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행운아 (8)
용제건이 성채에 들어간 이후, 무서운 기세로 스코어가 갱신되었다.
“용제건 선생님이 또 보물을 찾았나 봐요!”
“1반 애들이 에너미를 잡았나 봐.”
“막타는 용쌤이 쳐서 판정이 애매해.”
“아마 들어간 데미지에 따라 점수를 나눌걸.”
누군가가 보물을 찾을 때마다, 에너미를 쓰러뜨릴 때마다 숫자가 변했다.
한참 앞서 나가던 1학년 1반의 성장세가 꺾이고, 용제건이 빠르게 그 점수를 따라잡았다.
안다인이 이를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다인이가 플로어 마스터를 토벌했어!”
“사격만 잘하는 게 아니네. 아까 개머리판으로 에너미 급소 내리치는 거 봤냐?”
“둔기도 잘 다룰 거 같아.”
김유리가 안다인의 활약에 환호를 보내고, 승부에 관심이 없던 송대석이 흥분할 정도로 치열한 점수 쟁탈전이 이어졌다.
김신록은 고등학생을 상대로 진심을 다하는 중인 친우와, 그 친우를 이겨 보겠다고 전력을 다하는 제자를 보고 멍해 있었다.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면서도 손에는 ‘여의보주의 기적’으로 가득한 가방을 꽉 쥐고 있었다.
“곧 제한 시간이 끝납니다. 마침 보물도 하나 남았군요.”
“지도를 보니 용쌤이 훨씬 가까워. 저 보물을 얻으면 역전하겠다!”
보물 사냥 종료 시각이 다가왔다.
용제건은 와인 저장고를 수색하던 중, 비밀 장치를 찾아내어 공간 왜곡을 해제하고 숨겨진 첨탑으로 향했다.
보물 수색조가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하늘을 날고 공간술을 사용하는 용제건을 막을 길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어.’
용제건이 보물의 수색에 집중하자 안다인은 에너미 토벌에 몰두했다.
용제건과 경쟁하며 보물을 찾는 것보다 에너미를 토벌하는 쪽이 더 점수를 벌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다인이가 성주의 방, 보스 룸에 도착했어!”
“성주의 초상화 뒤에 방이 숨겨져 있었구나. 어쩐지 저기에 저 그림이 걸려 있는 게 이상했어.”
“앗, 보스 룸 진입 연출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바로 공격해 버려서 생략된 것 같네요.”
이계 시뮬레이터에서 준비한 연출이 있었지만, 안다인은 바로 성채의 주인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안다인이 방아쇠를 당겼을 때에는 제한 시간이 1분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삐잇!
[보물 사냥 종료.]
이계 시뮬레이터에 설정한 제한 시간이 종료되어 경고음과 함께 보물 사냥에 참가한 이들 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1학년 1반과 용제건이 획득한 스코어는…….
“동점이다!”
“뭐? 비겼다고?”
제한 시간이 끝나기 직전.
용제건이 반지 케이스 크기의 보물 상자를 획득하고, 안다인은 보스 에너미의 핵에 총탄을 수십 발 날려 파괴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결과 동점이 되었다.
승부가 나지 않자 우리 반을 포함해 관객들이 술렁였다.
가장 동요한 건 참가한 1학년 1반 학생들이었다.
그때, 심판을 맡은 학생회 고문이 마이크를 잡았다.
“스코어 계산을 다시 하겠습니다. 점수 획득 장면을 재생하며 계산을 진행할 예정이니, 합산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바로 발언해 주십시오.”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참가자와 관객이 보는 앞에서 공정하게 점수를 낼 모양이다.
학생회 고문은 애매하다고 말이 나올 만한 부분을 느리게 재생해 보여 주며 엄밀하게 점수를 매겼다.
1학년 1반 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질문을 던지면 바로 명쾌하게 반박하고 답을 내 줬다.
‘0반을 가려내는 베테랑 교사는 과연 다르구나. 그런데 왜 자꾸 우리 반 쪽을 보지?’
학생회 고문은 우리 반과 1반 아이들을 번갈아 보며 고뇌에 잠긴 표정을 짓곤 했다.
이번 대결을 두고 0반 판독기로 이름난 교사로서 여러 생각이 드나 보다.
