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퍼스트 크리스마스 (7)
“물러나십시오. 지금 방윤섭 학생은 정상이 아닙니다!”
“으아아아!”
콰아아아앙!
목우람의 경고와 거의 동시에 방윤섭이 오른팔을 휘두르자 폭음과 자줏빛 이능파가 흩어졌다.
이능파에 강한 소재로 제작된 바닥이 가루가 되어 있었다.
은광고 시설 대부분이 1학년 플레이어가 충격파만으로 부술 수 있는 정도의 강도가 아니었다.
방윤섭을 둘러싼 플레이어들이 크게 동요했다.
‘플마고에서 봤던 것보다 더 강력해. 이능파 색도 달라.’
플마고 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방윤섭의 오른손이었다.
그때에도 방윤섭은 오른손을 인비디우스의 사제에게 빼앗겼지만, 이능파 색이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달랐다.
그리고 지금 손에 박혀 있는 자주색의 안구도 없었다.
‘아바리티아의 사제가 신단(神壇)으로 보낸 눈을 사용했구나!’
자주색은 사관학교 교류전 개막식에서 본 마족의 색이었다.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눈을 손에 넣은 후, 그중 하나를 방윤섭에게 심은 듯했다.
저 안구 탓에 방윤섭의 힘이 플마고 때보다 더 커진 듯했다.
“쟤 폭주한 거야? 기절시켜서 이능파를 진정시키는 게 낫지 않아?”
“폭주는 아닌 것 같은데…… 윤섭이 평소 이능파 색깔이랑 달라.”
“저거 가짜 아니야? 쟤가 등신이긴 하지만 우리를 공격할 리가!”
“빵셔틀 오늘 안 올거라고 했잖아. 그냥 에너미일 수도 있어.”
방윤섭이 소속한 1학년 2반 아이들이 패닉을 일으킨 건지 횡설수설했다.
기생종 에너미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런 에너미는 기생한 대상의 이능파를 이용한다.
지금의 방윤섭처럼 이질적인 이능파를 뿌리며 몸의 통제권을 두고 싸우지는 않는다.
방윤섭이 당하고 있는 건 강력한 진족에 의한 권속화 현상으로, 상당히 드물게 발생하니 바로 추측하긴 어려울 거다.
“아니야, 여기에 있는 건 윤섭이야!”
2반 아이들 말에 주수혁이 반박했다.
그러자 주수혁의 목소리에 반응한 방윤섭이 비명을 지르며 크게 몸부림쳤다.
“주수혁! 으으…… 으아아아악!”
방윤섭의 오른손이 허공을 긋자, 주수혁이 급히 쌍검을 휘둘렀다.
콰드드득! 채앵!
쌍검이 허공에 남긴 잔상이 날개짓을 하듯 움직여 방윤섭의 힘과 충돌했다.
퍼엉!
방윤섭의 이능파는 상쇄시켰으나 충격파에 조경 수목이 뽑혀 나가고, 금속으로 된 안내판이 휘어졌다.
“윤섭이는 축제 때에도 왔어. 둘째 날에 윤섭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재고 부족으로 일찍 문을 닫아야 했을 거야. 오늘도 윤섭이가 올 것 같아서 찾아내 합류했어!”
주수혁의 말에 방윤섭이 움찔하고 반응했다.
“나도 이 새끼가 방윤섭인 거 같다. 그런데 왜 이러냐, 정신 차려!”
“으으으…….”
같은 스승에게 사사받던 방윤섭의 상태를 본 맹효돈이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러나 맹효돈의 일갈에도 방윤섭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상황을 보니 방윤섭은 여전히 의식이 남은 상태지만, 폭주하는 마족의 힘을 억누르지 못해 날뛰는 것 같았다.
방윤섭은 주수혁과 합류하기 전까지는 멀쩡했지만, 중앙 구역에 도착한 후부터 상태가 이상해진 모양이다.
‘주수혁은 플마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방윤섭을 찾으러 갔겠지.’
플마고 속, 반에서 겉도는 방윤섭은 축제와 크리스마스 때 안 올 거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결국 왔다.
그때 방윤섭은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주수혁한테 발견되어 어찌저찌 합류하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는 축제 내내 뒤에서 몰래 2반 아이들을 돕고, 오늘도 주수혁에 의해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서 평소 방윤섭의 흡연이 자주 적발된 지역에 주수혁을 배치했다.
방윤섭이 좀 이르게 폭주하더라도 주수혁이라면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으니까.
예상대로 주수혁은 방윤섭을 찾아내 합류했다.
