해졌어.’

주수혁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욱 어른스러워지고 멋있어졌는데, 가끔 아주 얼빠진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다.

얼이 빠졌다고 해도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다운 얼굴을 할 뿐이었지만, 주수혁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은광고에는 주수혁을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분명 그 독서 친구 때문일 거야.’

주수리는 은광고 이야기를 해 달라며 주수혁을 졸라 그 원인을 알아냈다.

주수혁은 비정기적으로 어느 인물과 책을 주제로 교류를 갖는데, 주수혁은 그 인물의 영향을 크게 받는 듯했다.

대화 속의 사소한 단서를 모아 주수리는 그 독서 친구가 신탄의 사수 안다인이라고 특정 지었다.

처음에는 주수혁이 나쁜 친구를 사귄 게 아닌가 걱정했던 주수리는 제 생각을 바로 고쳤다.

학교 행사 사진에 찍힌 주수혁과 안다인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수혁 오빠만큼 완벽한 사람이 또 있었다니…….’

안다인은 플레이어계, 재계와 연이 없는 가정 출신이었으나 이능, 성품, 평판, 학력 등 무엇 하나 주수혁에 비해 모자랄 게 없었다.

주수리는 순식간에 안다인의 팬이 되었다.

주수리는 주수혁과 안다인의 세계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주수리는 안다인과 친해지고 싶지만, 기회가 없었다.

기껏 떼를 써서 은광고 축제에 왔는데, 안다인이 속한 1학년 1반은 이벤트 준비를 하느라 바빠 직접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주수리는 중앙 구역을 구경하던 중, 도서부가 진행한다는 ‘도서관 투어’를 발견했다.

‘맨날 만나면 책 얘기를 한다고 했지.’

주수혁은 사람과 잘 어울리고 화술이 뛰어난 데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대화 화제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안다인과 관련한 이야기에선 마치 고장난 것처럼 책 얘기만 해 댔다.

그 책 얘기에는 아직 주수리에겐 어려워 읽지 못한 고서, 이능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된 서적, 저택 내 서재에 없는 희귀서 등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수리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수혁 오빠, 나 도서관 투어 가고 싶어!”

하지만 도서관 투어는 안전 문제로 사전 예약을 받아 진행된다고 했다.

지금 예약하면 내일 도서관 투어에 참석할 수 있는데, 주수리가 이틀 연속 은광고 축제에 오는 건 어려웠다.

오늘 주수리가 은광고 축제에 올 수 있던 건 주수겸도 함께 와서 경호가 수월했던 덕이다.

‘수겸 오빠가 내일 또 시간을 내긴 어려울 거야. 가려면 오늘 가야 해!’

주수리는 주수혁에게 부탁해 오늘 도서관 투어에 참가할 수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 결과, 주수혁이 직접 총동아리회장이자 도서부 소속인 허채아에게 부탁하여 허락을 받았다.

도서부에서는 주수혁의 친척이자 아직 어린 주수리가 지루할 수도 있는 도서관 투어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걸 기특하게 여겨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게 주수리는 동경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한 걸음을 떼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일행과 떨어져 미아가 되기 전까지는.

*    *    *

도서관 투어 중 실종된 방문객은 주수리.

주수리는 주수혁의 사촌 동생이자 차기 주오 그룹의 총수의 딸이기도 하다.

주수리는 어린이날 야구장에서, 키모폴레이아호 사건에도 그 장소에 있었다.

플마고에서 주오 그룹이 겪는 사고를 생각하면 실종 소식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기록 기기를 살펴보니 실종 직전에 주수리가 인솔자의 지시를 어기고 단독 행동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도서부 소속 인솔자와 주오 그룹의 경호원의 눈을 피해 단독 행동을 한 거야?”

“주수리가 기록 기기의 사각지대로 걸어가는 동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참고로 주수리의 부재를 제일 먼저 눈치챈 건 그 자리에 동행한 주수겸이다.”

주수겸도 도서관 투어에 있었나?

마뜩치 않은 마음과 동시에 의문이 솟았다.

주수겸은 주수혁 수준의 플레이어다.

주수리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주수겸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주수리는 단순히 미아가 된 게 아니라 납치당했을지도 모른다.

불길한 예감에 도서관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어디에서 사라졌어?”

“중앙 도서관 본관의 은광고 기록 문화관. 새로 증축한 자료실로 이어지는 통로로 이동하던 중에 사라졌다.”