점수 재계산 과정이 길어져 관객들이 지루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대결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다시 살피고 해설과 분석을 덧붙이다 보니 분위기가 더 달아올랐다.
이 과정 덕에 1학년 1반이 여러 조로 나뉘어 움직이는 바람에 보지 못하거나 놓쳤던 활약상을 전부 볼 수 있게 되었다.
심판의 주도로 진행된 재계산 결과, 점수는 변하지 않았다.
‘심판이 점수를 집계하는 동안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구나.’
안다인이 직접 선택한 심판다웠다.
그냥 학생회 고문이라고 모신 건 아닌가 보다.
그런데 실수를 안 한 게 과연 심판뿐일까?
안다인이 마지막까지 싸웠다고 하나 용제건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비겼다는 게 어쩐지 석연치 않았다.
‘처음부터 용제건이 동점을 노린 게 아닐까.’
한편, 심판이 재차 무승부를 선언한 순간 홀로그램 속에 비추어지던 성채의 모습이 사라졌다.
바리케이드 너머로 1학년 1반 아이들과 용제건의 실물이 보이자 관객들이 박수로 이들을 맞이했다.
“재밌었어. 승부가 가려지지 않아서 아쉽다.”
말은 저렇게 해도 용제건은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았다.
안다인은 무표정 뒤로 감정을 감췄지만, 1학년 1반 아이들은 분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건 맘모스 빵을 해치우는 중인 유상훈 하나밖에 없었다.
“……이벤트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결을 청해 줘서 고마워.”
관객들이 보내는 환호와 박수 속에서 용제건과 안다인이 악수를 나눴다.
용제건은 손을 풀기 전에 안다인에게 짧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 모습을 본 성국언과 전무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부터 용제건을 보러 온 건가 보네.’
김신록이 반 아이들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이동하기 전, 성국언이 말을 걸었다.
“선생님, 그 책 나눠 주실 거면 한 권 받아 가도 괜찮겠습니까?”
“제 몫도 부탁드립니다, 김신록 선생님.”
김신록은 두 제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김신록이 난감해하는 얼굴로 책을 건네는 사이, 나도 냉큼 두 사람의 뒤에 섰다.
“김신록 선생님, 저도 한 권 부탁드릴게요.”
기왕이면 소장용으로 한 권 더 받고 싶었지만, 권수가 많이 없으니 참기로 했다.
용제건이 주인공인 책이라는 걸 알자 우리 반 아이들도 줄을 서서 책을 받아 갔다.
전부 줄을 선 건 아니었다.
민그린은 전시회장으로, 송대석은 협회 부스로, 맹효돈은 간식을 사 먹으러 가 버렸다.
“미로야, 어디 가?”
“상영회 당번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좀 돌아보려고.”
독고미로도 책을 받지 않고 갈 생각인가 보다.
그런데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축제 구경하러 다닐 거면 한이를 끌고 갔을 텐데.’
독고미로는 홀로 움직일 생각인 듯했다.
방금 책을 받아 든 한이가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독고미로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 * *
보물 사냥 이벤트가 끝나 1학년 1반은 뒷정리를 시작했다.
용제건과 비기는 바람에 의욕이 없어진 건지 아이들의 손이 느렸다.
의욕을 꺾는 건 승부의 결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도 이벤트 참가자니까 도울게.”
용제건이 뻔뻔하게도 이 자리에 섞여 있었다.
1반 아이들은 당장 유희계 용을 쫓아내고 싶었지만, 김신록이 말렸다.
“대형 구조물이 많으니 용제건 선생님께 정리를 맡기면 좋겠구나.”
“응, 맡겨 줘.”
“…….”
김신록이 용제건을 노동력으로써 부려 먹기로 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이 불만을 꾹 누르고 있을 때, 김신록이 한마디 더했다.
“선생님들한테 맡기고 너희들은 쉬렴. 이벤트 준비 고생 많았다.”
1반 아이들은 김신록이 왜 용제건을 부려 먹으려 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김신록은 1반 아이들을 쉬게 하고 싶었던 거다.
조금 서운할 뻔했던 1반 아이들의 마음이 빠르게 풀렸다.