“주수혁이나 나와 같이 싸울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빠져라. 여기는 맡기고 에너미 토벌에 집중해!”
곽경구가 크게 소리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물러났다.
방윤섭의 주변에 남은 건 곽경구, 주수혁, 맹효돈, 유상훈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었다.
민그린과 목우람은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권레나와 함께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경구 형, 괜찮아요?”
“회복시켰다. 괜찮다.”
곽경구는 덤덤하게 말하고 쌍검을 쥐었다.
주수혁과 같은 쌍검 도장 출신이라 그런지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춰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한편, 방윤섭은 주수혁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얼굴을 크게 일그러뜨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꺼져…….”
방윤섭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이 아닌 목소리가 나왔다.
방윤섭의 교복 오른쪽 소매는 완전히 찢겨져 팔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는데, 말을 할 때마다 자줏빛 기운이 부글부글 끓었다.
‘치익’ 하고 방윤섭의 피부가 타는 소리가 들리자 주수혁이 탄식했다.
“윤섭아……!”
“꺼지라고! 너 때문에, 나는, 나는…… 아아아악!”
퍼억!
방윤섭의 오른팔이 자줏빛 가시로 뒤덮이며 이능파를 발산했다.
그러자 주수혁과 곽경구가 방윤섭의 주변을 빙글 돌며 쌍검을 휘둘러 바로 힘을 상쇄해 버렸다.
주수혁은 마치 백조가 우아하게 날개짓하듯 이능파를 향해 쌍검을 그으며 움직였지만,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윤섭이 뿜는 이능파는 점점 강해지는 반면, 그의 이성과 억제력은 약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거다.
“조의신, 뭘 기다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서둘러라.”
유상훈이 말을 걸었다.
내가 무슨 짓을 준비했는지도 모르면서, 마치 머릿속을 꿰뚫어 본 것 같은 소리를 했다.
하지만 유상훈의 말에는 동의했다.
‘……더 기다리는 건 어렵겠구나.’
한계에 다다른 방윤섭을 방치할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마침 내 바로 옆에는 맹효돈과 유상훈이 있었다.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어. 내가 돌아와서 괜찮다고 할 때까지 절대 경계를 늦추지 마.”
듀얼링 실드를 고쳐 든 유상훈이 고개를 끄덕이고, 맹효돈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나는 방윤섭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의신아, 지금 가까이 가면 위험해!”
“괜찮아.”
주수혁이 뭐라 더 말을 하려 했으나 맹효돈이 손짓을 하자 입을 열지 않았다.
방윤섭의 주변은 엉망이었다.
바닥은 수십 마리의 짐승이 할퀸 것처럼 엉망이었고, 오른손이 파괴한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피로 추정되는 액체도 떨어져 있었는데, 처음 다친 것으로 추정되는 곽경구가 흘린 것인지 방윤섭의 오른팔이 변이되는 과정에서 흘린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꺼져, 꺼지라고…… 지금, 나는…….”
방윤섭이 나를 보고 숨을 몰아쉬며 오른팔을 억눌렀다.
사람의 접근을 알아챈 건지 방윤섭의 오른팔을 감싼 자줏빛 기운이 짙어졌다.
“방윤섭, 약속의 불집게를 잊은 건 아니겠지.”
“…….”
방윤섭이 의아해하다가 순간 굴욕과 분노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은광고에서 첫 수업을 하던 날.
나는 방윤섭과 대련을 해 이겨, ‘약속의 불집게’라는 아이템을 사용해 제약을 걸었다.
이 아이템을 걸고 한 약속을 어기는 자는 손톱을 모두 잃게 된다.
“네 손에 제약을 먼저 걸었던 건 나야. 내 말을 1년 동안 듣기로 했잖아?”
“하지만, 그건, 고작 손톱에…….”
약속의 불집게가 품은 힘은 고위 마족이 심은 눈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다.
하물며 플마고 때와 달리 이번에는 마족 두 명의 힘이 그 오른손에 심어졌다.
그러나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아 계약은 유효하고, 내게는 한 수가 더 있었다.
“힘을 심은 건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
방윤섭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질투에 삼켜진 방윤섭은 제 손에 있는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지, 얼마나 자신이 성장했는지 알지 못했을 거다.
“네 그릇은 처음 그분의 가호를 받을 때보다 더 커졌어. 그때에는 고작 죽을 틈을 벌 수준의 힘밖에 받지 못했지.”
“무슨, 소리를…….”
방윤섭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플마고 속의 방윤섭이 최후를 마지했을 때, 가호의 발동으로 주수혁에게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시간을 벌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이 자리에서는 나뿐이니까.