머릿속에서 도서관 안내도를 그리다 혀를 찼다.

은광고 관련 보도 자료를 보관하는 기록 문화관은 도서관 본관 구석에 있고, 그 주변에는 계단이 있다.

보도 자료는 보통 학교 홈페이지를 이용해 확인하고 다른 층으로 이동할 때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에 그쪽은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계단이 지하로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하 서고에는 위험한 서적들이 있는데.’

엄중히 봉인되어 있다고 하지만, 지하 서고에는 이능, 마력, 성력 등을 머금은 책들이 넘쳐난다.

상위 존재들이 써서 현세에 뿌린 것으로 추측되는 책도 있고, 진족이 제 피로 가죽에 새긴 글도 있다.

“지하로 내려갔는지 확인해 봐.”

“……기록기기가 장애를 일으켜 실종 전후 5분간의 영상을 확인할 수 없군.”

“신역의 수호자가 마음먹으면 은광구 안에 비밀은 없다면서.”

내 말에 황지호가 씨익 웃었다.

“내가 신역의 수호자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군! 이 몸을 박하게 취급하기에 잊은 줄 알았다.”

딱히 박하게 취급한 적은 없는데.

그 말을 하면 황지호가 쓸데없는 말을 할 것 같아 입을 다물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확인할 수 없었다.”

“주수리가 은광구 밖에 나갔다는 소리야?”

“그럴 가능성이 적지만,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군. 그래도 내 예상은 다르다. 주수리는 신역이 아닌 이공간을 헤매고 있을 거다. 아마 그 입구는 도서관 안에 있겠지.”

이곳이 아닌 이공간.

플마고에 그런 기믹이 있긴 했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밟아야 발동했다.

주수리가 그런 조건을 우연히 달성하고 이공간에 떨어진 걸까?

주수리의 실종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황지호의 말이 계속되었다.

“주오 그룹에는 알린 상태다. 수색 과정에 주수혁, 주수겸, 오혜지 그리고 경호원들을 동행시키는 조건으로 한 시간 준다고 하더군.”

한 시간 이후에는 주오 그룹이 파견한 플레이어들을 무장한 상태로 은광고에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주오 그룹의 입장에서는 차기 총수의 딸이 실종됐으니 당장이라도 경찰이든 뭐든 동원해 움직이고 싶었을 텐데, 조건부라고 하나 한 시간을 준 걸 보면 은광고를 상당히 신뢰하는 듯했다.

고작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황지호는 진지한 태도였으나 딱히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이 몸이 직접 나서고 네가 있다. 찾지 못할 리가 없지.”

그야 그렇긴 하다.

그 자신만만한 말을 들으니 조금은 불안했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수색대를 편성하는 중이구나.’

중앙 도서관의 본관, 은광고 기록 문화관.

평소에 한산하던 기록 문화관에 교사들과 학생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주수혁은 새파랗게 질린 양복 차림의 인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마 저 사람이 주수리의 경호원인 듯했다.

‘주수혁이나 주수겸에게는 못 미쳐도 상당한 수준의 플레이어 같은데…….’

중앙에서 함근형 선생님이 허채아와 함께 도서관 지도를 짚으며 수색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선도부를 중심으로 수색을 진행할 듯했다.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을 발동해 도서관을 살피던 선도부장 천동하가 말했다.

“도서관 내부에서 수리를 찾을 수 없었어요.”

“네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곳에 있거나, 밖으로 나갔거나 둘 중 하나군.”

“후자의 경우를 대비해 수색대를 편성하죠.”

천동하가 광림을 거두고 주변을 둘러보다 우리 쪽을 봤다.

신화계 호족이 나선 걸 보고 안도했는지 천동하의 안색이 밝아졌다.

함근형 선생님과 천동하가 수색대 편성을 하는 사이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비상 사태니 좀 더 사람을  불러야 하지 않을까?

특히 강한 담임이나 제갈재걸이 있으면 든든할 것 같다.

“수색에 참가하는 인원수가 적은데.”

“지금 교내 주요 전력은 구교사에 몰려 있다.”

“왜?”

“졸업한 0반이 구교사 제령 작업을 하려다가 교사들에게 발각되어 조용히 처리 중이다. 졸업한 0반의 잔당을 잡기 위해 편성한 추적조, 구교사 진압조 두 조에 교사진을 할당한 상태다.”

0반이 또……!