학기 초라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니에요! 저희도 정리 도울게요!”
“선생님이야말로 쉬세요. 계속 바쁘셨잖아요.”
“이기지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훈훈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손에 든 봉투는 뭐예요? 책……?”
“……혹시 이 책 때문에 바쁘셨던 거예요?”
‘여의보주의 기적’을 발견한 1반 아이들이 순식간에 흉흉한 얼굴을 했다.
용제건은 시안색 표지를 보고 아주 기뻐했다.
책을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표정이 점점 황홀해지는 게 가관이었다.
심약한 성정을 가진 일부 1반 아이들은 그 표정을 보고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였다.
“김신록 선생님, 이런 걸 만들고 있었구나.”
“……도와드린다고 했으니까요.”
상위 존재가 되려는 용제건을 돕는 건 어디까지나 김신록의 자의였다.
그러나 상황을 모르는 1반 아이들 눈에는 용제건이 김신록에게 제 자서전 집필을 시킨 걸로 보였다.
1반 아이들 사이에서 오해와 분노가 휘몰아쳤다.
이벤트 뒷정리를 마치고 안다인은 싸늘한 얼굴로 ‘여의보주의 기적’을 읽었다.
“불러내서 미안.”
용제건의 목소리에 안다인이 책을 덮고 시선을 돌렸다.
보물 사냥 종료 후 악수를 나눌 때, 용제건은 안다인에게 잠시 시간을 내 달라고 했다.
안다인도 용제건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기에 그 말에 응했다.
안다인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프로 플레이어 팀 스카우터들의 식사 권유를 모두 거절하고 이 자리에 나왔다.
“내가 말하기 전에 다인이 질문부터 들을까?”
“왜 제가 질문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궁금한 게 없다면 내 권유를 거절했을 테니까.”
책을 쥔 안다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책을 건넨 게 김신록이라는 점을 고려해 힘을 조절한 덕에 책 표지가 구겨지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저는 비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생회 고문 선생님의 계산은 정확한데.”
“네, 그 계산을 보고 확신했어요. 이번 대결은 제 완패예요.”
안다인은 침착하게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길 가능성이 있는 규칙을 세워서 용제건 선생님께 제시했어요. 정보와 인원수를 고려하면 저희가 훨씬 유리했어요. 그런데도 동점이 나왔다는 건 진 거나 다름없어요.”
“운이 좋았어.”
“이 결과는 운으로 결정된 게 아니예요.”
안다인이 딱 잘라 말했다.
“이능파 대포를 자세히 살펴 봤더니 포신이 시안색으로 변해 있었어요.”
“그야 내가 공간을 채워 넣었으니까.”
“포신 속이 아니라 단면을 말하는 거예요.”
용제건의 손이 포구에 닿기 전, 이미 이능파 대포는 시안색 이능파로 물들어 있었다.
안다인이 추측하건대, 용제건이 동공이 세로로 열린 시점에 이미 이능파 입자가 대포를 침식한 것 같았다.
즉, 그 시점에선 포신을 막든 막지 않든 이미 대포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용제건 선생님은 교내에서 힘의 제약을 받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교내에서 대결을 청하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죠. 하지만 제가 틀렸어요.”
안다인은 그걸 알아채고도 반 아이들의 사기를 꺾지 않기 위해 함구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나 안다인은 패배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동점이었다.
안다인은 그 결과가 용제건이 의도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동점을 노린 건 맞는데, 운이 따라 주지 않으면 어려웠어. 며칠 일찍 도전했으면 너희가 이겼을 거라고 했잖아?”
용제건의 힘은 교원 계약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원 계약을 수정했으니까.’
용제건은 그 말을 생략했다.
안다인은 의문을 품었지만, 용제건이 대답하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길 수 있으면서 왜 동점을 노리신 거죠?”
“동점을 만드는 쪽이 더 재밌어 보였어. 또, 지는 건 싫은데 이겨도 별 소용 없을 것 같아서.”
“……?”
“너희 반 행사에 가고 싶지만 못 갈 수도 있어.”
용제건은 성국언에게도 했던 부탁을 했다.
“내가 상위 존재가 되면, 어느 진족들로부터 신록이를 지켜줬으면 해.”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