방윤섭에게는 사족의 수장이 건 가호가 있다.
가호의 내용은 어느 사족(蛇族)의 응원, ‘그 등신스러움이 네 매력이다’였다.
이 가호는 플마고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걸려 있던 거였다.
‘방윤섭이 1학년을 보내는 동안 성장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둘 수 없는 수였어.’
퍼스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장 우선시한 건 긴 꼬리 후보인 사족과 우족 중 배신자를 가려내는 것이었다.
둘 중 누가 배신자인지, 결정적인 단서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족과 연관되는 단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방윤섭의 존재였다.
사족의 수장과 대면한 염준열은 이런 말을 했다.
―그분은 그 학생을 ‘등신 같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나름 걱정하시는 것 같았어. 가호까지 내렸다고 하니까 신경 쓰고 계시나 봐.
그 말을 계기로 나는 호족과 협력해 방윤섭을 조사했다.
사족의 수장에 관해 캐는 건 까다로웠으나, 방윤섭에 관해 조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결과, 사족의 수장이 직접 방윤섭에게 디바이스로 연락한 이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방윤섭에게 가호를 내린 건 사족의 수장인 게 분명했다.
‘만약 사족의 수장이 흑막 측이고, 방윤섭을 이용하기 위해 가호를 준 상태였다고 치자. 그랬다면 사족의 수장과 마족이 협력해서 방윤섭에게 개입한 셈인데 어떻게 그때 정신을 차린 걸까?’
12지의 수장과 마신을 섬기는 고위 사제가 동시에 방윤섭의 정신을 쥐었는데, 그가 벗어난 건 말도 안 됐다.
나는 사족의 수장이 흑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때 방윤섭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끝까지 날뛰었다면 흑막의 계획이 더 앞당겨졌을 텐데, 변덕으로라도 방윤섭을 도운 건 말이 안 됐다.
이후 사족의 수장이 접촉했다는 TC 연구소 관계자를 철저히 조사해 증거를 더 모았다.
사족의 수장은 유상희에 관해 조사하기 위해 움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12지 회담 때 사족의 수장은 이런 말을 남겼었다.
巳[탈피ing] “은광고 요새 사건이 많던데? 그거 때문이냐? 내가 가호 내린 등신 같은 놈이랑, 모시는 상위 존재님 따님이 아끼는 사제도 은광고다. 걔네한테 뭔 일 있으면 황호부터 족친다.”
사족이 모시는 상위 존재는 아스클레피오스.
뱀이 감긴 지팡이를 든 상위 존재다.
그리고 아스클레피오스의 딸 중에는 아케아가 있다.
즉, 모시는 상위 존재의 따님이 아끼는 사제는 유상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염준열이 사족의 수장에게 디바이스 코드를 받아 둔 덕에 연락이 수월했지.’
사족의 수장은 흑막이 관여한 사건에 관해 알지 못했다.
괜히 TC를 들쑤시다가 황지호의 눈에 띌 수도 있는데, 공연히 조사를 벌이기까지 했다.
사족이 긴 꼬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퍼스트 크리스마스 시나리오 시작 전, 사족의 수장과 접촉했다.
그리고 사족의 수장으로부터 어느 아이템을 받았다.
나는 카드 형태의 아이템을 실체화했다.
실체화된 아이템은 뱀의 비늘이었다.
“좀 아프겠지만 참아라.”
사족의 수장은 그 등신 같은 놈을 생각보다 더 아끼는 것 같았다.
직접 몸에서 떼어 낸 비늘을 내어 줄 정도로 말이다.
“방윤섭, 마족의 말을 무시하고 더 무겁고 큰 가호를 받아들여.”
나는 사족의 수장이 준 비늘을 방윤섭의 손톱에 올린 후 이능파를 실었다.
손톱에는 나와 나눈 계약이 남아 있어 내 이능파에 방윤섭이 금방 반응했다.
“크아아아아악!”
화르륵!
내가 건 계약을 매개로 비늘이 손톱에 녹아들었다.
방윤섭은 죽어라 비명을 질렀지만 곧 자줏빛으로 물들었던 팔이 서서히 원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는 방윤섭이 안정을 되찾자 주변에서 안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윤섭아! 괜찮아?”
주수혁이 방윤섭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유상훈이 가로막았다.
“아직 조의신이 괜찮다고 말 안 했다.”
“어?”
그 순간, 노린 듯이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를 뒤덮었다.
한숨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아…… 정말, 쉽게 되는 일이 없네.”
그자는 로브를 쓰고 있었다.
로브에는 7대 죄악의 마신 중 하나, 인비디우스의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97)