졸업한 0반은 재학 시절 그랬던 것처럼 무식하게 물리적인 제령을 시도한 건 아니지만, 퇴마, 제령, 엑소시즘 스킬을 익히고 와서 난리를 쳤다고 한다.

방문객은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해 구경하며 즐긴 모양이지만, 학교 입장에선 그렇지 못했다.

사건이 또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 대기조도 필요할 거다.

‘……호족의 신역에 나오는 귀신이라.’

괴담이 넘쳐 나는 은광고에서 진짜 귀신이 없는 쪽이 이상하지만, 여기는 호족의 신역 아닌가.

0반 선배놈들이 졸업하고도 구교사에 집착하는 걸 보니 뭐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때, 주수겸이 말을 걸었다.

“너는 황명 그룹의…….”

한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주수겸이 황지호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황지호가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더니 주수겸과도 안면을 텄나 보다.

주수겸과 황지호는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눴다.

주수겸은 황지호 옆에 있는 나도 알아봤다.

일단 무시할 수 없어 인사를 했다.

“둘이 친구였나 보군.”

“같은 반입니다.”

주수겸은 내가 수색에 참가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내가 주수혁과 친분이 있어서 그런 건지, 지금 황지호랑 같이 와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황지호는 주수겸과 대화를 나눴다.

“이번 사건은 유감입니다. 주수리 양은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처음부터 룰을 어기고 도서관 투어에 참여하겠다고 한 건 이쪽이다. 경호원이 있었고 나도 있었는데 수리를 놓쳤지.”

황지호는 주수겸 앞에선 학생인 척할 생각인가!

노친네의 존댓말을 들으니 위화감이 상당했다.

노친네와 골초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머리가 복잡해져서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정화되었다.

“다인아, 와 줘서 고마워.”

“아뇨, 학생회 소속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다른 분들은 바빠서 저밖에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선배들이 사고 친 거 학생회가 수습하고 있다면서. 널 보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

오혜지가 안다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안다인은 1반 이벤트 준비로 바쁠 텐데 이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달려온 것 같다.

타이틀 히어로에 이어 타이틀 히로인까지 이 자리에 있으니 이제 걱정될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다인아, 축제 중에 미안해.”

“……아니야, 사촌 동생이 걱정되겠다. 최선을 다해 찾을게. 실종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주수혁이 안다인에게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안다인이 주수혁을 피하고 있었으나 비상 상황이 되니 적극적으로 서로 대화를 했다.

주수혁이 안다인에게 주수리의 사진을 보여 주고 실종 전 상황에 관해 설명해 주는 걸 오혜지가 흐뭇해하며 지켜봤다.

비록 유상희에게 눈치가 없다고 까였지만, 오혜지도 둘 사이가 잘되길 바라고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도서관에 이공간으로 연결되는 입구가 존재한다고 추측 중입니다. 현재 교장 선생님이 이공간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서적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중이나 먼저 이 주변의 수색을 시작하겠습니다.”

함근형 선생님이 도서관 지도와 조 편성이 적힌 표를 디바이스를 통해 배부하며 수색 계획을 설명했다.

수색조는 2인 1조로 이능 관련 서적이 있는 서가와 기록기기의 사각지대를 살피게 된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지하 서고의 한 구역이었다.

“위험한 구역의 수색을 맡겨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지하 서고에 간 경험이 있는 네게 맡기고 싶었다.”

그야 지하 서고에 간 적이 있다.

제갈재걸인 척 위장해 홍규빈과 손을 잡고 최편득 일당의 잔당을 처리한 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함근형 선생님이 내가 지하 서고에 간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함근형 선생님이 모르는 척할 뿐이지 사실 내 정체는 거의 다 드러난 게 아닐까.

함근형 선생님께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우선 주수리의 구조를 우선하기로 했다.

“조의신, 이 몸이 앞장서지.”

중앙 도서관의 지하 서고.

나와 같은 조에 배정받은 황지호가 멋대로 앞서 나갔다.

지하 서고는 그새 증축된 건지 전에 왔을 때보다 넓어지고, 구조가 난해해졌으며, 책의 숫자도 늘어나 있었다.

이능, 마력, 성력의 농도가 짙어진 탓에 저번에 왔을 때보다 긴장되었다.

한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황지호 뒤를 따르고 있을 때, 시스템 음이 들렸다.

〈스킬 ‘운명력’이 발동했습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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